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Episode. 45 빛을 빛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아 (1)
연합의 일원이 갑작스런 불길에 한줌 재가 되었을 적에,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저들이 죽어야 하는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 어떤 죄를 지었다고 즉결처형을 당해야 했는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저들이 모시는 도련님, 앨런을 막지 못해 방관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아.
그들은 먹혀 가고 있던 것이구나.
이 어둠에.
끄르륵-
어둠은 마법사들의 몸을 빠르게 좀먹었다.
변하지 말자고.
우리만은 미치지 말자고.
그렇게 마음에 두터운 벽을 둘러도, 다만 어둠은 더욱 집요하게 육신을 탐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몸으로나마 이곳에 당도했다.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기 위해 마르크스를 떠났으나, 이곳까지 향하는 짧은 길목에서 그들은 체념을 주워 담았다.
왕성 앞은 어느샌가 자결의 장으로 변모했다.
“죽여 주십시오. 도련님.”
로안과 마법사들이 앨런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뇌리 속엔 이단을 불태우던 도련님의 모습이 박혀 있었다.
“죽여 주십시오. 저희는 미치고 싶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람이고 싶습니다. 부디 더 늦기 전에.”
반절의 몸이 어둡게 저문 이상, 되돌아갈 방법은 없으리라.
오직 두 갈래길이 있을 뿐.
미치광이가 되어 마르크스의 광기에 편승하거나, 최소한 정상일 적에 눈을 감거나.
마법사들은 후자를 택했다.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앨런의 푸른 머리칼이 하이얀 불길 속에서 춤을 췄다.
“죽음을 원하는 것이더냐.”
그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것으로 너희는 족하더냐.”
성화를 휘감은 앨런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그저 묻기만 했다.
피난에 올랐던 마법사들은 이마를 땅에 찧었다.
그 온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살고 싶습니다. 저희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한데 왜 죽여 달라 하는가.”
“그보다도, 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진짜 빛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로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앨런과 리하르트를 양껏 담은 그 눈은 절박했다.
“그 끔찍한 어둠을 갈구하느니 차라리 빛 속에서 죽겠습니다.”
붉은 역병 거인, 칼고스.
놈의 마기는 지독스러웠다.
그런 존재와 격전을 치른 마법사들에게, 마기란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오히려 저물어 갈수록 빛이 떠올랐다.
어두울 때에야 광채가 도드라지듯이.
“훌륭하다. 로안. 가문의 마법사들이여.”
앨런이 웃었다.
그를 오랫동안 보필해 온 로안으로서도, 몇 번 본 적 없는 흡족한 웃음이었다.
화르륵-!
불길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 사나운 불꽃이 입을 벌렸다.
인간과 마인의 경계선에 위치한 마법사들은 겸허히 눈을 감았다.
“어……?”
그런데 뜨겁지 않았다.
하얗게 타오르는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어디선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어둠을 불사르는 성화(聖火)의 힘.
하얀 불에 둘러싸인 그들의 표정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몸은 마기에 먹혀 갈지언정, 너희는 마음만큼은 지켜 냈다. 어둠을 벗고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 살아서 어둠에 먹힌 자들을 심판하라. 심판하여 어둠을 종식시켜라.”
불의 장벽 너머로 도련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 아아…….”
성화의 열기가 따뜻했다.
로안과 마법사들은 불길 속에서 몸을 떨었다.
모르고 있었는데, 여지껏 추웠나 보다.
육신을 갉아먹던 어둠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불에 닿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고맙다. ‘저항자’들아.”
그 순간 성스러운 음성이 울렸다.
리하르트, 그가 불길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여기까지 와 주어서, 버텨 주어서 고맙다.”
성화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불길이 크게 일렁였다.
몸을 꼬며, 비틀거리다, 어느 순간 왈칵 치솟았다.
성화가 리하르트의 신격을 반기고 있었다.
“빛을 빛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아. 잘 찾아왔다. 삿된 옷은 벗고 빛을 걸쳐라.”
불이 저 하늘의 결계에 닿을 만큼 솟아올랐다.
그 속에서, 어둠은 단 한 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상에서 가장 하얀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엔 살색을 되찾은 마법사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을음 하나 없는 그 모습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
경계에 경계를 거듭하던 왕실의 일원들이 말을 아꼈다.
믿음.
리하르트와 앨런이 주장하던 힘의 편린을 이제야 목도했다.
그리고 변절해 가는 자의 처참함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들의 면면에 숨기지 못한 묘한 기색이 가물거렸다.
◈ ◈ ◈
마르크스의 마법사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하루가 지난 저녁이었다.
왕실은 다시금 회의를 소집했다.
“마르크스는 라플라스를 철저히 짓밟으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에 전령을 보내 이 나라와의 교류를 중단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끌려 나온 로안은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상세히 올렸다.
기적을 겪은 마당에 정신 하나 없었어도, 마르크스의 정황을 보고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마르크스 가주께선 라플라스를 무너트림과 동시에 북대륙에 전쟁을 선포할 것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또, 가문의 가신들이 어둠을 섬기도록 부추겼습니다. 어둠을 빛이라 칭하며 신을 칭송했습니다.”
로안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까맣게 덧칠된 마르크스, 그 한가운데 울려 퍼지던 바펠의 외침이 생생했다.
마르크스가 완전히 어둠에 저물게 된다면.
다음은 그 주변 국가가.
그 다음은, 그리고 끝끝내는…….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의 마르크스는 변질되었습니다!”
마법의 끝에 서겠노라는 신념을 가진 가문은 없었다.
마법보다 어둠을, 신념보다 광기를 따랐다.
“시체를 산 자로, 산 자를 시체로 보는 언데드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의 광기가 온 대륙에 퍼진다면……! 그때는 미친 자들의 세상이 될 겁니다!”
절절한 음성에 장내의 일원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산증인이었다.
지금 절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로안이 바로 산증인이었다.
“…….”
왕실 마법사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정면으로.
또 정면에서 왼쪽으로.
바쁘게 주고받던 시선들이 어느 순간 한 곳에 쏠렸다.
왕좌에 앉은 여인에게로.
그 시선들의 뜻은 모두 하나로 귀결되었다.
“리하르트여.”
왕이 입을 열었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라플라스 왕국은 호르교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이며, 통찰할 것이다. 부디 호르교가 섬기는 존재의 은혜를 나누어 다오.”
왕은 신하들의 뜻을 대변했다.
신하들은 왕의 입을 빌려 뜻을 밝혔다.
당연하게도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믿음과 신뢰, 신앙이란 본디 많은 것을 바꾸기 마련이다.
왕이 눈을 포기하면서까지 보듬었던 왕국은 오늘부로 크게 바뀌고 말 터.
그리고 라플라스는, 대륙은 바뀌어야만 했다.
라플라스의 왕과 마법사들은 그 흐름의 물결에 기꺼이 앞장서고자 했다.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씨익.
리하르트가 웃었다.
기꺼움이 뚝뚝 묻어 나는 웃음이었다.
그날, 라플라스의 왕성에 또 하나의 깃대가 꽂혔다.
◈ ◈ ◈
왕국의 분위기는 바른 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왕도의 시민들은 보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국왕을.
귀에는 온갖 흉흉한 말소리들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시민들은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을 입을 통해 내뱉고 말았다.
[마르크스 가문이 라플라스를 적대시한다.] [벌써 그들의 군대가 목전에 당도했다더라.] [남대륙이 라플라스를 버렸다.]하늘 아래 마기를 막아 주던 결계도 흉한 소문은 막아 주지 못한다.
하물며 그것이 한낱 소문으로 그치지 않았음에야.
쿵. 쿵.
왕실의 상징을 새겨 넣은 마갑병 수백 기가 외벽 밑에 늘어섰다.
잘난 마법사들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각 영지를 다스리던 귀족들이 왕도를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만 그들 중에 다시금 왕도를 나간 이는 없었다.
전쟁 준비.
마르크스와의 전쟁.
어쩌면 남대륙과의 전쟁.
악소문만 무성하니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러다 어느 날, 국왕의 음성이 왕도를 울렸다.
[우리, 라플라스가 전쟁을 준비하노라.]그녀는 왕성에서 시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성 증폭 마도구가 우웅, 떨었다.
[우리의 적은 백해무익한 이단이다.] [그들은 명분을 잃었으매 남대륙을 지배할 자격이 없고, 그 눈엔 어두운 장막이 드리웠나니.] [이제 이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구분되어질 것이리라.]마도구는 왕도뿐만 아니라 라플라스 전역에 왕의 선포를 전했다.
[라플라스의 백성들이여.] [이단이 두려워 스스로의 눈에 장막을 치지 마라.] [이단을 상대하기 위해 라플라스는 기꺼이 빛을 섬기겠다.]펄럭.
왕성의 성벽에서 수많은 깃대가 솟았다.
모두가 라플라스 왕국에 속한 가문의 깃발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호르교의 휘장이 휘날렸다.
시민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소한 깃.
생소한 빛.
생소한 단어, 이단.
어느 하나 갑자기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많았다.
[라플라스의 국왕, 알리사 마르크스가 백성들에게 약조하겠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똑똑히 보아라.]어린 꼬마 하나가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우중충하던 하늘.
그것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어!”
거무죽죽한 구름 사이로 빛 한줄기가 내리쬐었다.
햇볕을 좋아하는 꼬마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그러자 빛줄기가 수십 갈래로 늘어났다.
『율법(律法) – 발동.』
개천한 하늘에서 상서로운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이 석판을 이루었다.
한층 더 경외로운 빛이 석판의 표면에 음각을 새겨 넣었다.
왕도, 귀족과 시민들도.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판은 천천히, 몹시 천천히 왕도의 광장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그 신물이 땅에 닿을 적에, 빛은 이미 왕국을 뒤덮었다.
[라플라스는 오늘부로 교국(敎國)이 될 것이다.]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왕은, 석판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눈가에 희열과 열망이 일렁였다.
십여 년 전에 앨런이 물어보았던, 평화라는 것의 답.
그것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