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84)
독식하는 재벌 3세-84화(84/518)
84화. 국가 부도의 날 (2)
12월이 되자 환율이 다시 한번 치솟았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기획실장을 다급히 호출했다.
“오늘 바로 아람코 합작회사에 묶여 있는 100억 달러를 이동시킬 겁니다.”
“환율이 최대치까지 올랐다고 판단하신 겁니까?”
“더는 오르지 않을 겁니다. 오늘 태우그룹의 모든 부채를 청산해야 합니다. 월가에는 미리 연락을 넣어 뒀으니 합작회사의 자금이 월가를 거쳐 부채를 제외한 금액이 한국으로 들어올 겁니다.”
환율은 시간 싸움이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무조건 유리한 싸움이었기에 우리는 바삐 움직였다.
불과 1시간.
그동안 SAVE 투자회사로 전부 합쳐진 14조에 달하는 부채를 모두 갚고, 5조 원이 넘는 금액이 태우그룹 계좌로 옮겨졌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100억 달러의 자금이 움직였는데 생각보다 환율의 변동이 적었습니다.”
“실제로 달러가 한국으로 들어온 양은 미미하니까요.”
100억 달러가 전부 한국으로 들어온 건 아니었다.
14조 원에 달하는 달러는 부채를 갚기 위해 SAVE 투자회사로 이동했고.
5조 원에 달하는 달러만이 한국으로 들어온 셈이었기에 환율 변화가 크지 않았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회장실로 찾아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소식이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지금까지는 회장실로 올라갈 때면 계단 2~3씩을 밟으며 뛰어 올라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단 1개씩을 밟으며 여유롭게 회장실로 올라갔다.
“어떻게 되었느냐? 일이 잘 마무리되었겠지?”
“지금부터 태우그룹의 부채는 0원입니다. 400%에 달하던 부채가 0%가 되었습니다!”
“허허허, 그 많은 부채가 한 번에 사라지니 시원섭섭하구나. 그것보다 부채를 청산하고 남은 돈은 얼마나 되느냐?”
“5조 원이 조금 넘습니다. 괜찮은 기업 한 곳을 인수하고도 남는 금액입니다.”
“네 예상대로의 금액이 들어왔구나. 정말 장하다. 오늘만큼 네가 자랑스러운 날이 없구나.”
할아버지는 두 팔을 벌려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할아버지의 따스한 품이었다.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낸 뒤 나는 새로운 주제를 꺼내 들었다.
“처음으로 인수할 회사는 반드시 SS오일이여야 합니다.”
“정유 회사는 지금 당장 급한 건 아니지 않느냐? 차라리 카이자동차나 건설 회사를 인수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SS오일을 인수해야만 아람코와의 합작회사를 만들어 제대로 된 정유 회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람코로부터 막대한 달러를 받아 낼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셨고.
우리는 소파로 자리를 옮긴 뒤 말을 이어갔다.
“계속 말해 보거라. 정유 회사를 만들면 아람코로부터 달러를 받아 낼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더냐?”
“태우화학과 태우중공업까지 더해 대규모 정유 회사를 설립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태우화학과 태우중공업의 지분을 아람코에서 사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정유 회사 설립이 마무리되면 아람코에서 거액의 투자금을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지분을 팔아 달러를 받고, 거기에다 투자금까지 받을 수 있단 말이구나.”
“최소 3조 원 이상의 달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SS오일만 인수할 수 있으면, 카이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회사를 인수할 자금이 확보됩니다.”
물론 투자금의 규모는 달라질 수 있었다.
사우디 왕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우호적인가에 따라 투자금의 규모는 달라진다.
“무조건 SS오일을 빨리 인수해야겠구나.”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가격을 후려칠 수가 없습니다.”
“예끼! 가격을 후려치다니!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수를 한다고 해야지. 그리고 그건 걱정 말거라, SS그룹 박원석 회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자고 연락이 오고 있으니까.”
“그럼 저도 같이 만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되고말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으니 오늘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꾸나.”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재계 서열 7위 SS그룹.
분명 대단한 그룹이었지만, 지금 회장은 재벌 2세였다.
창립자와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그룹을 경영했고, 막대한 부채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 * *
그날 저녁.
나와 할아버지는 청담동에 위치한 한정식 식당으로 같이 이동을 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식당에서 가장 외진 건물로 안내를 받았고, SS그룹 박원석 회장은 이미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회장님 오셨습니까! 이렇게 만나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가 내 얼굴에 너무 금칠을 하는구만. 손자 앞에서 부끄럽네.”
“손자분도 같이 오셨군요. 이노폰을 만들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아들뻘인 나에게도 저자세로 나오는 박 회장이었다.
그만큼 그룹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박원석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었습니다.”
“나에게서 좋은 이야기가 뭐가 있겠나요.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는 재벌 2세에 불과하죠.”
“언제까지 인사를 하고 있을 텐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식사를 준비하라 전하겠습니다.”
박 회장은 직접 밖으로 나가 지배인을 불러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해진미가 식탁을 가득 채웠다.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가 먼저 숟가락을 들고 나서야 나와 박 회장은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국회의원은 완전히 그만두는 겐가? 어렵게 당선이 되었는데 그만두기 아깝지 않은가?”
“그룹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할 수나 있겠습니까?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오는 길입니다.”
이 시대에는 정치와 기업 경영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아버지의 경우에도 대선 후보로 나갈 뻔했고, 현재그룹의 회장도 대선까지 출마를 했었다.
SS그룹의 박원석 회장도 정치의 꿈을 안고 국회의원에 당당하게 당선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그룹이 휘청거리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경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직까지 사퇴할 정도면 그룹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보군.”
“정말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최대한 계열사를 처분해 버텨 보려고 하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김 회장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수저를 내려놓고 고개를 조아리는 박 회장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모습이 안쓰러운지 혀를 차셨다.
“쯧쯧, 그러게 부채관리를 좀 하지 그랬나.”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태우그룹을 제외하면 재계 서열 20위 안에 드는 대기업 중 부채율이 400%가 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괜히 뒷골이 아파 왔다.
태우그룹도 내가 아니었으면 부채율이 400%를 넘어섰을 테니까.
“그건 또 그렇군. 내가 자네 부친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자네와도 오랜 연을 이어 왔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네.”
“SS자동차를 매각하겠습니다. 제발 인수해 주십시오.”
“자동차 회사는 인수할 생각이 없다네. 포드와의 합작회사도 이제 만들었는데 여기서 자동차 회사를 더 인수하면 관리가 힘들어진다네.”
“그럼 관심 있는 계열사를 알려 주십시오. 최대한 가격에 맞춰 매각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에 빠진 연기를 하셨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SS오일을 인수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동차 회사가 정유 회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SS오일이라면 괜찮긴 하겠군. 어떤가? SS오일을 매각할 생각은 있는가?”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인수만 해 주신다면 어떤 계열사라도 못 팔겠습니까.”
SS오일은 정말 알짜배기 회사였다.
아람코와 합작으로 만든 회사기 때문에 SS그룹 마음대로 부채를 만들 수도 없어 부채율도 상당히 적었다.
“그런데 가격을 많이는 못 쳐준다네. 지금의 주가대로 SS오일의 지분을 사들이겠네. 물론 경영권 프리미엄은 조금 주겠네.”
“지금 주가대로라고 하면, 1조밖에 되지 않습니다. SS오일의 가치를 고려해 주십시오. 순이익으로만 매년 2천억 원을 넘게 벌어들이는 회사입니다.”
정유회사는 캐쉬카우 그자체였다.
유가에 따라 매출액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적자가 잘 나지 않는 종목이었다.
하지만 지금 SS오일은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환차손’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유 공정을 거치기까지 두 달이 필요했고.
이 기간 동안 현금이 묶이는 걸 막기 위해 정유회사는 채권을 발행하였다.
그런데 환율이 급등하니 환율 차이로 인해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말았다.
“올해 순이익이 적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네. 순익익으로 2천억 원을 넘게 벌던 건 옛날 이야기지.”
“외환위기만 무사히 넘기면 언제든지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1조 원에 SS오일을 절대 넘길 수 없습니다.”
“흠, 좋네. 그럼 1조 원과 더불어 채권까지 우리가 사들이겠네. SS그룹이 발행한 유전스 채권이 대충 3천억 원으로 알고 있네.”
유전스(usance) 채권.
정유 회사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이렇게 불렀고.
SS그룹이 아닌 SS오일에 잡힌 부채였기에 이걸 대신 갚아 주기로 했다.
“정말 더는 힘드시겠습니까? 1조 원 가지고는 그룹을 정상화할 수가 없습니다.”
“SS오일을 인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최소 몇 달, 길면 몇 년을 적자를 봐야 하는 회사네. 그 부담을 우리가 대신 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그럼 1조 원을 달러로 주실 수 있으십니까?”
“원한다면 달러로 줄 수 있다네.”
지금은 나라에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업의 부채 대부분은 달러 빚이었고, 원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도 달러가 필요했다.
“그럼 1조와 유전스 채권을 태우그룹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SS오일 지분을 양도하겠습니다. 쓰읍!”
“어허, 다 큰 사람이 눈물을 보여서 쓰나! 급한 불만 잘 끄면 SS그룹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네!”
눈물을 삼키는 박 회장이었고.
할아버지는 잔에 술을 따라주며 박 회장을 달래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는 사람은 회장님이 유일합니다.”
“나도 마음같아서는 더 도움을 주고 싶지만, 대한민국이 부도가 난 상황에서 더는 해 주기가 힘드네. 미안하네.”
“아닙니다. SS오일을 인수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아람코와의 관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워낙 깐깐한 회사라 지분을 인수하셨다고 해도 경영하긴 쉽지 않으실 겁니다.”
박 회장이 오히려 우릴 걱정하고 있었다.
아람코와 합작회사를 경영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
“사우디와의 일은 차차 해결해 봐야지. 우선은 SS오일부터 인수하고 나서 얘기를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사실 아람코와의 협의가 되어야지만 SS오일의 지분을 매각할 수 있습니다.”
“자네는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네. 내가 직접 사우디로 날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네.”
“자꾸 도움만 받는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는 꼭 갚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원한을 갚겠다고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사우디 왕실과 모든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할아버지가 다음 주에 사우디로 가시긴 하지만, 그건 새로운 합작회사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사안을 협의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의 식사 자리는 한 편의 연극이나 다름 없다.
SS그룹의 박 회장으로부터 SS오일 지분을 빼내 오기 위해 각본대로 움직이고 대사를 뱉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