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514)
독식하는 재벌 3세-514화(514/518)
## 514. 식량 카르텔 (4)
반도체 공장 해외 증축 회의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차량용, 가전, 군사용 등 구형 반도체라고 하더라도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있었고.
어느 반도체를 어느 국가의 공장에서 생산할지 긴 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이 나자.
조용히 한 부회장만 회장실로 불러들였다.
“베트남과의 약속은 반도체 공장을 통해 지킬 수 있게 되겠군요.”
“희토류 광산 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내건 약속 말씀입니까?”
“베트남 서열 2위와 직접 한 약속인데 무조건 지켜야죠. 그래야 계속해서 희토류 채굴을 진행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문제로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고 하시는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우증권이 베트남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약속한 규모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소 가전 생산 공장의 증축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우그룹은 베트남 진출에 진심이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고 있긴 하지만.
태우그룹의 경우엔 전대 회장인 할아버지가 직접 거주하고 있으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과 태우그룹의 관계를 지금보다 더 긴밀하게 만들기 위해선, 반도체 공장 정도는 되어야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겠어요? 그래야 할아버지도 어깨 펴고 베트남을 돌아다니실 수 있겠죠.”
“그래도 이익보다 손해가 큰 투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반도체 공장을 대가로 무언가를 얻어 내야죠.”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반도체 공장 정도면 베트남 정부에게 어떤 요구를 해도 들어줄 것입니다.”
얼굴색이 밝아진 한 부회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요구를 하려는 건지 알게 되어도 이 상태가 유지될까?
“베트남과 곡물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그리고 대규모 농지 사용권까지 요구할 생각이죠.”
“반도체 공장을 주고 곡물을 받겠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쌀과 교환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반도체 공장은 베트남에만 짓는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지을 계획이니 당연히 같은 보상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인도에도 같은 조건을 제시할 겁니다.”
“베트남에는 쌀을 요구하고, 인도에는 밀을 요구하자는 말씀입니까?”
“다른 곡물 계약도 하겠지만, 주력 생산 곡물이 쌀과 밀이니 그렇게 되겠군요.”
“그런 조건이라면, 베트남과 인도 정부에서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긴 하겠지만, 일방적으로 태우그룹이 손해를 보는 조건 같습니다.”
지금이야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는 순간 창고에 쌓여 있는 곡물은 금덩어리로 변하게 된다.
“태우그룹이 본격적으로 곡물 시장에 진출했는데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죠. 미국과 인도 그리고 베트남 정도의 대규모 곡물 생산국을 우방국으로 만드는 정도는 되어야 곡물 메이저 기업에서도 태우그룹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곡물 시장 진출을 위함이라면, 유럽의 빵 공장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와 계약을 체결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인도가 밀 생산량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는 하지만, 수출하는 양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와는 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되었다.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 유럽의 빵 공장인 우크라이나가 장기 휴점 상태가 될 테니까.
“러시아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면, 미국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그리고 이미 곡물 메이저 기업이 우크라이나 곡물 시장을 장악한 상태기도 하죠. 그러니 베트남과 인도 같이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공략하는 편이 나아요.”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회장님을 의심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태우그룹이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가로 곡물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태우그룹의 주가는 길게 보면 항상 우상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기로 놓고 보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긴 했다.
이번 일로 주가가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하락한 것보다 더 높이 상승할 수만 있다면, 비난 여론은 뒤집히기 마련이었다.
“여론은 신경 쓰지 마세요. 한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태우그룹이 대국적으로 나선다고 한다면 크게 비난받진 않을 겁니다.”
“여론이야 비난을 하지 않겠지만, 주주들의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항상 그랬듯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그러니 한 부회장은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사격만 좀 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부회장은 속으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안색이 밝은 그였다.
엄청난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임에도 안색이 밝다는 건 손해를 만회할 정도의 수익이 금융타워에서 나오고 있다는 뜻일 터.
“금융타워가 재미를 많이 보고 있나 보군요.”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지은 농사가 드디어 수확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영국의 주가가 6개월 사이 10% 이상 하락하였습니다.”
영국 브렉시트로 인한 주가 하락에 베팅한 금융타워였다.
엄청난 자금이 영국에 몰려 있는 상태였고, 주가가 10% 하락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죠. 영국이 아직 EU를 완전히 탈퇴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공매도 물량을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금융타워에서는 영국의 주가가 얼마나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죠?”
“각 금융사마다 예상하는 수치가 크게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곳도 있으며, 20% 이상 하락을 기대하는 곳도 있습니다.”
고작 20%?
하긴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없다면 최대 수치가 20% 하락이겠지.
브렉시트에 코로나19까지 더해진다면, 30%까지 하락도 충분히 가능했다.
“태우증권의 예측은 어떻게 나오고 있나요?”
“태우경제연구소가 20% 하락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태우증권에서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했지만, 15% 하락을 최대치로 보고 있습니다.”
“하락폭을 30%까지 늘려서 계획을 새로 세워 보세요.”
“30%면 예상치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보이고, 그에 따른 다양한 변수가 생겨날 겁니다.”
코로나19라는 가장 중요한 변수를 꺼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미·중 무역 분쟁을 핑계 삼아 한 부회장을 설득했다.
“만약 목표치까지 영국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유동적으로 상황을 대처하면 최소한 손해는 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준비를 해 둬야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남의 입에 떡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투자를 하는 편이 낫죠.”
“남의 입에 들어간 떡도 빼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보겠습니다.”
지금 금융타워는 엄청난 자금을 뿌려 두었다.
미국, 중국, 영국 등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최대 규모의 공매도를 진행하고 있었고 주식뿐만 아니라 화폐까지 건드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리턴 값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선 리스크를 높여야만 했고.
태우그룹은 물론이고 금융타워까지 한 번에 쓰러질 수 있을 정도의 리스크였다.
만약 코로나19가 터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흐름은 변한 적이 없었고, 코로나19라는 재앙도 내년이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 * *
2019년 새해가 밝았다.
그사이 곡물 메이저 기업과 추가 계약을 체결했고.
인도와 베트남과도 반도체 공장 협상을 어느 정도 진행할 수 있었다.
워낙 벌린 일이 많아 책상에서 일어날 시간도 부족할 지경.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오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회장님, 연초에 나온 대부분의 언론사와 사설과 금융사의 리포트에서 태우그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그렇다 쳐도 금융사 리포트까지 그렇게 나오고 있다고요?”
한 부회장의 손에 들려 있는 신문과 금융사 리포트.
그는 태우그룹에 관련된 부분만을 펼쳐 보여 주었다.
[막장으로 가는 태우그룹] [무리한 투자, 오너 리스크인가?] [곡물 시장까지 진출한 태우그룹, 무리한 몸집 불리기] [독단적인 김민재 회장, 정부에서 나서 막아야 한다.] [태우그룹 성장 한계를 보이다. 전문 경영인이 필요한 시점.]갑자기 오너 리스크 이야기가 나온다고?
태우그룹을 한국 1위를 넘어 세계 기업 순위 상위권까지 올린 오너가 바로 나였다.
그런데 이런 사설과 리포트가 나온다는 건, 지금까지의 공적을 무시할 정도로 지금의 내 행보가 미친 짓으로 보인다는 뜻일 터.
“곡물 시장에 진출한 걸 아주 고깝게 보고 있군요.”
“언론사와 금융계에 찌라시가 돌았습니다. 태우그룹이 1,0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곡물 시장 진출을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찌라시였습니다.”
정확도가 상당한 찌라시였다.
물론 작년과 올해에 곡물 시장에 투자하는 금액은 1,000억 달러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내년부터 투자하는 금액은 1,000억 달러 이상이 될 수도 있었으니 거짓은 아닌 찌라시였다.
“내부에서 정보가 흘러나갔거나 우리와 거래를 하는 쪽에서 정보를 흘렸나 보군요.”
“여러 곳과 동시다발적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있으니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참 너무하지 않나요? 곡물 시장에 투자를 한다고 이렇게 비판적으로 나오다니.”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금융사 리포트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곡물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어 태우그룹이 스스로 지옥불에 발을 담갔다는 리포트를 작성한 곳도 있습니다.”
곡물 시장이 지옥불이라고?
누군가에겐 온천의 물도 지옥불처럼 뜨거울 수 있겠지만.
태우그룹에겐 지옥불도 온천물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에 불과했다.
“혹시 중국 쪽에서 작업 들어온 건 아닙니까? 인도와 베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걸 견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군요.”
“저도 살짝 의심을 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뭐, 상관은 없긴 하죠. 배후에 누가 있든 우리는 그저 갈 길만 나아가면 그만이니까요.”
배후가 누구든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건,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직접 나서지 못하고 찌라시를 이용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겁쟁이를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반도체 공장 해외 진출 프로젝트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ASML과는 조금 더 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 기업을 버리고 우리와 구형 반도체 장비 계약을 체결해도 되는지 걱정하고 있나 보군요.”
네덜란드 기업 ASML.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ASML의 반도체 장비가 필수였다.
말 그대로 슈퍼 을에 딱 어울리는 기업이 ASML이었다.
“제가 직접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죠.”
“아닙니다. 회장님이 직접 네덜란드까지 가시는 건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데이비드를 통하거나 리사 사장이나 웨이 사장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직접 나서야 시간을 아낄 수 있죠. 그리고 오는 길에 베트남과 인도에 들러 반도체 공장과 곡물 계약에 대한 도장도 받아 내야겠어요.”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기였기에 내가 고생을 좀 하더라도 시간을 단축시키는 편이 장기적으로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ASML을 공략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했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장비를 태우그룹이 가로챌 수만 있다면.
반도체 대란이 오는 순간, 태우그룹의 영향력은 국가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