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9)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19화(19/109)
흔적 (3)
시모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도 루시스는 보석을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와아…….”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루시스는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어려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괜스레 가슴이 따뜻해지고 콧노래가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 황금색 보석과 보라색 보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던 누군가의 눈동자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솨아아-.
그때,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하얀 커튼이 나부끼는 모습에 루시스는 창으로 눈을 돌렸다.
손님용 별관의 창밖으로는 자그마한 정원이 가꿔져 있었다. 그 작은 나무와 꽃밭 사이에서 한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여인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하얀 머리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마?”
루시스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구루루. 보석들이 돌멩이처럼 바닥을 굴렀지만 루시스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루시스는 짧은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간신히 창틀을 기어 넘었다.
제 키만 한 관목을 헤치고 나가 보니 여인은 등을 돌려 떠나가고 있었다.
루시스는 여인을 향해 다리를 재게 놀렸다. 하지만 짧은 다리로는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학! 학!”
숨이 차도록 달리던 루시스는 날개를 펼쳐 날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 잠시의 흐트러짐 탓에 발이 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아코!”
철퍼덕 넘어진 루시스는 아픈 줄도 모르고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여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멍하니 여인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루시스를 누군가 안아 들었다. 루시스의 시야로 하얀 머리칼이 쏟아져 내렸다.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든 루시스를, 이리나가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기 드래곤님?”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진 루시스는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여인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 자리에는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뭐가 그리 급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간 것일까.
뭐가 그리 싫어 뒤를 잡힐까 서둘러 간 것일까.
괜스레 서러워진 루시스는 이리나의 가슴에 고개를 폭 박았다.
* * *
“루시스?”
내 부름에 이리나의 품에 고개를 묻고 있던 루시스가 나를 돌아봤다.
황금색 눈동자에는 서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래? 누가 울렸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이리나가 저도 모르게 반 발짝 물러났다.
“…….”
“…….”
나와 이리나는 잠시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를 향한 경계심과 의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응…….”
루시스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내게 오고 싶다는 그 손짓에야 이리나는 머뭇거리다 내게 루시스를 넘겨줬다.
나는 루시스를 부드럽게 안아 엄지로 이마를 쓸어 줬다.
“루시스. 괜찮아?”
루시스는 대답 대신 내 품에서 몇 번 바르작거렸다. 둥지를 손질하는 짐승처럼 이리저리 몸을 틀더니 내 팔과 가슴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대화조차 거부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속이 상하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루시스를 토닥여 주며 이리나에게 눈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묘한 눈으로 나와 루시스를 보던 이리나는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달려가다가 꽤 아프게 넘어지셨습니다.”
루시스의 드레스에 넘어진 흔적이 있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스는 생각보다 튼튼한 데다가, 본인도 넘어진 것이 아프지는 않은지 무릎이나 손을 문지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몸보다는 마음을 다친 것 같은데 물어보고 달래 주고 싶어도 저렇게 혼자서 삭이고 있어서야 방법이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건가.’
나는 루시스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이리나에게 고갯짓했다.
“이리로.”
나는 이리나를 손님용 별관의 응접실로 이끈 뒤 시종들에게 차와 다과를 내오라 일렀다.
루시스는 영특한 아이니 어찌 되었든 혼자서 잘 돌아왔을 것이나, 아이를 보호자에게 안내해 준 이를 그냥 되돌려 보낼 수는 없었다.
“고마워. 덕분에 내가 루시스를 조금이라도 일찍 달래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
이리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눈썹을 추켜올리자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눈을 돌렸다.
“왜 그래?”
“당신의 입에서 감사 인사가 나올 줄은 몰랐군요.”
원작의 시모어는 쉽게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시모어가 아니었고, 굳이 시모어의 역할에 맞춰 내 말버릇까지 바꿀 생각은 없었다.
“백작의 자리에 오를 예정이니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쓰는 건가요?”
그렇게 묻는 이리나의 말에는 가시가 서 있었다.
마우솔레움 가문과 이슈타르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었다.
교회가 마우솔레움 가문에 이를 가는 것처럼, 마우솔레움 가문은 이슈타르 가문에게 이를 갈며 언제나 수작질을 벌여 왔으니까.
물론 이슈타르 가문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양 가문의 가주들은 자연사한 경우보다 서로의 가문이 보낸 암살자에게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던가.’
물론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나라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탓에 자연사한 가주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굳이 말을 돌리며 간을 보거나 신경전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를 찾아온 용건은?”
이리나가 루시스를 찾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레티샤 같은 변방의 영지에 이슈타르 후작가의 영애가 며칠이나 머무를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 영지를 반드시 지나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숙적 가문의, 그것도 오백 명이나 되는 대인원을 이런 변방 영지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다니.’
이리나가 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기사만 아니었다면 비명횡사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미련하고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그런 강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이야말로 이리나다웠다.
이리나 역시 굳이 말을 돌릴 생각은 없다는 듯 내 품에 안긴 루시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아기 드래곤님. 백룡 일족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아. 백룡과 흑룡의 혼혈, 이름은 루시스라고 하지.”
어차피 다음 주에 있을 계승식에서 공공연히 밝힐 이야기였기에 나는 주저 없이 루시스의 정체를 밝혔다.
“루시스? 아명인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리나의 고개가 기울었다.
“그 또한 예상외로군요.”
“무엇이?”
“당신들이라면 일찌감치 흑룡의 이름을 붙였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성룡이 되기 전까지는 일족의 이름은 붙이지 못하는 것이 관례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지난 흑룡회 때의 일들을 기억해 내며 이어붙여 말했다.
정답이었는지, 이리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우솔레움답군요. 언제나 전통과 관례에 집착하죠.”
“그런 것을 꼼꼼히 챙기라고 앉아 있는 자리잖아.”
“아뇨. 귀족은 남들의 본이 되라고 있는 자리입니다. 관례는 그저 수단의 하나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리나는 자신의 생각에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다는 듯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게임 속 설정 그대로야.’
이슈타르 가문과 마우솔레움 가문은 원수지간이며 거기서도 이리나와 시모어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었다.
‘성별, 가문, 성격, 싸움 방식, 심지어 퍼스널 컬러까지 모든 것이 반대지.’
악랄한 무법자 마우솔레움의 가주와 명예로운 수호자 이슈타르의 기사.
그림으로 그린 듯한 라이벌 관계였다. 이리나 이슈타르는 기획 모티브 자체가 시모어 마우솔레움의 대적자인 탓이었다.
“이제 어쩔 셈이지? 혈통의 반이 그쪽이니 루시스를 내어놓으라 말할 건가?”
이리나의 눈이 내 품에 고이 안겨 있는 루시스의 뒤통수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그 시선을 차단하듯 루시스의 뒤통수를 쓸었다.
“…….”
나를 보는 이리나의 눈빛이 묘해졌다.
“정말로 그 아이를 귀애하는군요.”
“이리도 귀여운 아이인데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이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내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듯이.
나는 그 눈빛을 받으며 조용히 루시스의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던 이리나는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뭔가에 허탈해하면서도 마지막 의심은 놓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혹시나 해서 묻겠습니다만, 아이를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이용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글쎄. 그럴 생각이 없다 한들 귀족가의 드래곤은 그 존재만으로 정치적이라.”
“그건 맞는 말입니다.”
이리나는 잠시 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다 물었다.
“아이를 곁에 두고자 해도 결국 마우솔레움 조약이 방해가 될 텐데요.”
“그 전에 묻지. 누가 루시스의 존재를 문제 삼아 조약을 발동시킬 거지?”
“그야…….”
이리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조약을 어겼다 한들 누가 드래곤을 벌할까? 인간들이? 드래곤들 스스로가? 아니면 신이?”
“…….”
“애초에 마우솔레움 조약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의미에서 드래곤들이 자정을 목적으로 세운 조약이야. 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헤츨링이 인세를 돌아다닌다 해서 혹독하게 조약을 적용할까?”
물론 순수 흑룡의 아이였다면 문제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루시스는 광휘룡을 배출한 백룡의 피가 섞여 있었다.
실제로 흑룡회에서도 루시스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리나는 흑룡회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루시스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루시스가 인간들에게 피해를 끼치도록 방관할 생각도 부추길 생각도 없어.”
“……그렇습니까.”
이리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찻잔을 들었다. 나를 경계하느라 입에도 대지 않고 있던 찻잔이었다.
만일 내가 루시스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거나 애정 없이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데리고 있었다면 이리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게서 루시스를 구했을 것이다.
‘원작에서도 이리나는 늘 루시스를 구하고 싶어 했으니.’
이리나는 시모어를 척살한 이후 주인공 플레이어와 행동을 함께하게 된다.
그런 만큼 이리나의 특성과 성격은 ‘선한 주동 인물’의 것에 가까웠는데, 착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아이들에게 약했다.
‘그것도 자신의 핏줄이 섞인 아이라면 목숨조차 걸지.’
비록 원작에서는 루시스가 살아남는 루트가 전무했지만 말이다.
시모어의 사후 이리나가 주인공과 함께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루시스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후작가를 떠나 떠돌이 기사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주인공과 함께 수많은 이들을 구하게 되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세계를 위해 헌신한 끝에, 게임의 엔딩에서 이리나는 ‘구원의 기사’라는 칭호와 백작위를 받게 된다.
작위 수여식이 끝나고 루시스의 무덤을 찾은 이리나는 무덤에 피어난 하얀 꽃을 보며 그제야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는 서사를 가진 인물이었다.
“……이슈타르 영애.”
“‘경’이라 불렀으면 하는군요.”
“이슈타르 경.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라는 말에 이리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적의와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시모어에게, 마우솔레움 가문에게 데었으면 부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저런 눈을 하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경이 루시스의 선생님 역할을 해 줬으면 해.”
“……선생이요?”
이리나는 전혀 예상도 못 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래곤님에게 검술이라도 가르칠 생각입니까?”
“아니. 검술이 아니라 교양 쪽으로 말이야.”
이리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교양이요?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검술에만 매진해 온 이리나에게 귀족들의 예절이나 관례를 완벽하게 꿰고 있는 시모어가 교양 선생을 부탁한다.
확실히 모욕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진심이야. 경에게는 내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있어.”
이리나에게는 선한 일을 해낼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다. 또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염치와 엄격함 역시 가지고 있다.
시모어가 전형적인 악인이라면 이리나는 전형적인 선인이었다.
그래서 이리나가 좋았다. 게임 속 등장인물임에도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만일 딸이 있다면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부탁할게. 루시스의 선생이 되어 줘.”
이리나는 보랏빛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나도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시모어와 이리나의, 마우솔레움과 이슈타르의 신뢰는 아직 그리 깊지 않았다.
“…….”
그런데 이리나의 반응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볼을 붉게 물들이며 입술을 깨무는 것이다.
뭔가 싶어 그 시선의 끝을 좇아가 보니 품속의 루시스가 고개를 돌려 이리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뭐가 그리 서러운지, 입술까지 비죽이며 말이다.
“으으으…….”
꾸욱. 이리나는 제 심장 어귀를 눌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담담히 생각했다.
‘넘어왔네.’
이리나는 아이에게 약하다.
그것도 제 핏줄이 섞인 아이에게는 더더욱.
“흠, 흠. 이슈타르 경? 내가 대답을 잘못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헛기침을 하며 넌지시 목소리를 냈다.
“다시 묻지. 루시스의 선생이 되어 주겠어?”
이리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루시스에게 인성 1타 가정교사가 생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