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Third-Generation Heir of a Conglomerate RAW novel - Chapter (91)
독식하는 재벌 3세-91화(91/518)
91화. 빅딜 (4)
CL그룹은 철저한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장의 장남은 불의의 사고를 인해 사망하고 말았다.
마치 우리 아버지와 같이, 하지만 태우그룹에는 나라는 손자가 존재했지만.
CL그룹에는 남자 자식은 없었고, 장녀만 있었다.
그랬기에 조카를 입양해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결정이긴 했다.
같은 혈통에 우수한 머리까지 지닌 사람을 양자로 입양했으니.
하지만 장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물론 지금 내 앞에 있는 고연진은 너무도 순수한 사람이었다.
경영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입양된 오빠를 좋아하고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영원할까?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순수함은 현실이라는 때가 묻기 마련이었다.
“연진 씨는 회사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나요?”
“관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부모님이 싫어하셔서요. 아시잖아요. 우리 집안이 얼마나 엄한지.”
“대화를 나눠 보니 충분히 회사를 경영하고도 남을 분 같은데 아쉽네요.”
“제가요? 회사 경영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 아닌가요?”
새내기의 풋풋함을 풍기는 고연진이었다.
그녀를 쉽게 바꿀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 목표는 정확히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였다.
“어머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시겠네요. 원래라면 CL그룹의 적통은 연진 씨인데 그렇게 되지 못했네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CL그룹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아!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감정 이입해서 생각했나 봅니다. 제가 연진 씨 입장이라면 화가 날 것 같아서요. 제가 이렇게 속이 좁습니다.”
고연진은 입술을 살짝 비틀며 감정을 표현했다.
차마 화를 내진 못하겠으니 저런 식으로 감정을 삭이는 것 같았다.
원래라면 이 정도에서 그만둬야겠지만, 나는 조금 더 선을 넘기로 했다.
“다른 대기업의 경우엔 백화점이나 엔터 사업을 딸에게 상속해 주기도 하는데 CL그룹은 그런 사업을 하지 않아서 아쉽겠습니다.”
“자꾸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저 일어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자꾸 그런 쪽으로만 의식이 흐르네요.”
나는 몇 번이나 그녀를 자극했고.
결국 식사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파토가 나 버렸다.
화가 잔뜩 난 채로 식당을 나서는 고연진이었고, 그녀의 화는 그녀의 어머니에게로 전해지게 될 것이다.
* * *
다음 날.
기획실로 출근을 하자 태우전자 우성일 사장이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님, 음원과 관련되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왜 힘들게 직접 찾아오세요. 바쁘신 분이신데 전화로 보고를 해도 충분해요.”
“아닙니다! 1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인데 당연히 제가 직접 와서 보고를 드려야지요.”
우성일 사장은 여전히 나에게 저자세를 보였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허리를 숙이는 그였다.
기획실으로 옮긴 내 입지가 태우전자 사장일 때보다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겠지.
“저작권 협회와 이야기가 잘 되지 않나요?”
“아닙니다. 중소 음반 유통사를 인수한 덕에 저작권 협회와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공중파 3사와의 협상 때문입니다.”
“방송사와는 무슨 문제가 있죠? 광고만 잘 넣어 주면 되는 일 아닌가요?”
“그, 그게.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IMF의 여파로 공중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이 전부 종영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던가?
외환위기 시절 하루 종일 뉴스만 보고 있었지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음악 방송이 종영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긴 외환위기로 힘든 건 기업뿐만 아니라 방송사도 마찬가지였겠지.
음악 방송은 무대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니 돈이 많이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오히려 잘됐습니다.”
“어떤 점이 말씀이십니까?”
“이참에 공중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우리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세요.”
“한 곳도 아니고 세 곳 전부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는 해야 MP3 음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순위 산정 방식에 음원 다운로드 순위도 포함시킬 수 있죠.”
한국에서도 MP3 파일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P2P 사이트를 통해 불법으로 다운받고 있었고, 합법적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조차 없었기에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음원 다운로드 순위가 포함된다고 해서 음원 사이트를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겠습니까?”
“팬들이라면 무조건 이용할 겁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가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이 팬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음악 방송의 순위에 목숨을 걸곤 하죠.”
우성일 사장은 이해를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극성적인 팬에 대한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작년 가요 대상을 누가 받았는지 아십니까?”
“단체 가수가 받았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단체 가수를 아이돌이라고 부르죠. 가요 대상을 뽑는 5곳 중 4곳에서 아이돌이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대상으로 아이돌을 뽑지 않은 방송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체 항의라도 했습니까?”
“항의 수준을 넘어 시위에 가까운 단체 행동을 보였습니다. 아이돌의 팬들은 단순히 응원하는 걸 넘어서 종교에 가까운 지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엔터 회사에서 아이돌 앨범을 출시하고 있죠.”
1세대 아이돌의 시작이 이쯤이었고.
조만간 2세대, 3세대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음원 사이트는 그들의 팬부터 공략해야지만 대중화가 가능했다.
“그럼 방송 3사를 태우전자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돈이 꽤 들어갈 겁니다. 홍보비라고 생각하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 진행하세요.”
“최선을 다해 진행해 보겠지만, 방송 3사를 전부 후원하기엔 자금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지원금을 붙여 드리죠. 아이팟이 한국에 정시 출시되니 애플 쪽에 부탁해 음악 방송 앞뒤로 광고를 넣으라고 말해 두죠.”
“정말이십니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는 우성일 사장이었다.
애플의 도움을 이렇게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란 거겠지.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정말 쉬운 일이었다.
애플의 대주주가 나였으니까. 그냥 대주주도 아니고 최대주주였다.
SAVE 투자회사, 태우전자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분이면, 한국 홍보 정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 * *
며칠 후.
나는 CL그룹이 운영하는 아트 갤러리를 방문했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고 있긴 했지만, CL그룹이 보유한 예술품의 가치가 상당하다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분 가량을 홀로 갤러리를 구경하고 있을 때.
대규모 인원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중년 여성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태우그룹에서 바삐 계셔야 할 분이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김민재입니다.”
나는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중년 여성의 정체는 아트 갤러리의 대표이사이자.
CL그룹의 회장의 아내이자 안방마님인 김영서 여사였다.
“예의가 바른 분이시군요. 그런데 일전엔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연진 씨에게 실수를 했습니다. 외환위기로 인해 온통 머릿속이 기업 경영에만 가 있다 보니 그런 실수가 나와 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 드리겠습니다.”
“우리 연진이를 여성이 아니라 기업가로 보고 한 이야기라는 건가요?”
왜 그녀를 CL그룹의 안방마님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유교적 가풍이 진한 CL그룹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장관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영서 여사였기에 학식과 기품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저도 20살 때부터 기업가를 꿈꿔 왔습니다. 연진 씨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너무 쉽게 말을 뱉었습니다.”
“23살 때 태우그룹에 입사했다고는 들었어요. 그리고 대기업에서는 최연소로 사장까지 올라갔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인생을 사는 건 아니랍니다.”
“제가 생각이 좁았습니다. 그래도 연진 씨와 대화를 해 보니 우수한 경영인이 되실 분이란 건 알았습니다. 작은 계열사가 아닌 그룹을 이끌 수 있는 인재처럼 보이더군요.”
자식 칭찬을 싫어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나?
김영서 여사는 입을 살짝 가리며 미소를 보였고, 나를 향해 보내오던 따가운 시선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연진이를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사과를 하려고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CL그룹의 아트 갤러리에 유명한 예술품이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 겸사겸사 찾아왔습니다.”
“직접 보니 어떤가요? 소문만큼 괜찮았나요?”
“사실 예술에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가 보기에도 매우 뛰어나 보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갤러리 담당자를 태우전자 디자인 부서장으로 데리고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저를 태우전자로 데리고 가고 싶다는 건가요? 농담을 이렇게 잘하시는 분인 줄은 몰랐네요.”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대화 도중 김영서 여사의 상세정보를 확인했고.
기업 경영에 필요한 업무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아트 갤러리를 운영하기엔 아까운 능력임은 분명했고, 언젠가는 유교 가풍을 뚫고 나올 못과도 같은 업무 능력이었다.
“CL그룹에 백화점과 대형 마트가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트 갤러리를 꾸민 솜씨로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관리했다면 한국 최고의 유통사를 CL그룹이 보유하게 되었을 겁니다.”
“칭찬이 과하군요. 연진이에게 그러지 그러셨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태우그룹의 백화점을 여사님에게 맡기고 싶을 정도입니다.”
“호호호, 재미난 분이시군요.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김연서 여사는 미소를 지으며 뒤로 돌아섰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
하지만 자려고 누우면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경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겠지.
그리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합리화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었다.
자신의 혈육인 장녀에게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물려주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 * *
그날 저녁.
CL그룹 아트 갤러리에서 곧장 집으로 향했고, 할아버지는 대문 앞에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CL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를 다녀왔다지? 처자에게 관심이 생겼더냐?”
“관심이 생기긴 했습니다. 그런데 처자가 아니라 CL그룹의 계열사에 관심이 생겨 버렸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더냐?”
“CL그룹에서는 배터리 사업을 몇 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과 같은 소형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이차전지 개발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뒷골을 잡으셨다.
선을 보라고 보내났더니 기업 욕심을 내는 내 모습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었나 보다.
“배터리 계열사가 욕심이 나더냐. 하지만 CL그룹에서 쉽게 내주지 않을 게야. 반도체 회사까지 현재그룹에 뺏겼는데 더는 내주고 싶지 않겠지.”
“그쪽에서 먼저 제안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CL그룹에서 먼저 제안을 올 상황을 네가 만들었다는 뜻이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선 자리를 나간 이유가 이성과의 교제가 아니라 기업 인수 때문이란 걸 할아버지가 알아차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