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Episode. 36 역병 거인 (2)
꽈아아아앙-!!!
광폭하고도 거대한 빛줄기가 내리꽂히며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수십, 수백이나 되는 번개가 역병 거인들에게 일제히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 여파로 역병 거인의 주위에 있던 괴물들이 일시에 증발했다.
“키, 키에에엑!”
그 가공할 모습에, 리오 성이라는 만찬을 앞두고 희희낙락해하던 아귀들이 화들짝 놀라 굳어 버렸다.
성에서 결사 항전을 외치던 병력들도 입을 쩍 벌리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은 흡사 빛의 기둥과도 같았다.
그것도 몹시 파괴적인.
꽈앙, 꽈아아앙-!!
지크의 눈앞으로 빛이 쉴 틈 없이 명멸했다.
그나마 보이는 것이라곤 발버둥 치던 모습 그대로 굳어 버린 거인들의 그림자뿐이었다.
“대체 무슨……!”
지크는 압도당했다.
남대륙의 그 어떤 마법사도…… 아니, 마법사들이 떼지어 모인다고 해도 절대 이뤄 낼 수 없는 이적이었다.
‘그래, 이건…… 마법 따위가 아냐.’
그야말로 천재지변.
그야말로 신의 분노였다.
지크가 이를 악물었다.
그저 악천후인 줄로만 알았건만.
그 위력을 보고 나서야 저 번개 줄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여태 몰랐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신앙의 힘이 노골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이내 지축을 뒤흔들던 새하얀 빛줄기가 멎어 들어갔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조금 전만 해도 굉음으로 가득하던 전장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
천벌이 떨어진 자리엔 새까만 재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붉고 붉던 거인들은 새까맣게 타 버린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줄기차게 울부짖던 포효도, 우악스럽던 몸부림도 더는 없었다.
파스스-
그저 가만히 서 있다 허물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리오 성의 앞터에 수십의 잿더미가 쌓였다.
“호르…… 호르께서 역병을 벌하셨다!”
돌연 누군가가 외쳤다.
고개를 돌린 지크의 눈에 잔뜩 상기된 표정의 모리츠가 보였다.
모리츠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채로 재차 외쳤다.
“이것이 우리의 호르이며, 우리의 소망이다!”
압도적인 광경에 멍한 표정만 짓던 병력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이것이 자신들의 호르고, 소망이라니.
점차 그 면면들에 열기가 서렸다.
“그래. 맞아! 저 역겨운 괴물들을 죄 잡아 족치는 분께서 우리의 신이시다!”
“아아! 호르시여-!”
하늘에서 떨어진 신의 분노는 괴물들에게만 향했다.
높은 곳에 있던 자신들에겐 한 줄기의 번개조차도 닿지 않았다.
모두에게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성의 기세가 들불같이 끓어올랐다.
오르드 성주가 이에 맞춰 병사들을 지휘했다.
“성벽의 괴물들을 처리하라!”
그래, 적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아직 승리의 함성을 지르기엔 일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병사들이 날붙이를 그러쥐었다.
기사들은 용맹한 장군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런 그들의 손에 괴물들이 하나하나 스러져 가기 시작했다.
그때, 거인이었던 잿더미 뒤로 괴물들이 성을 향해 들이닥쳤다.
설령 그 모습이 겁먹은 쥐새끼와 같다고는 해도 위협적이긴 매한가지였다.
“쏴라-!”
잠시 멈췄던 화살 비가 다시 허공을 날았다.
빛나는 포탄과 갖가지 마법이 연신 쏘아져 나갔다.
“뭐 해. 안 갈 거야?”
눈만 끔뻑이며 전장을 바라보던 지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리하르트.”
그가 고개를 돌려 동생을 바라보았다.
언제 모여들었는지, 리하르트의 뒤편으론 성의 정예 기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신의 위용을 보아서일까.
그들의 얼굴엔 흥분이 가득했다.
“형님! 어서 이리 오십시오!”
모리츠가 당장에라도 성벽을 내려갈 듯, 계단 앞에서 지크를 채근했다.
그 누구 하나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누구 하나 용맹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이들은 바텐베르크의 그 누구보다도 용맹한 사내들이었다.
잠시 그들을 살펴보던 지크가 입을 달싹였다.
“……이런 전장은 처음이야. 마음에 들어.”
그 음성에 서린 열기가 무척이나 뜨거웠다.
이내 지크를 비롯한 돌격대가 성벽을 내려갔다.
성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들이 열린 문 사이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돌겨어어억!”
리하르트가 선두에 서서 외쳤다.
템플나이츠와 연합의 기사들이 성가를 제창하며 뒤따랐다.
전장을 빨갛게 메운 역병들이 가까워진다.
다만 놈들의 기세는 진즉에 꺾인 채였다.
신의 분노가 이 전장에 떨어진 이상, 더러운 것들이 활개를 칠 순 없었다.
필사적으로 내뱉는 저들의 괴성 또한 겁먹은 개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호-르으으으!!”
한껏 격양된 돌격대가 신을 부르짖었다.
그 와중, 지크만 홀로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여기서 입을 열었다간, 함께 신을 연호할지도 몰랐으니까.
◈ ◈ ◈
당연히, 전투는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는 정원에 집어 삼켜지는 괴물들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호-르!”
“호오르으으!”
병사들이 하늘을 향해 호르를 부르짖었다.
누구는 성가를 불렀고, 어떤 이는 함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피곤한 와중에도 웃음이 나는 광경이었다.
천벌, 제법 무리해서 사용한 보람이 있었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신앙을 꺼내 보려 했으나, 아무런 빛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후라는 요소에 간섭한 댓가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신앙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이번 대승으로, 역병 녀석들의 침공은 그만큼 뒤처질 테니까.
“흠.”
혹여 또 다른 부작용이 있는지 내면을 관조하려는데, 지크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싱겁게 고개를 저은 그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고, 며칠이 순식간에 흘렀다.
오늘은 마침내 휴거가 타이탄으로 떠나는 날이다.
떠나는 동료를 배웅하기 위해, 성의 인사들이 북문으로 모였다.
모여든 인파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취이익!”
나르 위에 올라탄 ‘내’가 콧소리를 냈다.
……젠장.
“다 좋은데, 꼭 나로 변장시켜야만 했니?”
“오크의 모습으론 대륙을 돌아다니기에 적합하지 못하지요.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려면 성자님의 모습이 가장 좋습니다.”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리자, 타사르가 옆에서 답해 주었다.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라 뭐라 더 할 말도 없었다.
“취익! 가끔은 못생긴 이의 삶을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오!”
엘프의 마법 덕에 나로 변장한 휴거가 헛소리를 해 댔다.
손끝으로 혈관이 삐죽 튀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크한테 못생겼단 소리를 듣다니!
“……빨리 가기나 해.”
다시 말하지만, 오늘은 휴거가 타이탄으로 떠나는 날이다.
분노를 눌러 담고 손을 휘저어 주자 그가 껄껄 웃어 재꼈다.
“그동안 즐거웠소. 내가 왕이 되어 돌아올 때까지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구려.”
“너야말로 무탈하게 다녀오라고!”
“기억할게!”
휴거의 인사에 기사들이 저마다 말을 건넸다.
오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무척 호의적이었다.
오크와 인간.
적어도 휴거와 그들만큼은 다 같은 호르의 신도이자 동료였다.
“췩, 그런데…… 정말 이 친구와 함께 가도 되겠소? 나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한참 인사를 나누던 휴거가 대뜸 내게 물었다.
한쪽 손으로는 저가 올라탄 나르를 가리킨 채였다.
크르릉-
줄곧 나를 항의하듯 바라보던 나르도 울음소리를 흘렸다.
휴거와 동행길에 오른 것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같이 가야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타이탄이라는 멀고 먼 나라에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나르의 축지가 필요했다.
물론 내 소중한 신수를 떠나보내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르. 너도 강해져서 돌아와라.”
타이탄에는 사실 꽤 재밌는 문화가 있다.
그곳이라면 나르도 분명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터였다.
크릉-
나르가 불만스레 울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마지못해 알겠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흐흐. 아주 깜찍한 아기 고양이구려. 함께 부대끼다 보면 금방 친해질 것 같소.”
불쑥, 내 앞에 큼지막한 손이 내밀어졌다.
“…….”
난 그 손을 맞잡았다.
“취익. 다음에 볼 땐 그대와 다시 한번 대련해 보고 싶소.”
휴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까짓 거 백 번이고 해 줄 테니까. 왕이 되기나 하라고.”
“약속이오!”
환히 웃은 휴거는 곧 나르와 함께 떠났다.
휴거가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 갔다.
“……당분간은 허전하겠군요. 그래도 휴거와 있으면 심심한 일은 없었는데.”
내 옆에서 묵묵히 서 있던 아론의 한마디에, 폴크와 잭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바렌 왕성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다.
그곳엔 선교의 임무를 지고 떠났던 트란티스 후작도 함께였다.
“곳곳에 호르교의 빛이 옮겨 붙었습니다.”
그의 말에 왕실 귀족들이 눈을 빛냈다.
“공포에 떨던 백성들은 자신의 소망을 깨달았고, 그것이 곧 호르란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후작이 지난했던 선교의 결과를 줄줄이 읊었다.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보았던 백성들의 절망부터 시작하여, 그 절망이 서서히 걷혀 가던 모습까지 전부.
한참 말을 잇던 후작이 침을 삼켰다.
왕실의 귀족들과 국왕은 그 모습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면면엔 현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빛은 옮겨 붙었으나, 아직은 확고하지 않습니다. 이제 피어오르기 시작했을 뿐이지요. 하여 동부의 하르텐 백작을 비롯한 선교단에게 소임을 전임하여 바렌의 믿음을 공고히 다지기로 하였습니다.”
“하르텐 백작이라…….”
왕실 귀족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하르텐 백작의 자격과 권위를 인정했다.
“그라면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
국왕도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몇 마디 말이 오갔다.
호르교가 바렌 왕국의 국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호르교의 열렬한 신도가 되어 있었다.
트란티스 후작을 통해 접한 소식에 회의장의 분의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이후,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리오 성의 상황은 점점 더 악랄해지고 있다고 한다.”
화두를 꺼낸 것은 국왕이었다.
리오 성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귀족들의 얼굴이 굳었다.
바렌 왕국을 좀먹는 최악의 암운.
폴린 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중이었다.
“리오 성이 무너지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곳의 병력이라면 능히 역병의 근원을…….”
귀족들이 앞다투어 고견을 꺼냈다.
그 양상은 꼭 리오 성의 회의와 다를 게 없었다.
어떤 이는 하루빨리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고, 어떤 이는 근원 뒤에 웅크린 남대륙의 존재를 염려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국왕은 트란티스 후작을 바라보았다.
트란티스 후작 또한 국왕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몸은 늙어 쇠약해졌을지언정, 둘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
선교단이 왕도를 떠나기 전, 후작과 국왕은 한차례 논의를 거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때 수립한 계획을 실행해야 할 때였다.
혹여 더욱 좋은 수가 있지는 않을까, 잠자코 귀족들의 회의를 두고 보았으나, 더 지체하기엔 바렌의 상황이 넉넉하지 못했다.
“우리에겐 동맹국이 있다.”
국왕이 입을 열었다.
뚝-
한참 열띤 토론을 이어 가던 귀족들의 시선이 국왕에게 향했다.
“약조를 어긴 바 있는 우방, 프로트 왕국에게 호르의 빛을 전해 줄 것이다. 이로 하여금 제 부덕의 소치를 깊이 반성시킴과 동시에, 수백 년의 약조를 다시금 상기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