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305)
독식하는 재벌 3세-305화(305/518)
305. 발악하다 (4)
신종 플루가 펜데믹으로 선언되었다.
미국, 멕시코는 물론이고 유럽과 아시아까지 신종 플루에 대한 공포심이 심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많은 국가가 신종 플루의 치료제로 알려진 태미플루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회장님, 보건복지부에서 태미플루 1,000만 회 확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까지 직접 브리핑을 하며 태미플루 확보를 정부의 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직 납품을 시작도 안 했는데 빠르게 움직이는군요. 하긴 지지율을 올릴 기회를 놓칠 정치인들이 아니긴 하죠.”
“청와대에서 경찰 특공대까지 파견해 태미플루 호송 작전을 펼치겠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운송 차량이 보건복지부에 들어가는 건 그림이 잘 살지 않지만.
완전 무장을 한 경찰 특공대의 호위를 받으며 운송 차량이 보건복지부로 들어가는 건 누가 봐도 좋은 그림이었다.
“뉴스 보도용으로 사용하기 딱 좋은 작전이군요. 이번 정부에서 태미플루로 재미를 많이 보려고 하는가 봅니다.”
“정부에 900만 회를 납품하더라도 500만 회 이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생산되는 양까지 더하면 매달 1,000만 회 이상을 수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20%를 풀기로 했으니 수출을 할 수 있는 양은 800만 회 정도겠군요. 어디에서 연락이 왔나요?”
“일본, 미국, 인도 등 아시아 전역에서 문의가 들어왔고,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문의가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아시아 판매권만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계약이 그러했고,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에 태미플루를 판매하게 되면 엄청난 위약금과 더불어 생산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스위스 제약회사에서 납품하는 양으로는 미국과 유럽에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나 보군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몇 개의 국가에서는 특허권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태미플루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태미플루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시피를 어떻게든 얻어 내어 만든다고 한들, 제대로 된 치료제가 나오기 어려웠다.
우리도 태미플루 개발자인 김장우 박사를 데리고 왔지만,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겨우 태미플루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태미플루 품귀 현상이 심해질수록 그런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겁니다. 그런 상황을 스위스 제약회사에서도 반기진 않을 겁니다.”
“미국과 유럽에 판매할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민간 판매는 예전처럼 금지하고, 국가를 상대로 거래하는 것 정도는 마지못해 승인하겠죠. 하지만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요. 미국과 유럽 정부에서 먼저 움직여야 우리 몸값이 더 올라가지 않겠어요?”
사람은 참 간사했다.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것과 요청에 의해 도움을 주는 것.
둘 중 후자를 더 고맙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미국과 유럽 쪽을 지원하는 것보다 도움을 요청해 오면 도와주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었다.
“그럼 계속해서 재고를 태우그룹에 쌓아 놓으며 요청이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센트리언에게 말해 지금보다 생산량을 더 늘려 달라고 부탁도 해 보세요.”
“이미 한계 케파 이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태우그룹의 인력을 지원 보내도록 하세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인력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공장 규모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태우그룹에 제약 공장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태우그룹에는 제약회사가 없긴 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다른 제약회사의 공장을 빌려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지금이야 넘어갈 수 있겠지만, 추후 스위스 제약회사에서 조치를 취할 게 분명했다.
“그럼 제약회사 한 곳을 인수해야겠군요. 제약 공장을 보유한 저렴한 회사 한 곳을 알아보세요.”
“기획실에서 제약회사 인수를 이미 검토해 보았습니다.”
나는 기획실장의 말에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알아서 미리 검토를 했다니.
기획실장도 나와 함께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방향을 잘 읽고 있었다.
“기획실 차원에서 이미 검토를 했다니 아주 좋군요. 그래서 어떤 제약회사가 가장 적합합니까?”
“사천리 제약이 가장 조건에 부합합니다.”
“자전거 회사를 말했을 리는 없고, 사천리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사천리그룹의 계열사 중에 제약회사가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사천리’라고 하면 자전거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동명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천리그룹도 존재했고, 결코 무시할 수준의 그룹은 아니었다.
특히나 에너지 분야에 두각을 보이는 사천리그룹이었고.
외환위기 당시에도 흑자를 낼 정도로 아주 알짜 그룹이었다.
“사천리그룹에서 제약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나름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회사입니다. 80년대에 에이즈 치료제 합성기술을 개발했고, 항바이러스제 개발도 성공한 전통 있는 제약회사입니다. 단지 규모가 크지 않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다면 공장도 작다는 뜻이 되겠군요.”
“공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cGMP급 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태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cGMP급 공장.
미국 FDA가 정한 관리기준을 통과한 공장을 뜻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FDA의 관리기준을 통과했다면 충분히 태미플루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천리그룹에서 제약회사 매각을 할까요? 괜히 매각 의사도 없는데 우리가 먼저 접근하면 높은 가격으로 인수할 수밖에 없어요.”
“사천리그룹 쪽에서도 제약회사를 매각하려는 의사를 보이곤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여러 제약회사와 만나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각 의사도 있고, 국제 기준에 맞는 공장도 가지고 있군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제약회사군요. 기획실에서 조사를 아주 잘 진행해 주셨어요. 바쁜 시기니 회식은 그렇고 보너스라도 좀 줘야겠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몸을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하시던 회장 전용 금고가 있었고.
금고를 열어 현금 다발을 꺼내 서류 봉투 안에 담아 기획실장에게 전해 주었다.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세요.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치킨 한 마리씩을 사 들고 갈 정도는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치킨이 한 마리가 아니라 100마리도 사 들고 갈 수 있을 금액입니다!”
대충 기획실 직원 한 사람씩에게 200만 원은 돌아갈 정도의 현금다발이었다.
웬만해서는 이런 식으로 공을 치하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기획실이 이번 일을 내 마음에 쏙 들게 했다는 뜻이었다.
“이번 일은 시간 싸움입니다. 최대한 빨리 인수를 끝마쳐야 하죠. 그러니 제가 사천리그룹 회장과 만나 담판을 짓겠습니다. 일정을 잡아 주세요.”
“지금 바로 사천리그룹 회장과 약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기획실장이 평소보다 두 톤 높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역시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데는 현금다발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 * *
다음 날 저녁.
강 대위의 식당 별관에서 사천리그룹 이장덕 회장과의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김 회장님 반갑습니다. 어제 연락을 받고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에너지 분야에서만큼은 사천리그룹만큼 전통과 역사가 깊은 그룹이 없고, 이 회장님의 수완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셨습니다.”
“김태중 회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몇 번 뵙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좋은 평가를 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장덕 회장은 얼굴까지 붉히며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천리그룹의 재계 순위는 50위 권.
재계 1위 창업주가 칭찬을 하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태우그룹도 에너지 분야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천리그룹에게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그럼 진작 연락을 주셨으면 버선발로 뛰쳐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 에너지 사업이 많이 힘들지 않으십니까? 도시가스 사업이 포화상태라고 들었습니다.”
내 목적은 제약회사였지만.
먼저 제약회사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모르게 해야지만, 협상이 쉬워지기에.
“도시가스 사업이 포화 상태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나마 석탄 사업으로 돈을 벌곤 있지만, 이대로는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리먼 사태까지 터져 더욱 힘드시겠습니다. 계열사 몇 개를 매각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업종이 다른 계열사는 매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혹시 태우그룹에서 관심이 있는 계열사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좋은 조건으로 계열사를 매각하겠습니다.”
이 회장이 은근슬쩍 미끼를 던졌다.
여기서 덥석 미끼를 물어 버리면, 우리가 제약회사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태우그룹도 선택과 집중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소도 매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계열사 인수 문제가 아니라면 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영광입니다만···.”
나는 여유롭게 물 한 잔부터 마셨다.
그러고 나서도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시대가 점점 환경 오염에 민감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 LNG 발전소 사업을 태우그룹과 함께 진행할 생각이 없으신지 문의드리려고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LNG 발전소를 말씀이십니까? 태우그룹과 같이 진행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그런데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그룹의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아 계열사 매각이 끝나고 난 뒤에야 가능합니다.”
LNG 발전소 개발.
이는 결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다.
태우그룹은 제조 공장, 데이터 센터 등 전력 소모가 많은 사업을 진행 중에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규모를 더 키워 나가고 있었기에 민간 발전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사천리그룹과 태우건설이 협업해 제대로 된 LNG 발전소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시니 어렵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계열사 매각 속도를 높여 보겠습니다. 사천리 제약만 매각해도 최소 5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상황이었다.
LNG 발전소를 미끼 삼아 사천리그룹이 제약회사를 어떻게든 빠르게 매각하게끔 만들려는 것이 이번 만남의 목적이었다.
“제약회사 매각을 태우그룹이 도와드릴 순 있습니다. 태우그룹의 인맥을 이용하면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자본에게 매각할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흠, 우선은 태우그룹이 사천리 제약을 인수하고 다시 매각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사천리그룹을 무시해서는 절대 아니고, 아무래도 태우그룹의 이름으로 매각을 진행하는 것이 더 후한 값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같은 물건이라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마련.
이 회장도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태우그룹에서 제약회사를 먼저 인수해 자금을 융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현재 다른 제약회사 몇 곳과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과 비슷한 금액 혹은 조금 더 많은 금액을 지금 당장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 말이 핵심이었다.
다른 제약회사와 매각을 진행하면 최소 몇 달의 시간은 걸렸다.
하지만 태우그룹은 지금 당장 매각 대금을 지불할 수 있기에 이 회장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 논의를 해 봐야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유 회장이 반대를 하더라도 제가 밀어붙이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실무진끼리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사천리그룹은 조금은 특수한 그룹이었다.
창립할 때부터 두 명의 회장이 존재했고, 지금도 그렇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 회장이 미끼를 꽉 물었으니 굳이 내가 유 회장을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