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83)
독식하는 재벌 3세-83화(83/518)
83화. 국가 부도의 날 (1)
광화문 곰의 고택.
마치 주차장이라도 된 것처럼 많은 차가 줄지어 있었고.
고택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 기업 회장님들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경호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제발 회장님을 뵙게 해 주게나. 자네도 나를 알지 않는가.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나는 들여보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회장님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분이면 되네. 잠시 얼굴만 보고 나오겠네.”
기업 회장들이 돈을 빌리러 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은행권은 물론이고 명동 사채 시장까지 기웃거리는 기업 회장들이었다.
그중에서는 이미 기업이 부도 처리 난 회장도 있었다.
그런 회장들이 전부 광화문 곰의 고택에 모여들었다.
그가 달러를 가득 들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차입금을 갚아야 하기에 달러가 급한 회장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절대 열리지 않는 고택이었고.
나는 고택의 정자에 앉아 회장님들의 아우성을 광화문 곰과 함께 듣고 있었다.
“회장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국가 부도의 날이라고 하더군. IMF에게 경제 주권을 바쳤다고 뉴스에서 떠들던 소리를 들었네.”
오늘은 11월 21일.
1997년이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IMF에 도움을 요청한 날이기도 했다.
“슬프고 비극적인 날이지요.”
“자네가 동정심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네.”
“입으로라도 이렇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동정심은 일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마 내가 동정심을 가질까.
국가 부도의 날 이후 태우그룹이 어떻게 되었는데.
대한민국은 매우 빠르게 IMF를 졸업하고 정상화가 된다.
하지만 태우그룹은 재가 되어 여러 곳으로 흩어졌었고.
이번엔 내가 반대편의 입장에서 다른 기업이 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볼 차례였다.
“내년 1월부터 달러를 한국으로 가지고 오시지요.”
“드디어 때가 되었는가? 벌써 환율이 1,300원을 돌파했네. 내가 환율이 800원 일 때 달러를 샀으니 환율로만 2배의 수익을 봤다네. 거기다 주식으로 본 수익까지 더하면 5배 이상 불어났지. 전부 자네 덕일세.”
“이제 그 돈으로 명동의 주인이 되시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눈독 들인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시면 곤란합니다.”
“자네가 빌려주라는 곳에만 빌려주겠네. 날 명동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사람에게 그 정도는 당연히 해 주어야지.”
광화문 곰이 아이처럼 좋아했다.
자신을 사채꾼이라 업신여기던 기업 회장들이 저택 앞에 줄지어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명동 전체를 장악하세요. 그리고 일본 자금이 들어오는 기미가 보이면 연락 주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일본 놈들이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을 하겠네.”
나는 정자에서 일어났고.
뒤따라 일어나는 광화문 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명동의 주인이 되신 걸 미리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나. 특히 뒤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책임지고 해결해 주겠네.”
“지금 하신 말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뒷문을 통해 조용히 고택을 빠져나갔고.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신 저택으로 이동했다.
* * *
저택에 도착하자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벌써 주무시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거실을 지나칠 때.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불도 안 켜시고 뭐 하시고 계세요?”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허허, 국가 부도의 날이라니. 정말 네 말대로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이 넘어가 버렸어.”
나는 할아버지의 옆에 앉았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손과 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진정하세요. 국가가 부도가 났다고 해서 태우그룹까지 부도가 나는 건 아닙니다.”
“…미안하구나. 못난 할애비라서 정말 미안하구나.”
할아버지가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
항상 당당하고 욕망을 숨기지 않던 모습이 오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왜 할아버지가 못났다고 하십니까.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분이십니다.”
“오늘 곰곰이 앉아 돌이켜 보았단다. 너는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할애비란 사람이 손자의 앞길을 막고 있더구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느낌 때문일까?
할아버지가 드디어 내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서인가?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할아버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 드렸다.
“할아버지는 전혀 부족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앞으로 할아버지가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회사 인수 합병은 할아버지의 전문 분야시잖아요.”
“차입금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기회로 깨달았단다. 차입금을 빌려 회사를 인수하는 몹쓸 짓은 이제 그만두어야지.”
“차입금을 왜 빌립니까? 태우그룹의 돈으로 인수 합병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차입금도 다 갚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딸깍!
나는 소파 옆에 있는 스탠드를 켰다.
그러곤 메모지에 숫자를 써 내려 갔다.
“태우조선과 휴대폰 사업부를 판매한 돈이 대략 3조 원에 달합니다. 그 돈을 전부 아람코와의 합작회사에 묶어 둔 걸 기억하십니까?”
“그 돈을 꺼내 사용하자는 게냐?”
“그 돈이면 부채를 다 갚고 여러 기업을 인수 합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꼬박꼬박 아람코 합작회사에 달러를 저장해 두었다.
그냥 저장해 둔 것만 아니라 투자를 통해 불려 놓았다.
50억 달러에 불과했던 돈을 2배 이상 불려 100억 달러로 만들어 두었다.
“아람코에 넣은 돈이 3조 원밖에 안 되는데 어찌 부채를 다 갚는단 말이더냐? 태우그룹의 부채는 14조 원에 달한단다.”
“투자를 통해 2배로 불려 두었습니다.”
“그래도 6조 원이지 않느냐.”
“환율의 마법이 생겨 버렸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부채는 전부 원화입니다. 그런데 아람코에 넣어 둔 돈은 달러입니다.”
할아버지가 이해하기 쉽게 메모지에 자세히 적어 내려갔다.
아람코에 있는 돈 100억 달러.
처음 아람코에 넣었을 때는 7조 원에 달하는 가치였지만, 환율이 2배로 뛰며 14조 원이 되었다.
“허허, 7조 원이 14조 원이 되어 버렸구나.”
“게다가 아직 환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1,900원 선을 돌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19조 원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는구나.”
“부채를 다 갚고도 5조 원이 남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가 보유한 돈은 원화가 아니라 달러입니다. 달러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회장님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할애비가 되어서 손자가 이리 영특한지 어찌 모르고 있었을고.”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8월 독일 가전 박람회에서 공개된 MP3 기능이 달린 이노폰이 공개되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애플로부터 로얄티를 분기별로 지급받기로 계약을 맺었고.
내년 1월이 되면 MP3 이노폰 로얄티가 태우그룹 계좌로 송금되게 된다.
게다가 내년 1월에는 드디어 아이팟이 공개되고, 거기서 들어오는 로얄티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누구 손잔데 당연히 영특해야죠.”
“그런데 나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구나. 어떻게 사우디 왕실과 짜고 위장 합작회사를 만들었느냐?”
“아람코와의 합작회사는 위장이 아닙니다. 정말 사우디 왕실과 계약을 맺었고, SS오일을 인수해 한국 최대 정유 회사를 운영할 겁니다.”
“위장 회사가 아니라고? 허허, 그럼 SS오일은 언제 인수하면 되겠느냐?”
이미 반값 할인에 들어간 SS 계열사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반값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대마불사 이론이 꼭 틀린 건 아닙니다. 정부에서는 그룹을 살리진 않겠지만, 가치 있는 회사는 다른 대기업에 판매해 살리려고 할 겁니다.”
“정부의 지원을 얻어 내자는 말이냐?”
“모든 회사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채권단과 정부가 합의해 부채의 일부를 탕감받고 난 뒤에 인수해도 늦지 않습니다.”
“무섭구나. 나이도 어린 것이 어찌 그리 독한 생각을 했을고.”
독할 수밖에.
나는 모든 걸 다 잃고 이번 생으로 돌아왔다.
이번 생엔 남들이 나와 할아버지에게 그랬듯이 똑같이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 인수는 어떻게 하시고 싶으십니까?”
“카이자동차와 SS자동차를 모두 인수하는 건 어렵겠느냐?”
“……한 곳만 인수해도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두 곳을 다 인수했다간 체할 수가 있습니다.”
“아쉽구나. 한 곳만 인수해야 한다니 너무 아쉬워.”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손의 떨림은 멈추었고, 강한 힘이 느껴졌다.
잠시 잠들어 있던 할아버지의 욕망이 벌써 깨어난 게 분명했다.
“카이자동차를 인수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규모도 SS자동차보다 더 크고 자동차 모델도 더 다양합니다.”
“규모만 보면 그렇지만, SS자동차는 우리가 보유하지 않은 SUV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역사대로라면 카이자동차를 현재그룹이 인수하게 되고.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며 국내 점유율을 장악해 버린다.
그렇기에 SS자동차보다 카이자동차에 더욱 관심이 갔다.
“우리가 카이자동차를 인수하지 않으면, 결국 현재그룹에서 인수하고 말 것입니다.”
“SS자동차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나눠 가질 거라면 규모가 더 큰 회사를 먹는 게 이득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구나.”
“하지만 카이자동차도 마찬가지로 부채 탕감을 받은 뒤 인수해야 합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아! 그리고 내년 전경련 회장으로 내가 추대가 되었단다. 회장 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날 회장으로 추대했는지 모르겠어.”
할아버지는 전생에서도 전경련 회장이 되셨었다.
연륜이 깊고 다음 정권과 친분이 깊은 사이였기 때문일 터였다.
“할아버지가 배팅에 성공하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다음 정권과 할아버지보다 친한 회장이 누가 있겠습니까? 승리 확률이 낮은 배팅에 성공했으니 전경련 멤버들도 이득을 같이 보고 싶은 거겠죠.”
“그놈들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오히려 잘 되었다.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부도 기업 인수를 진행하긴 힘들 테고, 아마 전경련에 맡기지 않을까 싶다.”
“할아버지가 전경련 회장이 되셨으니 우리가 원하는 회사를 인수할 수 있겠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 해야 할까?
빅딜을 주도할 수 있는 전경련 회장 자리에 할아버지를 추대하다니.
전경련 멤버들이 딴 꿍꿍이를 가지고 추대했다고 하더라도 할아버지의 고집과 욕심을 꺾을 수 있을까?
나는 없다에 한 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할아버지 때문에 속이 탔는데.
이번엔 전경련 소속의 회장님들 차례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어두운 거실에서 약한 스탠드 불빛이 할아버지를 비추고 있었고, 역시나 탐욕 가득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예전이라면 한숨부터 나올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갑게만 느껴졌다.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에 좋은 기업을 사들이기 어려웠고.
기업 인수는 할아버지의 전공 분야였기에 믿고 맡길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