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82)
독식하는 재벌 3세-82화(82/518)
82화. 1997년 (5)
1997년 8월.
아주 반가운 손님이 한국을 방문했다.
신제품 준비로 한창 바빠야 할 스티브가 연락도 없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긴 했다.
휴대폰 사업부는 여전히 태우전자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스티브는 신제품 준비를 위해서라도 한국을 방문해야만 했다.
“저는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좋은 대화 나누십시오.”
우성일 사장은 사장실을 비워 주었다.
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그였다.
뭐 그러니 아직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거긴 하지만.
“스티브!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한국에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미스터 킴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지.”
“충분히 놀랐어요. 진짜 스티브가 이 시점에 한국에 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어요.”
“아직 놀라긴 이르네. 짜잔!”
스티브가 하얀색 박스 하나를 꺼냈다.
나는 박스를 보는 순간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설마, 벌써?”
“열어 보라고. 깜짝 놀라게 될 테니까. 제품의 이름은 아이팟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고.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모습의. 전생에 봤던 바로 그 모습의 아이팟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벌써 만드신 겁니까?”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 개발진을 모조리 애플로 보내 줬는데 당연히 만들어 내야지. 설마 개발이 느리다고 타박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내가 뒤에서 도와줬다고는 하지만 너무 빠르게 나온 아이팟이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2000년은 되어야 나올 제품이었다.
그런데 3년이나 빨리 아이팟을 만들어 낸 스티브였다.
“저장 공간이 1GB나 되는군요. 100곡도 충분히 재생할 수 있겠어요. 크기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저장 공간은 아직도 마음에 걸려 최소 2GB 하드 디스크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단가가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1GB를 채택했어.”
시대를 앞섰기에 저장 용량이 다운그레이드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는 여전했고.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를 개발한 디지털케이스에겐 미안하지만.
비교도 되지 않는 디자인의 차이를 보이는 제품이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빨리 아이팟을 만드시다니요!”
“아직 놀라긴 이르지. 보여 줄 게 하나 더 남았거든.”
스티브가 박스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그런데 박스의 모습이 매우 익숙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우전자의 제품이었던 이노폰 포장 박스였다.
“이노폰의 다음 버전을 만드신 건가요? 아이팟에 집중하느라 휴대폰은 잠시 뒤로 미뤄 둔 줄 알았습니다.”
“이노폰과 크게 다르지 않아. 딱 한 가지 기능만 더했을 뿐이지.”
나는 박스를 열어 다음 버전의 이노폰을 확인했다.
스티브의 말처럼 정말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이는 이노폰이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노폰 옆 부분에 구멍 하나가 뚫려 있다는 점이었다.
“설마 음악 재생이 가능한 휴대폰입니까?”
“정답이네! 조금 있으면 열릴 독일 가전 박람회에서 이노폰 다음 버전을 공개하고, 내년에 있을 CES에서 아이팟을 공개할 계획이네.”
“축하합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축하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 아닌가?”
스티브가 눈을 찡그리며 나를 가리켰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두 손을 펼쳐 보이자 스티브가 말을 이어 나갔다.
“한국에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번다’는 속담이 있지?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지. 휴대폰 사업부는 애플에 넘겼지만, 특허는 태우전자와 기술연구소가 꽉 쥐고 있더군. 매출의 상당 부분을 로얄티로 주게 생겼으니 자네가 축하받아야지.”
나는 작은 꼼수를 부렸었다.
스티브의 말처럼 필수적인 특허권은 애플로 넘기지 않았다.
태우 직원들이 힘겹게 만든 특허를 애플로 그냥 넘기긴 아까웠으니까.
그리고 태우그룹에서도 확실한 캐쉬카우가 필요했기에 특허권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싫을 리가. 자네가 없었다면 이노폰도 아이팟도 없었을 건데. 웃으며 로얄티를 줄 수 있지.”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한국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요.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여야 합니다.”
“한국 소식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네. 신형 이노폰과 아이팟 덕분에 내년부터는 달러를 아주 쓸어 담게 될 거야.”
자신감이 대단한 스티브였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디자인에 훌륭한 기능을 보유한 제품이었으니 자신감이 넘칠 만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MP3 파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안 그래도 그게 걱정이야. 불법으로 MP3 파일을 공유하는 사이트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우리 제품이 나오면 불법 사이트를 권장하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MP3 파일 공유 사이트가 나타났다는 말씀이십니까?”
“P2P 시스템을 이용한 불법 공유 사이트가 몇 달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네.”
어떻게 된 일이지?
P2P 사이트는 1~2년은 더 있어야 최초로 생겨난다.
그런데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타나 유행하기 시작한 불법 P2P 사이트였다.
“혹시 P2P 사이트 이름을 아십니까?”
“냅스터라고 하더군. CES에서 공개한 MP3 플레이어에 영감을 받아 P2P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네.”
시점이 앞당겨진 이유를 알았다.
모두 나 때문이었다.
내가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보다 빨리 선보였기에 P2P 사이트도 빠르게 등장하게 된 셈이었다.
“P2P 사이트가 아직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나 봅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려는 시기지.”
P2P 사이트가 유명해졌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미국 3대 음반 회사 중 한 곳이 내 소유였으니까.
P2P 사이트 등장으로 매출이 감소하면, 당연히 내게 연락이 오게 되어 있었다.
“P2P 사이트의 등장은 우리에게 나쁠 게 전혀 없습니다.”
“MP3 파일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때문인가? MP3 플레이어를 만드는 우리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지만, 대중의 비난이 우리에게 향할 수가 있다네.”
“당연히 그러면 안 되죠. 그래서 제가 따로 만들어 둔 사이트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MCA 레코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했고.
아주 작은 점처럼 숨겨져 있는 음원 사이트를 찾아서 들어갔다.
“설마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를 만들어 두었나?”
“MP3 플레이어에 최초로 투자한 사람이니 당연히 이런 사이트를 만들어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자 상거래 시스템을 도입한 음원 사이트군. 이 사이트를 사용하면 대중들의 비난을 피할 수 있겠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음원을 구입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물론 뭐라고 할 사람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음반사에서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부분은 스티브가 해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음반사를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
“MCA 레코드는 이미 설득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샀거든요. MCA 레코드는 제 소유입니다.”
“자네 얼마나 큰 그림을 그려 둔 건가? MCA 레코드를 이용해 음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그림을 그려 두었군.”
일본의 파나소닉에 잠들어 있던 MCA 레코드 지분을 내가 모조리 가지고 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MCA 레코드사와 함께 불법 음원 공유 사이트 반대 시위와 더불어 고소를 진행하셨으면 합니다.”
“시위는 그렇다고 쳐도 고소까지 말인가?”
“그래야 사람들이 MP3 파일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군.”
“대중의 관심이 폭발할 때 정식으로 MCA 레코드사와 애플이 손을 합쳐 음원 사이트를 여는 겁니다. 애플의 제품은 이곳의 음원 사이트에서만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버리면 대중의 비난이 아니라 칭송을 받지 않겠습니까?”
불법을 합법의 길로 선도한다.
이런 이미지로 잘만 포장하면, 아이팟은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가 없었다.
“당분간 아주 많이 바빠지겠군. 그런데 음원 사이트의 수익을 모조리 자네가 먹을 건 아니지? 애플의 제품이 독점으로 이용하는데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겠나?”
“날카로우시네요.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는데.”
“한 번 속았는데 또 속으면 내가 바보 아니겠는가?”
“애플 제품에서 다운로드하는 음원의 경우 순이익을 7:3으로 나누겠습니다.”
“설마 우리가 3인가? 너무 적네. 최소 4는 받아야겠네.”
“음반사도 제가 구입하고 음원 사이트도 제가 만들었는데 4나 받아 가시겠다고요?”
나는 5까지 줄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싫은 척을 하고 있는 건 장사꾼의 본능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네. 소프트웨어의 수익까지 전부 자네에게 넘겼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6:4로 하겠습니다. 만족하십니까?”
“솔직히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족하겠네. 자네가 모두 그린 그림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미국 음반 회사를 맡아 주세요. 제가 후방에서 든든히 지원 사격을 해 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게나. 음반 회사와의 미팅에서 아이팟을 들고 갈 생각이네. 아이팟을 보면 그들도 생각이 달라질 걸세.”
아이팟의 디자인과 기능은 혁신이었다.
아무리 전자기기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아이팟을 보는 순간 MP3 시장이 거대해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 * *
전국 경제인 연합회.
일명 전경련이라 불리는 단체는 대한민국 대기업의 모임이었다.
삼진그룹의 창립자가 만든 기업 모임으로 군사정권 시절 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만들어졌다.
작년만 해도 전경련 모임에는 재계 20대 그룹의 총수가 모였지만.
이번 모임에는 곳곳에 빈자리가 넘쳐났다.
그 모습에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는 KS그룹의 채정한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어쩌다 한국 경제가 이 꼴이 났는지.”
“회장님들 제가 감히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기업이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제발 도움을 주십시오.”
재계 서열 4위의 카이그룹 권호창 회장이 읍소를 했다.
이미 부도 직전인 상황이었기에 물불 가리지 않는 그였다.
“권 회장님. 우리가 어찌 도와드리겠습니까? 부채가 5조 원을 넘는데, 우리 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일입니다.”
“김태중 회장님은 도와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화가 쌓여 있는 곳이 태우그룹이라고 들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김태중 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나서 카이그룹의 계열사를 인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자를 생각하며 겨우 참아 내었다.
그런데 카이그룹뿐만 아니라 SS그룹까지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우리 SS그룹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SS자동차를 매각하겠습니다. 다들 SS자동차 인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셨습니까? 삼진그룹이나 태우그룹에 좋은 가격에 매각하겠습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자동차 시장에 후발 주자로 나선 삼진그룹은 카이자동차와 SS자동차에 눈독을 들였었다.
하지만 대기업이 우르르 무너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수하겠다고 나서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김태중 회장도 마찬가지였고.
그는 이번에도 손자 얼굴을 떠올리며 겨우 입을 닫았다.
그렇게 가만히 입을 닫고 있는 동안 전경련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고.
어느샌가 내년 회장 선출과 관련된 안건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다음 전경련 회장으로 김태중 회장님을 추천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날 회장으로 추대하는 거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가 된 김태중 회장이었고.
지금의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