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31)
독식하는 재벌 3세-31화(31/518)
31화. 연구소(1)
굶주린 늑대처럼 나를 바라보는 이 영감이었다.
보고 있자니 오금이 저린 눈빛이었지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에 그의 눈빛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명동의 힘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2년 전에 있었던 금융 실명제로 타격을 입었고, 고리대금과 부동산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만든 길을 같이 걷기만 해도 명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겐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로 망하는 건 대기업만이 아니었다.
대기업에게 많은 자금을 빌려준 명동 사채시장 또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지나고 난 뒤의 명동 사채시장은 예전의 명성을 잃게 되었다.
나와 손을 잡는다면 피할 방도를 알려 줄 수 있다.
외환위기라는 폭탄만 피해도 명동의 주인이 되는 건 당연한 일.
내가 준 기회를 잡든가 아니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든가.
선택은 광화문 곰의 결정에 달려 있다.
“김 회장이 아주 재미난 손자를 두었군. 조만간 내가 따로 연락을 주겠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아! 그리고 막내 사촌 동생 놈은 내가 거두어 가겠네.”
“감사합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광화문 곰은 결정을 보류했다.
그래도 이 상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김 회장에게도 안부 전해 주게나.”
잘 선택하세요.
어렵게 손을 내밀었는데 뿌리치면 제가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이 영감과의 만남을 끝마쳤다.
* * *
김민재가 돌아간 광화문의 고택.
곰같이 거대한 이 영감이 곰방대를 물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남성이 지키고 서 있었다.
“박 군아, 네가 보기엔 태우그룹 손자가 어찌 보이더냐?”
“확실히 호랑이 새끼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보고드릴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회장님과 태우그룹 손자가 만나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량 20대가 고택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감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계속 말해 보라는 듯이 곰방대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였다.
“대략 60명에 달하는 인원이었고, 그들 모두 훈련을 받은 몸짓이었습니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에 비하면 어떤가?”
“비슷했습니다. 군대 쪽에서 데리고 온 인원처럼 보였습니다.”
“생각보다 더 재미난 놈이군. 그래서 말이다. 나는 호랑이 새끼랑 손을 잡을까 싶다. 대대로 한국은 곰과 호랑이가 찰떡궁합이지 않느냐.”
“이제 겨우 호랑이 새끼에 불과합니다. 회장님과 같이 설 격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를 명동의 주인으로 만들어 준다는데 격이 뭣이 중하겠나?”
박 군이라 불리는 사내가 잠시 이 영감의 표정을 훔쳐봤다.
강남에 산 땅이 10배 넘게 올랐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내 손자였으면 당장 명동을 물려주고 싶을 정도로. 김 회장 손자니 더 많은 것을 물려받겠지만.”
“명동에서 떠도는 소문으로는 태우그룹의 사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90년대 중반의 명동은 정보가 모이는 장소였다.
금융 회사마저도 정보를 얻기 위해 명동 사채시장을 찾을 정도였고.
주가 조작이 의심되면, 명동에 물어보고 수사를 진행할 정도의 정보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명동에서 태우그룹의 소문은 별로였다.
재계 서열 3위의 대기업이지만, 부채율이 워낙 높아 모 아니면 도가 될 거란 소문이었다.
“CT은행에서 4천억을 대출해 준다는 소식은 아무도 몰랐다. 명동의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너무 맹신하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저도 CT은행에서 움직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김민재 본부장의 이름값으로 대출이 나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이름 꽤 날리는 CT은행도 호랑이 새끼와 손을 잡았는데 내가 안 잡을 이유가 있겠느냐?”
“저는 회장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이 영감이 미소를 지었다.
박 군은 항상 자신의 말을 따르는 우직한 사냥개였다.
어찌나 우직한지 사냥이 끝났음에도 옆에 두고 키울 정도였다.
“이준수 그놈이나 데리고 오거라. 기술이나 배우라고 공장 보내놨더니 헛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더구나. 네가 그놈을 사람 한 번 만들어 보거라.”
“…… 제 방식은 많이 거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몇 군데 부서져도 상관없으니 밥 빌어먹고 살 정도는 만들어 봐라.”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겠구나. 저놈도 양반은 안 되는지 알아서 오고 있구나.”
고택의 정문에서 이 상무가 씩씩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이 영감의 앞까지 다가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쾅!
박 군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해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사람으로 만들어 데리고 오겠습니다.”
“네가 고생 좀 하거라.”
이 영감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박 군은 고개를 크게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이 상무의 발을 움켜쥐고는 고택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 * *
이 영감과의 만남을 끝내고 나는 강 대위의 사무실을 찾았다.
물론 그 전에 김 실장 아저씨에게 엄청 시달리고 난 다음에야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나는 쇼파에 앉아 귀를 후볐고, 강 대위는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다.
“귀에 딱지가 생기겠네. 그런데 무슨 사람을 그렇게 많이 동원했어요? 설마 대기업 회장 손자를 대놓고 어떻게 하겠어요?”
“혹시 몰라 동원을 했습니다. 아! 그리고 남아 있던 직원으로부터 이상한 소식을 하나 전해 들었습니다. 이 상무가 정신을 잃은 채 고택에서 끌려 나갔다고 합니다.”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었네.
더는 창원 공장에서 이 상무를 볼 일이 없게 생겼다.
“광화문 곰이 이 상무를 사람 만드려나 보네요. 쑥이랑 마늘을 먹이려나?”
“이 상무를 쫓아내기로 명동과 합의를 보셨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럼 지금까지 진행하던 작전은 어떻게 합니까?”
“계속 진행해야죠. 창원 공장의 암 덩어리는 이 상무 혼자만이 아니니까요. 이 상무 패거리를 창원 공장에서 쓸어 버려야죠.”
이 상무라는 성벽이 부서졌다.
정확히는 이 상무 뒤에 있는 광화문 곰이라는 성벽이 알아서 사라진 거지만.
어찌 되었든 명동이 더는 창원 공장에 간섭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간 돈 받아 처먹은 놈들을 쓸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감사팀에서 처리하실 겁니까? 아니면 법적 조치까지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내부 징계로 끝낼 일은 그렇게 처리하고 죄질이 더러운 놈들은 구치소 밥 좀 먹여야죠. 증거는 충분하죠?”
“이 상무 패거리 대부분의 증거는 이미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럼 감사팀 윤 차장에게 내부 징계를 시작하라고 전하세요. 흐름이 왔을 때 처리해야지 괜히 시간 끌면 어렵게 피운 불씨가 사그라들어 버려요.”
“이 상무 패거리를 확실히 태워 버리겠습니다.”
이런 일에 길게 시간 끌 필요가 없다.
이 상무의 경우야 사장단 회의를 거쳐 징계 처분을 내려야 했지만.
나머지 인원은 직급이 높지 않아 감사팀의 권한만으로도 충분히 징계를 내릴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창원 공장 게시판에 내부 징계 공문이 붙여졌다.
징계 인원은 무려 47명.
최소 감봉 3개월부터 최대 해고 조치까지.
모두 창원 공장에서 힘 좀 쓰던 사람들이라 파장이 심상치 않았고.
파장은 창원 공장을 넘어서 계열사 사장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사장단 회의가 불과 어제 진행되었건만, 창원 공장 징계로 인해 비공식 사장단 회의가 소집될 정도의 파장이 일었다.
20명의 계열사 사장이 급히 모임을 가졌다.
이 상무를 돕던 사장은 물론이고, 이번 징계를 심상치 않게 여기는 사장까지 모여들었다.
“김 본부장의 칼춤이 너무 매섭습니다. 이 상무가 더는 창원 공장에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 상무가 좀 심하게 해먹긴 했죠.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정도를 지키며 해 먹었다고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김 본부장은 지금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칼춤을 추고 있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움찔했다.
계열사 사장에 오른 사람치고 크고 작은 뒷돈 한 번 안 받아 본 사람이 드물었다.
이 상무보다 더 많은 금액을 횡령한 사람도 있기에 이번 사태를 쉽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김 본부장을 막아서긴 힘들어졌습니다. 달리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최고 속도를 향해 나아가는 기차를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게다가 이 상무가 너무 강한 명분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기차를 막아설 수는 없죠. 하지만 노선을 바꿀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태우전자 박진훈 사장의 말에 모두가 관심을 집중했다.
그룹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세인 그이기에 분명 묘책이 있을 것이다.
“감사라는 노선에서 경영이라는 노선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지 않겠어요? 남의 꼬투리를 잡는 일은 쉬워도 경영은 결코 쉽지 않죠.”
“그런데 김 본부장이 경영을 하려고 들겠습니까? 강제로 부서를 이동시킬 명분이 없습니다.”
“명분이 왜 없나요? 이 상무가 명분이죠. 창원 공장 감사를 아주 잘했으니 승진을 시켜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팀에서 본부장보다 높은 직급은 없으니 계열사로 옮겨야 하지 않겠나요?”
박진훈 사장의 말에 사장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묘수다!
승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회사 경영을 시키게 된다면 더는 칼춤을 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회사 경영을 하게 되면, 절로 먼지가 묻기 마련이다.
먼지가 묻은 다음에야 다 같은 더러운 사람이 되니 자신들을 쳐낼 수가 없을 것이다.
[김 본부장이 이번 일로 고생이 많았죠. 좋은 일을 했으니 당연히 상을 내려야지요.] [그렇고말고요. 본부장보다 더 높은 직급이면 상무 정도면 충분한 상이 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참에 부사장은 어떻습니까? 태우 실업 부사장 자리가 마침 공석이지 않습니까?] [어허, 왜 우리 태우 실업을 걸고넘어지십니까! 그러지 말고 태우 관광이 좋겠습니다.]모두가 김민재가 감사팀을 떠나는 걸 바랬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계열사로 오는 건 또 바라지 않았다.
“허허, 다들 무슨 마음인지 제가 잘 압니다. 그래서 태우전자로 인사 이동시킬까 합니다. 마침 태우전자 기술 연구소 소장 자리가 비어 있어서 마땅한 사람을 물색 중이었는데 잘되지 않았습니까?”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기술의 중요성은 몇 번이나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요.] [예전에는 회장님도 기술은 사서 쓰면 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달라지셨습니다.] [기술 연구소라면 경력을 쌓기에도 정말 좋은 자리입니다.]이구동성으로 박 사장의 의견에 호응하는 사장단이었다.
자신의 계열사로 오지 않음은 물론이고, 감사와는 전혀 거리가 먼 기술 연구소였기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회장님이 돌아오는 즉시 사장단 회의가 재개된다고 하니 그때 제가 건의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김 본부장이 연구소로 가려고 할까요?”
“결국 인사권은 회장님에게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호응을 잘해 주시면 문제 될 건 없다고 봅니다.”
“최대한 힘을 실어 드리겠습니다!”
비공식 사장단 회의가 종료되었다.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로 박진훈 사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민재를 감사팀에서만 내보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착각하는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