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397)
독식하는 재벌 3세-397화(397/518)
397. 갈취 (2)
최재석 의원과 만난 다음 날.
나는 오랜만에 박만덕 부회장과 티타임을 가졌다.
금융 계열사 총괄 사장까지 맡고 있는 박만덕 부회장은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몇 년 사이 기력이 많이 상해 있었다.
“제가 자주 찾아뵙고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장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금융 계열사를 총괄하는 박만덕 부회장.
그렇기에 이번 공매도부터, 그 이전의 투자 사업까지 전부 꿰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일을 벌이기만 하지, 수습은 박만덕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를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이유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내부 안정화에 일가견이 있는 박만덕 부회장이었고, 어찌 보면 태우그룹에서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그였다.
“부회장님의 고생에 비하면, 저는 그렇게 고생하는 것도 아니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회장님을 도우며 태우그룹을 챙기고 싶지만, 이젠 나이가 많아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할아버지보다 더 기력이 약해 보이는 박만덕 부회장이었다.
매일같이 전쟁터와 같은 금융 계열사를 관리하다 보니 쉴 틈이 없었을 것이었다.
“부회장님이 없으면 태우그룹이 제대로 굴러가기나 하겠습니까? 부디 오래오래 남아 있어 주세요. 그리고 웬만한 일은 한 사장에게 넘기시고요.”
“안 그래도 조금씩 일거리를 넘기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제가 떠난다고 하더라도 한 사장이 중심을 잡고 금융 계열사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부회장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한 사장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미소를 지는 박만덕 부회장.
표정만 봐도 한 사장을 얼마나 믿는지 알 수 있었다.
“태우증권의 사장으로만 남기엔 아까운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 금융 계열사 총괄 사장 자리에 앉아도 부족함이 없지요. 그리고 한 사장이라면 저는 웃으며 부회장 자리를 넘겨줄 수 있습니다. 회장님도 그럴 계획으로 한 사장을 태우증권 사장에 임명하신 것 아니셨습니까?”
“티가 많이 났나 보군요.”
“저도 명예회장님을 따라 동남아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동남아 지역의 금융 산업도 꽤 매력적이더군요.”
지금 당장 사직서를 제출할 듯이 말하는 박만덕 부회장이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최소한 한 사장이 부회장 자리에 앉을 준비가 될 때까지만이라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뜻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회장님께서 갑자기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괜히 하시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저는 언제든지 부회장 자리를 비워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실 말씀드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조만간 정부에서 평창 올림픽과 국내 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기업 총수를 불러 모은다고 합니다.”
최재석 의원에게 들은 정보를 풀었지만.
박만덕 부회장의 반응은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정부든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대기업의 지원을 요청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번엔 조금 이상하게 흘러갈 듯합니다. 행사의 주체가 청와대가 아니라 급조된 재단이라고 하더군요. 정권이 바뀌면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재단을 만들어 누군가가 사익을 취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청와대의 요청이 있으니 자금 지원을 안 할 수는 없고, 하면 추후 문제가 되니 아주 곤란한 상황입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깨달은 박만덕 부회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무얼 원하는지도 정확히 알아낸 그였다.
“회장님 대신 부회장이 행사에 참석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제가 대신 행사에 참석하겠습니다.”
“그간 태우그룹을 위해 고생해 온 부회장님의 마지막을 그렇게 끝내서는 안 될 일이지요. 고생을 하면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제가 부회장님에게 해 줄 수 있는 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장이라면 다르지요.”
한 사장은 아직 못해도 15년은 태우그룹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고생을 하더라도 충분히 보상을 해 줄 시간이 되었다.
“한 사장도 고생길이 훤하군요. 태우그룹의 부회장이 되려면 그 정도 신고식을 하긴 해야죠. 허허허, 제가 한 사장을 부회장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아니면 누가 한 사장을 지도하겠습니까? 말년에 아주 재미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퇴직하고 나시면 태우증권의 동남아 지부 관리를 맡기고 싶습니다. 태우증권뿐 아니라, AIG를 비롯한 모든 금융 계열사 동남아 진출을 위해 일해 주십시오.”
“명예회장님과 함께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박만덕 부회장과의 티타임을 끝냈다.
그리고 곧장 한 사장을 사무실로 호출했다.
“오늘부터 박만덕 부회장에게 인수인계와 부회장 교육을 받도록 하세요.”
“인수인계라고 하시면 설마 저를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고, 인수인계가 다 끝나면 절차를 밟을 계획입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빼고 기계처럼 말하였다.
그럼에도 한 사장은 감격에 벅찬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왜 그래요? 혹시 싫어서 그러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벌써 부회장 자리에 올라도 되겠습니까?”
“박만덕 부회장이 뒷받침을 해 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이미지 메이킹 작업도 같이하고 있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단순히 인수인계를 한다고 해서 부회장에 오를 수는 없었다.
물론 한 사장이 지금까지 해낸 업적만 놓고 보면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임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가 문제였다.
그렇기에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 필요했고.
태우그룹의 모든 돈을 한 사장이 꽉 쥐고 있다는 식으로 이미지를 메이킹 한다면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이 한목숨 태우그룹을 위채 바치겠습니다. 궂은일도 도맡아 처리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고생할 거예요.”
“부회장에 오르면 그 어떤 고생도 웃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앞으로 그에게 어떤 똥물이 튈지 잘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똥물을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미안한 마음은 앞으로 물질적인 보상으로 갚아 주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하며, 한 사장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주일이었겠지만.
공매도 세력에겐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헤스의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했고.
월가의 헤지펀드 대표들이 매일같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2차 공개매수에 들어가자 공매도 세력에 포함된 헤지펀드 대표가 전부 한국에 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카노스까지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장 나와의 만남을 요청했고, 그를 금융타워로 불러들였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매도의 제왕이 한국까지 방문을 해주셨군요.”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이번 공매도는 저의 패배입니다. 태우그룹을 상대로 공매도를 진행한 점을 사과드리겠습니다.”
너무 저자세로 나오는 카노스였다.
그만큼 카노스 컴퍼니가 본 손실액이 크다는 이야기였고, 공매도의 제왕이 고개를 숙일 정도로 헤스의 주가가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혹시 사과의 말로 이번 일을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말보다는 숫자로 일을 해결하는 걸 좋아합니다.”
“헤스의 주식을 지금 가격의 2배로 인수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또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카노스였다.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행동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금액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2배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는 건 너무 저렴하지 않나요?”
“그 이상은 정말 힘듭니다.”
“카노스 컴퍼니의 규모를 보면, 3배 아니 5배까지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카노스 컴퍼니는 파산하게 됩니다.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공매도의 제왕이 쩔쩔매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구경하곤, 나는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딱 4배만 받도록 하죠. 그 대신 지금 2배를 받고, 나머지 2배는 추후에 받는 식으로 진행하면 어떠십니까?”
“언제 나머지 2배를 드릴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2배의 금액을 사용하고 나면, 카노스 컴퍼니의 자금이 크게 줄어듭니다. 줄어든 자금보다 저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진 상태라 복구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헤지펀드는 신뢰가 생명이었다.
고객으로 하여금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지만, 고객들이 믿고 돈을 맡긴다.
그런데 이번처럼 크게 실패하게 된다면, 누가 믿고 돈을 맡기겠는가.
그렇기에 카노스는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인 그를 일으켜 세우며, 나는 달콤한 제안을 속삭였다.
“명예 회복을 제가 도와드린다면 어떻습니까? 공매도의 제왕이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한 번에 되찾고, 더 많은 고객이 카노스 컴퍼니로 몰려들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어떤 방법인지 듣고 싶습니다. 아니 무조건 그 방법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공매도의 제왕이 가지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 영향력을 내 아래에 둘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공매도 공격을 미리 차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와 손을 잡는 방법이죠. 카노스 컴퍼니가 공매도를 친 물량만큼의 지분을 지금의 주가대로 팔아 드리죠. 그만큼의 비용을 나머지 공매도 세력이 부담하게 될 겁니다.”
“혹시 공매도 세력을 배신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저를 믿고 따라온 헤지펀드들입니다. 그들을 배신하면 저는 평생 배신자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월가가 원래 그런 곳 아닌가요? 배신자 딱지를 달아도 수익만 높게 올릴 수 있다면 고객이 몰려들죠. 하지만 순교자의 칭호를 받아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버림받기 마련이죠.”
공매도 세력을 배신하라.
내가 내민 조건이었고, 카노스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국민경제당이라는 방어막으로 한국 정치권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처럼.
카노스를 방어막으로 만들어 월가의 다양한 헤지펀드들의 공매도 공격을 방어한다는 계획이었다.
“공매도 세력을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들도 회장님과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벌써 저를 만나자고 한국으로 들어온 헤지펀드 대표가 20명이 넘죠. 카노스 대표님을 배신하고 저와 손을 잡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이죠.”
배신은 저들이 먼저 했다.
그러니 내 손을 잡으라는 뜻의 말이었다.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심의 가책을 줄여 주는 말이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계획이 진행되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당신과 내가 계획하여 이번 공매도 작전을 진행했다고 퍼트릴 겁니다. 그러니 당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라이벌 헤지펀드들을 몰락시키기 위해 공매도 작전을 수행한 셈이 되는 거죠.”
“그런 소문이 퍼진다고 해서 누가 믿겠습니까?”
“말만 한다고 해서 믿지는 않겠죠. 하지만 실제로 헤스의 주식을 카노스 컴퍼니가 보유하게 된다면,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아주 달콤한 제안이었다.
손해를 최소화하며, 지금보다 더 높은 명성을 쌓게 되는 제안이었으니까.
물론 월가에서는 손가락질을 받긴 하겠지만, 실패한 사람보다는 영악한 배신자가 되는 게 월가에서는 더 통하는 법이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공매도 세력을 탈탈 털어 주시면 됩니다. 공매도를 주체적으로 진행하신 분이시니 어떻게 하면 공매도 세력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털어먹을 수 있는지 잘 아시지 않나요?”
“공매도 세력의 자금을 갈취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좋은 말로 갈취.
조금 속되게 말하면 ‘삥 뜯는다’라고 할 수 있었다.
헤스의 주식을 통해 최대한 공매도에 참여한 헤지펀드를 털어먹는 게 카노스의 역할이었다.
“저와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손을 내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손을 덥석 잡는 카노스였다.
그에게는 이미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손을 잡는 순간 그는 나를 위해 움직이는 사냥개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열심히 사냥한 사냥개에게는 약간의 먹이를 제공해 주긴 하겠지만, 모든 의사결정을 나에게 위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