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437)
독식하는 재벌 3세-437화(437/518)
437. 재협상 (2)
해운사의 규모는 선복량으로 정해진다.
단순하게 말하면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 무게를 뜻했고, 지금 당장 가동이 가능한 선박의 선내 공간을 뜻하기도 했다.
현진해운과 현재상선의 선복량은 대략 110만 TEU.
그중에서 선주들에게 빌린 선박의 선복량과 태우그룹이 보유한 선박의 선복량은 거의 비슷한 규모였다.
그러니 선주들이 선박을 회수하겠다는 협박은 더는 통하지 않았고, 이제야 협상하는 자세로 대화를 하는 선주들이었다.
“마지막 제안을 드리죠. 용선료를 할인폭을 줄여 드리겠습니다. 이전 용선료 50% 할인 그리고 추가 5년 용선 계약금과 연체 용선료 일시불 지급. 태우그룹이 제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입니다.”
“그래도 용선료 50% 할인은 너무 과한 조건입니다.”
이렇게까지 나왔는데도 거부를 한다?
이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고, 아마도 주변국 선박회사와 말이 오고 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 해운업이 폭락하게 되면.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해운업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마 한국 해운사가 파산한다면, 보상금을 받거나 다른 방향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조건이 내걸렸을 수도 있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선주님들이 선박을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선박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태우그룹은 여러 조선소에 선박 발주를 해 둔 상태기도 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3년 안에 100만 TEU 이상의 선복량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선박이 늘어나면 가장 타격을 입는 건 선주들이었다.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은 하락하는 게 당연한 시장의 이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용선 계약이 어려워지게 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한 가지가 담겨 있었다.
선박을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해운업이 망할 일은 절대 없다.
그러니 선박을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주변국의 해운사로부터 보상을 받는 일은 없다는 뜻도 담겨 있는 말이었다.
고민에 빠진 선주들.
특히나 제리 왕 대표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답답했던 선주 한 명이 나지막이 말을 꺼내었다.
“혹시 선박 매각을 해도 연체된 용선료를 일시불로 받을 수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현재 시세대로 선박을 매입할 것이고, 계약서가 작성되는 대로 선박 대금과 연체된 용선료를 일시불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입금된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럼 저는 선박을 매각하겠습니다. 이제 해운업계를 떠나 크루즈나 타며 인생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군요.”
“오늘 중으로 계약서에 사인하시면, 선박을 인계하는 대로 모든 대금을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려웠다.
한 명의 선주가 먼저 나서자 다른 선주도 연달아 반응을 보였다.
[저도 선박을 매각하겠습니다. 매일같이 일희일비하는 데 지쳤습니다.] [추가 5년 계약에 서명하겠습니다.] [선박 일부를 매각하고, 나머지는 추가 5년 계약을 해도 되겠습니까?]제리 왕 대표의 계획이 틀어졌다.
그는 선주들을 하나로 묶어 큰 힘을 내려고 했지만.
선주들은 분열되어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 나서 버렸다.
“오늘이 지나면 제가 제시한 조건으로는 재협상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선박을 회수하셔도 좋고, 연체 용선료 소송을 진행하셔도 좋습니다.”
“못 당하겠군요. 이젠 아예 대놓고 협박을 하시는군요. 좋습니다. 세스팬도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제리 왕 대표까지 움직였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나머지 선주도 동시에 조건을 받아들였고.
2조 5천억 원이 넘었던 용선료의 절반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으면 합니다. 태우그룹은 언제나 선주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흠흠, 지금 상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군요.”
말이 재협상이지.
사실상 협박을 통해 용선료를 할인받은 셈이었다.
그렇기에 제리 왕 대표와 선주들이 떨떠름하게 반응했지만, 서로에게 손해가 보는 거래는 결코 아니었기에 크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선주님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바로 금융타워 옆에 있는 호텔로 가시지요. 최고급 숙소와 연회로 선주님들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연회에는 금융타워의 많은 금융사 관계자도 참가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받은 돈을 금융사에 맡기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시죠?”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기회를 드린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금융타워 금융사들은 고객을 가려서 받기로 유명합니다.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VIP 고객 전용 투자 상품에 가입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늘 연회장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용선료를 50%나 할인해 준 선주들을 위한 호의였다.
물론 호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순전히 선주의 선택에 달렸고,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연회장이 큰 기회였다는 걸 알게 될 터였다.
“다들 연회장으로 갑시다. 술이나 진탕 마셔야겠습니다.”
“제리 왕 대표님은 잠시 남아 주세요. 우리는 이야기를 좀 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선주는 모두 연회장으로 보냈고.
세스팬의 제리 왕 대표만을 회의실에 남겼다.
다른 선주들은 용선료 50% 할인이라는 큰 결단을 내렸지만.
세스팬의 경우엔 이미 나와 50% 인하 계약을 체결해 둔 상태였으니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흠흠, 또 무슨 할 말이 남으셨습니까?”
“세스팬과는 따로 재협상을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아무런 거래 없이 용선료 일시불 지급과 추가 계약 조건만 가지고 갈 생각은 아니시지요?”
이번 협상에서 나온 조건은 세스팬은 제외였다.
보상 조건을 얻어 내려면, 세스팬에서도 추가로 무언가를 내어 주어야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왜 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십니까? 이전에 진행한 계약은 현진해운에 한해서였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현재상선 용선료까지 추가로 계약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말이죠.”
“설마 세스팬만 추가로 용선료를 더 할인하라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그런 계약을 체결했다간 회장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절실하게 말하는 제리 왕 대표.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급해 보였다.
“용선료 할인이 힘들다면, 다른 무언가를 제시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지난번 공매도와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어요.”
“……정보는 어떻습니까?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고급 정보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정보도 충분히 값을 매길 수 있었다.
어떤 정보는 조 단위가 될 수도 있지만, 제리 왕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의 가치가 그 정도는 될까?
“일단 들어 보고 가격을 매겨 보도록 하죠.”
“해운 동맹이 개편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해운 동맹은 워낙 단단한 카르텔로 구성되어 있어 정보를 얻어 내기 어렵습니다.”
“꽤 재밌는 정보군요. 계속 얘기해 보세요.”
해운 동맹 관련 정보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제리 왕은 예전부터 해운업계에서 활동한 덕분에 태우그룹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꽤나 가지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지금 해운 동맹은 총 4개로 되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2M, G6, 03, 그리고 현진해운이 속한 CKYHE로 되어 있죠.”
“우선 현진해운이 가입한 CKYHE 해운 동맹에서 두 곳이 조만간 탈퇴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CKYHE 해운 동맹이 와해되고, 해운 동맹은 완전히 새롭게 개편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해운 동맹 개편.
나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내용이었다.
최대 동맹인 2M을 제외한 3개의 해운 동맹이 ‘헤쳐 모여’를 진행하여 2개의 해운 동맹이 만들어진다.
“나름 괜찮은 정보군요.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려 준다면, 용선료 할인은 다른 선주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진행하도록 하지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운 동맹은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는 정보만 보내 주시면 됩니다.”
“지금 당장 아는 정보는… 중국 정부 주도하에 해운사 두 곳을 합병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해운 동맹이 균열을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해운 동맹.
4개였던 해운 동맹이 3개로 축소되었고, 흩어져 있던 힘이 모이게 된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해운 동맹에 속하지 못하게 된다면, 큰 손해를 볼 것이 분명하니 어디가 되었든 해운 동맹에 가입하긴 해야 했다.
“우선은 연회를 즐기세요. 추가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계속해서 보내 주시고요. 괜찮은 정보를 보내 주시면, 아주 좋은 선물을 약속드리죠.”
“선물이라고 하면 어떤 종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우그룹은 받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선물을 준비하곤 합니다. 그러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해 보겠습니다!”
제리 왕 대표가 충신이 된 듯 행동했다.
뻔히 보이는 연기일 뿐이었고, 이번 한 번만 서로 손을 잡을 사이에 불과했다.
물론 정보를 보내온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긴 하겠지만 그 이상의 관계를 가질 정도로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
선주들이 연회를 즐기는 동안.
한 부회장을 불러 해운 동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운 동맹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2M을 제외한 해운 동맹 3곳이 2곳으로 뭉치게 된답니다. 문제는 거기에 태우해운의 자리가 없다는 거죠.”
“해운사 두 곳의 이름을 태우해운으로 정하기로 하셨습니까?”
“가칭에 불과하죠. 태우상사 소속의 해운사니 그냥 태우해운으로 부르는 게 적당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해운 동맹 없이 해운사를 운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군요.”
한 부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운사 두 곳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해운업계를 공부한 그였기에 해운 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해운업계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노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한국 해운사를 배제하면 그만큼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의도적으로 한국 해운사를 배제해 이득을 취하겠다는 속셈이군요.”
의도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우그룹이 해운사 두 곳을 인수한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그동안 그 어느 해운 동맹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건 굳이 한국 해운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가 굽신거려도 해운 동맹에 가입하기 쉽지 않겠군요.”
“그래도 1위 해운 동맹인 2M이라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상선이 자구안을 마련하기 위해 2M과 접촉한 적이 있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시적이고 전략적인 동맹 이야기 말이죠? 그 말이 지금도 유효할까요?”
좋은 말로 포장해서 전략적인 동맹이었다.
카르텔에 포함시켜 주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시적으로 손은 잡아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지금 시점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현재상선이 현진해운과 합쳐 태우해운이 되었으니까.
“2M 동맹이 현재상선을 받아들이려는 이유 중 하나가 현진해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한국의 화물을 2M에서 확보하기 위함인 것도 있습니다.”
“태우그룹이 해운사를 인수했으니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됐군요.”
“그렇다고 해도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2M입니다. 나머지 해운 동맹은 중국과 대만 해운사를 중심으로 개편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동맹이었던 CKYHE의 해운사와 손잡는 건 어떤가요?”
“현진해운의 기존 동맹이었던 CKYHE에 속했던 해운사 중에서 우리와 손을 잡을 곳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해운 동맹 없이도 해운사를 운영할 수는 있었다.
기존의 현재상선이 동맹 없이도 해운사를 운영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해운업계 불황을 대응하기 위해선 해운 동맹 가입이 필요했고, 그렇다면 정치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