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15
13화. 마녀와 망령 (2)
“대체 그동안 뭔 짓을 하신 겁니까?”
마녀에게, 망령은 그리 물었다.
왕도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숱한 부유선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소형 골렘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마녀는 마법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고, 그 머리또한 무척 비상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육신을 벗어던지는 그 행위는 고작 천재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건 인간이라는 종보다 한층 더 윗줄의 존재들에게나 허락된 힘이었다.
가령 천사들이나, 자신과 같이.
“후후…… 말하지 않았느냐. 천사에게 협조를 구했다고.”
라플라스를 앞두고 몸서리를 치던 하리엔을 보았기 때문일까.
천사에게 협조를 구했다는 말이 유난히도 껄끄러웠다.
“설마, 인체 실험이라든가…….”
“어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하건대, 나는 그런 비인도적인 짓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천사의 영체화를 관찰했을 뿐이라고.
그 과정에서 몰래 도망친 천사를 찾기 위해 숨바꼭질을 해야 했던 것뿐이라고, 마녀는 결백한 얼굴로 말했다.
어째선지 망령은 일의 전말이 어떻게 된 것인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겁먹은 토끼처럼 도망치는 하리엔과 그녀를 쫓는 마녀의 모습이.
으음, 이걸 사이가 좋다 해야 하나.
애써 흐린 눈으로 보자면 그리 말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리하르트.”
그때 알리사가 한 걸음 더 다가와 망령의 품에 안겼다.
온기도, 심장 박동 따위도 느껴지지 않는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채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단다. 해 봐야 두 시간 정도일까.”
“영혼이 빠진 육신은 시체일 뿐이니까요. 그도 아니면 시체가 되어 가거나. 이러다간 영영 육체로 돌아가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위험한 힘은 다루지 말라고.
망령, 리하르트가 그녀를 살짝 밀어내며 충고했다.
그녀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마주하려 하는 것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망령이 생각하기에 자신과 마녀가 이어질 가능성은 그가 보았던 미녀와 야수보다도 낮았다.
“…….”
일순 알리사의 눈에 체념이 스쳐 지났다.
생생히 살아서는 마주할 수 없고, 죽어서는 천국으로 가 마주할 수 없다.
마녀와 망령 사이에 놓인 두터운 벽은 지금 이 순간만 길을 터 주었을 뿐이었다.
“흥.”
“스승님?”
“누가보면 고백했다가 차인 줄 알겠구나.”
알리사는 고개만 갸웃하는 망령이 얄미운 듯 눈살을 좁혔다.
“내가 원하는 건 별게 아니란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육체이탈이라는 수단을 찾은 마녀는,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미련하지 않았고, 아둔하지 않았으니, 그저 소박한 행복을 바랐을 뿐이었다.
“너와 산책이 하고 싶었다.”
“겨우 그거면 됩니까? 그걸 위해서…….”
그 순간, 무드 없이 떠들어 대던 망령의 입이 멈췄다.
눈앞엔 푸른 머리칼만 하늘거리고, 오랜 시간 아무것도 닿지 않았던 손엔 가녀린 손가락이 감겼다.
체온 하나 없는 영혼과 영혼이 닿았을 뿐인데, 그 순간만큼은 둘 모두 온기를 느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어, 어…….”
입술과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야 망령이 한 박자 늦게 당황했다.
아니, 별거 아니라며.
이게 어떻게 별게 아니야.
당혹 섞인 망령의 눈빛에 마녀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자. 걷자꾸나. 시간이 얼마 없다.”
“…….”
천연덕스레 내밀어진 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그 표정에, 망령이 상기된 얼굴로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여간에 그녀는 여전한 승리의 마녀였다.
상대를 방심시킨 뒤에 훅 치고 들어오는 방식은 꼭 전투와도 같았다.
“……사슬에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
손가락과 손가락이 다시금 감겼다.
둘의 발걸음이 전에 없이 가벼웠다.
“진짜로 조심해야 합니다. 닿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지옥으로…….”
“와, 너 진짜 무드 없구나?”
◈ ◈ ◈
힐끗 옆을 보았다.
세상 밝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가 보였다.
내 손을 꼬옥 쥔 채로, 그녀는 사뿐사뿐 왕도를 걸었다.
“저것 보이느냐? 저게 바로 내가 개발한 길거리 청소용 골렘이란다. 덕분에 왕도가 아주 깨끗해졌지. 곧 왕국을 넘어 타국에도 제작법을 알릴 생각이다.”
발달한 왕도의 문물을 자랑하는 천진한 모습에 나는 잠깐 갈등해야 했다.
이 말을 하면 또 무드 없다 핀잔을 들을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너무 라플라스만 빠르게 발달한 것 아닙니까? 언젠가는 이 독보적인 문명이 분란을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후, 너라면 분명 그리 말할 줄 알았다. 유난히 커진 힘은 좋든 싫든 관심을 불러 모으지.”
핀잔을 들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알리사는 그저 웃었다.
뻔하디뻔한 내 반응이 그리도 웃긴 모양이었다.
“걱정 말거라. 아무렴 내가 뒷일도 생각 않고 일을 벌였겠느냐.”
들어 보니 라플라스의 문명은 오로지 편의를 위해 발달했을 뿐, 군사력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혹여나 자신의 발명품이 전투를 목적으로 만들어질 것을 우려해 제작법에 리미트까지 걸어 두었다고.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 용어가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으음,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렇게 우리는 왕도를 걸으며 여러 가지를 구경했다.
왕도의 시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았고, 광장에 놓인 분수를 보았다.
“오! 공연을 하는구나.”
“이야. 음유 시인이군요.”
분수의 앞에선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사내가 류트의 현을 튕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고운 음색의 악기와 사내가 내뱉는 가락에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붙잡혔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 하나가 금세 끝이 났다.
연신 머리를 숙이며 청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습에 아쉬움을 느낄 때였다.
“이번 곡은 자선 기부도 받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그냥 들어 주세요.”
제 앞에 놓인 동전 수북한 모자를 뒤집은 음유 시인이 다시금 현을 튕겼다.
곧 그의 입에서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호르는 세상을 위했고, 그는 우리를 위했으니.
어찌 세상이 그분을 잊고, 우리가 그를 잊으리오.
어찌 밤하늘 별이 된 구세주가 그분 곁에 함께하지 않으리오.
본래 음유 시인이란 영웅담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구세주라 칭송받는 영웅은 불 보듯 뻔했다.
부지불식간에 얼굴이 화악, 하고 달아오르고 말았다.
“부, 부끄럽군요. 자리를 옮기죠.”
“왜 그러느냐. 조금만 더 듣자꾸나.”
자리를 뜨려고 법석을 피우는 내게 알리사가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맙소사. 설마 여기서 내 영웅담을 노래할 줄이야.
부끄럽고 민망해서 몸에 닭살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유 시인의 노래에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리하르트라는 영웅의 평안을 기도하는 이도 있었다.
그저 시인의 노래가 흘러나올 뿐인데, 연신 활력 넘치던 왕도의 광장이 예배와 추모의 장으로 변모했다.
“너는 영웅이고, 구세주다.”
노래의 가락 속에 알리사의 음성이 섞여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잔잔히 일렁이는 눈빛이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 세상 모두가 영웅으로 살았던 너를 경외하고 칭송한단다.”
그러니까 조금은 당당하게 이 노래를 감상하라는 말이 이어졌다.
“…….”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조금 전 입맞춤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막 간질거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것은 뿌듯함일까, 성취감일까.
둘 다 아니라면 그저 기쁨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에게 칭송받기 위해 세상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이 아닌 ‘리하르트’로서 칭송받는다는 기분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기만 하진 않았다.
“……좋군요. 이 또한 평화의 증거일 테니.”
음유 시인은 평화의 시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먹고 살기 벅차고, 곳곳에 싸움이 이는 세상에서 누가 악기를 켜고 노래를 부를까.
그래서 나는 눈앞의 음유 시인이 기꺼웠다.
바쁜 일상을 멈추고 노래를 감상하는 시민들이 기꺼웠다.
내게 있어선 그들 자체가 평화였다.
◈ ◈ ◈
왕도를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왕성으로 돌아왔다.
알리사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기, 앨런이 있구나.”
그녀의 방으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뒤에 하얀 옷을 입은 사내들을 주렁주렁 거느린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앨런이었다.
“저 아이가 얼마나 방황했는지 알고는 있느냐?”
“그렇습니까?”
나는 어느새 훌쩍 멀어져 가는 그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를 뒤따르는 사내들이 군단과 함께했던 이단심판부대라는 것을 난 모르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은가 보군요.”
“사람은 성장하게 마련이지 않느냐.”
다행이었다.
한때 왜곡된 신앙심을 가지고 있던 앨런이,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에도 번듯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최소한 대륙 절반을 피로 물들이지는 않았으니까.
“너도 돌아가기 전에 그를 보고 가려무나.”
그리 말한 알리사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그녀의 방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는 걸음이 유별나게 느렸다.
아닌 척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연신 조잘대면서도, 한편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숙녀께서 애프터 신청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다음 주에 시간이 되신다면, 또 함께 걷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무리 무드 없다 핀잔을 들은 나지만 그래도 눈치는 있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라면 그녀의 육신에도 큰 부담은 가지 않을 터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알리사가 이내 활짝 웃었다.
“……다행히 그리 말해 주는구나.”
나와 그녀를 가르는 벽은 두텁고 또 두텁다.
다만 그녀가 살아 있을 적에, 내가 주시자로서 세상을 유랑하고 있을 적에.
일주일에 한 번, 약속을 한 그 시간만큼은 어떠한 벽도 가로막지 않으리라.
그것이 기쁜 듯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방랑벽이 엄청난 애인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애인이라.
익숙하지 못한 말에 내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