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Episode. 50 쏘지 마라! 성자다! (3)
“성자란 놈이 결국 이단이 된 것이냐!!”
앨런의 노호성이 정문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무리 장갑으로 손을 가렸다 해도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마기는 채 막지 못해서, 앨런의 촉에 딱 걸린 모양이었다.
“리하르트! 대답해라!”
놈은 수상한 냄새를 맡은 마약탐지견마냥 으르렁거렸다.
아.
이런 일은 예상 못했는데.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때, 앨런이 하얗고 긴 손가락을 내게 겨눴다.
성화의 일렁임이 서서히 거칠어진다.
본래 따스함만 느껴지던 불꽃이 오늘따라 영 뜨겁기만 했다.
‘음. 이건 나한테도 타격이 있겠는걸.’
벌써부터 피부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열기가 훅 가셨다.
“감히 성자님을 이단이라 칭하신 겁니까?”
내 앞을 가로막은 넓적한 등판.
그 익숙한 뒷모습은 아론의 것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는 건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당장 손가락 치워. 잘라 버리기 전에.”
모리츠는 또 언제 다가간 것인지, 앨런의 손가락에 단검을 가져다 댔다.
세상 살벌한 경고는 덤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기드가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그의 창끝이 적을 발견한 듯 서슬 퍼렇게 빛났다.
“성자님. 명만 내리십시오.”
“무슨 명?”
“저 참람한 자를 무릎 꿇리라는 명령 말입니다.”
노기사의 스산한 음성이 모두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급속도로 냉랭해진 분위기 가운데,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아론과 모리츠, 기드는 지금 너무 예민해진 상태다.
그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난장판도 정말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주변의 마법사들은 이 갑작스런 대치에 눈만 뒤룩뒤룩 굴리는 중이었다.
“그만. 다들 그만해라.”
“너도 힘을 거두거라, 앨런.”
내가 기사들을 말리는 사이 알리사가 앨런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앨런은 쉬이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리하르트! 설명하란 말이다! 어째서 네게 마기가 느껴지는 것이냐!”
화르륵-!!
알리사의 만류로 한차례 꺼졌던 불길이 다시금 활활 타올랐다.
입으로는 설명을 요구하는 주제에, 눈은 이미 나를 이단으로 규정한 기색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어따 대고 성화를 들이대?
나는 성화의 연료인 신앙을 몸 속에 꽉 붙들었다.
그러자 들불처럼 번지던 백색 불꽃이 일순간에 사그라들었다.
“호르께서 성화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셨군. 이게 곧 나의 결백을 증명한 것일 터.”
“……!”
“내가 어둠을 품긴 했다만, 이단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일그러졌던 앨런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다만 그 안에 남은 적개심만큼은 조금도 상하지 않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
사실, 이 상황을 모면하기는 쉬웠다.
조금의 거짓말만 하면 되니까.
호르가 내게 계시를 내렸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나 그저 따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다른 이들이 감히 첨언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타락해 가는 내 모습을 계시의 이행으로 포장했다간, 내 기사들은 ‘호르’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바보들은 ‘호르’보다 나를 따르는 것에 더 가까웠으니.
“다시 말하지. 난 이단이 아니야. 그저 필요에 의해 품었을 뿐이다.”
“빛을 모시는 성자가 어둠을 필요로 한단 말이냐!”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도 있는 거지.”
“리하르트……!”
얼음장처럼 차가운 앨런의 시선을 감내하다, 그가 데려온 2천의 병력을 살폈다.
과연 이단심판부대라더니, 나를 보는 눈빛에 혼란 섞인 적개심이 적지 않았다.
‘흠, 괜찮은데?’
곤란한 상황이긴 하지만, 저들이 표출하는 이단에 대한 적대감만큼은 흡족했다.
각국의 마법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단심판부대.
그건 곧, 수많은 국가들이 라플라스에게 병력을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슬슬 때가 됐군.’
서론에 불과한 마르크스와의 전쟁.
이제는 그것을 끝내고 본론으로 접어들 차례였다.
◈ ◈ ◈
마계는 붉고 어두웠다.
빛이 그곳에 거할 적에도 한 치 변함이 없어서, 붉고 어두움이 곧 마계의 천성이었다.
– 우…….
왕은 자신이 태어났던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계를 지배하는 왕일진대, 마왕의 자리는 오직 그곳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
그래서 그곳은 마왕을 위한 왕좌였다.
– 끄, 끄흐으……!
마왕은 숨죽여 웃었다.
왕좌에 앉았던 수천 년의 시간 중,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흥분이 왕의 가슴을 간질였다.
어깨를 떨며 웃을 때마다 그 흉측한 몸에서 마기가 터져 나왔다.
그가 뿜어내는 마기가 마계를 유지하는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 아버지!
희열 가득한 음성이 붉은 하늘을 진동시켰다.
분노, 슬픔, 증오, 원망, 그리움.
온갖 부정적인 것만 가득하던 그의 가슴에 ‘기쁨’이 퍼진 것은 태초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서 왕은 더 기뻤다.
– 아버지가 나를 받아 줬어…….
아버지 흉내를 내며 ‘유흥’을 이어 나가던 중, 마왕은 세상에 둘도 없는 선물을 받았다.
인간계의 틈을 비집고 심어 놓은 자신의 조각들.
그는 제 아버지가 조각들을 소멸시키리라 예상했다.
한데, 어째선지 그의 아버지는 온몸으로 조각을 품어 주었다.
어찌 기쁘지 않으랴.
이제는 자신들을 이해해 주시기 시작한 걸까.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자 하시는걸까.
– 아! 아아아!!
왕이 울었다.
수없이 흘린 피눈물이 아닌, 희열에 찬 눈물이었다.
– 어떡해야 하지?
– 제가 어찌해야 좋습니까?
– 아버지가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그분을 받아 줄까?
– 왜 이리 늦었냐고 조금 정돈 투정 부려도 되지 않을까?
– 아니, 그랬다가 아버지가 다시 도망가면 어떡하지?
마왕은 열과 성을 다해 고민했다.
고민할수록 아버지가 격렬히 보고 싶었다.
조각 따위가 아니라 직접 그를 뵙고 싶었다.
– 얼른 돌아와 주십시오.
– 아니, 아니야. 내가 갈게.
– 저랑 같이 그 쓸모없는 세계를 없애 버리고.
– 손 꼭 붙잡고 이곳으로 함께 돌아와요.
끄으, 끄흐흐.
행복한 상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행복감을 주체할 수가 없어, 마왕은 무심결에 제 손가락을 뜯어먹고 말았다.
그가 몸을 움찔 떨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고통스러웠다.
이 또한 생소한 감정이었다.
아픔을 아픔으로 여기지 못하던 왕은, 난생 처음으로 육신의 고통을 느꼈다.
호기심에 왕이 제 상처를 헤집을 때였다.
쿵. 쿠웅.
왕좌를 향해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왔다.
『? ? ? ? ?!!』
호르가 빚어 낸 두번째 피조물.
떠나간 아버지를 원망하며 통곡하다, 끝내는 말을 잃어버린 가엾은 존재.
그는 드래곤을 닮은 육신을 하고 있었다.
네 장의 날개와 여덟 꼬리에선 불길한 마기가 넘실거렸다.
쭉 찢어진 파충류의 동공이 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안 돼.
– 내가 갈 거야.
마왕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를 찾아온 손님은 두 번째 피조물만이 아니었다.
『왕이시여.』
『아! 이게 아니지.』
『친애하는 첫째 오라버니. 아리따운 여동생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까마귀처럼 새까만 날개가 달린 여인.
호르의 네 번째 피조물이 마왕 앞에 무릎 꿇었다.
아양 섞인 그녀의 음성은 어색하기만 했다.
『왕을 뵙습니다.』
이어서 여섯 살은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다섯 번째 피조물이었다.
조그마한 머리통에 비해 유달리 크게 돋아난 뿔이 땅을 향해 숙여졌다.
– 우…….
– 돌아가라.
죽어 버린 칼고스를 제외하면 왕과 그 휘하의 군단장이 한자리에 모이고 말았다.
왕은 조바심이 났다.
자신의 형제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손에 잡힐듯 훤했기 때문이었다.
– 내가 갈 거야.
–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란 말이야.
– 자꾸 귀찮게 굴면 너희들도 으깨 버리고 싶어져.
마르크스라는 인간의 가문에 뿌리박힌 마왕의 조각들.
충분히 싹을 틔운 그것들은 ‘균열’을 여는 열쇠의 역할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마왕이 드나들 만큼 거대한 균열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엔 여러 손님이 꼬이는 법이었다.
『? ? ? ?-!』
둘째가 성마르게 울부짖었다.
『오라버니께선 벌써 몇 번이나 아버지를 뵙지 않았습니까.』
『왕이시여. 저와 누님에게도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넷째와 다섯째가 간청을 거듭했다.
그 끈질긴 태도에 마왕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혼자 빛을 즐긴 칼고스가 얼마나 부러웠는데.
이제 기다리는 건 지쳤다.
마왕은 군단장들을 모조리 죽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이 갈 생각이었다.
쿠구구국-
왕이 기세를 일으켰다.
저 멀리 칼고스가 만든 피바다가 크게 범람했다.
그 가공할 기세에도 군단장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저희끼리 싸우면 이 세계가 남아나질 않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해 가꿔 온 세계가 아닙니까?』
다섯째의 말에 마왕이 눈을 가늘게 떴다.
둘째는 말을 못하고, 셋째는 혼자만 극락 속에서 죽었다.
넷째는 영악하기가 그지없으니, 그나마 왕과 대화가 통하는 이는 다섯째뿐이었다.
『저와 누님을 인간계로 보내 주십시오.』
『저희가 빠른 시일 내로 완전한 균열을 열겠습니다.』
『칼고스 형님처럼 무식하게 날뛰다가 죽어 버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그나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래.
기왕 아버지를 만나는 것.
형제끼리 다 같이 아비를 맞이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을 터다.
– 우…….
마왕이 손을 휘저었다.
허락의 표시였다.
꾹 감은 눈엔 이상적인 미래가 그려졌다.
때문에 마왕은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눈빛이, 뭔가 이상한 것을 보듯 기이하다는 걸.
◈ ◈ ◈
“아아…… 신이시여!”
바펠이 두 손을 모았다.
간곡한 기도의 음성은 하늘을 올곧게 향한 채였다.
“제 아들이 둘이나 죽었습니다. 대체 어둠이란 얼마나 잔혹하고 위험한 것이란 말입니까.”
자식을 잃은 아비의 증오가 들끓었다.
그의 눈앞엔 거대하고 붉은 눈이 떠올라 있었다.
“어째서 전투를 허가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어둠을 섬기는 흉악한 종자들을 없애 버리겠습니다. 복수를 천명하겠습니다!”
마법제일가의 수장으로서 드높은 위치에 올랐던 바펠.
그러나 지금의 그는 한낱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정신이 망가지자 육신도 망가졌다.
새하얗게 바랜 머리칼과 피골이 상접한 몸.
정광 넘치던 눈엔 광기가 흐르고, 이까지 하나둘씩 빠졌다.
그러한 변화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의 가신들 모두 늙어 가고 있었다.
– 우…….
그 꼭두각시에게.
마왕이 계시를 내렸다.
– 싸워라.
– 싸워서 죽이고, 싸우다 죽어라.
– 너희는 제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