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3)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03화(103/109)
유디시움 (3)
침묵을 지키던 솔라다르가 입을 열었다.
“재판관님. 몇 가지 짚고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솔라다르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인피니움이 긴장하며 자세를 고쳐 앉는 것이 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 유디시움에서는 모든 배심원단이 피고인을 변호할 수 있고 심문할 수 있어요. 그러니 부디 자유롭게 발언하세요.”
배심원단이 변호사 혹은 검사의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각 종족의 정점들만이 모이는 유디시움이었기에 역할을 분리해 두면 황제가 변호사로 나오고 대리인으로 아무개 후작을 배심원단에 앉히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런 주객전도의 상황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유디시움만의 독특한 시스템으로, 마탑주와 성자가 배심원임에도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까부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솔라다르는 의문을 품은 순박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피니움에게서 그녀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더라면 나조차 넘어갈 정도로 훌륭한 표정 연기였다.
“어째서 다들 루시스를 어린아이라 치부하는 겁니까. 루시스는 천 살이 넘었습니다만.”
하지만 그 혓바닥은 분명 어떤 칼보다도 날카로웠다.
한 문장만으로 마탑주의 논리 자체를 부숴 버렸으니까.
천 살.
그 이야기에 광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천 살? 아기 광휘룡님이 천 살이시라고?”
“그러면 아기가 아닌 거 아니야?”
“헤츨링이 아니시잖아?”
당황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룡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당황해 있기만 해서는 안 됐다. 나는 빠르게 인피니움을 바라봤다.
인피니움 역시 긴 세월을 헛살지는 않았다는 듯 재빨리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거기에는 이견의 여지가 있겠군.”
음성 증폭 마법이 걸린 그의 목소리는 삽시간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아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네. 그러니…….”
“제 아비인 마우솔레움에 의해 말입니까?”
다시 한번, 광장이 뒤집어졌다.
* * *
“허무룡의 딸이라고?”
“맙소사. 그러면 마우솔레움 가문에 계셨던 이유가……!”
“아기도 아니고 광휘룡도 아니라니!”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청문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성자와 황제는 물론 마탑주마저도 동그래진 눈으로 루시스를 바라봤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솔라다르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녀를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백룡의 정보력은 대체…….’
루시스가 천 년간 봉인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 아버지가 허무룡 마우솔레움이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천상의 신들과 모종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건 재판관인 푸에리뿐이었다.
푸에리는 어린아이의 외양과 어울리지 않는 침착함으로 빠르게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아, 죄송합니다. 다들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죠.”
솔라다르는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듯 가증스러운 얼굴로 인피니움에게 물었다.
“봉인되어 있었더라도 결국 영혼의 나이는 먹었을진대, 헤츨링이라 봐야 하는 겁니까?”
인피니움은 눈동자에 노기를 띠면서도 차분히 답했다.
“뿔이 자라 일족의 이름을 받기 전까지는 헤츨링으로 대한다는 것을 그대도 알 터인데.”
“그랬던가요? 잘 모르겠군요. 저희 일족은 고루한 옛 법 따위는 잘 따르지 않는지라.”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턱을 쓸던 솔라다르.
“아무래도 백룡과 흑룡은 헤츨링의 판별 기준이 다른 것 같군요. 그렇다면 다른 종족에게 물어볼까요.”
솔라다르는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봤다.
“인간들은 헤츨링, 그러니까 어린아이의 기준이 어찌 됩니까?”
아들의 첫사랑이 허무룡의 여식이라는 사실에 혼란에 빠져 있던 황제는 빠르게 제정신을 찾았다.
“어린아이 말인가. 명확한 구분은 없다만…….”
“그렇다면 성인의 기준은요?”
“성인의 기준은 나이로 열일곱이라네.”
“열일곱이라.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70이니 드래곤으로 치면 2,500살이 조금 안 되는군요.”
솔라다르는 인피니움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답니다. 루시스는 인간 기준으로는 헤츨링이군요.”
“…….”
인피니움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대체 솔라다르가 무엇을 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말들을 계속 쏟아 대는지가 이해가 안 가는 까닭이리라.
푸에리를 한번 슬쩍 바라본 솔라다르는 황제에게 질문을 이어 갔다.
“혹시 다른 기준은 없습니까? 그 왜, 뇌가 다 자라 스스로의 생각에 책임을 져야 한다든가 그런 거 말입니다.”
“인간들은 나이가 참에 따라 몸이 저절로 자라는지라.”
“그러면 루시스처럼 탄생 직후 17년간 봉인되었다가 세상으로 나온 갓난아기라면요?”
“스스로의 몸을 가눌 수 없는 셈이니 아기로 봐야 할 것 같네.”
“육체의 성장이 먼저다? 과연 물질적인 존재답군요. 그 육체 성장의 기준은 어디입니까? 역시 뇌와 심장입니까?”
“그건…….”
계속해서 쏟아지는 뜬금없는 질문에도 황제는 자신의 상식선에서 성실히 대꾸했다.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뇌와 심장이지만 육체 성장은 신체 전체로 가늠한다, 그런 거로군요.”
솔라다르는 의문이 해결되었다는 듯 환한 얼굴로 푸에리에게 고개를 짧게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가 인간계에 대해 아는 게 적은지라. 계속해서 진행하시죠.”
“…….”
대체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 * *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유디시움은 계속되었다.
기껏 유리하게 돌려 둔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지만 마탑주는 그럼에도 성자와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갔다.
“헤츨링이 인세에 미친 혼란과 재앙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많은 성직자와 교인들에게 혼란을 끼침, 경전의 내용을 존재만으로 부정, 안식 교단의 붕괴, 광휘의 교단의 교회 연합 탈퇴…….”
성자의 ‘루시스가 인세에 미친 부정적 영향력’이 적힌 긴 리스트를 읽어 내려가자 마탑주는 거꾸로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반박했다.
“……럭스라는 훌륭한 패션을 만들어 인류의 아름다움 상승에 일조했습니다. 또한 치킨이라는 기적의 음식을 만들어 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핑퐁이라는 흥미로운 게임을 만들어 인류의 따분함을 퇴치했습니다…….”
성자는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의장님. 저것들은 시모어 마우솔레움의 사업체 나열일 뿐 헤츨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마탑주는 조금 굳은 눈으로 루시스에게 물었다.
“루시스 님. 시모어와 루시스 님은 별개의 존재입니까?”
자신의 비밀이 폭로되었음에도 관심 없다는 듯 작게 하품을 하며 옷 장식을 만지작거리던 루시스는 고개를 치켜들며 답했다.
“우린 일씸동체야.”
그러고는 어려운 단어를 말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듯 콧대까지 치켜든다.
성자는 빠르게 반박했다.
“개인의 공이 가족의 공이라는, 그저 말뿐인 이야기입니다.”
그 말에 마탑주는 의장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판관님. 지금 성자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증인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유디시움이 재개된 이후의 첫 증인.
내 집사장인 알프레드였다.
“증인은 마우솔레움 가문의 사용인이라는 점에서 증언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얻을 수 없음을 유념해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재판관님.”
알프레드는 수많은 시선 앞에서도 언제나처럼 인상 좋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걱정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보여 드리려는 것은 조작이 불가능한 증거품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알프레드가 제출한 것은 하나의 영상석이었다.
서기관 중 하나가 영상석의 재생기를 이용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재생했다.
– 흥흐흥~.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루시스는 거대한 저택의 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색칠 놀이를 하고 있었다.
– 덜커덩!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저택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이 돌아가 그 모습을 담는 순간 방청객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화면 너머로도 살기 어린 모습이 넘실거리는, 내 모습 때문이었다.
‘프롬을 알현한 직후의 영상이야.’
전신에서 폭주하는 마력을 흘리면서 누구 한 명을 죽일 듯이, 아니 이미 죽이고 온 듯이 날카로운 눈빛.
이 순간만은 잘생긴 외모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저 두렵기만 했다.
– 와써?
그 차갑게 얼어붙은 순간을 루시스의 맑은 목소리가 일깨웠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화면이 뒤로 물러나 시모어와 루시스를 한 장면에 담았다.
– …….
화면 속 나는 아무 말 없이 루시스를 내려다봤다.
서서히 그 눈동자에서 살기가 사라지고 대신 다른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저 때 저런 표정을 지었던가.’
나는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인피니움이 내가 애정 이외의 감정을 품었음을 눈치채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영상 속의 나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루시스를 보고 있었다.
증오, 분노, 자책, 자학, 후회.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나는 누군가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내게 양팔을 뻗는 루시스. 내가 루시스를 부드럽게 안아 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르륵-.
내가 뿜어내던 마력 폭주의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안개가 사라지고 둘만이 남았을 때, 화면 속의 나는 미소 지으며 루시스의 정수리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순간 창밖에서 쏟아지던 노을이 루시스의 머리를 비추었다.
“와…….”
화면을 보던 방청객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주홍빛 노을은 루시스의 백발을 만나 마치 후광처럼 사방으로 빛을 뿜어냈다.
“여기까지입니다.”
영상석의 재생을 마친 알프레드는 방청석을 향해 물었다.
“한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여인을 꼽으라면 그게 누구인지 아십니까?”
방청객들은 침묵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수많은 영감을 떠오르게 해 주는 뮤즈가 누군지 아십니까?”
이번에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 정답을 알고 있었다.
“이래도 두 분이 일심동체가 아니라고, 루시스 님의 존재가 시모어 님의 업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노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프레드는 작게 웃으며 성자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성자 예하께서는 모르십니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부모에게 어떤 의미인지를요.”
그것은 질타의 문장도 힐난의 문장도 아니었다.
그저 인생을 더 살아 본 이의 연륜과 애환이 담겨 있는 진리일 뿐이었다.
* * *
두 번째 쟁점에 대한 논의가 끝나 갈 즈음, 나는 인피니움에게 신호를 보냈다.
나를 증인으로 신청해 달라는 신호였다. 내 신호를 받은 인피니움이 푸에리의 말이 잠시 끊긴 사이 발언했다.
“재판관님. 증인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배심원단의 투표를 위한 마지막 휴정 시간을 선포하려던 푸에리가 고개를 내려 물었다.
“어떤 증인이요?”
“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증인입니다.”
“음……. 누구인가요?”
“마우솔레움 백작입니다.”
그 말에 푸에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피고인석의 루시스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할게요.”
그 관대한 처사에 성자는 무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을 지었으나 차마 앓는 소리 말고 다른 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반면 솔라다르는 난입이나 다름없는 내 증인석 출석을 막지 않고 그저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증인석으로 발을 옮겼다.
‘유디시움이 끝나고서도 기회는 있지만 그래도 가장 적기는 지금이야.’
이대로 가면 유디시움은 우리가 이기더라도 루시스의 이미지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될 터였다.
허무룡 마우솔레움의 딸.
그건 이 세계가 한 개인에게 내릴 수 있는 최악의 낙인이었다.
‘마우솔레움이 일으킨 재앙은 천 년 전의 일이니 관계없다는 말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다름 아닌 친딸이니까.
교회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루시스를 욕하고 모욕하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저주받은 핏줄, 태어난 것이 죄. 그 말이 칭호처럼 루시스의 평생을 따라다닐 거야.’
나는 루시스가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자그마한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오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리나의 과외로 간신히 인간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루시스인데, 이런 최악의 상황을 겪게 할 수는 없어.’
그렇기에 나는 증인석에 섰다.
“루시스의 아버지는 마우솔레움이 맞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또한 루시스의 어머니는 광휘룡 이슈타르입니다.”
세 번째 폭탄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