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Episode. 53 지옥 (2)
광소와 광소가 이어진다.
나는 귀를 괴롭히는 그 웃음소리를 전부 무시했다.
내 시선을 빼앗은 건 오직 그들 뒷편의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역시 서둘러 오길 잘했군.’
거의 완성된 상태의 마법진.
‘방아쇠’만 당기면 언제든 마계와 인간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재앙 그 자체였다.
아라헬과 마몬이 그 방아쇠를 당기고자 한다면 나는 막지 못할 것이다.
시간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 스스로 마법진에서 손을 떼게 만드는 것뿐.
‘그것만큼은 자신 있지.’
나는 악연의 검자루를 꽉 잡아 쥐었다.
입꼬리를 찢어 올린 마몬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기뻐요. 너무 기쁩니다.』
그 천진난만한 음성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아이의 것과 같았다.
온 진심을 담은 한마디.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이 어디서 기인해 온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꼬옥-
어찌 반응할 새도 없이 마몬이 나를 끌어안았다.
고작해야 다섯 살 난 아이의 체형을 한 터라, 그의 머리통은 내 가슴께보다도 한참 아래에 있었다.
『이렇게 저희와 어울려 준다고 하신 것도 기쁘지만…….』
뿌득-
『저는 아버지가 인간의 몸을 하고 계신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빛은 뼈가 없지만 지금은 이리도 아름다운 뼈가 있잖아요?』
뿌드득!
나를 끌어안은 저 작은 팔엔 아무런 거력도 깃들어 있지 않았는데, 내 갈비뼈는 너무도 쉽게 부러졌다.
“쿨럭!”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모양인지 잇새로 피가 흘렀다.
그러자 아핫- 하는 가벼운 감탄사가 마몬에게서 터져 나왔다.
『전부 으스러트리려고 했는데. 그건 쉽지 않군요.』
놈의 능력은 뼈를 다루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뼈든, 상대의 뼈든 상관없이.
정말 귀찮기 그지없는 힘이었다.
쐐액-!
검을 휘둘러 거리를 벌렸다.
‘쯧, 칼 위를 걷는 기분이야.’
칼고스 하나만 해도 나를 비롯한 대규모 군대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한데 그와 동급인 존재 둘을 나 홀로 상대하는 건 지극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잠자리와 다름없었다.
날개가 떨어지고, 다리가 뜯어지고.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다뤄지다 끝내 죽어 버릴.
하나 나는 한낱 벌레처럼 죽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 생각할때, 마몬이 손바닥에서 기다란 뼈 검을 꺼내 들었다.
채앵-!
악연과 뼈 검이 얽혔다.
『아하핫!』
살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섞이지 않은, 칼싸움 놀이를 하는 듯한 검격이 몇 번이고 나를 향했다.
그래. 마음껏 즐겨라.
나는 그 엉성한 칼부림에 한껏 어울려 주었다.
그러다 내 몸이 덜컥 멈추고 말았다.
『아아, 아버지!』
『저는 안중에도 없으시니 참으로 섭섭합니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나를 뒤에서부터 껴안은 아라헬.
몸을 옭아맨 건 가녀린 팔일진대, 꼭 거대한 뱀에게 휘감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몬의 장난스러운 검격을 받아 내지 못했다.
핏-
왼쪽 팔뚝에서 피가 솟구쳤다.
동시에 뿌드득- 하고 팔뼈가 부러져 버렸다.
고통 따윈 느낄 새도 없었다.
이 미치광이들 사이에 끼이면 정말 답도 없으니.
나는 빛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후우! 제법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구나.”
짐짓 너스레를 떨며 덜렁거리는 왼팔을 들어 올리니, 아라헬과 마몬의 미소가 짙어져만 갔다.
그들의 애정이란 곧 상대의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성질에 가깝다.
관심도, 무관심도.
애정도, 증오도 구분지어지지 않는다.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끝내 파멸이라는 말로를 걷게 될 뿐이었다.
『왕께서 저희를 질투하실 겁니다.』
『으음, 어쩌면 저희는 그분에게 죽어 버릴지도 모르겠네요.』
마몬이 아무렇지 않다는듯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아라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첫째 오라버니는 성격이 나쁘니까.』
『이미 죽어 버린 칼고스 오라버니한테도 질투를 느낄 정도니, 어련하시겠어.』
그러니까.
두 군단장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습니다.』
『자, 아버지!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앞으로 얼마나 더 어울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일순간에 터져 나오는 군단장들의 기세는, 나 홀로 버텨 내기엔 제법 힘들었다.
몸에 꽁꽁 숨겨 놓은 신격을 전부 끌어내고 나서야 압박감이 옅어졌다.
“그건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지.”
내 말에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 광소가 빗발쳤다.
다만 처음의 그 웃음과는 달리, 노골적인 분기가 섞인 채였다.
『저항의 의지 따윈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군요.』
『그런 주제에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거시는 겁니까?』
마몬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그 아버지란 작자의 초라한 밑바닥이 드러나고야 말았으니, 아라헬과 마몬의 얼굴에 분노가 뒤엉켰다.
콰앙-!
이제는 살기 가득한 뼈 검이 목을 노리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인간을 지키시는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뭐겠어. 내가 인간이니까 그렇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난 내뱉지 않았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뼈 검을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때, 아라헬이 마기를 흩뿌렸다.
그러자 잠깐이나마 세상이 뒤집혔다.
“……!”
고작 환영에 불과했으나, 아라헬의 힘은 가짜를 진짜로 믿게 만드는 악독한 성질을 품고 있었다.
푹!
그 찰나의 빈틈을 노린 뼈 검이 몸을 파고들었다.
날붙이가 피륙을 가르는 통증도 잠시.
마몬이 검을 비틀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조금씩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목숨을 담보로 시간을 벌러 온 것부터가 패착입니다.』
『당신을 잃은 인간들이 저희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마몬은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모든 고통을 감내할 뿐이었다.
말은 어울려 주겠노라 했으나, 실은 이 미치광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연하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해?
『아버지.』
아라헬이 마몬의 옆에 다가와 섰다.
『안심하세요.』
『쉽게 끝내진 않을 겁니다.』
내게는 똑똑히 보였다.
그 두 군단장의 눈가에 짙게 깔린,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잠깐 맛을 본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겠지.
『당신께서 저희를 버린 것을 후회하시기 전까지.』
『지옥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우리 함께 즐겨 보아요.』
푸스스-
그녀의 날개로부터 새까만 기생충들이 쏟아져 나왔다.
곧 그것들이 나를 뒤덮었다.
서서히 침잠해 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슬쩍 악연을 눈에 담았다.
악연 속 거인이 숨죽여 웃고 있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 ◈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놈들과 대치하던 뼈의 성과는 사뭇 다른 장소에 서 있었다.
다만 무척 익숙한 곳이었다.
“여긴…… 리오 성?”
그래. 맞다.
저 성채에 내걸린 다섯 개의 깃발이 그를 증명했다.
잠시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돌연 뒤에서부터 살기가 솟구쳤다.
픽-!
재빨리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눈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창이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기사가 애지중지하던 창, ‘혼테일’.
“……아론?”
나를 공격한 자는 아론이었다.
한데 그 상태가 이상했다.
저 창백한 피부, 썩어 가는 살점과 반쯤 흘러나온 눈알이란.
“끄으으…….”
듣기 좋았던 저음의 목소리가, 지금은 쇠를 긁는 듯한 소음만 내고 있었다.
그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모리츠, 레오, 제1기사단, 제3기사단…….
그리고 리오 성을 지키던 무가 연합까지 전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시야에 잡히는 자들 중 시체가 아닌 이가 없었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을 보여 주는 건가.’
리오 성이 언데드 사태에 곤욕을 치를 당시, 난 내 동료들이 언데드가 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이건 그때의 소망과 정 반대되는, 끔찍한 환영.
정말 악질이었다.
하지만.
“얄팍해.”
일검을 떨쳐 아론의 목을 베었다.
뒤를 노리던 모리츠의 머리통을 갈랐다.
『라플라스의 눈 – 발동.』
가짜라는 것이 눈에 훤히 비치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저들은 지금도 살아서 싸우고 있는데, 이런 환영 따위에 연연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베고, 베고, 또 베었다.
썩어 문드러진 오르드 성주에게 안식을.
죽어서 고통받는 알버트에게 안식을.
이건 살해가 아니다.
저주에 걸린 동료들에게 안식을 선물하는 의식이었다.
“크어…….”
다만 레오와 제1기사단을 상대할 적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시체가 되어 고절한 검술에 흠이 생겼을지언정, 그들 전부를 상대하는 건 지금의 나로서도 꽤나 힘든 일이었으니.
창칼이 수없이 내 몸을 베고 지나갔다.
그 화끈한 고통은 평소보다 몇십 배는 더 크게 와닿았다.
이 또한 아라헬의 수작일 터.
나는 온몸으로 빛을 밝혔다.
별을 모조리 불러내고, 드라우프니르의 사슬을 풀어헤쳤다.
이따금 마법을 사용해 시체들이 나를 둘러싸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체감상으론 사흘을 내리 싸운 것만 같았다.
“…….”
나는 홀로 선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너덜너덜하게 찢긴 몸에서 피가 흘렀다.
온통 까맣게 죽은피로 젖은 땅 위에 붉은 핏물이 투둑 떨어졌다.
‘이게 끝일 리가 없지.’
고개를 돌렸다.
언덕 너머, 망자의 군대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익숙한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나는 그 선두에 선 데스나이트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시체에 불과했으나, 그 마지막만큼은 인간으로서 죽은 사내.
내가 처음으로 죽였던 ‘사람’.
“포이르 백작.”
“그, 으어…….”
그가 다시금 시체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아아. 얄팍해.
정말 얄팍하기 그지없다.
이제와 첫 살인의 상대가 나타난다고 해서, 내가 동요라도 할 것 같은가.
하지만 그 생각은 포이르 백작의 음성이 들린 이후로 멈추었다.
“당, 신 때문, 입니다.”
구더기 들끓는 손이 나를 향했다.
“당신이, 우리를 이 꼴, 로 만든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악몽의 원, 흉…….”
“당신, 이 만든 존재, 가 바렌을 절, 망에 빠트, 렸어! 위, 선자……!”
망자들이 울부짖었다.
사무치는 원한이 목을 옥죄여 왔다.
망자의 군대뿐만이 아니다.
겨우 쓰러트린 리오 성의 시체들이 어느새 원상복구 된 채였다.
“왜…… 왜 세상, 을…… 이렇, 게 만드셨, 습니까…….”
아론이 음울스레 중얼거렸다.
피눈물이 그 얼굴에 흘렀다.
빌어먹을.
나는 피에 젖어 질척이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이건 좀 짜증나네.”
하필이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