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2)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02화(102/109)
유디시움 (2)
배심원단은 로카리움의 손을 들어 줬다.
내 쪽에 협력하는 표가 셋, 반대쪽에 협력하는 표가 둘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중세 시대에서 배심원단 제도는 시작 전에 결과가 확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유디시움은 신의 이름을 빌린 쇼인가?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건 또 아니다.
유디시움에서 이긴다 한들 여론이 망가져 버리면 이후의 활동에 지장이 오기 때문이다.
“솔라다르를 주의하거라.”
유디시움의 첫 번째 쟁점이 끝나고 반나절의 휴정 시간 도중 인피니움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꺼낸 말이었다.
엘더 화이트 드래곤인 솔라다르는 유디시움의 첫 번째 쟁점이 진행되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재판 결과가 나온 뒤에는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데메테르를 일족 내에서 엄중히 다스릴 것이며 조약을 어겨 죄송하다는 말까지 했다.
‘실제로는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드래곤이 인간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솔라다르는 결코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드래곤이 아니다. 분명 무언가를 노리고 있음이야.”
“두 번째 재판에서 무언가 큰 것이 터지리라 보십니까?”
“그건 확답할 수 없네. 다만 어째서 이다지도 순순히 패배했는가, 그것을 이해할 순간이 반드시 올 거야.”
인피니움은 깔끔히 면도가 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백룡들은 예전부터 음모를 꾸미고 암약하는 것을 즐겨 왔네. 가장 신성시되기 쉬운 색을 띠고 있다 보니 인간들의 생각을 조종하고 마음을 장악하는 데 도가 튼 게지.”
문득 로카리움이 백룡들을 ‘하얀 뱀’이라고 불렀던 게 떠올랐다.
“데메테르와 같은 젊은 드래곤들이야 조약 이후의 삶에 길들어 그 방식을 잊었지만 솔라다르는 아닐세. 조약 이전의 삶이 이후의 삶보다 여섯 배는 기니까 말이야.”
솔라다르는 최소 7,000살인 모양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에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구식으로 계산하면 피라미드보다 나이가 많은 건가……?
“만일 솔라다르가 루시스를 확보하기 위해 수를 쓰고 있다면 나는 전쟁이라도 불사할 거라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싸움이 격해져 전면전으로 가게 된다면 자네들을 신경 쓰지 못할 수도 있어.”
드래곤들의 전면전이라.
아마 그날이 그레니엄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날이리라.
“이해합니다. 중요한 건 루시스니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인피니움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저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지 않았는지 아는가?”
“루시스의 의사를 존중해 주신 것 아닙니까?”
“그도 맞는 말이지만, 로카리움의 워프 마법으로 이슈타르 가문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루시스를 데리고 돌아갈 생각이었다네.”
백룡들이 루시스를 납치하다시피 하려고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쓰러진 자네를 보는 루시스의 얼굴이 내 생각을 바꾸었지.”
인피니움은 루시스의 얼굴을 떠올리는지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시스의 얼굴에는 자네를 향한 절대적인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었어. 그건 내 손녀가 제 아비에게 줄 수 없는 것이고 나 역시 아들에게 일생 동안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이지.”
이번에는 아들을 떠올리는지 인피니움의 얼굴에 씁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아들이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도움을 준 적이 없네. 엘더라는 자리 때문에,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수많은 변명을 댔었지만 결국 겁쟁이였던 탓이야.”
“…….”
“루시스에게는 용감한 아버지가 필요하다네.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은 더더욱이. 그런 강한 아버지만이 루시스를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피니움은 말을 이었다.
“너의 존재가 늘 감사하면서도 의문이 사라지지를 않는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루시스를 대하는 너에게서는 생물 특유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다.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오히려 그 사실에 감사해하는구나.”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겸손한 척하지 말거라.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으냐.”
과연 인피니움은 수천 년을 산 드래곤이었다.
속내를 들킨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루시스를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이냐? 친자식을 상대로도 가지지 못할 마음을 어찌 너는 다른 이의 딸을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냐.”
나는 작게 웃으며 언젠가 입에 담았던 이유를 말했다.
“세상에는 낳은 정뿐 아니라 기른 정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피니움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속이지 못한다.”
“…….”
“네 눈에는 그보다 깊은 것이 담겨 있어. 내겐 그게 보이는구나.”
또다시 속내를 들킨 나는 이번에는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진실을 요구하는 인피니움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저 혼자서 간직하고 싶은 감정입니다.”
“…….”
인피니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수천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의 진지한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것을 꿰뚫어 보기에는 내가 너무나 야트막한 세월을 살아온 탓이었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눈빛만으로도 인피니움의 무게감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치 드래곤 피어에 맞은 것만 같아.’
생각도 감정도 읽을 수 없는 황금빛 무저갱을 바라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몇 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인피니움은 예의 인상 좋은 할아버지의 얼굴로 돌아왔다.
“자네가 루시스의 총애를 받는 인간만 아니었다면, 혹은 루시스를 향한 애정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었다면 진실 자백 마법을 사용했을 것이야.”
“감사합니다. 인피니움 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작게 숙였다.
“그래서, 오후에 있을 재판 역시 이길 자신은 있겠지?”
“물론입니다. 반나절 사이에 배심원단이 암살당하지만 않는다면요.”
유디시움의 두 번째 쟁점은 ‘루시스의 존재가 마우솔레움 조약에 저촉되는가’였다.
만일 여기서 그렇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면 루시스는 조약 구속의 대상이 되어 그레니엄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리된다 해도 인피니움이라면 분명 루시스를 잘 보살펴 주겠지만…….’
나는 루시스가 드래곤들만의 좁은 세상에 갇혀서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만 년이나 되는 긴 인생을 자신의 레어에 틀어박혀 낮잠으로 낭비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천 년에 한 번씩, 어쩌다 커다란 사건이 터져 운 좋게 들르게 된 인간계에서 ‘그사이에 뭐가 많이 변했네’ 따위의 시대에 뒤처진 노인네 같은 소리나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지금은 루시스가 재판 대상이니 방어에만 집중할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인피니움의 눈을 바라보며 똑똑히 말했다.
“언젠가, 저는 반드시 마우솔레움 조약 자체를 파기시킬 겁니다.”
당신의 아들의 이름을 딴 그 저주받을 조약을 부수고야 말겠노라, 선언했다.
아이의 앞에 온 생애를 살아도 다 가 보지 못할 넓은 세상을 가져다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의무니까.
* * *
휴정 시간이 끝나고 두 번째 쟁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아기 광휘룡님은 죄가 없다!”
루시스를 피고인석에 앉히기 위해 재판장의 중앙으로 나서자 누군가 외쳤다.
“오.”
루시스는 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보더니 소시지 같은 엄지를 치켜들어 줬다.
그 귀여운 행동에 사람들이 자지러졌다.
“유디시움의 두 번째 쟁점은 루시스의 인세 잔류가 마우솔레움 조약에 저촉되는가, 예요.”
잠시 피고인석에 앉은 루시스를 바라보던 푸에리가 유디시움의 재개를 알렸다.
“흥!”
수많은 시선과 관심 속에서도 루시스는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제 콧대를 도도히 세웠다.
마치 자신은 무죄이고 이에 당당하다는 듯한 그 포즈를 배심원석의 마탑주가 일곱 대나 되는 촬영기를 이용해 녹화하고 있었다.
곁의 인피니움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걸 보니 영상석의 복제본을 부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헤츨링의 존재는 이미 인간들의 사회에 충분한 혼란을 끼쳤습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성자, 요하네스였다.
“앞선 쟁점에서 증인석에 섰던 마우솔레움 백작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우솔레움 조약의 존재 목적은 드래곤이 인세에 피해와 혼란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라고요. 그렇다면 저 헤츨링 역시 조약 위반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했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틀어 쓰는 화법은 딱히 놀랍지 않았다.
교회에서 사제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논리학이니 말이다.
“글쎄요. 결국 시점에 따라 다른 것 아닐까요? 저희 마법계에서는 루시스 님의 존재를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습니다만.”
루시스를 위해 방어 논리를 펼친 건 마탑주인 쿠린 아니마였다.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다며 나를 향해 계속해서 눈짓을 보내는 게 참으로 그녀다웠다.
“저는 지금 인류 전체의 평온과 영혼적 안식을 위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마탑주. 단순한 학문적 욕망은 넣어 두시죠.”
“저희도 그 학문적 욕망을 통해 인류 및 모든 종족의 번영을 이룩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 한들 물질적 추구가 영적 추구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쉬이 넘어갈 수 없겠군요. 지금 마법이 종교보다 하위 차원의 영역이라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두 분 모두 불필요한 논쟁은 삼가세요.”
첫 번째 쟁점에서 데메테르와 로카리움의 언쟁은 즐겁게 지켜봤던 푸에리가 이번에는 논쟁의 물꼬를 칼같이 잘라 냈다.
“이 자리는 피고인이 조약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논하고자 모인 곳이지 물질과 영혼에 대해 논하고자 모인 곳이 아닙니다. 두 분은 증거 자료에 기반한 논쟁을 벌여 주세요.”
두 사람은 신의 말씀을 따랐다.
인피니움과 솔라다르, 그 외에도 수많은 방청객과 구경꾼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성자와 마탑주는 증거에 기반해 열렬한 토론을 벌여 나갔다.
“이것은 헤츨링의 등장 이후 각지의 교구장과 사제들이 저에게 보낸 서신들입니다. 수백 통이 넘는 서신에는 하나같이 교인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성자는 거대한 상자의 편지 한 장을 들어 그것을 읽었다.
“……성자님. 교인들이 제게 묻고 있습니다. 어째서 아기 광휘룡님이 마우솔레움 가문에 있느냐 말입니다. 경전은 틀렸고 신들은 사실 그 가문을 총애하는 것이냐 묻습니다. 성자님. 실은 저 역시도 몹시나 혼란스럽습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마탑주는 아카데미의 특별 강연을 들었던 학생들의 소감문을 읽었다.
“……저는 마법의 새로운 영역에 눈을 떴습니다. 마법이 실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며 이 힘을 더욱 연구한다면 우리 인간들을 반드시 높은 영역까지 이끌어 줄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헤츨링의 존재가 인세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성자는 한 발짝 물러나며 더 강력한 공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거듭 말하건대 마우솔레움 조약은 ‘피해를 방지하는’ 조약이지 ‘긍정적 영향으로 이미 끼친 피해를 감면해 주는’ 조약이 아닙니다.”
“저 역시 루시스 님이 약간의 혼란을 초래했을 수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마탑주는 빠르게 상대의 전략을 베꼈다.
“하지만 루시스 님은 어린 헤츨링입니다. 그런 사소한 혼란은 모두 사회화 과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인간이 어째서 드래곤들의 사정을 이해해 줘야 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위대한 드래곤들이 구태여 인간들의 사정을 이해해 주어 이런 조약에 조인한 이유는 뭐겠습니까? 모든 종족의 이해와 화합, 평화를 위해서 아닙니까.”
마탑주는 재판관석을 향해 말했다.
“성자는 이 조약을 표면적 이유에만 치중해 해석하고 있습니다. 재판관님도 아시다시피 이 조약은 무조건적으로 드래곤의 개입을 틀어막고 출입을 금지하는 조약이 아닌 상생과 화합을 위한 조약이 아닙니까.”
나는 마탑주의 언변에 작게 감탄했다. 마우솔레움 조약의 심층적 이유는 나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이었다.
“한데 이런 ‘어린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 자신의 집에서 쫓아내려는 것이 화합의 길입니까?”
마탑주는 ‘어린아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며 성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가 알기로 성자는 ‘어린아이들의 신’을 모시는 교회의 고아원 출신입니다. 맞습니까?”
“……!”
“그렇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푸에리께서 어린 헤츨링은 자신이 보듬어 줄 대상이 아니라 말씀하셨습니까?”
“그건…….”
“제가 알기로 푸에리 님은 자그마한 동물들도 아끼고 보듬어 주시는 분입니다만.”
푸에리는 아무 말 없이 성자를 내려다봤다. 책망하는 시선도 재촉하는 시선도 아니었건만 성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승기를 잡았다 생각했는지 마탑주는 내게 윙크를 해 보이고 루시스에게 물었다.
“루시스 님은 누구와 있을 때 가장 즐거우십니까? 앞으로 누구와 지내고 싶으십니까?”
그 질문에 루시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단단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지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시모어가 죠아. 시모어랑 있을 꺼야.”
어린아이의 순수한 소망이 담긴 문장에는 어른들을 침묵시키고 부끄럽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재판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이쪽으로 돌아섰다.
유디시움은 그렇게 마탑주의 활약으로 무난하게 끝날 거라 생각했다.
* * *
“재판관님. 몇 가지 짚고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솔라다르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