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5화(15/109)
흑룡회 (1)
“…….”
루시스와 시몬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시몬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루시스의 눈을 들여다본 것이 처음이었다.
황금빛 눈동자의 안에는 시몬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기나긴 시간이 담겨 있었다.
시몬은 그제야 눈앞의 아이가 자신의 50배에 가까운 시간을 존재해 온 이임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저것을 연륜이라 부를 수 있을까? 루시스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저것을 말이다.
“그만 잊고 용서하라는 말씀입니까?”
“…….”
“고통처럼 일시적인 것이니, 모두 날려 버리라고요?”
루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몬도 항변하지 않았다. 가만히 루시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고모님의 말씀은……. 들어야겠죠.”
“응.”
이번엔 냉큼 대답한다.
시몬은 작게 피식 웃으며 반쯤 농담 삼아 말했다.
“예. 다 날려 버리겠습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응. 차캐. 차칸 아이야.”
루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몬의 가슴을 두드리며 칭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시몬은 가슴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 그리하겠노라 소리 내어 말했을 때부터 말이다.
‘어쩌면 나는 결단을 내릴 계기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이제 그만 아파해도 된다고.
형을 용서해 줘도 된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어딘가 후련해진 기분이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마음먹기에 달린 일 아닌가?
어째서 지금까지 이다지도 마음고생을 했던 걸까.
“고모님. 저 말입니다.”
시몬은 기왕 후련해진 김에 한 가지 억지를 더 부려 보기로 했다.
“가끔 힘들 때마다 이렇게……. 품에 안겨도 되겠습니까?”
“오.”
루시스는 그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이내 그 얼굴이 씰룩이더니 한 가지 선명한 감정을 그려 냈다.
“흐흥.”
루시스는 한껏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인간들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내지는 ‘역시 이 몸은 굉장해!’ 하는 표정이었다.
시몬은 그 귀여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루시스는 작은 손으로 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조카는 언제나 환영이야.”
“아하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모님.”
시몬은 그대로 루시스를 꼭 끌어안았다.
“킥킥킥.”
루시스도 그런 시몬을 마주 안아 주었다.
루시스는 무척이나 자그마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했다.
이제는 흉터가 되어 버린 상처마저 치유될 정도로 말이다.
* * *
마르코는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원작의 천재 마르코로 말이다.
사흘 만에 중학교 수학 수준은 가뿐히 뛰어넘어 나흘 차에는 고등학교 수준에 돌입하는 마르코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뭘 보고 그런 오해를 한 거야?’
알고 보니 마르코는 내가 자신을 정부로 삼는 줄 알았단다.
– 대단한 자신감이야.
한마디 했더니 얼굴이 시뻘게져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 네 동생들은 원하는 일을 시켜 주마. 집사, 기사, 엔지니어 무엇이든. 공부가 하고 싶다면 아카데미에도 보내 주마. 물론 네가 충분한 쓸모를 보인다는 조건하에.
그 말에 마르코는 완전한 집중력을 되찾았다.
‘흑룡회가 끝나고 수도로 올라가면 제대로 된 선생을 구해 줘야겠어.’
마르코는 수학뿐 아니라 경영 관리에 대해서도 배워야 했다.
충분히 배워서, 다음에 내가 또 다른 인재를 물어 왔을 때 마르코가 직접 가르쳐야 했다.
“음……!”
나는 틈틈이 동산을 올라 루시스와 마력 놀이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쿠구구구-.
나와 루시스의 마력 충돌에 동산의 나무가 뿌리째로 기울어질 정도였다.
내 마력은 빠르고 확실하게 성장했다.
놀라운 것은 드래곤인 루시스 역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조금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게 될수록, 루시스는 조금 더 정갈하고 세련되게 힘을 정제할 수 있게 되었다.
┏━━━━━━
┃ 희미한 드래곤의 혈통
┃ 기초 중력 마법 (64%)
┃ 기초 마력 친화 (38%)
┃ 기초 마력 장악 (33%)
┃ 고학력자 (17%)
┃ 단단한 육체 (67%)
┃ 우월한 정신력 (32%)
┗━━━━━━
‘빙의한 지 보름도 안 됐는데 기초 중력 마법은 벌써 60% 넘게 성장했어.’
이 속도라면 1년 안에 삼성에 도달하는 것도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흑룡회는 이제 사흘 남았나.’
내 성장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흑룡회 소집일 역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저택 내의 긴장도 나날이 솟구치고 있었다.
어제는 알프레드가 큰소리로 시종을 혼내는 것을 봤다. 그 영감이 큰소리를 내는 것은 빙의하고 처음으로 봤다.
방계들은 내가 자신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가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부디 이 폭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나는 루시스를 꼭 끌어안으며 기원했다.
* * *
흑룡회 소집일이 밝았다.
고용인들은 어제부터 밤새 마지막 청소에 총력을 다했고, 나를 비롯한 혈족들도 새벽부터 기상해 몸을 씻고 광을 냈다.
‘장례식 때보다 더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흑룡회가 마지막으로 소집된 것이 백 년 전이라고 했으니 이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킁킁.”
내 품에 안긴 루시스는 사방으로 코를 씰룩이고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흑룡들을 위해 주방에서 새벽부터 각종 요리를 해 댄 탓에 저택 곳곳에서 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츄릅.”
루시스는 군침을 흘리며 나를 올려 봤다.
“배고파.”
“조금만 기다려. 어른들하고 같이 먹자.”
기다리는 게 익숙지 않은 루시스는 불만스레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내 품에 얌전히 고개를 박았다.
혈족들은 모두 가문의 홀에 모여 흑룡회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렇게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응?”
루시스가 귀를 쫑긋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홀의 정문이 열렸다.
후욱-.
열린 문으로 가장 먼저 밀려 들어온 것은 마력이었다.
정문 바로 앞으로 텔레포트해 온 드래곤들이 뿜어 대는 마력의 조각, 마나 필드였다.
‘과연.’
루시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깊고 넓은 마나 필드였다.
루시스의 마나 필드가 동산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면, 지금의 마나 필드는 저택을 가득 메우고 정원으로까지 뻗어 나갈 정도였다.
‘이게 헤츨링과 성룡들의 차이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문 너머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는 이들을 지켜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의 복식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한 세대, 한 세기는 족히 지났을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들의 행진은 가장무도회를 보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바로크 시대의 왕족이나 입었을 법한 예스러운 망토를 두른 이도 있었다.
두꺼운 마법사 로브를 입은 노인이 그나마 가장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패션 테러리스트도 이런 테러리스트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두 말을 잊었다.
“와아…….”
방계 중 누군가가 멍한 목소리를 내었다. 어느 가문에게도 미모로는 꿀리지 않는 마우솔레움 일족이 넋을 놓을 외모였다.
‘이러니 천 년이 지나서 시조룡의 피가 흐려져도 미모만큼은 제국 최고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이들이었다.
그리도 아름다운 이들이 모두 나와 같은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이 못내 자랑스러웠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뒤에서 혈족들이 부산스레 나를 따르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미천한 후손들이 위대한 분들을 뵙습니다.”
나는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자세를 고수했다.
“고개를 들라.”
자세를 바로 하고 가장 앞으로 나와 있는 드래곤에게 말을 올렸다.
어느 시기의 것인지 알아보기도 힘든 아주 오래된 사냥복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이였다.
“위대한 분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우선 식사를 하시며…….”
“아니. 그보다 헤츨링을 먼저 보고 싶군.”
드래곤의 눈은 내가 아닌 내 품의 루시스에게 향해 있었다. 가장 앞의 드래곤뿐 아니라 그 뒤의 모두 말이다.
루시스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루시스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 줬다. 제 작은 발로 바닥에 선 루시스의 주변으로 드래곤들이 다가왔다.
아이를 덩치 큰 어른들이 둘러싸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이 긴장됐다.
“호……. 이 아이가 정말 마우솔레움의 아이인가요?”
“느껴지는 마력이 비슷하긴 합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늙은 드래곤이 루시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아이야. 날개를 보여 주련?”
잠시 노인을 바라보던 루시스는 양 주먹을 꼭 쥐고 힘을 줬다.
쫘아악-!
드레스의 등 자락이 찢어지며 자그마한 하얀 날개가 불쑥 솟아올랐다.
뒤에서 들려오는 탄식은 새벽부터 루시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열심히 찾던 시아의 것이었다.
드래곤들은 루시스의 하얀 날개를 보며 수군거렸다.
“정말로 백룡의 피가 섞였군요.”
“놀랍군, 흑룡과 백룡의 혼혈이라니.”
“천 년 전에 왕성히 활동하던 백룡이 누가 있었지?”
“오모도르, 데메테르, 아카파르……. 애초에 그 시절은 누구나 인간계에서 유희를 즐기던 시절 아니었나요?”
“그중에 마우솔레움과 같이 활동한 적이 있었던 녀석은?”
“아시잖아요? 이슈타르뿐이죠.”
드래곤들은 불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천 년 전 마우솔레움이 일으켰던 재앙. 그것을 저지하고 마우솔레움을 처치한 업적으로 승천한 것이 다름 아닌 이슈타르였으니까.
그 이후 드래곤들은 앞으로 인간계에 관여하지 않고 살겠다는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조약의 이름이 ‘마우솔레움 조약’이었다.
흑룡들은 마우솔레움을 배출한 죄로 그 조약이 특히나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원작에서 흑룡들이 루시스가 죽은 뒤에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지.’
시모어와 루시스가 모두 죽은 뒤에야 흑룡의 피가 섞인 헤츨링이 속세를 돌아다녔음을 알게 된 것이다.
헤츨링을 잃은 분노에 눈이 돌아간 블랙 드래곤들은 마우솔레움 가문에 소속되어 있던 모든 인간을 불태워 죽였다.
그때만큼은 마우솔레움 조약을 어긴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고 한다.
‘드래곤들에게 헤츨링은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니까.’
드래곤들은 출산율이 굉장히 낮은 종족인지라 헤츨링을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원작엔 없었던 흑룡회의 갑작스런 소집 역시 루시스의 정보를 누군가 알렸기 때문일 터.’
내게 만찬장에서 호된 꼴을 당한 방계 중 하나일 터였다.
이미 그게 누구인지도 나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흑룡회를 앞두고 피를 볼 수는 없기에 잠시 처분을 미뤄 뒀을 뿐이었다.
‘이 흑룡회가 어찌 끝나든 간에 그놈은 곱게 이 가문을 떠나지 못할 거야.’
그때였다.
콰악!
젊은 드래곤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루시스의 날갯죽지를 거칠게 잡아 들었다.
“오?”
그런 식의 배려 없는 손길이 처음인 루시스는 깜짝 놀라 팔다리를 바동거렸다.
드래곤은 자기 손에 들린 루시스를 신경질적으로 힐끗 보고는 말했다.
“잘 자는 드래곤을 갑자기 왜 깨우나 했더니……. 쯧. 여기서 뭘 그리 떠들고 있어요? 일단 데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로브를 입은 노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로카리움. 그 아이를 내려 줘라.”
“왜요? 여기서 떠드나 돌아가서 떠드나 똑같은데 뭐 하러 시간을…….”
로카리움이라 불린 젊은 드래곤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뭐냐, 인간.”
나는 어느새 앞으로 몇 발짝을 내디딘 뒤였다.
“물러나라.”
“…….”
“그 손의 마력도 내려라.”
내 손에는 마력이 맺혀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시몬이리라.
“…….”
물러나지 않는 나를 노려보며 로카리움이 이를 드러냈다. 미소가 아니라 위협이었다.
“세 번 경고하지 않겠다. 물러…….”
나는 마력을 발현시켰다. 로카리움의 눈이 번뜩이며 루시스를 들지 않은 쪽 손을 움직였다.
턱.
그 손을 로브의 노인이 막았다.
부웅-.
내 손에서 발현된 중력 마법이 루시스의 몸을 조금 위로 띄웠다.
“오?”
그제야 조금 편안해졌다는 듯 루시스의 발버둥이 멈췄다.
나는 숨을 토해 내며 로카리움을 노려봤다.
“그렇게 들면 애가 불편해하잖습니까.”
“……호오?”
로카리움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
그 옆에서 나를 바라보던 로브의 노인이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