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345)
독식하는 재벌 3세-345화(345/518)
345. 혁명의 시작 (4)
한국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기획실장과 태우건설 안덕환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후분양 아파트 건설 기획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안덕환 사장님과 함께 만든 기획서인가 보군요.”
“저뿐만 아니라 태우건설의 모든 임직원이 머리를 맞대어 만든 기획서입니다.”
안덕환 사장의 얼굴이 그새 많이 늙어 있었다.
태우건설을 몇 년 동안 잡음 없이 깔끔하게 이끈 안덕환 사장이었고, 다른 계열사 사장에 비해 능력은 조금 부족할 수는 있지만 안정성 하나만큼은 그보다 나은 임원은 없었다.
“서울에 두 곳, 경기도에 한 곳, 광역시에 세 곳이군요. 흠, 너무 소극적이지 않나요? 태우건설의 능력을 감안하면 10곳 이상도 동시에 공사가 가능하지 않나요?”
“능력은 충분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관리 감독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올해는 우선 6곳에서 공사를 시작하고, 매년 늘려 나가는 방향으로 후분양 공사 기획을 세웠습니다.”
대기업 건설 회사는 사실 얼굴마담 역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실제 공사는 지역 중소 규모 건설사에서 담당하고, 대기업 건설사는 주요 공사 혹은 관리 감독만을 맡았다.
“다른 건설사는 수주를 못 해 안달이 났는데, 태우건설은 반대 상황이군요.”
“물론 수주를 많이 받으면 높은 매출을 올릴 수는 있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튼튼하고 안전하게 아파트 한 채를 짓는 것이 태우건설의 이미지 상승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동안 아무리 잘해 와도 부실 공사 한 건만 터져도 브랜드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긴 하죠.”
역시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덕환 사장이었다.
계열사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경우에는 맞지 않는 성향이었지만,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태우건설에는 가장 적합한 지휘자였다.
“특히나 건설 업계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도산건설이 일산에 지은 대규모 아파트 미분양률이 80%나 되기도 합니다.”
“미분양률이 80%면, 1,5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도산건설이 떠안겠군요.”
도산그룹은 재계 순위 12위의 대기업이었고.
도산건설도 건설사 순위 10위를 차지한 건실한 건설사였다.
그러니 1,500억 원의 손실은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도산그룹은 지금 자금 유동성 문제에 빠져 있는 상태였기에 1,500억 원의 손실도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도산그룹이 무리하게 미국 1위 건설 기계 회사를 인수하느라 곳간이 비어 있습니다. 게다가 일산뿐만 아니라 앞으로 완공될 아파트도 미분양이 속출할 것이기에 도산건설이 큰 부담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도산그룹이 인수한 회사가 범캣이었죠?”
“태우그룹을 제외하면, 사상 최대 금액인 5조 원에 범캣을 도산그룹이 인수하였습니다.”
범캣 인수는 나쁜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수 시기가 문제였다.
리먼 사태가 터지기 직전 범캣을 인수했고,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범캣의 매출이 크게 하락했다.
“범캣이 아직도 적자를 보고 있나요?”
“올해는 그나마 상황이 나을 거라 전망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쌓인 적자를 생각하면 자금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긴 힘들어 보입니다.”
욕심이 나는 매물이었다.
지금이야 자금 유동성 위기와 건설 경기 악화로 인해 매출이 크게 나오지 않는 범캣이었지만.
몇 년만 지나도 도산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 줄 기업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태우건설에서 범캣을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범캣을 태우그룹으로 가지고 오시려고 하십니까?”
“앞으로 진행하는 많은 사업에 꼭 필요한 회사가 범캣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와야지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범캣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셰일 가스 사업이 본격화되면, 많은 양의 건설 기계가 필요해진다.
셰일 가스뿐만이 아니었다.
물류, 유통, 자동화 설비 등.
범캣에서 생산하는 소형 기계를 많은 계열사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도산그룹이 범캣 인수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굳이 우리가 도산그룹의 짐을 대신 들어 줄 이유가 있겠습니까?”
“반대로 생각해 보죠. 도산그룹은 범캣을 매각함으로써 자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우린 미래 먹거리 하나를 더 확보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태우그룹이 범캣을 인수한다고 해서 도산그룹처럼 흔들릴 그룹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획실장은 수긍한 듯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더 나를 뜯어말리겠지만, 일본과 유럽 재정위기로 태우증권이 얼마를 벌어들였는지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말을 아끼는 그였다.
“범캣 인수가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건설 기계 회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범캣 인수로 인해 태우건설의 영업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가 있습니다.”
“2~3년만 고생하면 됩니다. 그 이후엔 범캣은 태우건설의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해 줄 겁니다. 언제까지 수주 때문에 일희일비할 순 없지 않겠어요.”
“회장님께서 결정하셨다면 믿고 따르겠습니다.”
안정성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안덕환 사장이었지만.
내 지시를 더욱 우선시 여기는 충성스러운 임원이었다.
911테러부터 많은 사업을 함께했고 내 결정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걸 몸소 느꼈기에 가능한 행동이기도 했다.
“실장님은 도산그룹 박민용 회장님과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안 그래도 몇 번 연락이 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범캣을 매각하기 위해 여러 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도산그룹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겠군요. 슬쩍 찔러만 보면, 알아서 연락이 오겠어요.”
“급하지 않게 먼저 도산그룹에서 연락이 올 수 있을 정도로만 소문을 흘리도록 하겠습니다.”
범캣 인수.
이는 셰일 가스 혁명을 대비한 사전 작업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었고.
범캣 인수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으로 셰일 가스 혁명에 뛰어들 계획이었다.
* * *
며칠 후.
박민용 도산그룹 회장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기획실장이 잘 움직여 준 덕분에 도산그룹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박민용 회장이 평소 즐겨 가는 식당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태우그룹 김민재입니다. 할아버지에게 회장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자주 뵙고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허, 김태중 회장님께서는 아주 든든하시겠습니다. 손자가 이리 장성하여 태우그룹을 이끌고 있으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도산그룹의 역사는 깊었다.
무려 1890년대에 세워진 회사였기에 인맥도 그만큼 넓었고, 할아버지와도 꽤 교류가 있는 박민용 회장이었다.
“도산그룹은 그래도 현재그룹보다는 조용히 후계 과정이 끝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쯧쯧,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된 게 같은 핏줄끼리 치부를 드러내 놓고 싸우는지. 마음 같아서는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모든 대기업 그룹이 그렇듯.
도산그룹도 후계자 전쟁이 벌어졌었고, 그나마 현재그룹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에 파멸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도산그룹이 복잡한 지분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회사 경영이 중심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회장님께서 중심을 잘 잡아 주신 덕분에 도산그룹이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
“도산그룹이 쪼개지면, 저승에 가서 어르신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에휴, 지금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도산건설의 상황이 좋지가 않아요.”
“건설 업계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가 봅니다.”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어요. 도산그룹이 벌어들이는 돈을 전부 도산건설에 쏟아부어도 독이 가득 차긴커녕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고 있어요.”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도산건설의 이야기를 막힘없이 하는 박민용 회장.
기업 회장끼리는 결코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굳이 도산건설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는 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나 다름이 없었다.
“태우그룹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원하신다면 도산그룹이 자금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본질적인 위기라고 하면, 아파트 미분양 사태를 해결해 준다는 말입니까?”
“아파트 미분양사태도 결국은 자금 유동성 문제 때문에 일이 커진 것 아니겠습니까?”
“······범캣을 인수라도 해 주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이제야 내 말뜻을 알아들은 박민용 회장이었다.
하긴 설마 5조 원짜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겠지.
“건설 기계 분야에 예전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허허, IMF 시절 태우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기계 관련 회사를 전부 매각하지 않으셨나요? 태우중공업도 절반은 현재그룹에 매각하고, 나머지 절반도 아람코와 합작 회사를 세워 매각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 몇 년도인데 IMF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물론 그때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막무가내로 계열사를 매각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태우그룹은 계속해서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워 나갔다.
“태우건설과 태우자동차에 큰 도움이 될 듯하여 인수하려고 합니다.”
“흠, 건설이야 당연하고, 중장비 자동차도 생산하고 있으니 자동차 쪽과도 연계가 되긴 하군요.”
“물론 도산그룹이 원하신다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우그룹이 먼저 나서서 인수합병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강제 인수합병을 하면 가격이 올라가니 그러고 싶진 않다는 말이군요.”
강제 인수합병을 못 할 건 없었다.
하지만 계속 적자를 보는 회사를 상대로 강제 인수합병 같은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정확히는 하고 싶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범캣을 매각하려고 할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더니. 이제야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하니 관심을 가지시는군요.”
“회장님의 우수한 경영 능력 덕분에 범캣의 매출이 증가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채가 남아 있습니다. 도산건설과 범캣 중에 양자택일을 해야 둘 중 하나라도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민에 빠지는 박민용 회장.
그도 그럴 것이 어려운 시기를 겨우 버텨 낸 범캣을 지금 시점에 매각하기엔 아까울 것이었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이런 제의가 들어왔다면 바로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성장 가능성이 눈에 보이기에 고민에 빠졌다.
“가격만 맞다면, 매각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얼마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도산그룹이 범캣을 인수한 가격 그대로인 5조 원에 인수하고자 합니다.”
“말장난이 심하시군요. 우리가 범캣을 인수할 때는 달러 환율이 950원이었지만, 지금은 1,100원이 훌쩍 넘습니다.”
같은 5조 원이라고 해도 시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범캣은 미국 기업이었기에 당연히 달러로 인수를 한 도산그룹이었지만, 나는 원화로 도산그룹으로부터 범캣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박민용 회장이 말장난을 한다고 역정을 내었다.
“5조 원이면 결코 나쁜 금액이 아닙니다. 환율이야 사이클이 돌면 또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조건으로는 매각하지 못합니다.”
“기관에서 예측한 범캣의 가치는 5년 사이 절반가량 하락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면, 태우그룹이 무려 2.5조 원이나 더 프리미엄을 얹어 드리는 셈입니다.”
도산그룹은 자금 유동성 문제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범캣을 상장시켜 어떻게든 현금을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 상장을 노릴 때마다 기업 가치가 더 낮게 평가되었다.
아쉬운 쪽은 우리가 아니라 도산그룹이다.
그러니 우리가 굳이 그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었고, 도산그룹이 우리의 조건을 맞춰 줘야 하게끔 상황을 이끌어 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