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469)
독식하는 재벌 3세-469화(469/518)
469. 대비하다 (4)
장경준 회장과의 술자리는 조용히 끝이 났다.
태우그룹이 전기차에 집중하기 위해 러시아 공장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한마디.
그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내기 위해 술자리 내내 한 번도 입을 열지 않고 생각에 잠겼던 장경준 회장이었다.
장경준 회장을 다시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끈질기게 러시아 공장 철수 이유를 캐물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답해 주기 어려운 이유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고, 나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말을 아낀 장경준 회장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러시아 공장이라는 미끼를 노리는 새로운 물고기가 등장했다.
정확히는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떼였다.
“회장님, 일본 자동차 기업 2곳에서 인수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2곳이나요? 도요타에서는 들어올 거라 예상했는데 나머지 한 곳은 어딥니까?”
“혼다입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협상을 진행하실 계획이십니까?”
“값을 올리려면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죠. 우선은 한 부회장을 보내 뜸을 들여야죠. 한 부회장을 불러 주세요.”
기획실장이 한 부회장을 불렀고.
금융타워에서 넘어오느라 30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부르셨습니까?”
“일본 자동차 기업 2곳이 러시아 공장 인수 제의를 해 왔어요. 한 부회장이 나서서 뜸을 좀 들이세요.”
“가격을 올리는 건 제가 또 전문입니다. 아주 애간장을 녹여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을 더 내거세요.”
“어떤 조건 말씀이십니까?”
“완성차 공장뿐만이 아니라 전자, 배터리 등의 다른 공장을 세트로 매각한다는 조건이죠.”
한 방에 러시아 공장을 처분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일본 자동차 기업 중에 전자제품 쪽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곳은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공장까지 인수하는 건 부담되는 일이었지만,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 정도 부담은 떠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자동차 기업을 부동산 중개업자로 사용한다는 전략입니까?”
“러시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완성차 공장을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 정도 수고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한 조건입니다.”
“우선은 그렇게 말만 전하세요. 무슨 협상이든 최악의 조건부터 내밀어야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법이죠.”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태우그룹이 보유한 수많은 공장을 떠안을 정도의 여유는 되지 않았다.
먼저 엄청난 부담감을 심어 줘야 새로운 조건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마련이었다.
***
한 부회장이 일본 자동차 기업과 2번씩의 미팅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혼다는 도저히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고.
도요타만이 우리의 조건을 부분 수용하며 최종 협상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태우그룹 김민재입니다.”
“도요타 하루오입니다.”
도요타 하루오.
도요타 자동차의 사장을 맡고 있으며, 창업자의 자손이기도 했다.
그리고 차기 도요타 그룹의 회장이 확실시되는 사람이 직접 태우그룹을 방문했다.
“먼발치에서는 몇 번 뵈었었는데 이렇게 직접 뵙고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 같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김 회장님에 관해서 조사를 좀 진행해 봤습니다. 그런데 저와 아주 비슷한 길을 걸으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시기는 다르지만, 저도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월가의 투자회사에서도 일을 했었습니다.”
미국에서 MBA를 수료한 하루오 사장이었고.
그렇기에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아부처럼 들리시겠지만, 예전부터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김 회장님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갑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경영자가 김 회장님이지 않습니까.”
분위기를 풀기 위한 의미 없는 말들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칭찬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고.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서야 본론을 꺼내 들 수 있었다.
“태우자동차 러시아 공장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카이자동차와 GM 러시아 공장까지도 인수할 의사가 있습니다.”
“자동차 계열 공장만을 인수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부품 생산 공장까지도 인수할 수 있지만, 전자제품 생산 공장 같은 건 인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일본의 전자제품 생산 회사와 대화를 나눠 보긴 했지만, 지금 당장 인수는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
그리고 우리가 내건 조건을 어떻게든 충족하기 위해 노력까지 한 하루오 사장이었다.
노력한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을 쥐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상당히 완화된 조건을 그에게 내밀기로 하였다.
“지금 당장은 인수가 어렵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러시아 진출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준비를 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최소 3년이지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공장부터 인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조건은 어떻습니까? 태우그룹이 공장을 매각하지만, 준비하는 5년 동안은 태우그룹이 공장을 임차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당연히 5년 동안 임차료를 지불하겠습니다.”
눈알을 좌우로 열심히 굴리는 하루오 사장이었다.
그도 이번 협상에 나서면서 많은 시나리오를 생각했을 터.
하지만 공장 매입 후 임대라는 제안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장을 우선 매각하고 다시 태우그룹이 임차를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일본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동안 태우그룹이 임차하여 사용하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러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차라리 5년 뒤에 매각 절차를 진행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의구심을 가지는 하루오 사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입 후 임대라는 예상치도 못한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태우그룹은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여러 산업에 진출해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 산업의 경우엔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목돈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태우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상당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 공장 매각 자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지 않습니까?”
하루오 사장의 지적은 정확했다.
러시아 공장의 가치를 다 합쳐도 수조 원에 불과했다.
태우그룹의 사내 유보금만 해도 100조 원이 훌쩍 넘었으니까.
“정확히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러시아 공장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해야 합니다.”
“너무 급하시지 않습니까?”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사양하셔도 됩니다. 현재자동차 그룹이나 독일의 자동차 그룹에도 같은 조건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혼다자동차가 협상을 포기했다.
그러니 도요타는 단독 협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괜히 현재자동차 그룹과 독일 자동차 그룹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우선 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뿐, 단독 협상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 주기 위하여.
“흠, 그럼 이렇게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자동차 공장은 도요타가 전부 인수하고, 나머지 공장의 경우엔 일본의 기업들이 연합해서 지분을 나눠 가지는 형태로 인수를 진행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안에만 돈이 들어오면 어떤 방식이든 좋습니다.”
돈이 급한 척 연기를 했다.
태우그룹 회장이 돈이 급하다고 하는 걸 누가 믿겠냐마는 그래도 영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딱 보름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일본 기업들을 끌어모아 연합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일본 기업들이 안 되면, 한국이나 독일 기업들에게 매각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괜찮지가 않습니다!”
아쉬운 건 태우그룹이 아니라 도요타라는 점을 강조했다.
급전이 필요하니 빠르게 연합을 꾸리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에 매각하겠다는 협박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공장 매각 가격을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과한 금액을 요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현재의 가치만큼만 받으면 충분합니다.”
“준비된 자료가 있으십니까?”
“각 공장의 시설과 장비를 모두 합쳐 책정한 자료입니다.”
미리 준비한 공장 자료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부지 규모와 공장 시설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주변 공장 시세와 비교까지 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군요.”
“매각 규모가 큰 만큼 태우그룹도 최대한 양보를 했습니다.”
“이런 가격이면 관심을 보일 일본 기업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보름 안에 좋은 소식을 가지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하루오 사장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보름 안에 연합을 만들어 나를 찾아올 기세였고,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기도 했다.
“제가 정문까지 모시겠습니다.”
내가 직접 하루오 사장을 정문까지 안내했고.
뒤이어 한 부회장이 따라 나와 예를 갖췄다.
그렇게 하루오 사장은 다급히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고, 나와 한 부회장은 곧장 회장실로 올라갔다.
“협상은 잘 진행되셨습니까?”
“러시아 공장을 아주 가지고 싶어 하더군요. 그리고 공장 매입 후 임대 방식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기도 했고요.”
“이러다가 매국노 소리를 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공장을 일본 기업에 팔아 치웠다고 언론에서 떠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만 놓고 본다면 매국노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 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엔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진행해야겠죠. 언론 보도가 나오는 걸 원천 봉쇄하긴 힘들어도 이슈화가 되지 않도록 움직여 보세요.”
“기획실에 이미 이야기를 해 두긴 했습니다.”
“언론보다 더 중요한 건 공장 이전입니다. 러시아와 중국 공장을 대체할 공장을 최대한 빨리 완공해야 해요.”
시간이 필요한 건 일본 기업만이 아니었다.
일본 기업이 러시아 진출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면, 우리에겐 새로운 공장을 지을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부지 계약을 끝내 놓은 곳도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내년 초에는 공사를 시작할 수 있고, 3년 안에는 완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시간이 충분하겠군요.”
“그런데 자동차 계열사 임원진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이제야 점유율 반등에 성공했는데 갑자기 공장을 매각하게 되어서 마음이 많이 상한 듯합니다.”
마음이 상할 만도 했다.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러시아 공장보다 2배는 더 큰 규모의 공장을 신축한다고 달래 보세요. 그리고 전기차는 물론이고 내연기관차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하시고요.”
“내연기관차에도 말씀입니까? 태우자동차는 전기차에 집중하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겁니다. 그러니 꾸준히 내연기관차에도 투자를 해야죠. 그리고 내연기관차의 기술력 상승이 곧 전기차 기술력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겠어요?”
내연기관차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태우자동차가 전기차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보이겠지만.
그 어느 자동차 기업보다 내연기관차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곳이 태우그룹이었다.
그나저나 도요타가 미끼를 단단히 물었다.
이제 그들에게 러시아 공장의 리스크를 전부 떠넘기기만 하면 되었다.
러시아 공장을 인수하게 되면, 자동차 판매량과 점유율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꿈은 결국 깨기 마련이었고.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꿈은 일본 철강 회사 데이터 조작 사건이라는 충격으로 깨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