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6)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6화(16/109)
흑룡회 (2)
드래곤들에게 둘러싸이는 루시스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드래곤을 따라가는 것이 루시스에게 행복한 삶인 건 아닐까?’
내가 시모어가 되어 루시스가 죽는 미래는 없어졌다 한들, 결국 인간들의 세계에서 루시스는 언제까지고 외부자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헤츨링이라 마우솔레움 조약에서 잠시 예외적 존재라고 해도 언젠가는 결국 속세를 떠나야 하니 말이다.
그러느니 지금 미리 드래곤들을 따라가는 게, 같은 종족과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 내가 미쳤지.”
로카리움이라는 드래곤이 루시스의 날갯죽지를 함부로 쥐기 전까지는 말이다.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하는 것이 행복일 리 없다.
출산율이 낮으니 귀하게 여겨 주는 게 행복의 이유가 될 리 없었다.
애초에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 애정과 헌신을 가지고 돌본다는 게 아니라 그저 보호만을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루시스는 나와 지내는 것이 가장 행복해.’
왜냐하면.
내가 루시스의 부모니까.
부모에 가장 가까운 존재니까.
“오.”
날갯죽지에 부담이 덜 가도록 중력 마법을 사용하자 루시스는 부유감이 즐겁다는 듯 양팔을 저으며 킥킥거렸다.
얕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는 시선을 올렸다.
“그렇게 들면 애가 불편해하잖습니까.”
그 뒤에 이어질 수많은 욕설은 간신히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호오?”
로카리움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곁의 로브 입은 노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이 노인이 가장 권위가 높아 보인 탓이었다.
드래곤들은 나이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는 설정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아이를 데리고 가실 생각입니까?”
내 질문에 노인은 대답 없이 수염을 쓸었다. 나는 내 의견을 다시 한번 타진했다.
“루시스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흠.”
노인은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마치 직접 물어보라는 듯이.
나는 로카리움의 손에서 루시스를 부드럽게 빼앗아 왔다.
로카리움은 노인의 말을 따르겠다는 듯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루시스를 내어 줬다.
나는 루시스를 다시 제 발로 바닥에 세우고서 가장 먼저 날갯죽지를 살폈다. 다행히 붓거나 쓸린 흔적은 없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
“루시스. 앞으로 누구와 함께 살고 싶니?”
그렇게 물으면서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응.”
그리고 그 자신대로, 루시스는 아주 잠시의 고민도 없이 나를 지목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선택이라 해도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내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는데, 산통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가 없군. 얼마나 애를 세뇌시켜 놨으면 저런 선택을 해? 아니면 뇌가 덜 자라서 멍청한 건가?”
로카리움이었다.
“…….”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로카리움은 로브의 노인에게 말했다.
“들으실 것도 없습니다. 그냥 데리고 가죠. 얘가 아직 드래곤의 삶을 제대로 몰라서…….”
“왜 이리 혀가 기십니까?”
“……뭐?”
내가 말을 끊자 로카리움이 나를 돌아봤다.
“용이 아니라 뱀인 줄 알았네.”
나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면전에 대고, 나는 말을 씹어 뱉었다.
“한번 하신 약속은 지켜야죠. 그건 세 살 먹은 인간 꼬맹이도 아는 사실인데.”
“…….”
“나이도 드실 대로 드셔 놓고 이러면 미천한 저희 후손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로카리움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하, 어이가 없네.”
다음 순간, 로카리움의 황금색 동공이 나를 향해 세로로 길게 열렸다.
쫘아악-.
양팔에 소름이 돋았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솟아나며 손끝과 발끝이 차가워졌다.
‘드래곤 피어……!’
침을 삼키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버틸 만했다.
루시스의 드래곤 피어를 마주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우웅-.
나는 마법을 사용했다. 중력 마법의 목표는 내 몸. 정확히는 체내의 허파, 그 안의 공기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위로 솟구치기를 기원했다.
마법의 작동 원리는 기원.
몸의 구조나 동작 원리를 안다면 마법 발현에 도움이 되겠지만, 몰라도 마력만 쏟아붓는다면 가능했다.
“후우……!”
중력 마법이 펌프처럼 올려 보낸 숨이 내 입에서 길게 흘러나왔다.
호흡이 다시 시작되자 몸에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반쯤 얼어 있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로카리움에게 이죽거렸다.
“역시 혈통이 좋네요.”
“……뭐?”
여기서 놈을 더 도발하는 게 좋을 리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자식 앞에서라면 결코 발톱을 내리지 않는 게 부모라는 존재였다.
“루시스의 드래곤 피어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는 내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로카리움이 작게 웃었다.
“허. 천한 인간 주제에…….”
그리고 다시금 손을 들려는데…….
“으르르르…….”
어디선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스가 내 바지춤을 잡고 로카리움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으르릉…….”
루시스의 위협에 로카리움은 몇 번째인지 모를 웃음을 터뜨렸다.
“하! 너 지금 내가 저 인간 위협했다고 이러는 거냐? 진짜 어이가 없네. 너, 네가 애완견이 아니라 드래곤이라는 건 알고 있는 거지?”
루시스는 대답 대신 마력을 끌어올렸다. 로카리움도 눈썹을 추켜 올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만해라.”
로브를 입은 노인이 로카리움을 저지했다.
로카리움은 얼굴을 불만스레 일그러뜨리면서도 군말 없이 그 지시를 따랐다.
로브의 노인이 나를 바라봤다.
그 황금색 눈동자에는 루시스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길고 긴 세월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시모어라고 합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그래, 시모어. 만일 우리가 저 헤츨링을 정 데리고 가겠다면 어쩔 셈이냐?”
나는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목숨을 걸고 싸울 겁니다.”
루시스가 아래쪽에서 나를 돌아보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나는 노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노인은 끌끌 웃으며 물었다.
“네가 목숨을 건다 해서 우리가 뜻을 바꾸리라 생각하느냐?”
“바꾸지 않으시겠죠. 저는 싸우다 죽을 겁니다.”
“네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여러분께는 가치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루시스에겐 다르겠죠.”
나는 아래로 손을 뻗어 루시스의 자그마한 머리통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 어린 드래곤이 함께하고 싶다 선택한 인간이 저입니다. 그런 저의 죽어 가는 모습을 루시스에게 보여 줄 생각이십니까?”
로브의 노인은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보다가 이내 큭큭큭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드래곤을 상대로 협박을 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저는 지금 애걸하고 있는 겁니다.”
“애걸?”
“예. 제게서 루시스를, 루시스에게서 저를 앗아 가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크크크크……!”
로브의 노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 손으로 이마까지 짚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로카리움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볼 즈음이 되어서야 노인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과연. 혈통은 못 속이는군.”
“예?”
“정식으로 나를 소개하지.”
노인은 한 손으로 가슴의 로브 자락을 짚으며 작게 허리를 숙였다.
“나는 블랙 드래곤의 엘더직을 맡고 있는 인피니움이라 하네.”
인피니움.
어디에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내가 잠시 머릿속을 뒤지는 사이, 뒤쪽에서 우르르하고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혈족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미천한 혈족이 위대한 선조룡을 뵙습니다!”
시몬의 외침에 모두가 더욱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나는 그제야 인피니움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냈다.
‘허무룡 마우솔레움의 아버지.’
나를 포함한 모든 마우솔레움 가문 혈족의 먼 조상이며.
동시에 루시스의 할아버지가 되는 드래곤이었다.
나는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미천한 혈족이 위대한 선조룡을 뵙습니다!”
“고개를 들게. 너희는 모두 내 먼 손주들이나 다름없으니.”
드래곤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말을 들을 기회가 또 있을까?
뒤에서 혈족 몇몇이 감탄 어린 숨을 뱉는 게 들렸다.
인피니움은 무릎을 꿇어 루시스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루시스.”
“그래, 루시스. 내가 니 할아버지란다.”
“할부지?”
“그래.”
인피니움은 손가락을 들어 루시스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 주고는 물었다.
“루시스. 정녕 이 할아비랑 함께 가지 않겠느냐?”
루시스는 나를 돌아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시스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을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잠시 나를 보던 루시스는 다시 인피니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응. 안 갈 거야.”
그 대답에 내 가슴속에 또 한 번 몽글거리는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그래. 그렇구나.”
인피니움은 아쉬운 얼굴을 하면서도 두 번 묻지 않았다.
“어찌 이리도 똑 부러지는지. 제 아비를 쏙 빼닮았구나.”
오히려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인피니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드래곤들을 돌아봤다.
“흑룡회를 소집한 용건은 이것으로 끝난 것 같구려.”
드래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받고 우리가 걱정했던 사태는 없으니 말이오.”
그렇게 말하는 인피니움의 시선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가문 내부에 배신자가 있음을 우회해 알려 준 것이었다.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을 인지한 나는 인피니움에게 공손히 말했다.
“위대한 선조룡이시여. 저희가 준비한 만찬이 있습니다.”
“아니. 되었네.”
“하지만…….”
“이 이상 오래 머물렀다가는 내 아들놈의 이름을 딴 조약을 들먹이면서 누가 방해하러 올지 모르거든.”
그 말에는 나도 더 이상 강권할 수가 없었다.
발을 돌리려던 인피니움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로카리움에게 명령했다.
“로카리움. 너는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루시스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도록 해라.”
“……예?”
“어린 헤츨링을 아무런 방책도 없이 인간계에 둘 순 없지 않으냐.”
“그렇긴 한데……. 제가 말입니까?”
로카리움은 대놓고 싫다는 티를 냈다. 하지만 인피니움은 꿈쩍도 않았다.
“중책을 맡겨 달라고 조르던 건 네가 아니었느냐?”
“이건 중책이 아니잖아요.”
“일족의 미래인 헤츨링을 네게 맡기는 것이다. 어찌 이게 중책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저도 헤츨링인데요?”
“일족의 이름을 받은 순간부터 헤츨링이 아님을 알지 않으냐.”
“엘더 할아버지…….”
“어허. 어리광을 부리지 말거라. 인간들이 보고 있잖느냐.”
로카리움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놈의 잔류가 불편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오만방자한 놈을 루시스 곁에 두고 싶지는 않은데.’
둘의 대화를 들어 보니 로카리움은 성룡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괜히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응?’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나는 발을 완전히 돌리려는 인피니움을 황급히 불렀다.
“엘더 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음. 무엇인가?”
“루시스는 언제쯤 일족의 이름을 받게 됩니까?”
다른 흑룡들의 이름과는 돌림자가 다른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루시스라는 이름은 아명(兒名)이었다.
“반세기를 살아야 하고, 또 본체의 뿔이 자라나야 하지.”
“드래곤의 위계는 아주 단단하여 백 살만 많아도 공경하고 존중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지. 그 탓에 이 부덕한 몸이 엘더직을 맡고 있지 않나?”
재밌는 농담이라는 듯 드래곤 몇몇이 짧게 웃었다.
나는 재차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고 싶습니다. 드래곤이 나이를 세는 기준은 탄생 시기입니까?”
“……오호라.”
인피니움은 내가 왜 일련의 질문을 했는지 알겠다는 듯 껄껄껄 웃었다.
“자네의 짐작이 맞네. 탄생을 기점으로 나이를 세지.”
정확히 내가 바라던 대답이었다.
나는 루시스를 품에 안아 들고서 로카리움을 바라봤다.
“뭐냐, 인간.”
로카리움은 갑작스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내가 이해 안 가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로카리움을 보며 루시스에게 말했다.
“인사해, 루시스. 네 동생이야.”
“오?”
“뭐?”
루시스와 로카리움이 동시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자, 잠시만요! 할아버지!”
어찌된 상황인지 눈치챈 로카리움이 당황한 얼굴로 인피니움을 불렀다.
인피니움은 다만 상황이 재밌다는 듯 끌끌 웃을 뿐이었다.
‘로카리움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겠지.’
엘더도 루시스를 계속해서 헤츨링이라 불렀으니 말이다.
헤츨링에서 벗어나 성룡 취급을 받으려면 일족의 이름을 받아야 한다.
일족의 이름을 받으려면 500살이 넘어야 하고 본체의 뿔이 자라나야 한다.
루시스는 천 년 전에 태어났으니 천 살이다.
하지만 태어난 직후 봉인되어 자라지 못했으니 뿔이 없어 일족의 이름을 받지는 못한다.
‘즉, 천 살 먹은 헤츨링인 거지.’
헤츨링이라는 호칭에 로카리움은 저보다 동생일 거라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대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는 것이다.
“……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루시스가 로카리움을 홱 돌아봤다.
그 눈빛에 로카리움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자신이 루시스에게 저지른 무례가 떠오른 탓이리라.
“흐흥.”
루시스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콧대를 바짝 세웠다. 그러고는 토실토실한 손가락으로 로카리움을 척 가리켰다.
“어린 주제에 천한 것.”
자그마한 입에서 매섭게 쏟아지는 매도.
“주제를 알아라, 땅콩.”
“……!”
“아하하하!”
그 말에 로카리움은 경악했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루시스와 처음으로 만났던 날, 못되게 구는 인간에게 써먹으라고 알려 준 문장이었다.
루시스의 매도에 로카리움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땅콩은 지가 땅콩만 하면서……!”
자신에게 몰아치는 수많은 억울한 상황 중에서도 그것이 제일 억울하다는 듯, 로카리움은 서럽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