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44
44화. Episode. 16 모리츠라는 혹이 붙었다 (1)
모리츠 바텐베르크에게 지금껏 겪은 수모 중에 최악을 고르라 하면, 단연코 리하르트에게 패배했던 그 날을 떠올릴 것이다.
자신이 불러 모은 기사들 앞에서 비겁한 수까지 쓰고도 패배해 버린 그 대련!
그날 이후 모리츠는 심마 아닌 심마에 빠지고야 말았다.
“젠장! 이건 말도 안 돼!”
분하고 또 분했다.
저를 따라다니는 기사들의 시선이 마치 패배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리하르트가 가주의 오른팔, 레오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고 하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으아아악!”
그래서 모리츠는 가슴에 독을 품었다.
수련 중독자처럼 눈 뜨면 검을 쥐었고, 밤에는 검술 서적을 탐독했다.
설욕!
그는 모두의 앞에서 보란 듯이 설욕해 자신의 입지를 되찾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독기를 품고 지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깨졌다.
-우우…….
깨진 하늘 사이로 빨갛고 커다란 눈이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그 끔찍한 시선이 대륙 이곳저곳을 탐할 때, 모리츠는 아주 일순간이지만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크나큰 불행이었다.
“으, 으그윽……!”
무저갱을 마주하면 이러할까.
그는 포식자의 아가리에 들이밀어진 것처럼 숨을 쉬지 못했다.
“꺄아아악!”
하인과 하녀들은 비명을 지르다가 혼절했고, 기사들 또한 몸을 벌벌 떨어 댔다.
하늘에 뚫린 구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꿔졌다.
하지만 그 사이로 흘러 들어온 마기는 너무나 짙었으며, 빌어먹게 끔찍했다.
대륙에 흩뿌려진 마기.
그것은 자꾸만 그때의 눈알을 떠올리게 했다.
모리츠는 그럴 때마다 손발이 차게 식고 몸이 떨렸다.
이윽고 그의 심마는 더욱 악화되었다.
가슴속에 품었던 독기는 방향을 바꿔, 심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모리츠는 혈통에 어울리는 정신력은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제대로 검을 쥐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리하르트가 제3기사단과 함께 복귀했다.
“하……!”
기사들 틈바구니에 서서, 모리츠는 리하르트를 두 눈에 한가득 담았다.
몇 달 새에 잔뜩 달라져 버린 동생은, 이미 모리츠가 넘보지 못할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굉장히 분했다.
나는 이리 한심하게 나자빠져 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빛나는 거냐-
리하르트를 바라보는 그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놈을 미워하고 싶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질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랑 같이 수련할래……? 아니, 이건 아니야. 으으!”
그날 이후 모리츠는 방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리하르트를 향한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자기도 몰랐다.
그냥 정신이 맑아졌다고 해야 할까.
제 동생이 뿜어내던 빛을 떠올리면,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모리츠?”
그러다 곧 기회가 왔다.
리하르트를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왜 불렀어? 가주님의 호출을 받은 참인데, 용건만 말해.”
“그게…… 있잖아.”
방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말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같이 수련하자고.
그동안 괴롭혔던 것을 사과할 테니 용서해 달라고.
그 몇 마디 말이 곧 죽어도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자존심은 진작 바스러졌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마기에 벌벌 떠는 지금의 자신이 못 견디게 한심했고, 몹시도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밝게 빛나는 리하르트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미친.”
“가, 갑자기 왜?”
“바쁘니까, 간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 바람을 맞고 말았다.
“자, 잠깐!”
다급한 외침이 무색하게 리하르트는 휘적휘적 걸어갔다.
매정한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모리츠는 이를 갈았다.
그래. 역시 사과 따윈 필요 없다.
“저 자식이 용서해 줄 리도 없고! 나도 딱히 사이가 좋아지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냥, 저놈의 빛이 필요한 거다.
이 빌어먹을 심마를 벗을 때까지만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으면 되는 거다.
“가주님의 호출을 받았다 했지? 내가 어디든 따라가 주마!”
리하르트의 뒤를 쫓는 모리츠의 눈에 오기가 깃들었다.
물론 들키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자신이 가장 크게 타고난 재능은 검이 아닌 은신술이었으니까.
◈ ◈ ◈
“와아! 마셔, 마셔!”
“취익! 부어, 부어!”
연회가 열렸다.
미리 가주에게 사용 허가를 구해 놓은 연회장에서 제3기사단이 술과 고기를 뜯어 댔다.
“좀 더 이 시간을 고상하게 즐길 순 없는 거야?”
“무슨 소리를! 즐길 때는 확실히 즐겨야 하지 않겠소! 취이익!”
“오크가 뭘 좀 아는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술이 거하게 들어간 놈들이라 당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침 오늘 굉장히 기쁜 일이 있지 않았소?”
“그렇지, 그렇지! 건배를 들자!”
급기야 저들끼리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치켜들었다.
“깨어난 아델을! 위하여!”
“와아아!”
쨍-!
고급진 술잔들이 서로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머슴들이 이렇게 반겨 주니 나 또한 기분이 좋구나.”
기사들 사이엔 아델이 껴 있었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녀가 나를 끌어안은 채로 배시시 웃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아델! 이리 와!”
“아빠아!”
나는 아델을 내 옆자리에 앉혔다.
저 주정뱅이들과 함께 두기엔 영 불안했다.
“몸 상태는 좀 어때?”
“푹 자고 일어났더니 너무 개운해!”
“또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 건 아니고?”
“진짜로!”
흘긋 표정을 보니 진짜 개운하다는 얼굴이었다.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워낙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무리를 하는 녀석이라 신경이 쓰였다.
“앞으로는 힘에 부치면 바로바로 말해. 자꾸 무리하면 곤란하다니까.”
“으응…….”
아델이 살짝 풀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고마워. 기드를 살려 줘서.”
내 말에 그녀가 활짝 웃었다.
감정이 휙휙 변하는 게, 딱 겉보기로 보이는 것처럼 어린애 같았다.
실은 몇천 년 묵은 나무인데도 말이다.
“아델!”
그때 아론이 거나하게 취한 채로 다가왔다.
“고맙다! 진짜로 고맙다! 우리 할부지를 살려 줘서어……!”
“일등 머슴아. 너는 대체 몇 번을 고맙다고 하는 게냐.”
아닌 게 아니라, 아론은 아델이 깨어났을 때부터 쭈욱 고맙단 말을 달고 살았다. 그 모습이 퍽 웃겼다.
“할부지이……!”
쿵!
“으, 으하하하! 이것 봐! 아론이 쓰러졌다!”
어쩐지 과하게 마신다 했더니만. 아론을 둘러싸고 웃어 대던 기사들이 그를 구석으로 치워 냈다.
“일등 머슴이가 웬일로 저렇게 풀어졌대?”
“내버려 둬. 긴장이 이제야 풀린 거니까.”
아론은 기드를 구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아무래도 심적 부담감이 굉장히 심했을 테지.
오히려 지금까지 덤덤한 척했던 게 놀라울 정도였다.
“아델. 남쪽 세계수에 대해 알려 줘.”
나는 기사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보다가 아델에게 물었다.
“마르가르텐…… 혹시 너랑은 다른 개체인 거야?”
엘프의 숲은 두 군데.
그중 북쪽의 숲이 아델가르텐이었고, 남쪽이 마르가르텐이었다. 마찬가지로 세계수도 두 그루였고.
“아빠도 알고 있겠지만, 우린 원래 한 뿌리로 이어져 있었어. 내가 곧 아델가르텐이고 마르가르텐이었지.”
“지금은 다른 개체란 소리네.”
“으응. 아무래도 자아를 나누는 게 힘을 덜 소모하니까.”
쉽게 말해서 아델의 반쪽이 마르가르텐이라는 소리였다.
“우리는 쫄쫄 굶은 상태여서 서로 대화가 단절되는 지경에 이르렀어. 아빠를 만난 이후에 대화를 시도해 봤는데, 역시나 답이 없네.”
“내가 보았던 엘프의 숲이랑 다를 바가 없는 상태란 거군.”
아델이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쭈물 내 눈치를 보는 게, 마르가르텐에서 지내고 있을 엘프들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억지로 내 양분을 전달해 보려고 해도, 내 뿌리가 마르가르텐까지 닿질 않아…….”
“이번 임무가 끝나면 어떻게든 해 보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마법가가 즐비한 남대륙이란 게 위험 요소이긴 했지만, 어차피 호르교는 남대륙에서도 착실히 퍼져 나가야 한다.
더불어 남부 엘프들 역시 내 쪽으로 끌어들일 기회였고.
“응응!”
애써 밝게 답하는 아델을 보며 테이블을 툭, 툭- 두드렸다.
할 일이 참 많다.
‘북쪽 엘프들은 곧 깨어날 테고.’
아델에겐 미리 말해 놓았다.
앞으로 갈 전장에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들이 내 히든카드 중 하나였다.
‘스노우폴의 주민들에겐 기사들을 보냈으니까, 출정 전에 도착하겠지.’
내 신도와 신자들도 이젠 고생할 때가 되었다. 원래 선구자들이 피땀을 흘리는 법이다.
그렇게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휴거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어깨동무를 해 왔다.
“취익! 술도 안 마시고 대체 뭘 하고 있소!”
“야, 저리 가서 놀아라.”
진한 술 냄새가 코를 찔러 댔다.
“으흐흐, 그러고 보니 대단한 인간 전사의 형제는 나랑 닮았더구려!”
“뭐?”
갑자기 그가 생뚱맞은 소리를 내뱉었다.
휴거랑 비슷하게 생겼다면……, 모리츠밖에 더 있던가.
“네가 모리츠를 만났다고? 어디서?”
휴거는 쭉 제3기사단 숙소에 박혀 있었다.
가주의 허가를 받았어도, 그가 나돌아 다니기엔 바텐베르크의 분위기가 썩 좋지 못했으니까.
“취익……, 동포가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나는 휴거의 입에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물려 주었다.
“네가 먹고 있는 고기, 물처럼 들이부은 술. 값을 치를 수 있다면 입 다물던가.”
“꾸익! 말하겠소! 우리가 집무실로 향하는 길에 인간의 냄새 하나가 우릴 따라왔소. 냄새만 지웠다면 실로 완벽한 은신술이었지. 췩!”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모리츠, 그 기분 나쁜 자식이 내 뒤를 쫓았다니?
놈이 은신의 재능을 타고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스스로가 그 재능을 몹시 싫어해서 맞지도 않는 검술이나 탐하고 있을 터인데.
“왜 바로 말 안 했어?”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했지. 그런데 대단한 인간 전사가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에도 계속 한자리에 머물고 있는 거요.”
그래서 몰래 돌아가 뒷덜미를 잡아챘단다.
“취익, 잡고 보니 얼마나 놀랬는지 알고 있소? 그는 오크가 분명하오! 날 똑 닮았어! 어쩌면 내 자식일지도 모르오!”
“헛소린 그만.”
“으음, 아무튼 그가 대단한 인간 전사와 형제라고 하더군. 취익! 그래서 함께 집무실 문 앞에서 대화를 엿들었다오.”
“…….”
이마를 짚었다.
이 돼지 자식이 아주 당당하게 쓸데없는 짓을 했노라 말하고 있었다.
“대체, 왜?”
“따, 딱히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소. 오히려 대단한 인간 전사를 동경하는 것처럼 보이더구려. 날 닮은 얼굴로 부탁을 하니 거절하기도 뭣하고…….”
내가 잠깐 착각하고 있었다. 휴거가 아무리 오크 같지 않아도 결국은 오크다.
명실상부한 돌대가리란 뜻이었다.
그리고 이 연회장엔 돌대가리가 두 덩이나 있다.
기감을 예민하게 돋우자, 여태껏 잡히지 않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곳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와.”
“히익……!”
각자 술을 들이붓던 제3기사단의 시선이 연회장 구석으로 쏠렸다.
그곳에 모리츠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못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이건 죽여 달란 뜻이지?”
“리, 리하르트! 잠깐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감히 미행을 해? 얼굴 붉힐 때부터 알아봤어. 드디어 남색에 눈을 뜬 거냐?”
“그런 게 아니야! 나, 나는 너랑 함께하고 싶어! 가주께 허가도 받았다고!”
“……이 미친놈이!”
더는 못 참겠다.
나는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