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Episode. 42 남대륙으로 (2)
『……흐흐.』
칼고스가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용사라는 녀석이 제가 섬기는 신도 몰라보는 작태가 퍽 우스웠다.
심지어 알버트는 마족들의 아버지가 호르란 것조차 알지 못했다.
언제나 말로만 호르의 명을 받았다며, 신에게 선택받은 척이나 하기 바쁜 족속들.
그게 바로 호르의 용사들이었고, 칼고스는 그들이 무척 싫었다.
그래서 알버트의 의문을 제대로 풀어 주지 않았다.
『내가 답해 줄 이유는 없다.』
그는 알버트가 이대로 쭉 리하르트를 제 후배로 취급하길 바랐다.
훗날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이 찌질한 용사가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무척 궁금했으니.
◈ ◈ ◈
남대륙은 기사들에겐 무척 위험한 땅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여 폭격을 당할지도 몰랐다.
가장 중요한건 은밀함.
때문에 소수 정예를 꾸려야만 했다.
“아론, 기드, 모리츠, 아델, 너희는 나와 함께 간다.”
나는 내 사람들을 불러모으곤, 목적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아론과 모리츠의 얼굴이 특히 가관이었다.
“나, 남대륙은 갑자기 왜 가십니까?”
“미쳤어!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얼빠진 듯 서 있던 두 남정네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난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기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멋들어진 콧수염 끝을 만지작거릴 뿐, 의외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씨익.
오히려 내게 든든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키야, 많이 변했네.
흡족함에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우린 전쟁을 막으러 가는 거야.”
“예?”
“마르크스의 가주가 어둠에 물든 모양이야. 남쪽의 성자만으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터. 우리가 가서 어떻게든 그를 막아야 해.”
변절해 버린 바펠 마르크스.
그를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앨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우린 바펠을 죽이는 것을 상정해야 했다.
그 하나를 죽이지 못하면 전쟁이 벌어질 테니까.
공기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아론과 모리츠는 아예 소리 없는 아우성을 토해 내는 중이었다.
“마, 마르크스의 가주라면…….”
“뇌제, 그자가 마인이 되었다는 말이야?”
“마인은 아니고. 이단이 되었다는 게 좀 더 정확하겠지.”
마인과 이단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몸과 마음이 마기에 먹혀, 한낱 마수 따위가 된 것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후자는 인간이되 어둠을 섬기는 신도에 가까웠다.
그 악랄함은 마인 같은 것과는 비교를 불허할 것이 뻔하다.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지금 말해.”
이때만큼은 방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턱 빠진 듯 입만 벌리고 있던 모리츠도 어느새 굳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국왕을 찾았다.
연설 이후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활짝 핀 채였다.
“허허, 리하르트 공.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잠시 떠나야할 것 같습니다.”
“……어디로 말이오?”
“남대륙 측에서 전란의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호르교가 막아야지요.”
허어-, 국왕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안색 좋아 보이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우려 가득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참으로 위험할 것이오. 남대륙은 그대에게 그리 친절한 땅이 아니오.”
“제가 걸어온 길 중에 위험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대를 돕겠소. 무엇이 필요하오?”
그는 내가 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줄 것처럼 이야기했다.
왕좌의 등받이에서 몸을 뗀 모습이, 함께 남대륙에 가자고하면 냉큼 짐을 챙길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국왕 폐하께서도 알다시피, 왕도 이북에 드워프들의 대장간이 자리를 잡았지요.”
“그렇소. 이로써 바렌은 날개를 단 것과 같소.”
이제 보니 국왕의 표정이 좋았던 이유는 드워프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모셔가지 못해 안달인 드워프들이 아예 바렌의 왕도 근처에 못을 박았으니 기쁠 만도 했다.
“그들이 호르의 신도가 될 수 있도록 잘 전도해 주십시오.”
국왕이 가슴을 두드렸다.
“맡겨 주시오.”
짧은 대답이었으나,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나는 왕과의 독대를 끝내기 전, 좋은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프로트 왕국에선 귀족 몇을 추려 트란티스 후작의 전도를 받도록 추진하고 있더군요.”
◈ ◈ ◈
나와 남대륙행의 일행은 말을 타고 달렸다.
첫 목적지는 하얀 모루 부족의 대장간이었다.
까앙, 까아앙-!
명장들의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대한 건물.
허리춤의 절반도 안 되는 문을 여니, 후르큼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인간! 벌써 자재 준비가 끝난 건가?”
“아니,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 들렀다.”
“뭐!”
짧고 투박한 손이 내 옷깃을 그러쥐었다.
이게 뭔 짓인가 싶어, 후르큼을 바라보았다.
어째선지 그는 절박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언제 돌아오는가?”
“꽤 오래 걸릴 거야.”
“그럼 안 돼! 빛이 필요할 때 공급받을 수가 없지 않나!”
눈을 가늘게 뜨고 생떼를 부리는 난쟁이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언제 공급해 준다고 했나? 이쪽은 이미 거래를 이행한 것 같은데.”
“큼큼, 그러니까…… 우린 거래를 좀 더 길게 이어 가고 싶을 뿐이네. 그대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들 몸값이나 높이려고 할 땐 언제고.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후르큼이 빼액 외쳤다.
“우리의 작품이 훌륭해지면 자네들도 이득을 보지 않겠나. 상부상조 하자는 걸세!”
“흐음.”
“근사한 건물!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것도 빛을 담아 지어 올리는 게 훨씬 나을 터인데.”
드워프는 기본적으로 대장장이다.
하지만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 또한 특출 난 편이다.
그들에겐, 어디서든 쓰일 수 있는 빛의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소리였다.
“그럼 기도해.”
“뭐?”
“기도하면 호르께서 빛을 내려 주실거야.”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인간.”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손을 저었다.
어차피 전도는 바렌 측에서 전담하기로 했으니, 우린 어서 볼일을 끝내고 떠날 생각이었다.
한참 떼를 쓰던 후르큼이 한숨과 함께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창 두 자루와 단도 하나도 함께였다.
“오, 오옷!”
“아름다운 자태로군…….”
“이것이 내 새로운 무구인가!”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세 남정네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잔뜩 고무된 세 쌍의 시선이 저마다 무구를 훑기 바빴다.
“흥. 이번에 만든 ‘좋은 무구’ 중에서도 엄선된 것들이다.”
후르큼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빛으로 제련한 ‘좋은 무구’는 기사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신경써 줘서 고맙군. 그럼 다음에 보지.”
우린 대장간을 뒤로 하고 말 위에 올라탔다.
◈ ◈ ◈
“성자님!”
“기별도 없이……! 혹, 저희를 보러 오신 겁니까?”
말을 타고 며칠을 내리 달리니, 어느새 리오 성에 당도했다.
성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해 준 기사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아니, 너희 보러온 건 아닌데.”
“아닌 척하지 마십시오!”
“보고 싶었습니다, 성자님!”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내게 호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본 리오 성의 사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사내들 사이로 엘프들을 찾았다.
이번 남대륙행엔 타사르와 엘프 두셋도 추가시킬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타사르는 역시나 담백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이게 다, 내 품에서 볼을 비비적거리는 아델의 인복이었다.
“리오 성은 여전하네.”
엘프들이 떠날 채비를 갖추는 동안, 우리는 리오 성을 돌아보았다.
마법사들의 공격을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지원군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성은 딱히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성자님, 그래서 어디로 향하실 예정입니까?”
성주와 수뇌부가 다가와 물었다.
“남대륙입니다.”
당연하게도 내 대답은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기세를 일으켜 그들을 진정시키곤, 경고의 말을 내뱉었다.
“경계를 느슨히 하지 마십시오. 머지않아 마법사들이 공격해 올지도 모릅니다.”
일이 잘못되어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공격 받을 곳이 바로 리오 성이다.
메리가 꾼 예지몽의 배경도 이곳이었다.
“……알겠습니다. 성은 걱정 마시고 부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성주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기사와 병사들도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곧, 채비를 갖춘 타사르와 엘프 둘을 대동한 우리는 성의 남문을 빠져나왔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채 사라지지 않은 마기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 더러운 것들을 신앙으로 헤치며 쭉쭉 달려 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폴린 성의 잔해까지 당도했다.
“그 거인 놈, 진짜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모리츠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분명 칼고스가 몸을 뉘였던 자리였다.
‘하…… 내 무구들.’
거인이 누워 움푹 패인 땅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드래곤 투스도, 얼음 왕관과 서리망토도 없었다.
그게 못내 속이 쓰렸다.
내 입안에 칼고스가 있다 생각하며 이를 박박 갈 때였다.
『꺼-억.』
드러운 트림 소리가 골을 강타했다.
“이 개자식이!”
당장에 ‘악연’을 집어던지려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이게 어떻게 만든 검인데.
“후…… 출발하지.”
꿀꺽, 망토를 눌러쓴 모리츠가 침을 크게 삼켰다.
폴린 성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마법사들의 땅이다.
바텐베르크에서 나고 자란 그에겐 적진으로 향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다만 그는 적진을 앞에 두고 물러설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래, 동생아. 이제 가자……!”
“친한 척 동생아라고 부르지 마. 우엑.”
“너무하네, 정말!”
모리츠가 방방 뛰며 성을 냈다.
그 모습에 긴장은 더 이상 없었으니, 실없는 장난이 통한 것 같았다.
‘자…… 드디어 남대륙을 밟아 보는구나.’
난 폴린 성 아래로 펼쳐진 땅을 바라보았다.
마법사들의 땅, 남대륙.
조금의 위기감과 자그마한 흥분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남대륙엔 그 아티팩트가 있다.
지금까지는 손가락만 빨며 지켜봐야 했던, 고대의 ‘인공 심장’이 말이다.
‘루드비히…… 그 아저씨가 알면 난리를 치겠지만, 이젠 내 알바 아니잖아?’
호적에서 파인 마당에 거리낄 것도 없다.
나는, 인공의 심장을 이용해 마법을 부릴 생각이었다.
‘마법 스승은 누구로 하면 좋으려나.’
머릿속에 많은 후보자가 스쳐지나갔다.
타사르와 엘프들.
그도 아니면 남쪽의 성자, 앨런 마르크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선택지는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