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67
67화. Episode. 23 악몽의 끝을 향하여 (1)
“아…….”
모리츠는 저 높이 떠오른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그리웠던 빛이 저기에 있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경건한 찬송가가 그의 기분을 더욱 들뜨게 해 주었다.
리오 성은 한창 전투를 벌였는지 성 앞이 엉망진창이었다.
이곳저곳에 쌓인 시체며, 아직까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기사들의 얼굴까지.
그러나 얼마 전까지 지옥 한가운데에 있던 모리츠로서는 이곳이 낙원이었다.
피곤에 잔뜩 찌든 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리하르트!”
시체더미 사이, 오연히 서 있는 리하르트가 보였다.
모리츠는 나르를 채근했고, 나르는 곧 땅을 접어 달려 리하르트의 앞에 나타났다.
“야, 임마! 이 형님께서 살아 돌아오셨다! 으하하!”
감동적인 재회.
제딴엔 그렇게 생각했던 모리츠가 리하르트를 와락 끌어안곤 소리쳤다.
그러다가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뒤늦게서야 자신이 무슨 추태를 부리고 있는지 알아챈 것이다.
안타깝게도 동생과 형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기도 했고.
“수고했어. 진짜 큰일을 해 주었어. 모리츠.”
그러나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리하르트는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어, 어……?”
그 예상외의 반응에 모리츠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모리츠 바텐베르크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다!”
“큰 임무를 홀로 수행하신 바텐베르크의 존귀하신 분께 경의를!”
“기사의 귀감! 역시 모리츠 도련님께선 어엿한 바텐베르크이십니다!”
왈칵-, 하고 터져 나오는 기사들의 우렁찬 음성들.
그게 승전보라도 된다는 것처럼, 전투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사내들이 무기를 치켜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으어어? 내, 내가 어엿한 바텐베르크라고……?”
두눈을 휘둥그레 뜬 모리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에게 쏠리는 뜨거운 시선이 그제야 와닿았다.
“모리츠! 모리츠!”
“바텐베르크여, 영원하라!”
“와아아-!”
아,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린가.
이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던가.
그래. 나는 이런 환대를 받을 만큼 커다란 일을 해낸 용사다.
저들이 내 노고를 알고 이렇게 축하해 주는구나.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빛을 한 채로, 모리츠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곤 소리쳤다.
“내가 바텐베르크다! 내가 모리츠 바텐베르크다!”
“우와아아-!”
쿵!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뒤로 쓰러졌다.
긴장이 탁 하고 풀리니 눈꺼풀이 천근보다도 무거워졌다.
“내가…… 바텐베르크다…….”
그는 모두의 환호성을 들으며 정신을 놓았다.
그럼에도 기사들의 호응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모리츠가 워낙 기뻐하는 게 뻔히 보이니, 더욱 열심히 환대하는 것이었다.
“거 맞춰 주기 힘드네. 야! 그만, 그만!”
결국, 성대한 환영을 해 주자- 라고 넌지시 일렀던 리하르트가 그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 ◈ ◈
“으음…….”
모리츠가 눈을 뜬 건 모든게 정리되고 나서였다.
간만에 느끼는 이불보의 부드러운 감촉에 감격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간호인일까, 싶어 고개를 돌린 모리츠는 까무러칠 뻔했다.
“리하르트……? 너 여기서 뭐 해?”
“아, 일어났어?”
이놈이 왜 여기 있는가.
그가 이해 안 된다는 기색을 비췄다.
간호 같은 걸 해 줄 만큼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리하르트의 손에 웬 수첩이 들려 있었다.
익숙한 크기에 익숙한 겉표지.
“으악, 너 그거! 당장 이리 내!”
그건 모리츠의 일기이자 정찰 일지였다.
저 안에 얼마나 많은 광기가 어려 있는지는 본인 스스로가 잘 알았다.
또 그 당시 느꼈던 두려움도 여과 없이 적힌 채였다.
“자.”
리하르트는 의외로 순순히 수첩을 내밀었다.
그것을 다급히 건네받은 모리츠가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봤냐?”
“정찰 1일차던가. 첫 줄밖에 안읽었다. 남 일기 훔쳐 보는 건 취향이 아니라.”
다행이다.
기필코 이 수첩을 태워 없애리라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리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가 거기서 뭘 보았는지 들어야 해. 지금 당장 회의실로 갈 수 있겠어? 마침 시간도 맞는데.”
“그래. 어차피 씨앗 덕에 몸은 멀쩡해.”
“잘됐네.”
둘은 곧장 방을 나서 회의실로 향했다.
가는 길엔 침묵이 맴돌았다.
모리츠에겐 퍽 불편한 침묵이라, 애써 말을 건네 보았다.
“나 없는동안 이곳엔 별일 없었냐?”
“많았지. 꽤 많은 게 변했어.”
“어떤거?”
“그건 나중에 직접 보면 알아.”
“쳇…….”
결국 입 다물고 회의실로 가야 했다.
그곳에는 이미 레오를 비롯한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다.
“오오! 모리츠 도련님. 깨어나셨습니까?”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는지요.”
각 무가의 지휘관들은 벌떡 일어서며 그를 맞이했다.
마치 영웅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모리츠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아니, 나 정도면 영웅 맞잖아?’
그 지옥에서 얼마나 갖은 고생을 했는데.
내심 고개를 주억거리던 참이었다.
어느샌가 다시 자리에 착석한 수뇌부들이 모리츠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의 보고를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흠흠, 제가 적군의 본진에서 보고 온 것은…….”
길고 긴 일대기가 모리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폴린 성 쪽에 위치한 마을들의 상태가 어떠한지부터 시작해서 폴린 성에서의 활약까지.
반은 자신에 대한 찬사였고, 또 반은 적들의 끔찍함을 표하는 묘사였다.
“허어……!”
모리츠의 보고가 끝나자 회의실이 탄식으로 채워졌다.
“그 구슬이란 게 정말 언데드를 통제하고 있었단 건가.”
“잠깐 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망가질 정도의 마기라니!”
“폴린 성을 가득 매운 괴물이라…….”
곧이어진 웅성거림.
수뇌부들이 심각한 얼굴로 저마다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모리츠 도련님의 말씀대로라면, 지금 리오 성을 습격하는 언데드는 통제에서 벗어난 놈들이군요.”
“진짜배기는 빠졌으니 적의 머릿수를 줄일 기회요.”
“그 진짜배기가 폴린 성에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가주급 데스나이트도 그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누구는 기회라 말하고, 누구는 강대한 괴물이 한데 모였다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리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모리츠. 정말 괴물을 뱉어 내는 살덩어리가 있었다고?”
“그래. 아주 역겹게 생긴…… 아우,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야.”
“흐음…….”
리하르트의 얼굴이 상념에 잠겼다.
괴물을 뱉어 내는 살덩어리.
그건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엔 없던 것이었다.
‘이것도 변수 중 하나였나.’
물론 살덩어리 자체의 존재는 알고 있다.
우습지만 그것의 이름은 ‘꽃봉오리’였다.
마계의 하층민이라 할 수 있는 괴물을 낳는 모체.
“잘했다. 그걸 파괴한 건 정말 칭찬할 수밖에 없겠네.”
리하르트가 모리츠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따라서 손바닥을 부딪쳤다.
“좋아. 칭찬은 이만하면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예!”
◈ ◈ ◈
회의는 유의미한 진전과 함께 끝이 났다.
모리츠가 들고 온 적들의 정보가 앞길을 제시해 준 덕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으나, 딱 한 가지만은 변수가 존재했다.
“폴린 성에 마수들이 가득 찼단 말이지. 그냥 냅다 쳐들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
툭, 툭-
나는 홀로 회의실에 남아 테이블을 두드렸다.
회의에 나온 의견들을 다시 복기하며 가장 나은 선택지를 물색하는 중이었다.
“좋아. 이제 그만 끝을 볼 때가 되었다.”
결국 나온 답은 슬슬 이 전쟁을 끝내자는 것이었다.
애당초 내가 연합에게 바라던 것은 이미 전부 이뤘으니 말이다.
연합은 템플나이츠가 될 싹을 찬란히 틔웠고, 더 이상 마기가 낯설지 않은 베테랑이 되었다.
미래를 위한 사전 연습은 충분히 한 셈이다.
지금의 기사들은 폴린 성을 장악한 적들을 괴멸시킬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물며 머릿수가 유일한 장점이던 녀석들이 알아서 갈려 나가 주고 있는 판국 아닌가.
대비해야 할 건 폴린 성의 마수들과 가주급 데스나이트들.
어쩌면 리치들 곁에는 더욱 강한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고.
“뭐, 변수는 그쪽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쪽도 아주 아주 무서운 변수가 있다.
물론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겠지만.
나는 생각을 정리하곤 회의실로 나섰다.
곧장 수련장으로 향하려는데, 이상하게 성채 밖이 시끄러웠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소음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노라고! 내가 누구더냐!”
“아이고! 바텐베르크의 세 번째 혈통, 모리츠 바텐베르크 님이십니다!”
그러자 웃기는 광경이 공터에 펼쳐졌다.
모리츠가 기사들을 죄다 끌어 모아 놓은 채,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 같은 게.
얼굴은 시뻘게져 갖곤 기사들이 호응해 줄 때마다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저게 핏줄상으로는 내 형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래! 나는 바텐베르크. 모리츠 바텐베르크로소이다!”
아마 저놈은 모르는 모양이다.
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작태에 기사들이 열심히 환호하는 이유를.
모리츠는 아직 열여덟 살 난 어린애였다.
물론 나보다는 형이지만 그건 제쳐 두고.
그런 어린 애가 한껏 자기 자랑을 해 대는데, 어느 어른이 찬물을 끼얹겠는가.
하물며 지금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이었으니.
그 증거로 모여든 기사들의 얼굴엔 모리츠가 퍽 귀엽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어휴.”
나는 한숨을 내쉬곤 못난 형에게 다가갔다.
그가 큰일을 해냈다는 건 사실이나, 조금만 점잖게 있으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성자님! 신의 가호가 있기를, 호-르!”
나를 본 기사들이 성호를 그으며 인사했다.
메리가 연합에 퍼트린 호르교의 인사법이었다.
“그래. 너희도 신의 가호가 있기를, 호-르.”
대충 대꾸해 주곤 멀뚱히 서 있는 모리츠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에게 줄 게 있었다.
“모리츠. 네 검 좀 줘 봐라.”
“뭐? 왜?”
“신께서 너한테 선물을 하사하겠노라…….”
말도 끝마치기 전에 모리츠가 검을 찌를 기세로 내밀었다.
깜짝이야.
“무, 무슨 선물인데? 빨리!”
“기다려.”
채근하는 그를 밀어 두곤 검을 살펴보았다.
누가 금수저 집안 아니랄까 봐 좋은 명검이었다.
이 정도면 품질은 합격.
나는 그의 검에 신앙을 밀어 넣었다.
평소 오러처럼 쓰던 방식이 아닌, 축복의 방식으로.
일만, 오만, 십만…….
밑 빠진 독처럼 게걸스럽게 빛을 탐하던 검이 어느 순간 밝게 반짝였다.
[최하급 성검(B+)이 제작되었습니다.]“받아. 호르 신의 축복이 깃든 성검이다.”
“어……?”
얼빠진 모리츠에게 다시 검을 내밀었다.
대략 오십만의 신앙을 먹어치운 최하급 성검.
상당한 출혈이 있었지만 괜찮다.
“잘 들어라! 모리츠는 호르 신의 기사, 성기사가 되었다! 그에 이 성검을 하사받은 것이다!”
반짝이는 성검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시선에 열기가 일렁였으니.
좋은 무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기사인데, 신의 축복이 깃든 애병은 오죽할까.
저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엔 신앙이 아깝지 않았다.
“하, 하하하! 성검이라니……!”
모리츠는 제 검을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그런 그에게 기사들이 몹시 부럽다는 기색으로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모리츠 도련님.”
“이야…… 성기사까지 되셨군요. 가히 리오 성의 두 번째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으십니다.”
쫑긋, 모리츠의 귀가 움찔거렸다.
무엇이 문제일까.
방방 뛰던 그가 의문스럽단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두 번째? 그럼 첫 번째는 누군데?”
“그야…….”
“성자님이시죠. 빛을 이끌고 오신 등불이자 영웅!”
갑자기 왜 내게로 시선이 쏠리는 건지.
나는 가만히 서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사실 맞는 소리지.
내가 이곳에서 한 게 몇 갠데.
모리츠가 정찰을 나간 동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지난 며칠간 리오 성은 변해도 한참 변했다.
“참고로 나는 성검도 필요 없어. 신께 특혜를 받는 몸이라.”
파앗, 손바닥 위에 신앙을 밝히며 못난 형에게 웃어 보였다.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적잖게 눈꼴 시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