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ce genius choreographer RAW novel - Chapter 58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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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전.
나는 작업을 할 때, 담당한 아티스트들과 마주볼 일이 없이 혼자서 작업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안무 작업을 하다보면, 가끔 이 춤을 추는 아티스트의 의견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그 아이돌이 춤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라거나, 세간에서 춤으로 유명한 이들이면 더더욱.
하지만 나는 지금껏 그 상황에서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해 본 경험이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얼굴에 끔찍했던 화상 자국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해브잇의 안무를 이결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건 내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안무실 좋네요.”
터벅터벅.
이결은 안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휘휘 둘러보며 내게 다가온다.
…안무실이 좋다니.
누가 봐도 그냥 하는 말이다.
안무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다른 게 있을 리가.
그거 내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아 멀뚱멀뚱 나를 쳐다봤다.
‘떨리긴 무슨.’
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나랑 안무를 짠다고 떨린다더니.
어째 내가 더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긴, 저 녀석은 원래 저랬나?’
생각해보면 이결은 처음부터 그랬다.
녀석들이 편의점에서 몰래 간식을 먹다가, 연습실에서 걸렸을 때도.
걸리면 걸린 거지, 난 이미 배 채워서 만족한다-. 라는 느낌으로 있는다거나…
조금은 다른 이들에 비해 감정의 변화가 덤덤하다고나 할까.
‘오히려 좋아.’
오늘 이결을 부른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춤을 잘 추는 해브잇 멤버들. 그 중에서도 이결이 가장 잘 춰서 부른 것도 있긴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나를 조금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트레이너와 연습생이라는 관계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결에게선 그런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녀석이 특이한 거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더 편하다.
“오기 전에 쌤이 만든 안무 다 봤어요.”
그렇게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녀석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다 봤다고?”
나는 그의 말에 놀라서 쳐다봤다.
하지만 이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봤자 네 곡 밖에 없던데요? 나른한 오후, 새싹 공놀이.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두 곡.”
아, 그렇네.
순간 회귀 전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내가 만든 안무가 많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네 곡이면 다 볼만 하구나.
“그래서 감상이 어때?”
어쩐지 평가를 받는 느낌이었다.
본인 노래를 담당하게 된 안무가의 이전 작품들.
이결은 어떻게 봤을까?
“솔직히 왜 회사에서 쌤한테 안무를 맡겼는지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거든요.”
“그래?”
시작이 불안한데.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다.
내가 멤버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엄청 유명한 안무가도 아니고.
게다가 처음엔 댄스 트레이너로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전 이미 쌤 팬이 됐어요. 아니, 춤 좀 추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팬이 될 수밖에 없을 걸요?”
하지만 곧이어 이결의 후한 평가가 이어진다.
나도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게 평가받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좀 쑥스럽기도 하네.
이결이 자기 말에 자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전 그 중에서도 퍼플링크의 안무가 제일 좋더라구요. 어떻게 아이돌을 그 더러운 무대 바닥에 눕힐 생각을 하셨을까…!”
“아니, 야.”
근데 어째 감탄의 포인트가 좀 다른 것 같은데.
곧바로 이결이 장난스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무튼, 그래서 더 열의가 생겼어요. 저희 데뷔곡 안무도 그런 멋진 안무로 만들고 싶어서.”
“하하… 과정이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네.”
이 녀석은 장난 칠 때도 평소와 말투가 똑같아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안 가네.
아무튼 그렇게 녀석에게 인정 아닌 인정을 받고.
본격적으로 안무를 만들기 전.
핸드폰으로 이번 해브잇의 타이틀곡을 찾으며 이결에게 물었다.
“안무 만들어본 적 있어?”
이결이 하고 있던 양반다리를 쭉 뻗고 스트레칭을 하며 대답한다.
“어… 아뇨. 만들었다기보다. 대충 ‘이 노래에 이렇게 추면 괜찮겠다! 싶어서 춰본 적은 있는데.”
“오, 괜찮은데?”
“?”
내 감탄에 의외라는 듯 돌아보는 이결.
“그게 괜찮은 거… 맞아요?”
“그런 느낌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 동작이 노래와 어울리는지, 컨셉과 어울리는 지는 일단 둘째 문제지.”
이결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 없다는 듯 덧붙인다.
“그런데 사실 프리스타일이나 다름없어요. 그 동작들을 기억하고, 더 나은 동작으로 수정하고… 그런 적은 없는데.”
“괜찮아, 괜찮아.”
그 자신만의 느낌에서 동작이 나온다는 게 중요한 거다.
“안무를 만드는 게, 사실 노래를 만드는 거랑 비슷하거든.”
“…노래랑요?”
“음표를 이리저리 배치해보고, 아무 생각 없이 코드를 나열하면서 창작을 건져낼 수 있잖아? 안무도 그래.
일단 노래를 듣고 동작을 떠올리는 영감이 중요한 거지.”
툭툭,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한 번 몸으로 해 보자. 너, 데뷔 앨범 컨셉이 뭔지 들었어?”
“네. ‘도심’이요.”
“음… 처음에는 그 도심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지 말고 한번 춰 봐.”
“도심을 생각하지 말고…”
내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결.
“키워드에 갇혀있으면 떠오를 것도 안 떠오르거든.”
“아, 네.”
키워드를 생각하고, 곧바로 그 키워드와 노래에 맞는 안무를 만들어 내는 것.
나는 가능하지만, 이결은 힘들거다.
그는 안무를 처음 만들어 보는 입장이니까.
일단, 이결이 오기 전에 내가 떠올렸던 ‘도심 속의 사랑’ 그 느낌도 비밀로 하고,
이결의 춤을 보기로 했다.
“노래 자체를 듣고 떠오르는 동작들을 컨셉에 맞춰보는 방식으로.”
“좋아요.”
이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쭉쭉 뻗는다.
“나는 보고만 있을 테니, 자유롭게 춰 봐.”
이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준비를 하는 사이, 그가 추는 동작을 까먹지 않기 위해 촬영을 세팅해 두었다.
♬♪♩
‘재밌네.’
흘러나오는 노래.
그리고 그가 춤 보따리에서 안무를 꺼내는 것처럼. 노래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xxx
해브잇의 숙소.
삑삑삑.
띠리릭.
“야, 최이결 왔다!”
“어땠어?”
숙소의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멤버들이 순식간에 입구로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방금 샤워를 마쳤는지, 뽀송뽀송한 모습이었다.
“뭐야, 다들 어디 나갔다 왔어? 오늘 다들 아무것도 없지 않았어?”
“연습하러 갔다 왔지.”
이결이 물어보자, 희민이 대답했다.
쉬는 날임에도 개인 연습을 다녀 온 모양이었다.
“매니저님이 그랬잖아. 본격적으로 안무 나오면 숙소-연습-촬영 스케줄로 쉴 날도 없을 거라고. 쉴 때 좀 쉬지.”
“네가 일하는 데 우리가 어떻게 쉬냐.”
“…좀 감동.”
멤버들이 이결의 손을 잡고 숙소 안으로 이끈다.
“그것보다, 안무 얼마 정도 나왔어? 바로 좀 가르쳐 주면 안 되냐?”
마음 급한 현우의 말.
하지만 금세 다른 멤버들도 동의하며 말했다.
“안무 얼마정도 됐어? 바로 좀 가르쳐 주라.”
“아 맞네! 미리 익혀두면 되겠네.”
“멤버가 안무에 참여했으니, 덕좀 보자.”
하지만 이결은 그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지금 익히는 거 아무런 소용 없을 거야. 안무가 어떻게 바뀔지 아직 상상이 안 되서.”
“…그 정도야?”
“응. 최연우 쌤 진짜…”
이결이 생각하다가, 뭔가 올라오는 감정을 꾹 삼킨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내쉬며 가다듬는 이결.
멤버들은 이결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뭐지? 뭔가 당한 게 많은 건가?
멤버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이결의 입이 열렸다.
“괴물이야.”
“???”
괴물이라니?
이결은 이어서 설명을 하려다가, 다시 다문다.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안무들을 보고, 쓸 만한 부분들을 딱딱 골라내던 모습.
이게 맞나? 싶은 동작들을 골라내더니, 오히려 그 부분을 안무 중간의 포인트로 잡아버리는 것.
그리고 뒷부분의 안무가 정해지자, 유기적인 연결을 위해서 앞의 동작들을 바로바로 수정하는 것까지.
“모든 안무가가 그런 걸까?”
“대체 왜 그래?”
멤버들이 궁금해 미치려고 하는 것도 그의 눈엔 보이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니 또 감탄이 일어난다.
최연우의 그 모습들이.
이결이 정신을 차리고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전에 한 번 최연우 쌤은 아이돌로 가도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냐. 그 사람 아이돌 하면 안 돼.”
“응? 왜?”
“그런 사람이 아이돌을 한다는 건, 우리나라 안무계에 큰 별이 지는 거라고.”
“…뭔 소리 하는 거야? 야, 정신 차려!”
평소 투닥대는 현우가 이결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댄다.
하지만 이결은 그런 그의 행동에도 아랑곳 않았다.
“아무튼, 하나 확신하고 있는 건 있어.”
“뭔데?”
이제 좀 알아들을 얘기를 하려나?
바라보는 멤버들에게, 이결은 확신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노래와 안무가 퀄리티가 부족하다는 소리는 절대 안 들을 거라는 거.”
xxx
이결과의 안무 작업. 그 첫 날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뒤로한 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니,
불이 다 꺼져 있는 집안 거실.
어둠의 한 가운데 검은 형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삼 주, 아니 한 달 정도 못 본 것 같은데.
‘그 녀석’이 오랜만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 오늘 여기서 잘래…”
딸칵.
불을 키니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 형체.
큰 대(大)자로 뻗어 누운 채 잔뜩 눌린 목소리로 말하는 남자, 헬리였다.
피곤함이 최고조에 달했는지, 얼굴을 뒤돌아 볼 힘도 없는 모양이다.
“작업 끝냈어? 어땠어?”
말로만 들었던 대로, 정말 70번이나 수정을 한 건 아니겠지?
물어보니, 그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두 곡 동시에 작업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뭐?”
안 그래도 단순히 고생을 한 것치고는 누워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두 곡을 함께 작업 한 거였어?
“하울 보이즈 말고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어?”
“응. 타이틀곡은 아니고, 수록곡으로 앨범에 싣고 싶다고 하더라고.”
헬리가 엎드려있던 몸을 빙글 뒤집었다.
하지만 여전히 천장을 멍하니 본 채로 대답한다.
하긴, 완성된 곡을 단순히 회사에 넘긴 것도 아니고.
수정 작업까지 했다면, 이토록 뻗은 것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두 번째 곡은 타이틀곡이 아닌 게 다행이다.”
쪼로록.
물 한잔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
“그치. 그것도 하울 보이즈 노래처럼 쪼아댔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과로사로.”
역시 MW엔터는 익히 들은 명성대로 작곡가를 한참 괴롭힌 모양이긴 하다.
“그 두 번째 노래는, 수정 요구 안 해왔어?”
“해왔지. 그래도 심하진 않았어. 노래 자체가 이번 컨셉에 잘 맞는다고 하더라고.”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헬리가 말했다.
“신기하더라. 그 노래, 그냥 빡! 하고 스페인의 투사가 생각나서 쓴 노래였는데… 그게 소속사 컨셉이랑 맞아 떨어지다니.”
내 입장에선 딱히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본인은 모르지만, 헬리는 뛰어난 작곡가다. 감각도 좋고, 실력도 좋은.
사람들이, 여타 회사들이 조금씩 진가를 알아보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진 않아도 됐잖아.”
“차라리 포기했으면 좋았을 뻔 했어.”
헬리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해온다.
“한 쪽에서 별로 수정요구가 없었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헬리가 눈을 감는다.
“그럼 이제 작업 끝난 거야?”
“으어어.”
이상한 추임새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헬리.
으어어…라니.
좀비가 긍정의 말을 하면 저렇게 말할까?
아무튼.
“그럼, 오늘 쉬고. 내일 나랑 놀러 나갈래?”
“놀러 나가?”
얼씨구.
그 한마디에 갑자기 좀비가 사람이 됐다.
헬리가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던 얼굴을 휙 하고 돌아본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네.
“어디, 어디?”
오랜만에 바깥바람 쐴 생각에 신난 강아지 같다.
그런 그에게.
나는 남궁수 편집자와 둘이서 하려고 했던 계획을 말했다.
“내일 홍대에 나갈 생각인데, 같이 나가자.”
끝
ⓒ 원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