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화(1/109)
게임 속 흑막이 되었다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띠리릭-.
도어락을 연 나는 그대로 신발도 벗지 못하고 신발장 앞에 엎어졌다.
“으어……. 집이다…….”
오늘에야말로 꼭 1화를 보겠다고 정해 뒀던 드라마에 대한 생각은 빌라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사라졌다.
슬슬 처리하지 않으면 내일 입을 옷이 없어지는 일주일 밀린 빨래에 대한 걱정도 날려 버렸다. 어차피 이 시간이면 세탁기를 돌리지도 못하니까.
“이대로 자고 싶어…….”
야근을 하고 두 시간이나 되는 퇴근길을 뚫고 오니 곧 자야 될 시간이다. 아니, 이미 새벽이다.
힘들다. 피곤하다. 쉬고 싶다.
그냥 그 생각뿐이었다.
“빌어먹을 놈의 회사…….”
내가 다니는 회사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게임 회사다.
그 부근에서 살면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나가니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수도권 끝자락에서 출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또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지각을 면할 수 있겠지.
솔직히 출퇴근 시간도 업무 시간으로 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거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면 최저시급 미달 아닌가?
“아니면 자택 근무라도 좀 시켜 달라고…….”
어차피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는 환쟁이니까 자택 근무 좀 하게 해 달라 요구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뭐라더라. 자택 근무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던가.
“그러면 가까이서 출퇴근하게 월세라도 지원해 주든가…….”
나는 끙끙 신음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아주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띵-.
핸드폰의 회사 메신저가 울리기 전까지는.
“하, 인생…….”
업무 관련 내용일 게 뻔했다.
집에서 쉴 수 있는 시간도 자는 시간을 빼면 한 시간 남짓인데 굳이 이렇게 또 업무 연락을 해야 하나, 막 섭섭하고 우울해졌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가?’
내 원래 꿈은 웹툰 작가였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가난할지언정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들려주고 싶은 스토리를 그리면서 살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고서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다. 남이 그려 달라는 그림만 그려 줘도 되니 부유하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째선지 어른이 된 나는 남이 그려 달라는 그림만 그려 주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자기가 원하는 걸 그리면서도 부유하게 사는 놈들이 있겠지? 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을 향한 의미 없는 분풀이를 하고 나니 기분이 다시 조금씩 나아졌다.
띵-.
회사 메신저가 또 한 번 울리기 전까지는.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꿈지럭거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
[아트 디렉터]시.마는 2안으로 가기로 했으니 조금 더 디벨롭할 방법을 생각해서 출근하도록.
+++
확인했으면 대답.
+++
디벨롭.
그 단어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욕이 나올 뻔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네.”
최소한 지금 당장 펜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뭐가 되었든 결정이 내려졌다는 건 일에 진척이 있다는 거니까.
‘2안이라…….’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보내고 메신저 로그를 위로 올려 낮에 보냈던 이미지들을 확인했다.
아트 디렉터와의 메시지 창에는 오늘 하루만 수십 장이 넘는 이미지가 오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 직책은 ‘컨셉 아티스트’. 아트 디렉터의 지휘 아래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작화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대단한 직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똑같은 일을 하는 수많은 환쟁이 중 한 명이다. 대형 게임사답게 컨셉 아티스트만 두 자릿수였으니까.
‘시.마 2안……. 시모어 마우솔레움 2안. 이거구나.’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신작 AAA급 게임.
그 중간 보스들 중 하나, ‘제도의 흑막’이라 불리는 ‘시모어 마우솔레움’을 소개하는 컨셉 아트를 최종 완성하는 것이 저번 주부터 내게 주어진 업무 중 하나였다.
그것에 맞춰 여러 가지 컨셉안을 올렸는데 그중에서도 2안은 시모어의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강조한 컨셉 아트였다.
차가우면서도 나른한 느낌을 풍기는 흑발 금안의 미남자.
자기 자신의 에고가 단단히 자리 잡은 오만한 눈동자.
그 품에 새하얀 순백의 아기가 안겨 있다.
세상을 거만하게 오시하는 얼굴과 달리 제 어린 딸을 품에 안은 양팔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안고 있는 양 단단했다.
‘게임을 구매하기 전에 이 장면을 보면 이중적인 면을 가진 악역이라 생각하겠지.’
남들은 막 죽이지만 제 자식만은 소중히 챙기는 내로남불적인 인물이라거나.
딸 앞에서만은 선한 아버지로 남고 싶어 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라거나.
혹은 모 유명 영화 시리즈의 마피아 보스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 왜, 고양이를 소중히 안고 다니는 보스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엔딩까지 보고 나서 이 컨셉 아트를 다시 보면 소름이 돋을 거야.’
품의 저 아이는 중반부 전개에서 시모어의 손에 의해 죽는다.
그것도 온몸이 ‘전개’되어 죽는다. 간단히 말해 해부당한다는 이야기다.
드래곤 태생인 수양 딸아이의 심장, 드래곤 하트에 깃들어 있는 거대한 마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충격받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성토에 시모어는 이렇게 답한다.
–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우스운 소리를 하는군. 너는 도살할 목적으로 기르는 돼지에게도 애정을 주나?
시모어는 제 어린 딸마저 스스로를 위한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중히 안고 다녔던 것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이 귀중한 도구가 도망갈까 봐’였다.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 거기에 백작인 데다가 고위 마법사이기까지 하니 말 그대로 법과 인간성을 초월해서 사는 악당이다.
그 설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치가 바로 저 수양딸이었다.
내 눈이 잠시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에 닿았다.
‘악역 처단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성 캐릭터.’
말 그대로 죽기 위해 태어난 아이였다. 태어나지 않는 편이 오히려 행복했을 아이였다.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는 표현은 이런 상황에서도 쓸 수 있을까?
‘스토리 작가 놈들을 보면 사탄도 ‘이건 좀’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겠지.’
하지만 이리 말하는 나 역시 이 끔찍한 스토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저 부녀를 그려 낸 것은 다름 아닌 내 손이니까.
“…….”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라 감수성이 폭발한 걸까.
나는 이상스레 꽉 막혀 오는 가슴에 핸드폰 액정 속 아이의 볼을 쓸어내렸다.
“……미안해.”
대학생 시절, 한 교수가 그랬다.
창작물은 창작가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그러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그 누구도 자기 창작품에, 자기 자식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그건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삭막한 세상일 거라고.
“하지만 나는 내 위장 하나 책임지기도 힘든걸.”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럼에도 뭘 해 먹을 기력조차 없다.
먹고 싶고, 씻고 싶고, 놀고 싶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냥 푹 쉬고 싶다.
바쁜 삶을 사는 직장인에게 양심을 지키라는 소리는 대학교수의 신선놀음으로 들릴 뿐이다.
“……내일 씻고 오늘은 그냥 잘까.”
나는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한순간, 세상이 핑그르르 돌더니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쿠당탕!
커다란 소리가 났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 이거 심상치 않은데.’
머릿속에 요즘 2030은 운동량이 적다니, 과로사가 급증하고 있다니 하는 뉴스가 스쳐 지나갔다.
나, 설마 이대로 죽는 건가?
가슴이 막혀 오던 게 새벽 감성이 터진 게 아니고 뭔가 주요 혈관이 터진 거였나?
어떻게든 몸을 다시 일으켜 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오히려 생각마저 조금씩 둔해져 갔다.
‘아……. 젠장. 이미 틀렸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진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이 순간까지 언제나 홀로 살아온 천애고아를 도와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일만 하다가 고독사라니 최악이네. 해외여행도 못 가 봤는데…….’
나는 조금씩 흐릿해지는 눈을 감으며 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다음 생에는 정의로운 건물주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게 해 주세요.
그게 이 몸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 ……계약은 성립되었다.
쿠웅-!
무언가의 거대한 힘에 밀쳐진 나는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쿨럭, 쿨럭!”
이게 갑자기 무슨 소란이지?
나는……. 나는 집에서 쓰러지지 않았나? 그러면 여긴 병원인가?
흔들리는 시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래도 병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의 신전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있을 뿐이었다.
구구구구-. 쿠웅!
신전의 거대한 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무래도 나는 조금 전 저기에서 튕겨 나온 모양이었다.
‘대체 여긴 어디야?’
문득 어디선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내 어깨를 틀어쥐었다.
“시모어 오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집안 어른들이나 흑룡회의 허락도 없이 영묘에 무단으로 들어오다니!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여인은 헉 소리를 내며 말을 끊더니 무언가를 탐색하는 시선으로 내 몸을 훑었다.
특히나 심장 쪽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마우솔레움과 계약을 한 건 아니지?”
“계약?”
그러고 보니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렸던 대화가 계약 운운하는 말이었다.
내 표정이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는 듯 여인의 얼굴이 한없이 구겨졌다.
“설마 마력을 얻기 위해 계약이라도 한 거야?! 대가로는 뭘 바치기로 했어? 대체 뭘 바치기로 했느냐고!”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여인의 외침까지 듣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몸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바닥을 짚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품에 무언가가 안겨 있었으니까.
“…….”
나와 여인은 동시에 시선을 내렸다. 그곳에는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새하얀 아이가 있었다.
“와…….”
여인은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감탄성을 내뱉었다.
그 정도로 귀엽고, 또한 동시에 고귀한 아이였다.
내 앞섶을 쥐고 있는 아이의 손은 오동통한 단풍잎 같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고 통통한 볼은 그 어떤 마시멜로보다도 부드러워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황금빛 눈동자는 태양보다도 찬란하게 반짝였으며 새하얀 머리카락은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다.
‘천사인가……?’
무엇보다 등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천사와 같은 깃털 날개가 아니라 가죽으로 된 날개긴 했지만 말이다.
여자가 멍하니 물었다.
“그거…….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맞았다.
나는 이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다. 심지어 이름도.
“……루시스.”
내가 이름을 부르자 아이의 눈매가 반달을 그렸다.
희미한 미소와 반달 눈매라는,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감정 표현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고귀한 이미지에 더욱 어울렸다.
‘정확히 내 디자인 의도대로.’
허무룡 마우솔레움의 딸.
루시스.
내가 디자인한, 죽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이게 대체……?’
그때,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미남자.
최근 몇 주 동안은 내 얼굴보다도 자주 들여다봐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운 얼굴.
시모어 마우솔레움의 얼굴이었다.
“……하.”
아무래도 나는 게임 속 세계에 떨어진 것 같다.
그것도 내가 직접 디자인한 중간 보스의 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