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0)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20화(20/109)
그레니엄 (1)
시모어와의 만남을 가진 후 이리나는 곧바로 말을 타고 레티샤를 떠났다.
조금이라도 빨리 수도의 이슈타르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벌써 며칠째 훈련을 못 했어.’
루시스의 정체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레티샤에 대기하며 며칠이나 시간을 허비했다.
한 명의 기사로서 이 이상 훈련에 쓰일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물론 훈련에 장소를 구애받을 정도로 이리나의 경지가 낮지는 않았다.
기사란 무릇 몸과 검 한 자루만 있으면 어디서도 전투가 가능하게끔 훈련해야 하니까.
하지만…….
‘역시 집 외의 장소에서 씻는 건 조금…….’
문제는 훈련 후의 목욕이었다.
의복은 물론 무기조차 내려놓고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간.
그 시간을 익숙하고 안정적인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한다는 것은 이리나에게 있어 큰 스트레스였다.
그 탓에 레티샤에서 보낸 지난 며칠도 간단한 기본 훈련과 샤워 정도로만 일과를 해결해 왔었고, 이제는 한계였다.
찌뿌둥한 몸을 제대로 풀어 주고 따뜻한 목욕이 하고 싶었다.
다각, 다각-.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와 진동에 몸을 맡기고 있던 이리나의 머릿속에 문득 시모어와 루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이나 일과를 미룬 값어치가 있는 만남이었을까.’
레티샤에서 잠복 아닌 잠복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리나는 루시스를 시모어의 마수에서 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야, ‘그’ 마우솔레움이 순수한 의도로 아이를 데리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시모어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껴 줄 리가 없으니까.
분명 시모어 마우솔레움이 아이를 군사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데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이리나는 자신이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신 오랜 훈련으로 감각을 갈고닦은 덕에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파악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잠시 스쳐 가는 눈빛, 몸이 기울어지는 방향, 손가락이 향하는 각도를 통해 그것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판단하건대, 루시스를 바라보는 시모어의 눈빛과 몸짓에는 연민과 애정 외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모어 마우솔레움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뛰어난 사람이기는 하지만 없는 감정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해.’
시모어는 진심으로 아이를 아끼고 있었다. 그것이 이리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심장조차 차가울 것 같은 시모어 마우솔레움이 아이를 귀애한다고?
이리나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시모어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하고 있다고 믿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선생 자리를 수락한 게 다행인지도 몰라.’
시모어가 혹시라도 루시스에게 못된 짓을 하나 감시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백룡의 피가 섞인 아이를 마우솔레움 가문에 두고 못 본 체할 수만은 없으니 자신이 주기적으로 아이를 챙겨 주고 확인하면 될 터였다.
“……후우. 그게 아니야. 반성을 해야지, 이리나.”
이리나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생각을 바로잡았다.
자신은 협박에 넘어간 것이다.
선생이 되지 않으면 제 심장을 터뜨려 버리겠다는, 귀엽고 하찮지만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협박에.
“으으으…….”
루시스의 울먹이는 얼굴을 떠올리자 이리나는 또 한 번 심장이 시큰해졌다.
이건 명백히 자신의 단점이었다.
외모에, 그것도 귀여운 외모에 너무나도 휘둘리는 것 말이다.
이러다 거대한 강아지 마수라도 튀어나온다면 저항도 못 하고 잡아먹힐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원에서 넘어져서 서러워하던 아이를 또 한 번 서럽게 만들 수는 없었는걸……!’
또다시 자기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생각.
이리나는 그것을 말의 고삐를 틀어쥐며 바로잡았다.
“이럇!”
말은 발굽을 다각이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가주께는 또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빠른 속도에 어지럽게 변하는 풍경만큼이나 이리나의 머릿속도 어지러워졌다.
* * *
레티샤를 떠난 마차 행렬은 빠르게 제국 수도로 향했다.
마우솔레움 가문과 황실이 협력하여 깔았다는 깔끔한 대로 덕분이었다.
돌부리에 걸릴 일도 덜컹거릴 일도 없이 부드러운 진동만이 느껴지는 마차를 타고서, 느릿하게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보는 건 꽤 나른해지는 일이었다.
한적한 시골의 풍경 사이에서 가끔씩 모습을 보이는 수비대나 모험가들의 모습을 보는 게 전부인 그런 지루하지만 정감 있는 여행.
‘이게 마캉스지.’
마차 바캉스.
내가 만든 신조어였다.
물론 마차를 타는 내내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지는 않았다.
제국 수도에서 봐야 할 업무 목록도 살피고 루시스랑 틈틈이 놀아 주면서, 마차 주변으로 유리구슬을 공전시키는 훈련도 계속했다.
그중에서도 마르코의 교육 감독에 열중했다. 다시 말하지만, ‘감독’에 열중했다.
“……그리하여 마우솔레움 가문은 대귀족인 백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공 덕에 황실과도 가까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집사장 알프레드의 가문 역사 강의 시간.
마르코는 알프레드의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주요 내용들을 받아 적었다.
나는 곁에서 루시스를 무릎에 앉히고 그 수업을 적당히 귀동냥하며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제국 수도에서 학자 하나를 수학 선생으로 초빙해 오기 전까지는 다른 과목 수업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마르코의 수학 실력은 이미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탓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수학은 이차방정식 정도가 끝이니…….’
내 인생의 수학은 그래프가 등장하는 순간 끝났다.
그 외의 수업은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히 알프레드의 몫으로 돌아갔다.
‘빨리 배워라, 마르코.’
마르코가 일을 빠르게 배울수록 내 일이 줄어든다.
영지에서야 업무량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수도에 가면 일이 늘어날 테니 말이다.
가주로서 가문을 이끄는 것은 물론 선대 백작의 사업체들까지 모두 물려받아야 했고, 안드레와 함께 리차드의 사업체였던 패션 사업체까지 재론칭해야 했다.
‘한동안은 바빠지겠지.’
바빠진다는 말만으로도 내 안의 과로사로 죽은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껏 손에 넣은 플래티넘 훈남의 삶을 날려 버릴 수야 없으니까.
‘그래도 주인공이 등장할 때까지만 바쁘게 살면 그 이후로는 평안한 삶을 구가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이 마캉스가 바빠지기 이전의 마지막 휴식이라는 의미였다.
“웅…….”
내 무릎에 앉아 몸을 기댄 루시스는 바깥 풍경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마차의 적당한 진동, 알프레드의 단조로운 목소리와 지루한 내용, 나와 주고받는 온기까지. 졸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쉿.”
나는 알프레드와 마르코를 향해 손가락을 세웠다.
알프레드는 즉시 수업을 멈췄고 마르코도 이제까지 적어 둔 내용을 가지고 혼자 조용히 복습에 들어갔다.
나는 루시스의 통통한 배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조금씩 루시스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고개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나는 그 고개를 부드럽게 받아 목이 아프지 않게 내 팔에 기댔다.
“음냐…….”
루시스는 결국 레티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다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을 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애써 작위적으로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
루시스는 감정과 욕망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순수한 아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아이기도 했다.
모순적이지만, 아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토록 놀라운 존재니까.
나는 깊이 잠든 루시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자그마한 머리통에 어떤 생각들이 들어 있을까. 어떤 기억들이 들어 있을까.
이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해석할까.
몹시도 궁금했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루시스의 세상에는 갈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도와줄 뿐이지.’
창밖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이 루시스의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 *
일주일에 걸친 마차 여행 끝에 우리는 제국의 수도, 그레니엄에 도착했다.
“오오……!”
루시스는 창밖으로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정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가 작아 창틀에 간신히 턱만 올리고 있는 게 안타까워 품에 안아 팔 위에 앉혀 줬더니 내 앞섶을 쥐고 흔들어 댔다.
수도의 드높은 건물들을 구경하고 있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 속에 구현했었던 도시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감각이었다.
‘마우솔레움 영지도 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레니엄은 게임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니까.’
스토리 진행의 7할이 이곳에서 진행되는 만큼 그레니엄은 내게도 무척이나 의미가 깊은 도시였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눈을 뜨는 장소도, 시모어 마우솔레움이 죽는 장소도 모두 이 도시니까 말이다.
‘아, 저 골목. 암시장 입구가 있는 골목이다.’
가끔씩 이렇게 스쳐 지나가듯 눈에 띄는 익숙한 지리에 나는 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제국의 수도라는 방대한 도시답게 두 시간을 더 움직여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나는 지루한 줄도 모르고 도시를 구경했다.
“도로롱~.”
물론 루시스는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낮잠에 빠졌다.
문득 창밖으로 교회 하나가 보였다.
교회 자체야 조금 전부터 드문드문 보였지만 내가 찾던 교회가 눈에 띈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정지.”
내 말에 창밖 가까이에서 말을 몰고 있던 호위기사가 전방을 향해 외쳤다.
“정지!”
행렬 곳곳에 퍼져 있던 기사들이 그 외침을 연이어 후창하고 얼마 가지 않아 행렬 전체가 멈춰 섰다.
“시몬. 시아와 함께 행렬을 통제해서 먼저 타운하우스에 가. 나는 잠시 들러야 할 곳이 있어.”
시몬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창밖의 교회를 확인하고는 눈썹을 모았다.
마우솔레움의 영묘에 들렀던 일의 연장임을 눈치챈 것이다.
“그……. 괜찮겠어?”
“뭐가?”
“……아니야. 알겠어. 루시스에게는 형님의 옆방을 내어 줄게.”
나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루시스의 앞머리를 한번 쓸어 주고 마차에서 내렸다.
호위기사 둘이 말에서 내려 내 곁으로 따라붙었다.
우리 행렬의 정지에 대로에는 때아닌 정체가 일어났다.
하지만 마우솔레움 가문을 의미하는 검은 비늘의 문장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행렬이 다시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교회에 발을 들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교인은 두셋밖에 없었다.
‘지구의 교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네.’
뾰족하니 드높은 지붕,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 나무로 된 장의자와 조용한 분위기까지.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이 세계의 교회는 신상 숭배를 금지하지 않았기에 건물의 곳곳은 물론 교인들도 자그마한 신상(神像)을 들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자그마한 기도 소리만이 울리는 교회에 기사들의 갑옷 소리가 유독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교인 하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하고는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어서 오십시오. 귀족분이신가요?”
교회의 잡일꾼 역할을 하는 부제(副祭) 하나가 내게 쪼르르 다가왔다.
“프롬 신을 모시는 저희 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혹시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
내 머리카락 색과 눈 색을 확인한 부제의 말이 조금씩 느려졌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경악스레 중얼거렸다.
“……마우솔레움 백작가?”
그 목소리에 교회의 모든 눈동자가 내게 집중되었다.
“허억……!”
“마우솔레움……?”
“악마의 가문이 왜 교회에…….”
경악, 공포, 불신, 무엇보다 혐오.
교인들은 놀란 얼굴로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읊조렸다.
부제들은 황급히 발걸음을 놀려 교회 곳곳에 배치된 신상들을 등 돌려세웠다.
마치, 몹쓸 것이라도 교회에 들어왔다는 양 말이다.
저벅, 저벅.
교회의 안쪽에 서 있던 사제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미소 띤 얼굴이지만 그것은 결코 환영의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분노를 참기 위해 억지로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악마의 후예, 배신의 일족께서 저희 교회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 노기 어린 목소리에 나는 다시 한번 실감했다.
내가 이 세계의 악역에 빙의했다는 것을.
‘시몬이 괜찮겠느냐 물었던 건 이 때문이었나.’
싸워야 할 적이 방계뿐이었던 영지와 달리 이곳에는 내 적이 아닌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