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8
8화. Episode. 03 무아지경 (2)
“후우…….”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의원의 치료를 받아 붕대를 감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도, 도련님.”
때 늦은 저녁 식사 거리를 가져온 그녀가 연신 나의 기색을 살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어머니는 좀 어때?”
“조, 조금이나마 호전되셨다고, 기적이라고 의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행이네.”
우물쭈물하던 메리가 내게 물어왔다.
“정말로 호르라는 신께서 제 소망을 들어 주신 건가요?”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너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 거야.”
내 말에도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젯밤과 같은 완전한 불신은 보이지 않았다.
“확신을 가져. 지금 너의 어머니를 낫게 해 줄 것은 오직 믿음뿐이야.”
말로 해서는 안 되겠지.
믿음이란 그리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앗……!”
“가만히 있어.”
화들짝 놀라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게 바로 믿음의 힘이야.”
우웅-
반딧불 같은 빛이 내 손을 타고 흘러가 시녀의 손에 머물렀다.
“따, 따스한 느낌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신기한 듯 제 손을 바라보았다.
“어때. 아직도 신을 못 믿겠어?”
내 말에 머뭇거리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신이라는 게 있을 리가……!”
“믿지 않고자 하면 얼마든지 안 믿을 수 있고, 믿고자 하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
“아…….”
“다만 이거 하나는 알아 둬. 신께서는 네가 신도가 되어 구원받길 원하셔.”
“……!”
그녀의 두 눈이 잔뜩 흔들렸다.
“너뿐만이 아냐. 진실된 기도가 어머니를 살릴 거야. 신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그 말에 몇 차례 주먹을 말아 쥐던 메리.
이내 내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
“저, 저도 신을 섬기고 싶어요!”
‘나이스! 신도 임명!’
쾌재를 부르던 것도 잠시. 메리의 마음이 바뀔세라 재빨리 신도 자격을 내렸다.
『신도를 임명했습니다.』
『신도의 기도로부터 하루 한 번, 최대 100의 신앙을 얻습니다.』
『어린 양에게 당신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그런데 시스템 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초의 신도입니다!』
『한정 보상 ? 당신의 숨겨진 특기를 개화합니다.』
◈ ◈ ◈
메리를 방에서 내보낸 후.
식어 버린 음식을 깨작거리며 허공을 바라봤다.
내 눈높이에 선물 상자 모양의 그림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게 숨겨진 특기라고?”
이건 예상치도 못한 선물인데.
시스템이 말하는 ‘나의 숨겨진 특기’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 몸, ‘리하르트’가 가지고 있던 특기일까, 혹은 현실에서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던 본래의 나의 특기인 것일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기본 베이스가 엉망인 몸이다.
특기의 추가는 나쁠 것이 전혀 없는 만큼, 이는 한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후우…….”
나는 한 차례 심호흡하고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띠링-
상자 그림에 손가락이 닿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빛이 내뿜어졌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침을 삼켰다.
곧 밝은 빛이 사그라지며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특기 – 초집중을 획득하셨습니다.』
“초집중……?”
본 적이 없는 특기였지만, 직관적인 이름이라 어떤 효과인지는 대충 감이 왔다.
초집중.
어떠한 것에 그저 집중한다는 것 아니던가.
솔직히 말하면, 기대만큼의 것은 아니었다.
‘성장 가능성도 없는 무(無) 랭크 특기라니…….’
◈ ◈ ◈
『신도 – 메리가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80의 신앙을 획득합니다.』
『메리에게 강한 활력과 행운이 감돕니다.』
『신자 – 멜라인이 기도를 올렸습니다.』
『30의 신앙을 획득합니다.』
『멜라인에게 활력과 행운이 감돕니다.』
“오.”
아침에 눈을 뜨자 반겨 준 것은 모녀의 기도였다. 메리가 신도가 된 덕에 더 많은 신앙을 획득할 수 있었다.
어서 멜라인도 신도가 되어야 할 텐데.
식사를 들고 찾아올 메리를 기다리며, 물잔에 신앙을 담아 냈다.
다음은 내 차례다.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금방 결정을 내렸다.
『마나 둔감증이 완화되어 갑니다.』
『기초 검술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현재 랭크 F → E』
“후…….”
마나가 아주 약간이지만 좀 더 선명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기초 검술의 랭크까지 상승했다.
그래, 이렇게 차근차근 나아가면 될 것이다.
나머지 신앙은 일단 남겨 두기로 했다.
나는 아침을 대충 때우곤 아론과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과였다. 연무장에 도착해 몸을 푸는 내게 아론이 물었다.
“오늘부턴 검을 수련하시는 겁니까?”
“그래.”
무덤덤한 표정의 아론을 보자 문득 우려되는 것이 있었다.
저놈,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 신경 좀 쓰던데.
“제가 옆에서 봐 드리겠습니다. 자고로 검술 수련이란 올바른 걸음걸음으로 드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아…….”
내가 아론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검술에서까지 일대일 마크를 하겠노라 선언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론의 조언이 도움 되는 것은 사실이라 내치기도 뭐했다.
한숨을 푹 쉬고는 목검을 쥐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아론의 말이 들려왔다.
“흠흠. 체력 단련부터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일단 일주일 동안은 검술 수련만 할 거야. 기껏 배웠으니 몸에 익혀야 하지 않겠어?”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자세를 취했다.
정수리를 희생하며 배웠던 터라 머릿속에는 정확히 각인되어 있었다.
나는 우선 횡 베기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손잡이에서부터 느껴지는 검의 무게를 느끼며, 최대한 곧고 절도 있게 한일자로 휘둘러야 한다.
휙-!
“…….”
내가 봐도 어설픈 동작이었다.
그에 맞춰 아론의 추임새를 넣었다.
“발을 나무의 뿌리라고 생각하십시오. 하체가 땅에 고정되어야 합니다. 자고로 기사의 하체는 나무와도 같아서 땅의 정기를…….”
“알고 있어.”
물론 알고 있는 것과 그걸 몸으로 해내는 것은 영 다른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별 수 없었다.
‘수련만이 살 길이다 생각하고 미친 듯이 해야지.’
오늘 하루를 횡 베기에 쏟아붓겠다고 다짐하며 목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한참을 휘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째서인지 검을 휘두를수록, 점점 주변의 소음이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뭐라 뭐라 떠들던 아론이나, 기합 소리를 내뱉던 다른 기사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호흡 한 번에 횡 베기 한 번.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기 – 초집중 발동.』
◈ ◈ ◈
“도련님?”
아론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도련님을 바라보았다.
자세를 교정해 줄 때마다 대답을 하던 리하르트가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진 것이다.
반복되는 잔소리에 화가 나신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리하르트는 말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라앉은 눈빛으로, 잔잔한 호수 같은 기세를 풍기며.
“이건……?”
그 모습을 본 아론은 두 눈을 수차례 비볐다.
‘무아지경?’
영락없는 무아지경이었다.
숙련된 무인이 깨달음을 얻을 때에야 들어선다는 극한의 집중 상태가 아닌가.
아론은 여태껏 어설프게만 느껴졌던 이 망나니에게서 처음으로 강렬한 기백을 느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리하르트가 검을 잡은 지는 오늘로 이틀 차에 불과했다.
한데 어찌 무아지경에 빠진단 말인가.
이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리하르트의 기세는 점점 연무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저…… 저건?!”
“쉿.”
각자 수련에 열중하던 기사들의 시선이 리하르트에게 집중되었다.
기합으로 소란스러웠던 연무장이 점차 침묵으로 뒤덮였다.
척-!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리하르트의 주변을 둘러싸 검례를 취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에 대한, 무인들의 예우이자 보호였다.
침묵이 내려앉은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오직 리하르트만이 움직였다.
‘점점 자세가 수정되고 있다.’
그를 지켜보는 기사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잘못된 자세로 계속 수련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자칫 그대로 굳어져 다신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리하르트는 달랐다.
뒤틀렸던 검로가 서서히 곧게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약했던 디딤발이 뿌리처럼 굳게 땅을 디뎠다.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는 올바른 자세로, 몸의 움직임을 바꿔 나갔다.
“하, 꼴에 바텐베르크라는 건가.”
아론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홱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것일까.
발락이 뒷짐을 쥔 채 서 있었다.
평소라면 그에게 예를 갖춰야 했지만, 지금은 리하르트를 지키고 있는 상태.
아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께선 무아지경에 빠지셨습니다. 기사들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되었다.”
애초에 발락은 그런 거추장스러운 예의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가 온통 관심을 쏟는 것은 리하르트였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지?”
“두 시간쯤 되었습니다.”
발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놈에겐 내가 왔었다는 것을 말하지 마라.”
그렇게 말한 발락이 뒤돌아서 연무장을 떠났다. 한결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쌔액-!
리하르트가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수련은 그렇게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망나니 리하르트.
마나 불감증으로 인해 좌절했던 그가, 지금은 온 기사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것도 벌써 몇 시간이나.
검례를 취하고 있던 아론은 검을 멈추지 않는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실핏줄이 불거지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몸.
그의 육체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슬슬 멈추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론이 적당한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였다.
콰당-
“도련님!”
어찌할 새도 없이 리하르트가 쓰러져 버렸다.
◈ ◈ ◈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기초 검술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현재 숙련 랭크 E → C』
“어…….”
나는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분명 난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난 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온몸에 근육통이 내달린다.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짜릿한 고통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초집중이라는 특기를 너무 무시한 것 같은데.’
조금 전의 그 기묘한 감각이 잊히지 않았다.
아마 내가 해낸 것은 흔히들 말하는 무아지경이었을 것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으나, 마음만큼은 성취감에 깃털처럼 가벼웠다.
슬쩍 창밖을 바라보니 어둑한 하늘에 달이 걸려 있었다. 얼마나 수련을 했고, 얼마나 정신을 잃은 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도 너무 남용하면 안 되겠는데.”
쓰러질 때까지 수련하다니.
제 몸 망치기 딱 좋은 특기였다.
앞으론 아론에게 적당한 선에서 멈추게 해 달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