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Episode. 44 호르가 보우하사 (1)
다음 날, 나와 앨런은 다시 한번 알리사를 찾았다.
마르크스와 관여하고 싶지 않다던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았다. 너희가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는 데엔 필시 이유가 있을 터. 가주와 이야기를 나눠 보겠다.”
그녀는 초연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 날 알리사와 마르크스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였으니, 본가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망설여질 터였다.
‘그리고…… 알리사의 생각보다 더 위험하지.’
바펠 마르크스.
나는 그에게서 마왕이 개입한 흔적을 발견했다.
알리사라는 귀중한 전력을 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누님.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앨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진득한 우려가 묻어나오는 시선에 알리사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가라고 가라고 등 떠밀어 놓고선, 이제와 걱정해 주는 것이더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누님 혼자 보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본가가 누님께 호의를 보일 리가 없을 테니까요.”
차기 가주 자리를 포기한 것부터, 라플라스를 마르크스로부터 독립시킨 것까지.
알리사의 행보는 가문의 가주와 원로들에게 밉보이기 딱 좋은 것이었다.
‘게다가 앨런을 제외한 형제들은 전부 바펠에게 동조하고 있다. 한참 날이 서 있을 시기야.’
나는 앨런이 그녀와 함께 가는 것에 찬성했다.
“손님을 홀로 두고 자리를 비운다니, 그럴 순 없는 일이란다.”
“그렇다고 제가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내가 마르크스의 성채로 갔다간 온몸이 원자 단위로 분해될 게 뻔했다.
온몸에 기름을 쏟아붓곤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격이었다.
다만 알리사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마법 왕국의 왕성에 바텐베르크의 피붙이를 두고 가는 건, 이쪽의 상식으론 기상천외한 행동이었으니까.
“혹여 정 신경이 쓰이신다면, 저는 라플라스 왕국 바깥에서 지내고 있겠습니다. 본가의 일이 끝난 후 다시 뵙는 걸로 하지요.”
“흐음…….”
그녀가 콧소리를 내며 턱을 괴었다.
눈을 가린 검은 천이 살짝 구겨지는 것이, 아무래도 제법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똥강아지의 하나뿐인 친구를 그리 푸대접하면 쓰나. 그리고 내 눈은 꽤나 정확한 편이란다. 서로 불편할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너만 괜찮다면 왕성에서 지내고 있어도 된다.”
◈ ◈ ◈
알리사와 앨런은 본가로 향할 준비를 빠르게 끝마쳤다.
애당초 잠시 들리는 것뿐이니 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삐이이익-!
나는 ‘우는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알리사에게 다가갔다.
“잠시 손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음?”
고개를 갸웃한 알리사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고운 손을 내려보다가 반지 하나를 끼워 주었다.
“어머.”
10의 신앙이 담겨 있는, 장식 하나 없는 심플한 반지.
입을 살짝 벌린 채 반지를 더듬거린 알리사가 기분 좋게 웃음을 흘렸다.
“내게 청혼이라도 하는 것이냐? 이런, 왼손을 내밀 걸 그랬나.”
알리사는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건네는데, 뒤쪽에 서 있던 앨런의 눈에선 레이저라도 쏘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바보 같긴.
……내가 정말로 청혼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 반지를 빼지 말아 주십시오.”
“후후. 알았단다. 남자아이에게 반지를 받는 건 처음이구나.”
알리사도 앨런의 반응이 재밌는지 연신 장난을 쳤다.
이내 두 사람은 ‘우는 새’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갔다.
‘라플라스의 눈이라면 마왕의 흔적이 보일 거야.’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의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웬만한 이라면 정신을 잃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바펠과 같이 이단으로 빠져 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에게 준 반지는 하나의 보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벌써 점처럼 멀어진 두 사람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내 옆엔 웬 늙은 노인 하나가 찰싹 들러붙은 채였다.
“귀빈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리사가 내게 붙여 준 집사장, 파이란 홀이라는 자였다.
‘선뜻 왕성에 지내게 해 주면서, 이 노인을 나한테 붙여줬단 말이지. 역시 쉽지 않아.’
파이란 홀.
그는 라플라스 왕성의 집사장인 동시에 마르크스 가문의 제1마법단장직을 역임했던 사내다.
그런 대단하신 마법사가 내 옆에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니, 실실 웃음이 났다.
“……무엇이 그리 기쁘십니까?”
그런 내 모습이 오해를 산 것일까.
파이란이 경계 어린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온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파이란 경의 보좌를 받는 바텐베르크라니. 이처럼 진귀한 경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파이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땐, 귀빈실에 당도하고 난 후였다.
“차라도 한 잔 내오겠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음, 말동무가 필요합니다만. 파이란 경께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
속내를 알 수 없는 시선이 나를 훑었다.
이내 그가 휙 몸을 돌려 귀빈실을 나섰다.
나는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 시선을 옮겼다.
누가 남대륙 아니랄까 봐, 귀빈실의 책장엔 온갖 마법 서적들이 가득했다.
“어디 보자…….”
기초 마법서부터 심화 마법까지.
웬만큼 필요한 책은 전부 구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써클, 마법진과 수식, 4대 원소, 발현.』
그 중 꽤나 심플한 이름의 서적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뽑아들곤 느긋하게 읽고 있으니, 파이란이 찻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마법에 흥미라도 있으신 겁니까?”
“예. 마법처럼 신비롭고 대단한 힘은 또 없지 않습니까.”
“…….”
분명 그에게 말동무를 부탁했건만, 파이란은 말을 주고받는 상대로서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조용히 차만 홀짝이는 그를 내버려 두고 다시금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법은 크게 세 가지로 완성된다. 첫 번째는 마나. 써클로 시전자의 마나와 자연의 마나를 공명시켜, 두 번째 단계인 마법진을 엮는다. 세 번째 단계인 수식은 각각의 마법마다 다르며, 마법진 위에 올바른 수식을 덧씌우는 것으로 마법은 완성된다. 숙련된 마법사의 기준은 마법진과 수식의 동시 발현 가능 여부로 판단…….』
사락.
책장이 빠르게 넘겨졌다.
내 눈은 종이를 빽빽하게 채운 글자들을 쫓았다.
그렇게 한참 책을 탐독하고 있는데, 기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확실히 진귀한 경우긴 하군요. 마법에 깊은 관심을 갖는 바텐베르크라…….”
“안 될 것도 없지요. 마법사들도 기사란 존재에 꽤나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애당초 마갑병이라는 것도 기사를 본따 제작된 것이니.”
파이란이 긍정을 표했다.
그리곤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어찌하여 인간의 심장이 두 종류로 나뉜 건지…….”
탁.
읽던 책을 덮곤 그를 바라보았다.
“차이는 다툼을, 차별은 악의를 불러옵니다. 기사와 마법사는 심장의 차이로 인해 다퉜지요. 그 다툼이 결국 차별로 번져 북대륙과 남대륙으로 찢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야 말문이 트인 듯, 파이란은 덤덤히 말을 이어 나갔다.
“리하르트 공자님께선 전쟁을 막고자 이곳까지 오셨다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노인네는 아직 공자님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제 마나는 은밀하게 흐르고 있죠. 언제든 마법을 엮을 수 있도록.”
이것 봐라.
이제 보니 말문이 트인 파이란은 제법 좋은 말동무였다.
나는 짐짓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시군요.”
“죄송합니다. 결례를 용서하시길.”
“……파이란 경.”
“예.”
“경의 말씀대로라면 기사와 마법사가 앙숙이 된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넘볼 수 없기 때문이란 겁니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꽤 흥미로운 견해다.
나는 찻잔이 놓인 테이블 위로 손을 펼쳤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명확한 구심점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겠군요.”
“……?”
의문이 떠오른 노인의 눈은 곧,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키이잉-
내 손 위에 떠오른 고리 하나.
광휘를 휘감은 그것이 거칠게 회전했다.
“그, 그건 설마……!”
숨넘어갈 듯한 음성을 들으며, 나는 집중을 거듭했다.
‘내 신성력과 자연의 마력을 공명시킨다.’
고리의 회전이 빨라졌다.
귀빈실 내의 마나가 고리 안으로 흡수되어 갔다.
여기까지는 쉬운 일.
‘마법진을 먼저 엮어야 한다 했지. 가장 기본적인 마법진이 분명…….’
방금 전 책에서 보았던 그림을 떠올렸다.
키이이잉-
고리의 전방에 동그란 원이 하나 나타났다.
빛줄기가 그 안에 오망성을 그려 냈다.
1서클부터 3서클까지의 기본이 되는, 기초 마법진이었다.
“이 마법진 위에 수식을 덧씌우면 해당되는 마법이 발현된다고 하지요?”
눈을 찢어져라 뜬 노인은 말이 없었다.
파이란 홀.
알리사에게 마법을 배우기 전까지, 내 기초를 닦아 줄 상대로서 부족함이 없는 마법사.
“조금만 도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파이란 경.”
나는 빙긋 웃었다.
◈ ◈ ◈
마르크스의 피붙이들이 본가의 홀에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건만, 어째선지 홀을 휘감은 공기는 흉흉하기만 했다.
“하, 진짜로 왔잖아?”
“여기가 어디라고……!”
사나운 기세가 홀 중앙의 한 여인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오롯이 선 채로, 그 모든 것을 덤덤히 감내하고 있었다.
스윽.
그런 알리사의 손을 앨런이 꼬옥 붙잡아 주었다.
“후후. 막내야, 그리 걱정할 것 없단다.”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누님의 손을 잡지 않으면, 제가 형님들을 공격할 것 같아서 잡은 것뿐입니다.”
넓은 홀은 앨런의 음성을 훌륭하게 증폭시켰다.
당돌한 막내의 발언에 두 사내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건방진 것. 감히 가주의 뜻에 반대를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여자까지 데려온 거냐.”
장남이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앨런과 알리사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앞을 지나쳤다.
네놈 따윈 관심도 없다는, 명백하기 짝이 없는 태도.
“아우들아.”
홀의 계단을 오르던 알리사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너무 이빨을 보이지 말거라. 내 비록 눈을 잃었을지언정, 모든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고고한 마력이 주변의 공기를 모조리 밀어냈다.
“자, 가자꾸나. 막내야.”
그녀는 다시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천에 가려진 눈가가 무척 따가웠다.
‘확실히 무언가 좋지 못한 것이 있구나. 그것도 온 집안에.’
직감이라 해야 할까.
알리사의 심장이 경종을 울려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