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Episode. 40 율법 (1)
국왕과의 대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성자니임!”
바로 나의 첫 번째 신도, 메리였다.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우는 것일까.
간만에 본 것이기는 하지만, 예상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다.
“사, 살아 계셨군요…….”
“그럼, 살아 있지.”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안도의 눈물을 줄줄 흘려 댔다.
“……메리, 너 왜 그래?”
“저는 성자님이 살아 계실 줄 알았어요! 하, 하지만…….”
메리는 꺽꺽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꿈속에서 성자님이 거인과 싸우시다가 끝내…….”
“끝내?”
“모리츠 공자님 대신에 희생하시는, 그런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
그 말에 잠깐이나마 숨이 턱 막혔다.
한편 메리가 눈가를 훔치곤 일부러 밝은 미소를 보였다.
“헤헤, 죄송합니다. 뵙자마자 추태를 보였네요. 호르의 전도사가 돼서 한낱 꿈 같은 것에 흔들리다니.”
자조하듯 중얼거리는 메리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낱 꿈이라.
전혀 아니다.
그녀가 본 나의 죽음은 정확했다.
‘메리가 예지몽을 꿨다고?’
먼 옛날, 성마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예지몽을 꾸는 이들은 몇몇 있었다.
그들은 예지몽을 신탁이라 여겼고, 이후 속한 집단의 높은 자리에 올랐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성마대전 당시, ‘성녀’라 불리던 여인이었다.
나는 메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 코를 훌쩍이고 있는 메리가 실은 성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니.
“앞으로도 이상한 꿈을 꾸면 나한테 말해. 기도를 올릴 때 꿈의 내용을 밝혀도 좋아.”
“꿈을요……?”
“그래. 뭐든 주의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메리는 내게 알겠다고 말했다.
“……하르텐 백작님이 배려해 주신 덕에 이렇게 왕도로 올 수 있었습니다. 아, 하르텐 백작님은 제가 전도를 맡은 영지의 영주님이신데…….”
일행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입은 쉬지 않았다.
왕도 밖의 영지는 어땠느니, 백성들이 호르교를 얼마나 반기고 있다느니.
자부심 가득한 음성이 한참을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메리가 누군가를 찾듯이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왜?”
“아, 어째선지 휴거 용사님이 안 보여서요. 그분을 위해 선물도 하나 만들었는데.”
“……선물?”
“네. 휴거 용사님은 오크라 그런지 항상 머리가 산발이시잖아요.”
곧 그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노란 꽃 장식이 달린 머리핀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소검궁의 정원에 피는 꽃이다.
“꽃이라, 아무래도 휴거 같은 마초가 쓰기엔…….”
“예전에 기드 님이 귀띔해 주셨는데, 휴거 용사님은 글로리아를 좋아하신다고 하셨어요!”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라며, 메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놈이 왕관으로 삼기엔 제격이겠네. 그놈은 대업을 위해 잠시 떠났으니, 돌아올 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어.”
나도 씨익 웃어 주었다.
머리핀이 뭐가 문제랴.
휴거에게 메리의 선물은 세상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할 것이다.
◈ ◈ ◈
간만에 템플나이츠를 만나 해후를 푸는 메리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덜그럭…….
무엇인가가 열심히 움직이다 다급히 멈추는 소리였다.
안 봐도 뻔할 뻔 자다.
나는 짐 속에서 목함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본데…….”
시야에 넣자니 거슬리고, 눈 밖에 두자니 찝찝하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두어 놓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결국 나는 목함을 묶은 덩굴을 풀었다.
“야. 나와.”
백귀를 꺼내 쥐고 칼고스를 불러 보았다.
하나 놈은 언제 난동을 부렸냐는 듯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그저 새하얀 검면에 내 얼굴만이 비춰질 뿐이었다.
“이게 진짜.”
칼고스는 사람 약 올리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가증스럽게, 이번엔 얌전한 척을 하는 거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를 약 올리는 작태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목이 잘리고서도 터럭만큼의 참회조차 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칼고스는 검에 갇힌 채로,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놈은 지옥의 밑바닥에 처박혀 영원히 속죄하는 게 더 어울렸다.
죽어서 속 편히 지내는 모습을 보자니 배알이 뒤틀렸다.
“……빌어먹을.”
마계.
내가 만든 첫 번째 세계.
그곳은 창조주인 내 의지와는 달리, 태초부터 부정(不正)했다.
천지를 창조했더니 붉은 하늘과 검은 땅이 생겨났다.
생명을 창조했더니 악마가 탄생했다.
‘빛으로 빚었으나 그림자가 되어 버린 존재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이 세상이다.
한데 이놈들이 이 세상을 넘보더니, 저들을 버린 신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또 저희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고 계십니까?』
가래 끓는 음성이 내 상념을 깼다.
어느샌가 백귀의 검신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칼고스가 검신에 눈알을 바짝 들이밀었다.
『저희는 태어난 것조차 죄란 말입니까?』
놈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부릅뜨여진 눈알에 살기와 울분이 맺혔다.
『그렇다면.』
『아버지 또한 저희를 창조한 죄가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놈은 다시 사라졌다.
◈ ◈ ◈
이틀 뒤, 연회가 열렸다.
나와 일행들 또한 격식 있는 옷을 갖춰 입곤 연회장으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음악.
호화로운 만찬.
그 속에서 저마다 기품 있는 몸짓과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귀족들이 보였다.
“으음…….”
내 일행들, 특히 템플나이츠의 일원들은 곧 죽상이 되었다.
나름 태연함을 가장하며 와인을 홀짝이고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막 상경한 시골뜨기 청년과 다를 바 없었다.
“바텐가에선 이런 연회가 없으니까.”
멀끔하게 머리를 빗어 올린 지크가 킬킬 웃으며 속닥였다.
기사들이 이런 귀족 연회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란다.
“우리한테 시선이 너무 쏠리고 있기도 하고.”
나는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귀족들의 시선이 너무 뜨거웠다.
일생일대의 은인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
사방에서 날아오는지라 피하고 싶어도 피할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 자리의 주인공들께서 왜 그리 얼어 계십니까? 자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오늘은 무척 기쁜 날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한가득이거든요!”
요르크 백작을 비롯한 타 귀족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일부러 친근한 말투로 템플나이츠의 어색한 기류를 풀어 주었다.
과연 문관답다고 해야 할지.
탁월한 처세술이었다.
곧 일행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을 즈음, 국왕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위엄 있는 발걸음으로 단상에 올라 연회장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얻었다.”
언제부터 음악이 멈추었을까.
연회장엔 왕의 음성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잃은 것은 가슴 속에 품고, 얻은 것은 이웃과 나눌 것이다.”
그가 늙은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툭툭-
귀족들도 왕을 따라 하며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호르의 성자여, 바렌의 영웅들이여.”
귀족들이 길을 터 줬다.
우리는 탁 트인 길을 걸어 왕 앞에 당도했다.
“일전에, 리하르트 공은 세계 평화를 바란다고 하였지.”
“그렇습니다.”
“호르의 교국(敎國), 바렌 또한 세계 평화에 앞장서겠소. 우리가 함께 할 자리를 내주시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특히 이런 자리에서 공언할 때엔 더더욱.
“……기꺼운 마음으로 그리하겠습니다.”
국왕은 나를 한참 바라보다 왕좌에 앉았다.
잠시 멈췄던 악기가 다시금 소리를 냈다.
나는 말을 걸어오는 귀족들을 피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눈에 보이는 이들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그들은 국왕의 발언에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이야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이 순간부터, 바렌의 소망은 세계 평화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귀족들도 나름의 야망이 있는 인간이다.
소망이 곧 호르다.
……라는 믿음 하에 무슨 짓이든 마다치 않을 자가 있기도 할 터.
그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고통받는 건 바렌과 백성들이었다.
고개를 돌려 바렌티스 국왕을 바라보았다.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물었었지.’
난 아직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답은 하늘이 내려 줄 것이다.
선과 악의 구분뿐만이 아니라, 호르를 믿는 자로서 취해야 할 모든 행동 양식을 말이다.
◈ ◈ ◈
난쟁이들은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였다.
저마다 등에 맨 봇짐은 그들의 몸보다도 컸다.
“족장! 진짜로 다 가도 괜찮겠어?”
“마을을 지킬 놈은 남겨야 할 것 아냐!”
부족원들의 아우성에 앞서 나가던 후르큼이 미간을 찌푸렸다.
“닥치고 걷기나 해! 어서 바렌 왕국으로 간다!”
그들은 휴거로부터 바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확히는 호르교와 등불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잰걸음을 옮기는 족장을 바라보며, 다른 난쟁이들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인간, 도끼 값은 할까? 비실비실해 보여서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 것 같은데.”
“알아서 하겠지. 그보다는 놈이 알려준 정보가 너무 못미더워. 등불이 빛을 전해 주는 나라라니. 무슨 생뚱맞은 소리…… 억!”
쿵!
수다를 떨며 한눈을 팔던 드워프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어느새 후르큼이 그의 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이 바보들!”
그는 다짜고짜 노호성을 터트렸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하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조, 족장? 갑자기 왜 그래?”
“너희들, 우리 부족의 전설을 잊은 게냐!”
후르큼이 봇짐을 뒤적거렸다.
곧 짤막한 손에 잔뜩 녹슨 검이 딸려 나왔다.
“우리의 선조가 만들었다는 명검 중의 명검의 전설을!”
명검 중의 명검이라는 이름치고는 너무나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 검을 바라본 난쟁이들은 짜게 식은 눈빛을 보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리고 그건 ‘죽은 무구’야. 그냥 녹여 버리자니까?”
“족장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전설 타령을 하더니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나.”
씨익- 씨익-
후르큼은 시큰둥한 부족원들의 반응에 숨을 몰아쉬었다.
손으로는 낡은 검을 꽉 잡아 쥐었다.
“이놈들아! 전설을 기억하고는 있는 거냐!”
하얀 모루 부족의 선조가 빛으로 제련했다는 전설의 검.
이제는 다른 부족한테도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 취급을 받지만, 후르큼만큼은 그 전설을 믿었다.
“저번의 인간 놈이 말하기를, 찬란한 빛을 다루는 인간이 바렌 왕국에 있다고 했다. 이건 우리 대에서 다시 한번 전설을 실현시킬 기회야!”
그것은 대장장이로서 일생일대의 꿈과도 같았다.
만드는 족족 훌륭한 무구를 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드워프였으나,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명품(名品)은 드물었다.
하물며 자신이 만든 검이 전설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인간 놈이 말한 빛이 정말 그 전설 속의 빛이라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우리는 그곳에서 최강의 검을 만들게 될 거다!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