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Episode. 32 정원을 가꾸는 (1)
『최하급 성기사 모리츠 바텐베르크 – 하급 성기사 자격 충족.』
『최하급 성기사 아론 마이어 – 하급 성기사 자격 충족.』
『최하급 성기사 잭 슈웨거 – 하급 성기사…….』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최하급 성기사 30/30』
『하급 성기사 5/5』
정신 사납게 띠링띠링 울리던 시스템 창은 곧 정리되었다.
최하급 성기사 중에 다섯이 하급으로 승급했고, 그 빈자리를 기드나 휴거를 비롯한 이들이 꿰찼다.
음, 경사였다.
“호, 호-르!”
성의 병력이 격양된 얼굴로 신을 추앙했다.
“기적이다!”
“호르께서 우리를 보듬어 주셨다!”
곧 죽을 것처럼 굴던 병사들이 환희에 찬 소리를 질렀다.
그 불거진 면면들엔 더 이상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기적으로 천만의 신앙을 사용했으나,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본디 사람의 마음이란 건 천금을 주고도 얻어 낼 수 없는 것이니.
두터워진 저들의 신앙심은 천만 신앙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난 별 위에 올라탄 채로 성을 내려다보았다.
성 전역을 휩쓴 빛은, 오물을 지우는 동시에 곳곳에 스며들었다.
성스러운 기운을 피워 올리는 땅, 성스러운 기운을 품은 성채와 성벽.
조금 전까지 오물로 범벅되어 시궁창만도 못하던 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렇게 잠시간 성을 살피고 있는데, 저 아래 가면 쓴 엘프들과 눈이 마주쳤다.
“…….”
나는 입술을 달싹여 무언의 뜻을 전해 주었다.
이로써 땅 고르기는 끝났다고.
이 다음부터는 너희들의 몫이라고.
다행히 내 뜻이 잘 전달된 것인지, 가면 쓴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빛이 지워 낸 건 병균과 오물이지, 괴물의 시체는 아니었다.
성 앞에 쌓여 있는 시체들에선 아직도 악취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또다시 역병이 돌 판이었다.
“윽!”
더군다나 격전에 큰 부상을 입은 사내들도 있었다.
환부를 파먹는 역병은 사라졌어도, 심각한 상처는 그대로였다.
그때 가면과 후드로 정체를 가린 자들이 나타났다.
『치유의 빛 (E)』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상태가 위중한 부상자들에게 달라붙었다.
이내 손끝에서 따스한 녹색 빛이 일렁였다.
20인의 최하급 사제들.
엘프로서는 실력 좋은 마법사이며, 신도로선 사제인 귀중한 병력.
마침내 그들이 활약할 때였다.
“허어…….”
왕실 기사단장, 가스타인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가면과 후드로 정체를 가렸으나, 코끝을 스치는 마나의 풀내음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누구인가 했더니…… 엘프들이었단 말인가.”
자연이라는 본질에 가까운 마나.
그것을 다루는 이들은 엘프 말곤 없다.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이들이 어째서 성자와 동행하는지는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부상자들을 수습한 리오 성은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연합의 지휘관이 대뜸 소리쳤다.
그리고 그 지시가 미처 다 떨어지기도 전에 기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병사들로선 무척 의외인 일이었다.
당연히 말단인 자신들이 잡일을 도맡을 줄 알았건만.
귀한 전력이신 기사 나리들이 군말 없이 나서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세상 어떤 기사들이 전장 정리를 한다냐.”
병사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쑥덕였다.
“리오 성에선 병사든 기사든, 다 같은 한 명의 신도일 뿐이다.”
아발트가 그들을 스쳐 지나며 툭 내뱉었다.
“…….”
“쩝…….”
병사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곧, 머쓱하니 볼을 긁적였다.
병사와 기사.
결코 동격이 될 수 없는 계급의 격차는 일방적인 자격지심을 일으켰다.
한데 정작 기사들은 그런 병사들을 다 같은 하나의 신도로 대우해 주고 있었다.
“……서둘러서 정리하자.”
“그래. 그러자고.”
얼굴을 붉힌 병사들이 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들 사이에서 커 나가던 열등감이 새삼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상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전장에 달라붙으니, 전장은 제법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괴물들의 사체를 치우는 건 무척 고역이었으나, 성 전역에 성스러운 빛이 잔류하는 지금이 기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의 사체가 한데 모였다.
그 위에 기사 수십이 낑낑대며 성유를 들이붓고, 엘프들이 마법을 부려 점화시켰다.
그러나 타오르는 괴물의 사체 더미에 시선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르륵-!
도열한 병력들 앞, 따로 모아 놓은 백여 구의 시체가 불꽃에 휩싸였다.
이번 전투에 스러진 동료들이었다.
“…….”
주변의 분위기가 먹먹해졌다.
억눌린 아우성이 눈에 보일 듯 아른거렸다.
이를 악물곤 눈물 흘리는 병사.
저 대신 죽어 버린 동료를 부르짖는 병사.
대게 상실에 익숙하지 못한 병사들이 약한 모습을 내 보였다.
연합의 기사들이 조용히 병사들을 바라보다 입을 뗐다.
“어둠에 등불 비추어라.”
“어서 등불 비추어라.”
잔잔한 읊조림.
눈물 흘리던 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 저 형제 구원하랴.”
“형제여 너 어찌 잠겨 가나.”
“너 빨리 등불 빛 보아라.”
연합의 노래는 너무도 덤덤했다.
한데 그 음성엔 심장을 콱 움켜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숱하게 떠나 보낸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노래.
찬송가가 아닌 추모의 노래.
“어둔 밤 지나고.”
“등불 같은 태양 떠오르니.”
“형제여 너 어찌 잠겨 가나.”
화르륵-
죽은 이들을 휘어감은 불길이 일렁였다.
『형제여 너 이미 잠겼구나』
『그 눈은 빛을 볼 수 없으니』
『부디 열이라도 온몸으로 느껴 다오』
마지막 구절은 리하르트의 몫이었다.
노래의 끝맺음과 동시에, 찬란한 빛이 일어나 불길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불길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통곡이 새어 나왔다.
기사들 딴엔 위로해 주고자 부른 노래인데, 도리어 병사들의 마음을 간질인 꼴이었다.
그 통곡이 사그라들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
“놈들 자체는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습니다.”
“끔찍하기론 언데드가 더했지요. 물론 전염병을 제외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회의실에 모인 수뇌부들이 복기를 시작했다.
“개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정병 서넛으로도 한 마리 정돈 능히 쓰러트릴 수 있을 듯합니다.”
“대포나 공성 무기 같은 것들을 좀 더 활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역병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하여…….”
방금 전투를 치렀음에도 제법 희망찬 이야기들이 오갔다.
수뇌부들은 밝은 얼굴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의자에 몸을 파묻곤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굳이 방어만 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다 누군가가 위험한 발언을 내뱉었다.
왕실 기사단장, 마틴 가스타인 백작이었다.
“기사 중 정예를 꾸려 적진을 칩시다!”
경지에 도달한 무인 특유의 정광 어린 눈빛과 용맹한 기세.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일일이 열거했다.
들어 보니 하나같이 일리 있고 설득력 있는 말들이었다.
물론, 그저 듣고만 있기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우리가 상대한 놈들은 1세대입니다.”
뚝-
쉴 새 없이 떠들던 가스타인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1세대라는 말이 그토록 불길한 단어였을까.
굳은 얼굴들이 전부 나를 향했다.
“혹시 2세대, 3세대도 있다는…….”
“그렇습니다. 놈들은 계속 강해져서 덤벼들 겁니다.”
정병 서넛으로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했던가.
아쉽게도 그건 1세대까지나 통용되는 말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놈들의 흉악함은 강대해질 것이고, 놈들이 품은 역병은 악독해질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예를 꾸려 돌격해야 합니다. 놈들의 세가 약한 지금이 기회 아니겠습니까!”
대뜸 외치는 가스타인 백작의 음성에 힘이 실렸다.
주변의 수뇌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런 전쟁은 왕국의 살을 파먹는 것밖에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나라 상황이 위태로운데, 이 이상 암운이 커져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주들이 나서겠소! 물론 죽음은 면치 못할 것이나, 이 한 몸 문드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적의 성을 무너트리고 죽겠소!”
연합의 가주들이 용맹을 뽐냈다.
냉큼 가서 암운과 함께 쓰러지겠노라 말하는 모습이 영웅의 기개에 못지않았다.
그에 내가 무어라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
“절대 불가하오.”
줄곧 잠자코 있던 오르드 성주가 선수를 쳤다.
“그대들이 말했듯 바렌의 상황은 좋지 못하오. 이런 시기에 그대들마저 희생하면 대체 누가 바렌을 지탱하겠단 거요.”
딱 내가 하려던 말이었다.
당장 역병의 세가 약하다 하여 바렌의 세가 강하단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바렌은 타국의 지원을 바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며, 왕도의 믿음이 타 영지로 퍼져 나가지도 않았다.
“언제부터 바렌의 적이 역병뿐이었습니까.”
난 전부 들으라는 듯 크게 중얼거렸다.
역병이라는 벽 뒤엔 당신들이 오랫동안 싸워 온 남대륙이 있다고.
그리고 역병에 피해를 입은 건 남대륙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과연 남대륙은 그 피해의 화살을 누구에게 돌릴까.
따지고 보면 엄연히 바렌의 땅에서 흘러나온 역병인데.
“…….”
하물며 그들은 바렌의 주적이었다.
바렌은 그것을 잊어선 안 됐다.
“허…… 그랬지요. 남대륙이 있었지요.”
수뇌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반드시 깨부숴야만 할 벽인 줄 알았던 역병이, 한편으로는 저들의 주적을 막아선 방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다.
“우리는 여기서 역병을 막아설 것이오.”
오르드 성주가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의 뜨거운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타국은 역병 때문에라도 우리 바렌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가 침을 삼키며 입을 쉬었다.
동시에 묘한 눈짓을 보내는 통에, 내가 그의 뒷말을 받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남대륙은 역병 때문에라도 이쪽을 치지 못할 것이며.”
수뇌부들이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위기를 기회로- 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것 같았다.
“바렌은 이 악몽 뒤에서, 무너져 가던 정기를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길을 헤매던 사내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줬다.
기껏 정성들여 준비하고 있는 판을 벗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장소는 그 어디도 아닌 이곳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