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33)
독식하는 재벌 3세-33화(33/518)
33화. 연구소(3)
태우그룹이 외환위기로 쓰러진 건 막대한 차입금 때문이었다.
나야 미래를 보고 왔기에 그 사실을 알지만, 후쿠다 고문은 오롯이 자신의 분석력만으로 그 상황을 예측했다.
“자네가 이번에 총괄 소장으로 왔다고 하는 김 회장님 손자인가?”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연구소 총괄 소장을 맡게 된 김민재입니다. 김태중 회장님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만든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가?”
“보고서를 보진 못했지만, 구전으로나마 전해 들었습니다. 막대한 차입금이 태우그룹을 위험에 빠트린다는 내용에 저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후쿠다 고문이 비웃음을 날렸다.
자신의 뜻에 공감한다는 나를 믿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보고서를 읽지도 않고 공감한다? 그래 공감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건가? 내가 만든 보고서는 그룹에 보고되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들어갔는데.”
“보고서의 가치를 알아볼 사람이 그룹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장님에게 보고서가 전해지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윗자리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네가 회장님에게 보고서를 전해 주기라고 하겠다는 건가? 그런다고 해서 태우그룹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걸세.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가장 폐쇄적인 집단이 태우그룹이니까.”
나만큼이나 할아버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후쿠다 고문이 하는 말에 나는 적극 동의하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제가 태우그룹의 폐쇄적인 체질을 개혁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차라리 태우그룹을 갈기갈기 잘라 팔아 치우는 것이 더 나을 걸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우그룹의 계열사 50퍼센트 이상을 다른 기업에 팔아 버릴 겁니다.”
“…… 회장님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걸세.”
“그룹이 망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잠시 칠판을 써도 될까요.”
나는 동의를 받기도 전에 분필을 먼저 들었다.
그러곤 칠판에 40개의 계열사를 적었고, 30개가 넘는 계열사에 X표를 칠했다.
후쿠다 고문은 단번에 칠판에 적힌 의미를 파악했다.
“X표를 한 계열사를 잘라 내겠다는 겐가? 허허, 태우그룹에서 내가 가장 미치광이인 줄 알았더니 자네가 나보다 더하군. 태우조선, 중공업 그리고 전자까지 팔아 버리겠다니.”
“돈 될 만한 건 전부 팔아 치울 겁니다. 지금 태우그룹에서 쓸 만한 건 태우자동차와 건설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태우조선은 조금 아깝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태우조선을 판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게 이득 아니겠습니까?”
나는 처음으로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꺼내 놓았다.
할아버지가 힘들게 만든 계열사 대부분을 팔아 치운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생각한 태우그룹의 유일한 회생안이었다.
내가 추는 칼춤은 이 상무 같은 사람을 잘라 내는 것만이 아니다.
태우그룹의 방대한 계열사마저 모조리 잘라 내야 진정한 칼춤이었다.
“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군. 나는 세력 확장을 멈추고 차입금을 갚는 방식으로 태우그룹을 개선하려고 했다네.”
“고문님의 방법은 가장 안정적이며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태우그룹의 매출로는 차입금을 모두 갚으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걸립니다.”
“10년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네.”
후쿠다 고문의 나이는 대략 70세.
그런 그에게 10년의 세월은 길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까지는 고작 2년의 시간만이 남았다.
“일본의 경제 버블이 5년 전에 꺼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에 또 경제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한국에 그런 경제 위기가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자네는 조만간 한국에 경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 보는 건가?”
“한국의 대기업은 유리성이나 다름없습니다. 부채율이 400퍼센트가 넘어가지만 이를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손으로 툭 치기만 해도 무너져 내릴 상황입니다.”
외환위기의 전조 증상은 이미 시작되었다.
퀸텀펀드가 이미 멕시코를 건드리기 시작했고, 그다음은 동남아 지역이다.
동남아까지 무너지게 된다면, 다음 순서는 한국이다.
“그래서 계열사를 모조리 팔아 치워 부채율을 낮추고 현금 보유율을 높여야 한다는 겐가? 자네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태우그룹의 재계 순위가 급락하게 될 걸세.”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입니다.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태우그룹의 금고에 쌓아 놓은 자금으로 좋은 회사를 사들이면 재계 순위는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무조건 찾아온다고 확신하고 있군. 경제학자에게 확신은 매우 위험하다네.”
대학 시절 교수님에게 들었던 말과 동일했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보고 왔으니 예측이 아니라 확신을 할 수가 있었다.
“경제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대로라면 태우그룹은 알아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우자동차를 처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닌가? 태우자동차만 처분해도 태우그룹의 부채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네.”
“태우자동차는 할아버지에게 자식이나 다름없는 회사니까요. 그래서 태우자동차를 중심으로 태우그룹을 개편할 생각입니다.”
“다른 계열사도 회장님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회사이지 않은가?”
“할아버지의 허영심이죠. 단순히 재계 순위를 올리기 위해 만들고 인수한 회사입니다. 뭐 할아버지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태우그룹의 계열사가 40개가 넘는다.
자식이 40명인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치장품일 뿐이다.
“회장님이 아신다면 자네와 연을 끊으려고 할 수도 있다네.”
“그러니 비밀리에 진행을 해야겠죠. 우선은 태우전자부터 팔아 치울 겁니다.”
“태우전자는 태우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네. 가진 기술과 상품의 종류도 여럿이고, 해외법인도 100곳이 넘지.”
“그러니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냥 팔진 않을 겁니다. 최대한 포장을 열심히 해서 비싼 값에 팔아야죠.”
경영인은 장사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지만, 나는 경영인이자 장사꾼이 되려고 한다.
핵심 계열사는 경영인의 마음으로 나머지 계열사를 대할 때는 장사꾼으로.
“회장님은 절대 태우전자를 팔지 않을 걸세.”
“그러니 먼저 태우전자를 제가 가져야겠죠. 그렇게 된다면 할아버지의 허락 없이 태우전자를 팔 수 있습니다.”
“태우전자의 지분을 상속받겠다는 겐가? 시간이 지난다면 자연스레 자네 것이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일 걸세.”
“할아버지가 태우전자를 저에게 조기에 상속하고 싶을 정도의 성과를 내면 됩니다.”
“그럼 나는 무얼 하면 되는 겐가?”
후쿠다 고문의 말투가 많이 달라졌다.
괴팍함은 사라지고 장난감을 처음 선물 받은 아이처럼 설레했다.
“미래에 유망한 산업을 연구해 주세요. 계열사들을 팔아 치울 때의 근거 자료가 필요합니다.”
“자료는 만들 수 있지만, 내가 만든 자료가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지금 만든 보고서도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있는 판국에.”
“지금처럼 부정적인 보고서는 결코 그룹 위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희망적인 보고서를 담은 보고서가 필요합니다. 태우그룹이 재계 서열 1위에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보고서라면 할아버지께서도 관심을 가지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다시금 후쿠다 고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의 얼굴 옆에 있는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그는 태우그룹에 몇 없는 S급 업무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S급 예측력을 보유한 그의 보고서라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기에 후쿠다 고문의 예측력이 내게 필요했다.
“허허, 아주 재미난 보고서를 작성해 봐야겠군.”
“제가 나름 조사한 자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미국 월가에서 어렵게 빼낸 자료이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극비 자료이니 유출이 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유출될 일이 뭐가 있겠나? 내 사무실은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네.”
내가 줄 자료는 월가에서 받은 자료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경험한 미래 산업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그에게 건넬 생각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잠이 잘 오지 않았는데 밤이 심심하지 않겠어.”
* * *
후쿠다 고문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는 기술 연구소로 찾아갔다.
이미 나는 기술 연구소 소속 100명의 연구원의 얼굴을 전부 찾아보았고.
그들이 보유한 업무 능력까지 세세하게 확인한 상태였다.
“주광일 부소장님, 기술 연구소에 새로운 팀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어떤 팀 말씀이신가요?”
“특허 등록 전담팀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허의 중요성은 몇 번이나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앞으로 찾아올 특허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방대한 특허를 보유해야 했다.
특허는 일종의 무기였다.
다양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다른 회사가 함부로 우릴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억제력도 가지고 있다.
“기술 연구소에서도 다양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분기별로 특허를 등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허 전담팀은 분기별이 아니라 특허를 대량으로 찍어 내야 합니다.”
“특허라는 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셔서 그렇습니다. 특허라는 게 뭐 별거 있습니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거라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는 것이 특허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특허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특허라고 하면 기술 특허라고만 생각해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제품의 모퉁이를 원 모양으로 우리가 처음 만들면 그 또한 특허가 된다.
“특허가 곧 힘이 될 세상이 옵니다. 그러니 미리 미리 대비를 해 둬야죠. 기술 연구소 연구원 중 20명을 특허 전담팀에 배치할 것이고, 영입할 20명 또한 특허팀 소속이 될 것입니다.”
“너무 많은 숫자입니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태우전자에서 의뢰를 받아 진행 중입니다.”
“태우전자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 마세요.”
당분간은 태우전자 박진훈 사장은 내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다.
감사팀에서 어렵사리 쫓아냈는데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 주겠지.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었다. 나 때문에 제대로 기술 개발을 못 했다고 꼬투리를 잡을 수 있으니.
“그리고 영입 명단은 이미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영입에 앞서 부소장님에게는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미리 생각을 해 두셨군요.”
나는 영입 명단을 부소장에게 보여 주었다.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던 기술 연구소이기에 인원 충원은 기쁘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명단을 보던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건 금방이었다.
“대부분이 외국인이군요. 거기다 변호사와 디자이너는 왜 영입하시는 겁니까?”
“특허 전문 변호사입니다. 특허 등록을 위해선 법적인 지식도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태우그룹 법무팀에도 우수한 변호사가 많습니다. 뭐 변호사는 그렇다고 쳐도 디자이너는 왜?”
“앞으로는 제품의 기술력만큼이나 디자인이 중요하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기술 연구소입니다. 제품 디자인팀은 각 계열사마다 따로 존재합니다.”
아직 내가 그린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부소장이었다.
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어차피 지금 연구소의 전권은 내가 쥐고 있으니 부소장의 동의는 필요치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입이 끝난 이후 계속하시지요. 우선 20명의 인원을 특허 전담팀으로 배정부터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