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8화(18/109)
흔적 (2)
루시스의 머리며 손목에 매여 있는 화관은 마렉과 마리가 짠 모양이었다.
루시스는 그것들을 한 번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또 한 번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들이 제게 바친 공물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공주님 웃는 거 너무 예뻐요!”
“공주님 귀여워어어어어!”
루시스의 심쿵 미소에 아이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루시스의 콧대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떠받들어 주는 게 그렇게 좋아?”
시아가 작게 웃으며 루시스의 코를 훔치자 루시스는 목을 움츠리며 킥킥킥 웃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여, 백작님!”
“백쟉님!”
나는 대답 대신으로 두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쓸어 준 뒤 시아와 루시스에게 다가갔다.
“어서 와.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마차만 타고 있었는데.”
“흐흥.”
루시스는 나를 향해 의기양양한 얼굴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작게 웃으며 루시스의 볼을 쓸어 줬다. 언제나처럼 솜사탕같이 보드라운 볼이었다.
루시스는 내 손길에 눈을 반달로 만들면서도 나를 향한 으쓱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물론 저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훤히 보였다.
내가 루시스를 디자인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루시스의 표정을 잘 읽지 못해도 내게만은 잘 보였다.
– 내가 이렇게 대단한 존재다.
– 너도 앞으로 나를 좀 더 공손히 뫼시거라.
지금 루시스의 얼굴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제 프라이드 주머니인 양 볼에 흐뭇하다 못해 흡족하기까지 한 미소를 채워 넣고서 말이다.
“크크크……. 정말 누굴 닮아서 이렇게 귀여울까.”
나는 시아의 무릎에서 루시스를 들어 품에 안았다.
루시스와 부드럽게 이마를 맞대자 아기 냄새와 꽃향기가 내 코를 간질였다.
루시스는 양손을 들어 내 볼을 챱챱 두드렸다.
‘좋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좋았다.
‘행복과 평안’이라는 단어가 형태와 냄새, 촉감을 갖추면 지금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해결한 일들보다 해결해야 할 일이 더 많고, 나아가야 할 날들도 수없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음…….”
루시스는 제 손목의 꽃 팔찌를 빼서 내게 건네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히 걸 곳이 없는지 이리저리 헤매던 손이 내 왼쪽 귀에 팔찌를 걸었다.
“아하하하하.”
그 별것 아닌 행동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마워, 루시스.”
“킥킥킥.”
눈부시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 자신과 이 아이에게 원작과 다른 결말을 선사할 것임을.
우리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것이다.
* * *
이틀 뒤.
기다란 마차 행렬이 영주성을 출발했다.
마우솔레움 가문의 모든 직계와 방계들, 그들을 모시는 시종과 시녀들, 호위 기사단과 그 종자들까지.
족히 오백 명이 넘는 거대한 행렬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두가 말, 혹은 마차를 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돈이 많은 가문이야.’
이 세계의 말은 지구의 자동차보다도 비싸다. 특히나 생물인지라 유지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지구에서야 서민도 자동차를 몰 수 있지만 이 세계의 평민들에게는 턱도 없는 이유였다.
그러니 말 수백 마리가 우르르 움직이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길을 가던 모험가들과 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한 영지의 경비병은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황급히 경비대장을 부르기까지 했다.
“마우솔레움 백작님이시군요! 오신다고 영주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일정 사흘 차, 우리가 하루 묵어갈 영지인 레티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마침 영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드시죠.”
우리는 환대를 받으며 영지에 들어섰다.
레티샤는 마우솔레움 영지와 제국 수도의 사이에 위치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 덕에 수많은 물자와 상인들이 오가기에 부를 축적해 거대해질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친마우솔레움적 행보를 보이는 영지였다.
‘마우솔레움 영지는 위아래로 길쭉해서 이런 도시가 한둘이 아니지.’
교회에서 마우솔레움을 혐오하기까지 하면서도 표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마우솔레움에 딸린 입이 너무나 많고 종교 단체는 결코 대중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백작님!”
레티샤의 영주는 영주성의 성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양팔을 벌려 우리를 환대했다.
그 모습에 나는 동생들을 불렀다.
“시몬, 시아.”
“응?”
“왜?”
“너희가 나 대신 쟤랑 좀 놀아 줘라.”
“쟤? 누구?”
“루시스?”
“아니. 루시스는 나랑 놀 거고.”
나는 창밖의 영주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쟤 말야, 쟤.”
“쟤……?”
“레티샤 영주?”
시몬과 시아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주를 만나는 것은 응당 가주의 일이었다. 그것도 레티샤처럼 커다란 영지라면 말이다.
“뭘 놀라고 그래? 내가 백작이 되고 가주가 되면 너희가 내 대리야.”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아직 이 세계의 귀족 예법에는 익숙지 않으니까.’
시모어가 망나니 비슷한 거긴 하지만 그건 결국 마우솔레움 가문 내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차기 가주가 귀족 세계의 예절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마우솔레움 가문의 격이 떨어진다.
‘그러니 차라리 자리를 회피하는 게 낫지.’
여행길에 피곤해서 동생들을 대신 내보내겠다고 하면 오만하다는 소리는 듣겠지만 격이 떨어질 일은 없었다.
오만한 정도로 격이 떨어지기에는 마우솔레움 가문은 너무나 오랫동안 악의 가문으로 군림해 왔으니까.
‘품격 있는 악역 가문. 그런 설정이지.’
철없는 행동이나 예의 없는 행동은 통하지 않아도 오만하거나 거만한 것은 통한다.
그게 마우솔레움 가문이었다.
‘늦든 빠르든 언젠가 이 둘이 할 일이기도 하고.’
내가 은퇴하면 결국 귀족들과 인사를 하고 인맥을 다지는 건 이 둘의 몫이다.
먼저 시키든 늦게 시키든 큰 차이는 없을 터였다.
‘나는 그동안 루시스랑 보석 구경이나 좀 할까?’
결국 동생들한테 짬 때리고 논다는 소리였다.
* * *
시몬과 시아는 엉겁결에 레티샤 영주에게 접대를 받았다.
영주는 처음에는 시모어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몹시 불쾌해했지만, 곧 웃고 떠들며 남매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중에는 가벼운 농담이나 가십거리들도 있었고 근처의 정세나 정치적 사안까지 중요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두 시간에 걸친 접대 후 남매는 귀빈실로 안내되었다.
“…….”
“…….”
남매는 잠시 각자의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폭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였다.
아무리 대귀족의 자제라 한들 다른 영주와,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귀족과 독대 아닌 독대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자리에는 언제나 시모어만 동행시켰으니까.
남매는 아직도 자신들이 무슨 말을 했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반쯤 얼떨떨해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시몬이었다.
“나……. 혹시 말실수한 거 없었지?”
그 질문에 시아도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답했다.
“아니야. 오빠 완전 괜찮았어.”
“그런가? 쓸데없는 말 하거나 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내가 너무 듣기만 했지. 시모어 오빠 안 왔다고 영주 표정 엉망이었다가 중간부터 펴진 거 시몬 오빠도 봤잖아. 충분히 잘했어.”
“그래? 하……. 다행이다.”
남매는 각자 조용히 조금 전 있었던 대화를 곱씹었다.
그리고 서서히,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인맥’이라는 것을 말이다.
고작 두 시간 얼굴을 마주 봤을 뿐이지만 레티샤 영주는 남매의 인맥이 되었다.
모든 귀족들이 제국 수도에 저택을 두고 파티를 벌이며 사교에 힘을 쏟는 건 아니었다.
레티샤 영주처럼 사교계와는 담쌓고 영지 경영에만 전념하는 이들과 인맥을 쌓을 방법은 이번처럼 직접 방문해 얼굴을 보는 경우밖에 없었다.
“……오빠.”
“응.”
그런 기회를 시모어는 시몬, 시아 남매에게 양보했다.
그것도 레티샤는 마우솔레움 영지와 제국 수도의 중간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나 다름없는 영지였다.
막말로 이곳의 영주가 시모어보다 시몬과 친해진다면 시몬이 반역이라도 일으켰을 때 수도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시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읏.”
시아는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시몬은 그런 시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남매는 파도쳐 오는 감정을 더 이상 막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며 기쁨에 몸을 떨었다.
“정말……. 변했구나.”
시몬은 시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제 마음도 함께 다독였다.
마음속에 있던 마지막 의심마저 버렸다.
“형님은……. 정말 변한 거구나.”
레티샤 영주의 접대를 대신 받으라는 시모어의 말.
그 몇 마디에 동생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앞으로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약속.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시모어는 자신이 변했음을,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 * *
동생들에게 접대를 짬 때린 뒤, 나는 내게 배정된 귀빈실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루시스는 영지에서 가지고 온 보석을 들여다보며 놀았다. 재단사, 안드레에게서 구매했던 보석이었다.
‘안드레는 잘 준비하고 있으려나.’
안드레는 흑룡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제국 수도로 올려 보냈다.
수도에 유행하는 패션을 먼저 공부하고 있겠다는 본인의 주장 때문이었다.
‘본인이 가장 큰 열의를 보이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루시스는 거의 입까지 헤벌리고 보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드래곤들이 다 금은보화를 좋아한다지만 루시스는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보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마 유괴범이 보석을 내밀면 의심 없이 따라가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흠…….”
장난기가 돈 나는 루시스의 곁에 슬쩍 앉았다.
루시스는 내가 곁에 온 것도 모르고 바닥에 늘어놓은 보석들을 하나씩 들어서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슬쩍, 나는 보석 중 하나에 손을 댔다.
빠안, 루시스의 시선이 귀신같이 따라붙었다.
집어 든 보석을 주머니 쪽으로 가져가자 루시스의 입술이 실룩이기 시작했다.
모른 척 보석을 주머니에 반쯤 넣자 루시스의 입술이 벌어지며 이가 드러났다.
“으르릉…….”
보석을 주머니에서 빼자 으르렁거림이 멈췄다.
다시 집어넣으려 하자 이를 드러낸다.
“으르르…….”
제 욕망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보석을 돌려줬다.
그러자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 다시 눈을 반짝이며 보석을 구경한다.
“크크크…….”
이런 모습을 보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루시스. 보석이 좋아, 내가 좋아?”
내 유치한 질문에 루시스는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분은 좋아졌지만, 장난기는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그러면 나랑 같은 크기의 보석이 있다면, 내가 좋아 그게 좋아?”
“오…….”
루시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으음…….”
미간에 주름까지 잡는 그 진지한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다 누가 보석 광산을 선물해 주면 냉큼 시집이라도 갈 기세였다.
* * *
루시스를 두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자 난리가 나 있었다.
“도련님! 아기님이 사라지셨습니다!”
루시스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보석들만 돌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루시스? 루시스!”
“아기님! 어디 계세요?”
집사장, 시종, 기사,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루시스를 찾았다.
다행히도 루시스 미아 사건은 5분 만에 마무리되었다.
누군가 루시스를 품에 안고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또 뵙는군요. 마우솔레움 백작님. ……아, 아직 영식이셨던가요?”
루시스는 여인의 하얀 머리칼에 고개를 폭 박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이리나 이슈타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