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ce genius choreographer RAW novel - Chapter 94
92.
+++++++
“불러도 안 나온다더니.”
“에이, 쪼잔하게 뭐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두고 그래? 농담이었지. 그래서 형이 부르자마자 곧바로 뛰어 나왔잖아?”
선아가 나의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긴. 혹시나 바쁘려나 했는데, 내가 부탁하자마자 나와준 건 고맙긴 하네.
MW엔터의 안무 오디션을 연습하기 위해 찾은 개인 연습실.
나는 이번 퍼플링크의 앨범 안무를 만들려고 선아를 부른 상태였다.
이전에 내가 Free Plus에 나간다는 말을 전한 뒤.
‘필요할 때면 연락할 게’라는 나의 말에 선아는 분명 ‘불러도 안 나갈 거야!’라며 투덜댔던 선아였지만…
그래도 같이 팀을 했던 정이란 게 있는지, 득달같이 나와 준 선아였다.
“Free Plus는 노래를 받지도 못했다고?”
“응. 그런데 어떻게 형한테는 보내줬네. 역시 첫 번째 앨범 안무가 인상깊었나봐.”
오랜만에 만난 선아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선아가 의외의 얘기를 꺼냈다.
안무 오디션을 진행하는 탓에, 이번 퍼플링크의 신곡은 다른 안무팀들에게도 보내졌을 게 틀림없을 텐데.
정작 MW엔터 소속의 안무팀인 Free Plus는 명단에서 제외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Free Plus는 저번에 담당했던 보이그룹 루키엔즈의 다음 앨범 곧바로 들어간대.”
“…그럼, 선아 너도 바빠지는 거 아냐?”
하지만 선아가 내 질문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 난 「나른한 오후」이후로 계속 걸그룹 안무만 들어와. 이러다 팀 바꿔야 하나 모르겠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럼 나 형 팀에 받아줄 거야?”
“나는 안무팀이 아니라니까? 같이 일을 하는 개념이지.”
“쳇.”
선아가 냉큼 물어봤다가 혀를 찬다.
“안무를 만들 수 있으면 된다 이거지.”
그러다가도 작게 선아가 중얼거린다.
나야 뭐.
선아처럼 걸그룹, 보이그룹 다 담당할 수 있는 댄서가 있으면 좋지. 함께 작업하도 편하고.
흡!
선아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디 웨이브를 슬쩍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웨이브가 약해서. 연습을 계속 해야 될 것 같아. 어때?”
“하하, 좀 둔탁하긴 하네.”
“그치.”
웨이브의 동작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남자 아이돌의 춤이나, 라인 댄스를 주로 춰 온 선아여서 그런지 어딘가 웨이브가 딱딱 끊어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근데 뭐 연습하면 충분히 괜찮아질 것 같은데?”
나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게다가, 어차피 이번 안무에는 걸그룹 안무라곤 해도, 웨이브가 많이 들어가거나 포인트가 아니니까.”
그런 내 말에 선아가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안무 다 만들었어?”
“다는 아니고. 생각은 해 뒀지.”
“으음… 그러고 보니, 이번 안무는 어떻게 작업하는 거야?”
안무팀 오디션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 선아가 물었다.
보통, 안무가가 안무를 작업할 때.
그 작업 과정은 사람마다,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다.
안무가들이 1차적으로 만들어 레퍼런스를 주면, 회사 쪽에서 수정을 하는 경우.
아니면 아예 1차적인 개괄을 안무가가 아닌, 아티스트에게 맡기는 것도 있고…
혹은 회사에서 안무가에게 기본적인 뼈대는 있는 상태에서 안무의 살만 붙여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다양한 작업방식에서,
이번 오디션은 안무가가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 안무를 전부 다 만들어서 선보이는 케이스였다.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회사에서 보내준 노래의 컨셉이다.
♬♬♪♩
나는 자연스럽게 이번 퍼플링크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 곡 「커피」를 재생시켰다.
“여기서 턴. 그리고 착, 착.”
“음.”
내가 만들어놓은 안무의 1차 레퍼런스.
선아가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 있었다. 딱히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대단하다고 감탄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떤 평가를 내릴 지 궁금하네.
나는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게 안무를 마쳤다. 어차피 수정을 할 것도 많았으니, 디테일하게 끌고 갈 것도 없다.
“동작이 되게 소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데?”
이윽고.
처음으로 안무를 본 선아가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그 평가가 어쩐지 방금까지 보이던 얼굴로부터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마음에 드는 것 같지도 않고, 안 드는 것 같지도 않는. 확신을 못하는 듯 보이던 모습.
선아가 딱 그런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응. 일부러 그런 거야.”
선아가 곧장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어왔다.
“왜? 조금 더 화려해도 될 것 같은데. 퍼플링크의 데뷔곡이 안무로 워낙 주목받았잖아.”
선아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묻는다.
그녀의 말대로. 퍼플링크의 「나른한 오후」는 ‘눕춤’이라는 패러다임을 열면서 아이돌 안무계에 큰 변화를 일으키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 일부러 안무의 동작을 작게 한 거야. 멤버들에게 최대한 집중이 되게.”
내가 퍼플링크의 이번 노래에 핵심으로 잡은 건.
최대한 안무로 멤버들의 ‘외모’를 조명하는 춤이었다.
“쉽게 말해, 멤버들이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춤.”
“…”
퍼플링크의 데뷔 때는 사실, 어쩔 수 없이 서은아 한 명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은아가 K-singer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기도 했고.
노래 자체가 그녀와 너무 잘 맞는 노래였으니까.
하지만 퍼플링크는 서은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 역시 충분히 매력 넘치고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룹이다.
푼수 같고, 철부지 같은 ‘급식돌’ 현진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며 현실 친구 케미를 보여주는 유원.
그리고 그런 막내 라인의 럭비공같이 튀어 다니는 매력을 다잡아주는 리더, 시현까지.
“첫 번째 무대에선 멤버들의 외모가 비교적 평가절하 당했다면, 이번 앨범에선 ‘얘네가 이렇게 예뻤어?’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돼?”
“안무 오디션이니까.”
선아는 어째 춤이 아니라 다른 것에 감탄을 한 듯 보였다.
댄서를 뽑는 오디션이 아니라 안무팀 오디션이라지만.
결국 중요한 건, 안무를 뽑는 MW엔터 아티스트 1팀이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볼 것이냐, 라는 것이었다.
“회사가 좋아할 안무…”
“걸그룹에서 한 명의 인기 멤버가 팀을 견인해 가는 것을 회사에서 좋아할 리가 없어. 그러니 멤버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안무라면, 선택될 확률이 높겠지.”
“그러면…”
선아가 턱을 손으로 집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다가 슬쩍, 고개를 까딱거리며 허밍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췄던 춤의 안무를 따서 따라 추는 모습.
“고개를 많이 안 쓰네.”
“그치.”
선아의 말에 정답이라는 것처럼 답했다.
걸그룹의 안무는 머리카락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엔딩.’
엔딩 요정.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돌들에게 엔딩 포즈와 연기는 중요하고, 그 엔딩 포즈는 안무가 역시 반드시 신경을 써야만 하는 요소다.
기껏 아름다운 춤, 외모를 돋보이는 안무를 했는데 엔딩에 치렁치렁한 머리가 땀에 젖어 달라붙은 모습이면…
‘말짱 도루묵이지.’
선아의 첫 평가대로, 소극적이면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살리는 안무.
게다가 이번 곡 「커피」역시 잔잔하게 흘러가는 노래였다.
하지만 캐주얼하기보다는, 섹시한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그러면 이런 느낌은 어때?”
어딘가 부족한 안무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선아가 다리를 쓸어 올리는 동작을 보여줬다.
“…좋다.”
어우.
역시, 남자인 내가 하는 것보다, 여자 댄서가 걸그룹 안무의 동작을 추니 느낌이 확 온다.
씨익.
나는 설레는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오디션에 참가할 안무를 완성해나갔다.
xxx
HY엔터.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컨셉이요?”
회의실에 모여 있는 HY엔터의 걸그룹 ‘리버티.’
그 중, 가운데 앉아 다리를 꼰 채 매니저의 말에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는 멤버가 있었다.
“세나,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맞은편에, 우물쭈물 말을 못하는 매니저를 대신해서 물어보는 남자.
HY엔터의 리버티를 담당하는 2팀장이었다.
“너네 별명이 ‘연기돌’이잖아. 그만큼, 여배우들이랑 비교해도 외모가 뒤지지 않는다고 붙여 준 이름이니까. 그걸 이용해야지.”
“후… 그럼 이번 앨범 활동 들어가면서도 계속 기사에 연기돌, 연기돌… 언플 돌리겠네요?”
“…”
“제가 그 말 싫어하는데, 그걸 알고도 컨셉 자체를 그쪽으로 간다… 일부러 그러시는 건가?”
“오히려 좋을 수도 있지 않겠어? 이미지를 바꿔보자는 거지.”
“뭔 헛소리예요, 팀장님? 그 말에 ‘한세나는 연기도 못하는 데 얼굴 믿고 연기자로 갔냐’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는 거 모르세요?”
“그런 글들 보지 말라니까. 왜 보고 상처받고 그래?”
“상처받는 게 아니라, 기분이 거지같은 거거든요! 누가 상처를 받아요!”
길길이 날뛰려는 한세나의 말에, 2팀장이 입을 다물고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번 컨셉에 대해서 A&R팀, 홍보팀과는 이미 얘기를 끝낸 사안이었다.
그런데 한세나가 이처럼 불쾌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무시할 수도 없고.’
빠드득.
2팀장이 이빨을 까득 물며 한세나를 쳐다봤다.
본래라면 HY엔터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의견을 반영해주지 않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현재, 전략기획팀에서 똥을 쌌던 ‘프로듀스 뒷돈 사건’ 이후로.
회사는 아티스트들의 이미지, 그리고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여전히 건재하다’라는 건, 아티스트들의 성공적인 활동으로 드러나는 거니까.
덕분에, 안 그래도 독불장군기질이 심한 한세나를 막을 방법이 없어진 셈이다.
“그리고, 이번 타이틀곡의 제목은 「튤립」이야. 멤버 한 명 한 명이 꽃처럼 비유되는 컨셉.”
“…”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한 번 지랄병을 터트린 한세나는 이어진 2팀장의 설명까지 딴지를 걸진 않았다.
여기서 만약 리버티의 핵심 멤버인 한세나가 계속 딴지를 걸었다면…
정말로 컨셉부터 기획 자체를 엎는 경우까지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아직까지 실질적으로 투자비용이나 돈이 들어간 것은 없었으니, 비용으론 문제가 될 게 없지만…
기획팀, 전략기획팀 사원들이 죽어나가겠지.
“그런데, 이번 앨범 총괄 프로듀서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러던 도중, 뜬금없이 말하는 한세나의 말에 2팀장이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한세나가 힐긋 매니저를 쳐다본다.
“매니저가 신나서 얘기하던데.”
그녀의 말에, 2팀장이 죽일 듯 매니저를 노려봤다.
저번 홍보팀이 헬리의 표절사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필 때.
헬리를 총괄 프로듀서로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오히려 불을 지핀 HY가 역풍만 맞고 끝이 나 버렸던 사건.
‘저 자식은 확정되지도 않은 일을 떠벌려?’
…라는 눈빛으로 매니저를 보는 2팀장.
“푸흡.”
그리고 잔뜩 움츠러드는 매니저의 모습에 한세나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까지 예쁜 모습이긴 했지만…
2팀장의 눈엔 얄밉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일단락을 지은 2팀장이 말을 이었다.
“총괄 프로듀서를 제안했던 건 무산됐고. 타이틀곡은 어떻게든 부탁해서 담당하게 됐어.”
“작곡가 이름이 뭔데 그래요?”
그의 말에, 네일이 된 손톱을 후후 불고 있던 한세나가 되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 그렇게 난리친 프로듀서의 이름을 들어나 보자- 하는 느낌이었다.
“헬리.”
하지만.
그 작곡가의 이름을 듣자마자, 한세나의 얼굴에 ‘어라?’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헬리 작곡가…요? 이번에 거리의 댄서들에 「바람 따라 벗 따라」 편곡한. 그러니까…”
뒷 말을 흐리다가 덧붙이는 한세나.
“최연우 안무가랑 같이 작업한 작곡가.”
“맞아.”
2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자, 2팀장의 눈에 한세나의 모습이 미묘하게 변했다.
지금껏 기획 의도에 화를 내거나,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한세나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관심이 늘어난 듯 한 모습으로 변했던 것이다.
왜 그러나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2팀장. 그에게 한세나가 마침내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 멤버들이랑 녹음 들어가기 전에, 그 작곡가 따로 한 번만 만나볼 수 있을까요?”
“…작곡가를? 왜?”
갑자기 얘가 왜 안하던 일을 하지?
2팀장이 벌써부터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한세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인상을 강하게 쓸 뿐.
‘옘병.’
2팀장이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래, 연락 한 번 해보지 뭐.”
‘갑자기 왜 작곡가를 따로 만난다는 거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엔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세나가 지금껏 기상천외한 행동을 한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작곡가를 보자고 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2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해야 할 사안들을 모두 전해고, 이만 회의실을 벗어나려는 모양.
그러면서도 한세나의 이번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혹시나 헬리와 아는 사이라거나,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나, 해서.
하지만…
‘헬리가 분명 최연우 작곡가랑 친구였지?’
아쉽게도, 그런 2팀장의 예상과는 달리.
한세나는 헬리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헬리를 징검다리로 밟고 연락을 취할 곳.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쳐다본다.
분명 [읽음]표시가 되어있지만,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은 이 남자.
‘내가 전화를 하고 만다. 정말.’
한세나가 최연우에 대한 집착을 불태우며, 주먹을 꽉 쥐었다.
끝
ⓒ 원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