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
1화. 프롤로그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소년이 비춰졌다.
눈가를 찌르는 새까만 머리칼이 거슬려 손으로 쓸어 올렸다.
“힉!”
그 작은 행동 하나 했을 뿐인데, 구석에 시립해 있던 시녀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명백히 나를 두려워하는 반응.
저 여자가 왜 저러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난 내가 만든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리하르트 바텐베르크.’
검술제일가, 바텐베르크의 막내아들이자 이 몸의 원래 주인.
태어났다 하면 검호(劍豪)가 되는 이 집안의 유일한 낙오자.
열등감에 사로잡혀 온갖 패악질을 일삼던 망나니로 말이다.
‘하필이면 이딴 놈한테…….’
구석에서 벌벌 떠는 시녀의 반응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애써 상념을 털어 냈다.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 봐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그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몇 년 후, 리하르트 바텐베르크는 죽음을 맞이한다.
가문이 박살 나는 건 덤이고.
하지만 아직 해 볼 만했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니까.
1화 Episode. 01 신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1)
“도련…….”
몽롱함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륜이 느껴지면서도 정정한 음성이었다.
“도련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어째 날 부르는 것 같아 눈을 떠 보니, 익숙한 얼굴의 한 노인이 빙긋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일어나셨군요. 밤새 잠이라도 설치셨습니까?”
누구일까.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
무어라 대답하려다 갑자기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말문이 막혔다.
“도련님?”
어지러운 와중에도 노인의 음성은 잘만 들렸다.
도련님이라고? 내가?
멍하니 노인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낯설기 짝이 없는 중세풍의 방이 보였다.
‘꿈인가.’
그게 아니라면 내 방이 난데없이 고풍스런 방으로 변모하진 않았을 것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 보니, 벽에 걸린 거울에 눈길이 갔다.
거울 안에는 막 깨어난, 웬 소년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어라.”
새까만 머리칼과 날카로운 눈매.
봉두난발이 되었음에도 어딘가 기품이 흐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귀공자 같은 외모였다.
그런데…… 그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리하르트 도련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의원을 부를까요?”
아, 그래. 리하르트다.
망나니 리하르트 바텐베르크.
‘어제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나는 거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거울 속의 망나니도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을 다 해 본다.
내가 가꿔 나가던 게임 속의 캐릭터가 되다니.
정말이지 현실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시스템 재설정 중.』
돌연 눈앞에 영문 모를 글자가 떠오르더니, 정신이 맑아지며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잠깐.”
가면 갈수록, 거울 속 망나니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갔다.
『재설정 완료.』
꿈이라고 여긴 이 상황은, 생각보다 너무 생생했다.
◈ ◈ ◈
평소 즐겨 하던 게임이 있었다.
‘The – God.’
천지를 창조하는 신이 되어 피조물들을 굽어 살피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놈은 그 피조물들 중 하나…….”
이 몸의 주인, ‘리하르트 바텐베르크’였다.
북대륙을 아우르는 검술제일가, 바텐베르크의 멸망에 휩쓸려 죽은 망나니 캐릭터다.
혼란스러운 속내를 가라앉히며 입을 달싹였다.
“상태창.”
□재능 [없음]
□특기 [없음]
□비고 [마나 불감증]
이 참담한 정보는 나, ‘리하르트’의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 상태창이 하나 더 있었다.
[호르(리하르트)] [최하급 신격]▶ [교단 레벨 – 1]
□ 신도 – 0 □ 신앙 ? 1,000
□ 권능 – [신도 임명] [기도 받기]
□ 해금된 직위 – [최하급 전도사] [최하급 성기사] [최하급 사제]
모니터 너머에서나 보던 게임 속 상태창이 띄워졌다.
네모반듯한 창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로 사흘째.
나는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으나, 골머리만 싸매고 있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싫어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똑똑-
“들어와.”
“도련님. 주문하신 것을 가져왔습니다.”
첫날에 보았던 노인이 여러 책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름은 기드 마이어.
‘리하르트’의 전속 집사이자 한때는 한 기사단의 단장을 역임했던 강자다.
“고마워.”
그에게 책을 받고 하나씩 훑던 와중 기드가 물어왔다.
“도련님, 실례가 안 된다면 갑자기 역사서는 왜 찾으시는지요.”
“역사를 잊은 배은망덕한 놈들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잖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네, 있죠.
난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하고 딴청이나 피웠다.
그나마 이 노인이 ‘리하르트’를 지극정성으로 보필하던 충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의 눈을 쉽게 속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때문에 속이진 않고 그저 숨길 뿐이었다.
“이 책들이 전부야?”
“예. 말씀하신 대로 역사서 중에서도 특히 신빙성이 높다 알려진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기드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만 가 보겠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라 말하는 그 얼굴에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끝끝내 말하지는 않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뒤로.
“신도 임명.”
기드를 향해 손을 뻗고 명령어를 내뱉었다.
『대상의 신앙심이 전무합니다.』
『신도가 될 수 없습니다.』
내 목소리를 들은 탓인가, 어느새 기드가 돌아서 있었다.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됐어.”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걱정하는 그를 안심시키고 보내기 위해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보내고 난 후.
작게 한숨이 나왔다.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비단 기드에게만 스킬이 통한 건 아니었다. 몇 번인가 보았던 시녀의 경우도 똑같았다.
더군다나 상태창에 적혀 있는 ‘최하급 신격’이란 말.
‘최하급…….’
이 세계의 창조주에게 주어진 직위라기엔 지나치게 비루한 단어였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다시금 책을 들었다.
◈ ◈ ◈
탁-
서적을 거칠게 덮었다.
가지런히 쌓인 책들 위에 내 마지막 희망을 내려놓았다.
“터럭만큼도 없네, 신에 관한 게.”
본의 아니게 이세계의 역사만 열심히 공부해 버렸다.
이 세상의 역사엔 신의 이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본디, 게임 속의 모든 캐릭터들은 나, ‘호르’를 받들었다.
이곳의 주민들에겐 창조주가 곧 아버지고 어머니였으니까.
인간은 물론이고 엘프, 오크. 드워프까지.
대륙을 두고 으르렁대던 모두가 신 앞에선 똑같은 경의를 내보였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리하르트에게 빙의하기 전의 일이었을 뿐이다.
다섯 권의 서적들이 그를 증명해 주었다.
이곳은 내가 알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신에 관한 것은 모조리 도려낸 듯 사라져 있었다.
내가 행했던 갖가지 기적조차 한낱 우연이나 기현상 따위로 서술되어 있었다.
서적의 저자가 지독한 불신론자가 아닌 이상, 그게 이곳의 통념일 것이다.
그토록 투철했던 신앙심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후…… 이러면 안 되지.”
상념을 털어 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리하르트가 되었단 것이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신격을 얻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리하르트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뒤의 일들도 함께 상기되었다.
“곧 난세가 도래한다.”
신이 없어졌을 뿐, 이 세계가 밟아온 역사는 이전과 같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별개는 아닐 것이다.
곧 여기는 전쟁의 불꽃이 수없이 피어오르고, 재앙의 씨앗이 여기저기서 움트는 곳이 된다.
‘마나 불감증’에 허덕이던 망나니 따위가 살아남기엔 더없이 어두컴컴한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사아아-
손끝에서 찬란하고 상서로운 빛이 피어올랐다.
신앙. 다른 말로는 신의 힘이자 모든 것.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시작해야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