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2화(12/109)
다 날아가라 (1)
다음 날 아침.
약속대로 시몬이 내 서재로 찾아왔다.
“편히 앉아.”
“응.”
내 말에 시몬은 소파에 앉았다. 그 맞은편에서는 루시스가 종이에 색칠 놀이를 하고 있었다.
노랑, 보라. 형형색색의 무언가를 잔뜩 그리는 게 아무래도 보석들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고모님.”
“응.”
시아와 달리 시몬은 루시스에게 극존칭을 사용했다.
나는 손에 쥔 서류를 빠르게 끝까지 훑고서 내려놨다. 수도로 돌아가면 내 아래로 들어올 선대 백작의 사업체들에 관한 서류였다.
“그래서. 왜 보자고 한 거야?”
“이제 형님이 가주니까, 회로 주조소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시몬은 성인이 된 몇 해 전 선대 백작으로부터 사업체를 하나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마력 회로 주조소.
이 세계의 마법적 근간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마력 회로’를 연구, 개발해 사람들에게 새기는 사업체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법 스크롤을 문신처럼 몸에 새기는 거지.’
마력만 흘려 넣으면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는 반영구적 마법 문신. 그것이 마력 회로였다.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귀족만 새기는 값비싼 것이었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모험가들도 새기고 다닐 정도로 범용적인 것이 되었다.
‘이것도 대중화와 보급화라고 해야 하나.’
마력 회로 사업은 마우솔레움 가문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다.
시몬은 직계인 탓도 있지만 아카데미 시절부터 마력 회로에 재능을 보였기에 그 능력을 인정받아 회로 주조소를 맡게 되었다.
“형님도 알겠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공격 마법에 대한 연구를 지시하셨어. 그래서 최근 연구하고 있던 건…….”
회로 주조소의 장은 시몬이지만, 결국 그 모든 사업체의 ‘회장’은 가주다.
그러니 이전 가주와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 같은 것을 내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진척이 많이 된 건 고문 회로야.”
고문 회로.
나도 아는 녀석이었다.
주인공이 튜토리얼에서 길거리 건달들에게 당하는 마법이자, 마우솔레움 가문이라는 이름을 악명으로 기억하게 되는 첫 단추였다.
나는 잠시 턱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고문 마력 회로는 폐기하자.”
“폐, 폐기?”
기분 나쁜 주문일뿐더러, 굳이 주인공과 악연을 쌓을 짓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게 아니어도 공격용 마력 회로는 넘쳐나잖아.”
“그야 그렇지만…….”
시몬은 우물쭈물거리다 말했다.
“당장 다음 발표회가 몇 주 안 남았어.”
발표회.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쇼케이스.
회로 주조소는 수많은 이들에게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곳이었기에 정기적으로 신제품을 발표하는 발표회를 가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시몬. 네가 연구하고 싶은 마력 회로는 뭐야?”
“응?”
“넌 뭘 만들고 싶냐고.”
시몬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다가 멍하니 되물었다.
“내가 뭘 만들고 싶냐고……?”
멍청해지는 표정을 보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이제까지 자기 성격에는 맞지도 않는 공격용 회로들을 선대 백작의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만 만들어 왔을 터였다.
재능은 넘치지만 순종적인 자식. 선대 백작의 입맛에 딱 맞았으리라.
“잘 한번 생각해 봐. 앞으로 회로 주조소는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테니까.”
“내가 원하는 방향……?”
멍하니 내 말을 따라 한 시몬의 눈동자에 곧 여러 가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여럿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 형님.”
시몬은 상념을 털어 내듯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고문 마법 회로가 지금 가장 완성에 근접한데 그걸 폐기하면 다음 발표회는 어떻게 해?”
듣기 좋은 달콤한 소리를 들었음에도 현재의 문제를 먼저 직시한다.
단순히 선대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일에 대한 책임감을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강단 있는 녀석이었다.
“이걸 발표해.”
나는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뒀던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몬에게 내밀었다.
내가 건네준 그림을 들여다보던 시몬의 눈이 동그래졌다.
작은 룬 문자들이 개미처럼 얽혀서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그림이었다.
“새로운 마력 회로? 설마 형님이 만든 거야?”
“뭐, 그렇지.”
정확히 말하자면 원작의 시모어가 제작하게 되는 마력 회로였다.
“흡수와 응용……. 마력의 흡수를 돕는 술식이네?”
마력 회로의 전문가답게 시몬은 단숨에 회로에 담긴 술식들을 모두 읽어 냈다.
“마력의 흡수와 응용이라…….”
시모어는 회로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모험가들의 마력 포션 흡수 향상에 큰 도움이 되겠어……. 마탑의 여러 연구도 도울 수 있을 테고……. 아, 잘만 하면 선천적 마력 불감증을 앓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될지도!”
시몬의 반응에 나는 작게 웃으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발표회에 보이기 충분하겠지?”
시몬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미소와 함께였다.
“물론이야! 이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 낸 거야? 형님은 정말 천재야!”
나를 불편해하던 것도 있고 기쁨에 겨워하는 시몬의 모습에 내가 다 흐뭇해졌다.
저것이 원작에서는 루시스의 드래곤 하트를 온전히 제 것으로 흡수하기 위해 시모어가 만든 회로임을 알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기꺼웠다.
‘내가 저 복잡한 회로를 온전히 기억하고 그려 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지.’
시모어는 저 회로를 전신에 빼곡하게 새겼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귀족들은 마력 회로의 보급화 이후에는 평민들과 수준이 똑같아진다 여겨 마력 회로를 새기는 행위를 경멸스레 여겼다.
선민의식에 찌든 시모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현대식 슈트 패션을 직접 고안해 전신을 꽁꽁 싸매고 다닌 것에는 저 회로를 숨기려는 이유도 있었으리라.
‘그만큼 루시스의 마력이 탐났던 거지.’
저 마력 회로가 십자가의 형태를 한 것은 본디 주사기를 의미한 까닭이었다.
‘흡수와 응용’을 돕는 회로였으니까.
하지만 저 회로를 온몸에 새긴 시모어의 몸은 무수한 묘비가 세워진 거대한 묘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무고한 목숨을 수없이 집어삼킨 묘지 말이다.
* * *
“시모어 오빠와의 시간은 어땠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는 시몬에게 시아가 물었다.
“시모어 형님?”
시몬은 멍하니 되물었다.
시몬은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그 형님이 공격 회로를 그만 만들자고 말할 줄이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회로를 개발해 낼 줄이야.
아버지가 죽으면서 시모어 안에 있는 악한 면모도 함께 죽은 걸까?
멍한 얼굴의 시몬을 보며 시아는 작게 웃었다.
“고마워, 오빠. 무리해 줘서.”
동생의 감사 인사에 시몬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감사라니. 너를 위해 무리한 게 아니야. 나도 너만큼이나…….”
시몬의 손이 멈췄다.
그 뒷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였다.
“너만큼이나…….”
침묵에 빠진 시몬의 손을 시아가 부드럽게 잡아서 내려 주며 말했다.
“오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건 오빠의 잘못이 아니야.”
“…….”
“그건 오빠가 선하다는 증거야. 결코 그것에 겁내거나 상처받지 마.”
“……응.”
시몬은 손에 꼭 쥐어진 마력 회로를 바라봤다.
십자가의 형태를 한 그것은 꼭, 시모어가 참회의 마음을 먹은 증표처럼 보였다.
* * *
루시스는 겉모습은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게 감정 표현이 무뎠다.
무언가를 강력하게 요구한 적도 별로 없었고 울음을 터뜨린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이 같을 때는 또 한없이 아이 같았다.
‘의식의 나이와 영혼의 나이 사이의 괴리 때문이겠지.’
루시스는 태어나자마자 봉인되었다. 그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으니 루시스의 이성과 의식은 아기의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천 년간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니 루시스의 영혼은 천 년이나 된 이의 것이었다.
‘치매에 걸려 갓난아기가 된 노인의 정반대 상황이라고 보면 되려나.’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평소에는 아이답지 않게 의젓한 루시스지만 육체에 강한 충격이나 자극이 오면 영혼의 나이고 뭐고 그냥 아이로 돌아가 버린다는 거다.
“……읏.”
그래.
딱 지금처럼 말이다.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저 모습을 보라.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지 않은가?
‘하기야 아플 만도 하지.’
조금 전, 서재 한복판에서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마침내 돌아 버린 숙부가 내 방에 마법이라도 던지고 도망간 줄 알았다.
하지만 범인은 한 손에 크레파스를 꼭 쥐고 있던 루시스였다.
책상 밑으로 떨어뜨린 크레파스를 줍다가 머리를 박은 모양이었다.
‘자기가 박아 놓고는 뭐가 그리 서러운 건지…….’
남 탓을 할 수 없으니 더욱 서러운 것이리라.
“……으읏.”
어찌나 아픈 건지 폴리모프 유지도 잊어서 날개랑 꼬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심지어 아픈 곳을 문지르고 싶어 양손을 정수리를 향해 뻗었는데 팔이 짧아서 닿지도 않았다.
그게 더 서러운지 턱에 호두가 잡히며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이 더 커다래졌다.
“아이고, 루시스.”
더 두면 정말 울겠다 싶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스를 품에 끌어안고 정수리를 문질러 줬다.
“히끅.”
루시스는 울음을 꾹 누르며 내 품에 고개를 폭 박았다.
울음을 터뜨리려는 아이를 달래는 건 처음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아이를 부드럽게 어르며 정수리만 문질러 주던 내 뇌리를 스치는 마법의 주문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루시스의 정수리를 문지르다가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외쳤다.
“아픈 거, 다 날아가라!”
“……?”
루시스가 눈물 맺힌 눈동자로 의아하다는 듯 나를 올려 봤다.
나는 루시스의 정수리를 문지르다가 한 번 더 손을 뻗으며 외쳤다.
“다 날아가라!”
“나라……?”
“아픈 거 다 날아가라!”
다음 순간,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날아가라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반응한 것인지 루시스의 날개가 파닥이기 시작한 것이다.
“날아가라! 아픈 거 모두 날아가라!”
몇 번 더 외치자 루시스의 몸이 내 품에서 약간 떠오르기까지 했다.
“……오?”
“아하하하!”
나는 정말로 날아가려는 루시스를 품에 꼭 끌어안고 볼로 정수리를 문질러 줬다.
“응…….”
루시스는 뭐가 되었든 고통이 줄어서 좋다는 듯 아까보다 진정된 목소리로 내 품을 파고들었다.
“후후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집사, 알프레드가 할아버지 웃음을 흘리며 촬영기로 루시스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중저가 촬영기를 들고 다니면서 루시스를 찍길래 아예 예산까지 편성해서 최고급으로 몇 개 사 줘서 언제나 들고 다니게 했다.
촬영기는 대공방의 스테디셀러 아티팩트 중 하나로 현대 지구의 비디오 카메라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화질 같은 것은 도저히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나름 최첨단 마도공학의 산물이었다.
“집사. 3-2-1 백업을 잊지 마.”
“예. 물론입니다.”
촬영본은 세 개의 영상석에 복사해서 저장하고 그것을 수도 저택과 영지, 두 개 장소에 따로 보관하며 연속 판화의 형태로도 한 쌍을 주문 제작해 중앙은행에 보관해 두는 것.
그것이 3-2-1 백업 법칙이었다.
고작 영상 가지고 과하지 않느냐고?
‘모르는 소리. 이건 가보를 넘어서 국보가 될 영상이야.’
제국 최고 미남의 제국 최고 귀요미 우쭈쭈 영상? 이게 국보가 안 된다면 이 나라는 망하는 게 맞다.
“그치, 루시스?”
“응?”
내 말에 루시스는 날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 *
한참 동안 루시스를 달래 준 나는 정해진 일정대로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도련님. 한데 갑자기 영지에는 왜 나가시는 겁니까?”
“사냥하러.”
“사냥……. 말씀입니까? 아직 애도 기간이 아니었습니까?”
가주의 장례식 앞뒤로 보름은 애도 기간이라 부르는 기간으로 파티나 사냥을 금지하는 게 관례였다.
“걱정 마. 짐승 사냥을 가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 하심은?”
내 환복을 도우며 묻는 집사에게 나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영주민을 사냥할 거거든.”
알프레드는 로브를 손에 들고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