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79)
독식하는 재벌 3세-79화(79/518)
79화. 1997년 (2)
조지가 날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태국을 같이 집어삼키자고 제안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태국의 부동산과 금융에 끼어 있는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네. 누군가가 먹을 거라면 우리가 먹는 게 낫지 않겠는가?”
“SAVE 투자회사에서는 150억 달러의 폭탄을 태국에 투하하겠습니다.”
“아주 쑥대밭이 되겠군. 퀸텀펀드에서도 그 정도 규모의 폭탄을 준비하지.”
누군가가 먹을 거라면 내가 먹는다.
외환위기가 코앞에 닥친 상황이니 SAVE 투자회사의 자금을 불릴 필요가 있었고, 태국의 외환위기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태국으로 끝내실 생각이십니까? 태국의 경제는 주변국과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태국이 끝나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도 건드려 볼 생각이네. 생각 있으면 동참하게나.”
“당연히 동참해야지요. 동남아 쪽에서 외환위기가 터져 나오면 대만과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번지게 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네. 아시아의 금융 기술은 너무나 후진적이야. 비집고 들어갈 약점이 너무 많아.”
조지는 나와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나 또한 그를 도와 동남아 지역의 외환위기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인이라 한국 외환위기에는 같이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럼 한국 시장은 나 혼자 다 먹어야 되겠구만.”
“저는 부스러기나 주워 먹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먹어 치우고 싶지만,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어서 눈치를 좀 봐야 합니다.”
“이참에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게 어떻겠나? 자네 정도라면 시민권을 얻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우그룹이 한국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한국 정부와 민심을 신경 써야만 했다.
“그럼 나는 곧장 태국으로 향하겠네. 이번 요리는 6개월은 걸릴 것 같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인 만큼 맛은 확실하겠습니다.”
“맛은 당연하고 양도 푸짐할 걸세. 우리 둘이 나눠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야.”
조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갑자기 태우그룹에 차입금을 주겠다고 나선 일본 은행도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을 터.
조지는 일본의 엔화를 깽판 치고 난 뒤 쉬지도 않고 태국으로 넘어가 바트화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부채질만 해 주면 끝이었고.
이미 SAVE 투자회사도 퀸텀펀트를 지원 사격 할 준비를 마쳤다.
* * *
1997년 1월이 시작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
태우그룹은 물론이고, 한국 대기업들이 동시에 진통을 겪었다.
할아버지가 기획실까지 내려와 닦달할 정도의 큰일이었다.
“자동차 노조까지 파업을 시작했다고? 연례행사도 아니고 무슨 파업을 이리 자주 하는지.”
경제가 어려우면 기업은 긴축 경영에 들어가기 마련이었고.
긴축 경영으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들이 가장 절실히 느낀다.
그렇기에 170개가 넘는 노조가 동시에 파업을 통해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생산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지원 인력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내려가서 노조와 상의를 해 보겠네. 그래도 내 말이라면 좀 듣지 않겠나.”
할아버지가 직접 내려갈 정도로 노조의 파업 열기가 뜨거웠고.
이제야 제품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태우자동차와 태우전자에 큰 타격을 주는 파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파업도 결국은 회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외환위기로 부도가 나기 시작하는 순간 파업의 명분은 사라지고 만다.
파업은 결국 24일이나 이어졌고.
정부에서는 노동계 총파업을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지도부를 검거까지 하며 파업을 진압하였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한발 물러나 더 큰 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 * *
1997년 1월 20일.
나는 8시가 넘어 퇴근을 했고, 집이 아닌 명동으로 움직였다.
오랜만에 광화문 곰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왔는가? 나는 자네가 날 잊어 먹은 줄 알았다네.”
“저는 약속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입니다. 단지 시기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 시기가 드디어 왔는가?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누지. 아직 날이 많이 춥다네.”
눈발이 날리는 1월의 서울이었다.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요즘 세상이 많이 시끄럽더군. 총파업에다 오늘은 신 머시깽이가 탈옥을 했다는군.”
“세상은 더 시끄러워질 겁니다. 한보가 휘청거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2년 전부터 한보가 위험할 거라고 자네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나. 그런데 정말 한보가 무너질 줄은 몰랐네.”
“저를 의심하셨습니까?”
“허허, 자네를 의심했다면 내가 보유한 한보 주식과 회사채를 전부 처분했을 리가 없지 않는가.”
한보그룹의 부도가 며칠 남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자금이 바닥난 한보그룹이었고, 은행권의 지원으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오늘이 고비일 겁니다. 한보그룹에서 은행권에 3,000억 원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돈을 맡겨 놓은 것도 아니면서 자꾸만 달라고만 하면 어느 은행이 돈을 내어 주겠나.”
“며칠 내로 한보가 도산할 게 분명합니다.”
“한보 주식과 회사채를 가지고 있는 놈들은 아주 피해가 극심하겠어. 으하하하하!”
광화문 곰이 별명 그대로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명동의 주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도 느끼고 있었을 터.
“어르신을 제외한 명동 사채업자들이 꽤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아주 좋구만. 나야 자네 말만 믿고 가지고 있는 현금을 전부 미국 IT 업체 주식에 투자를 해 뒀지.”
“재미를 좀 보셨습니까?”
“자네 말대로 아주 재미가 좋더군. 명동을 갈아엎을 정도의 자금은 충분할 걸세.”
명동에서는 들리는 소문이 있었다.
명동 4인방이 3인방이 되었다는 소문.
그만큼 광화문 곰은 조용히 참고 기다리며 자금을 모아 왔다.
“한보의 도산으로 사채업자들이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극심한 타격을 입은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 또 기다리라는 건가?”
“몇 달만 더 기다리시면 됩니다. 조만간 달러가 금덩어리가 되는 날이 옵니다. 그때가 되면 어르신이 보유한 달러를 빌리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찾아오게 될 겁니다.”
“태우그룹을 제외한 대기업들이 말인가?”
미소로 회답을 해 주었다.
태우그룹만큼 외화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있을까?
합작회사를 만든다는 핑계로 태우그룹의 대부분의 자금이 달러 형태로 묶여 있었다.
“한 번에 싹 쓸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 자금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본 자금을 유입해 살아남으려는 놈들이 있을 거란 말인가?”
“일본 자금이 유입된다면, 어르신이 보유한 현금만으론 부족합니다.”
“도와주겠단 말인가?”
“명동의 주인을 일본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광화문 곰은 지금까지 나를 도왔다.
그가 있었기에 태우전자를 비롯한 태우그룹의 지분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도움을 받았으면 갚아 줘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일본 자금이 대한민국을 좀먹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자네만 믿고 기다리고 있겠네.”
“최대한 외화 보유액을 늘리세요. 가지고 있는 부동산도 전부 처분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부동산까지 말인가. 그럼 광화문 곰이라는 별명까지 버려야겠군.”
광화문 일대의 땅을 전부 소유하고 있어 광화문 곰이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오는 순간 부동산 가격은 똥값이 되어 버린다.
“광화문은 너무 좁지 않습니까? 명동 곰이나 서울 곰 정도는 되어야 어르신의 격에 맞지 않겠습니까?”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란 말이군. 그래 자네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야지. 최대한 빨리 부동산을 전부 처분해 달러로 바꿔 놓겠네.”
“그럼 오늘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다음은 언제 또 놀러 올 겐가?”
“광화문 곰이 명동의 주인이 될 때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 * *
1월 23일.
결국 한보그룹이 도산했다.
기획실은 한보그룹의 도산으로 난리가 났고, 기획실장은 최대한 빠르게 정리를 한 후 나에게 보고를 하였다.
“한보그룹이 도산하였습니다. 30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주식포기각서를 내며 도산했다고 합니다.”
“고작 50억 원 때문에 재계 서열 18위의 그룹이 무너졌네요.”
“이번 어음은 고작 50억 원에 불과하지만, 한보그룹의 부채는 최소 5조 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기업을 경영한 한보그룹이었고.
이는 태우그룹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경제 성장률이 주춤하니 부채가 그룹을 집어삼킨 것이죠. 제가 태우그룹의 부채를 세밀히 관리해야 한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도 대마불사지 않습니까? 한보그룹이야 재계 서열 18위에 불과하니 넘어갔지만, 10위 권 안에 있는 기업들은 정부와 은행에서 무너지기 두진 않을 겁니다.”
대마불사는 개뿔.
나라가 부도가 나게 생겼는데 대기업이라고 멀쩡하겠나?
미국 정도 되는 나라에서나 대마불사 이론이 통하지 한국 같은 신흥국에선 대마불사는 통하지 않는 이론이었다.
“그건 모를 일이죠.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많은 그룹이 올해 무너질 겁니다.”
“재계 서열 26위인 삼미그룹도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비자금 사태의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고 있나 보군요.”
“회장님께서는 한보그룹과 삼미그룹의 계열사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특히나 태우중공업이 현재그룹에 팔려 나가서 그런지 중공업 분야를 다시 인수하고 싶어 하십니다.”
“……회장님을 만나러 가 봐야겠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으실 분이 아니셨다.
정말 몇 달만 더 기다리면 되기에 나는 할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회장실로 쳐들어갔다.
노크도 없이 회장실의 문을 열었고, 할아버지는 한보그룹과 삼미그룹의 계열사를 화이트보드에 붙여 놓고는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인가? 여긴 집이 아니라 회사야. 노크도 없이 막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네.”
“한보그룹 도산 때문에 다급히 올라왔습니다. 예의 없이 행동해 죄송합니다.”
“흠흠, 급한 일이긴 하지. 한보그룹이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 그리고 삼미그룹도 조만간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그래서 한보그룹과 삼미그룹의 계열사를 인수하려고 하십니까?”
“좋은 계열사가 있으면 인수해야 하지 않겠나? 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러니 우리가 인수해서 직원들이 먹고살 길을 만들어 줘야지.”
나는 화이트보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화이트보드에 붙어 있는 종이들을 하나씩 뜯어내었다.
“무슨 짓이냐!”
“지금은 계열사를 인수할 때가 아닙니다. 한보그룹이 무너졌습니다. 그다음이 우리가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한보처럼 맥없이 도산할 거란 말이냐! 어디서 감히 그런 망발을 하느냐!”
“회장님, 아니 할아버지! 조만간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부도가 납니다. 대한민국이 부도가 난단 말입니다!”
나는 소리를 지르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더는 할아버지를 막을 자신이 없었기에 진실을 알려 주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