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2)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22화(22/109)
종탑 (1)
양복점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종탑, 계승식이 진행될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탑의 위치와 내려다보이는 각도 등을 모두 따져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기가 좋겠네.’
나는 계승식 당일에 퍼포먼스를 위해 쓰일 장소들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다름 아닌 루시스를 위한 퍼포먼스였기에 나는 직접 발품을 팔고 있었다.
장소 물색을 끝내고 지상으로 내려가기 전, 나는 고개를 들어 도시의 정경을 둘러봤다.
근방에 이 종탑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기에 시야가 가려지는 일 없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정말 거대한 도시야.’
그레니엄은 제국의 수도라는 이름답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거의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는 도시는 귀족 지구, 평민 지구, 상업 지구 등 수많은 지구로 나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또다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현대 지구의 어지간한 중소 도시와 비교해도 차이가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게임에서는 축약되어 묘사됐었는데…….’
나는 한참 도시를 둘러봤다.
황궁, 열두 교회, 마탑. 마우솔레움 가문의 타운하우스도 멀찍이 보였다.
‘이렇게나 거대한 도시를 유지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행정력이 필요하겠지.’
치안이나 위생, 식재료 보급을 위한 원활한 교역까지 신경 쓰고 유지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닐 터였다.
중요한 점은 게임을 만들 때는 딱히 그에 관련된 설정을 짜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그저 이 세계는 마법적, 문화적, 행정적, 상업적으로 발달되어 있으니 가능했다고 언급하며 지나갔을 뿐이다.
‘게임이 하나의 세계가 되면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설정이 채워지는 걸까, 아니면 이 세계가 원래 존재했기에 우리가 그런 형태로나마 설정을 남겼던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신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한시도 내 머리를 떠난 적 없는 이야기였다.
“……뭐, 아무리 생각해 봐야 답이 없는 이야기지.”
조금 더 그레니엄을 둘러본 뒤 나는 종탑을 내려가기 위해 발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그림자 속에,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 갑옷과 후드를 뒤집어쓴 인영이 서 있었다.
“시모어 마우솔레움. 맞으시죠?”
“…….”
인영은 우습다는 듯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정말로 아둔하시군요. 이리 인적이 드문 곳에 행차하시다니……. 지금 자신의 입장을 모르시는 건가요?”
“암흑가에서 나온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레니엄의 내 적들 중에는 암흑가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모어가 선대 백작의 후광을 이용해 ‘기둥’의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언제든 나를 죽이면 자신들이 나를 대신해 기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들.
“언제 오나 했더니.”
“……예?”
나는 암흑가의 세력이 나타나기를 유도했다.
일부러 인적 드문 작은 교회, 공사 중인 현장만 골라 다닌 이유였다.
도저히 안 나타나기에 호위기사들을 저 아래 1층에 떼어 두고 혼자서 종탑을 올랐더니 이제야 나타났다.
“정말로 겁이 많군. 하기야 암흑 속에 숨어 사는 쥐새끼들이니 어련할까.”
“……제가 나타나기를 유도했다고요?”
“그래. 쥐새끼는 사람을 물기 전에 미리 잡아 둬야 하거든.”
암흑가에서는 언제든 내게 송곳니를 드러낼 터였다.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혹시라도 루시스가 있을 때 습격당하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이렇게 손수 퇴치에 나서야 했다.
“안 그래? 곡예사 나디브.”
“……!”
내 말에 인영, 나디브는 손의 단검을 꽉 쥐었다.
‘암흑가의 누군가 나타나기를 유도하긴 했지만, 아는 얼굴이 등장할 줄이야.’
곡예사 나디브.
원작의 중간 보스인 암흑가의 기둥, ‘광대’의 간부였다.
* * *
그레니엄의 권력 체계는 셋으로 나뉘어 있다.
하늘 위, 신의 권력을 쥔 열두 교회.
땅 위, 인간의 권력을 쥔 황궁과 귀족.
그리고 그 아래, 버려진 권력을 쥔 암흑가.
‘같은 권력을 두고 나눠야 하는 황궁과 귀족은 언제나 싸움을 벌이고 있지.’
그 틈새를 비집고 암흑가가 번성했다.
황궁과 귀족들이 암흑가의 토벌은 상대의 일이라며 서로 미루기만 했던 탓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르며 귀족들은 물론 황족들 중에서도 암흑가에 발을 담그고 손을 잡는 이들이 늘어나다 보니 암흑가는 더더욱 없앨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와서는 토벌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막강해지기도 했고.’
암흑가의 기둥들은 어지간한 기사단장 이상의 저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암흑가답게 정정당당한 수법으로만 싸움을 걸어 오지 않으니 더더욱 상대하기 껄끄러운 이들이었다.
“기둥 자리를 넘기겠다 약조하시죠. 그렇다면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나디브는 여전히 단검을 손에 쥔 채 경고하듯 말했다. 나는 고민 없이 답했다.
“거절하지.”
“진심입니까?”
“나는 가진 것을 잃는 데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
“아버지 후광으로 기둥에 오른 주제에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군요.”
내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가문 내에서만 아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마우솔레움과의 계약 이후에나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는 너야말로 무슨 자신감이냐. 대귀족인 백작위의 계승 예정자를 해하면 뒤탈이 클 텐데.”
“글쎄요. 누가 우리에게 그 뒤탈을 물리려나요? 황실이? 귀족들이? 오히려 천벌받았다며 박수 치고 깔깔거리기나 하겠죠.”
나디브의 말이 맞았다.
악당 가문인 마우솔레움 가문을 위해 자신의 세력이 줄어들 각오를 하고 암흑가를 응징할 이는 그레니엄에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마우솔레움은 암흑가와 연줄이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다니는 가문이기까지 하니 내부 분열이라도 일어났다 여기고 넘기겠지.
후드 아래로 나디브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게다가, 댁 가문에서도 오히려 좋다고 서로 백작 하겠다 난리일 것 같은데요?”
보름 전까지만 해도 저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그때 내가 죽었다면 정말로 리차드 마우솔레움이 백작 자리를 꿰찼겠지. 내 살해자를 찾아 포상을 내려 줬을지도 몰랐다.
“좋아. 피차 물러날 생각은 없는 거군.”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만하고 시작하지.”
이 세계에 떨어지고 두 번째로 겪는 실전이었다.
* * *
마력을 끌어올리자 세상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가치를 잃고 색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의 시계(視界)가 흑백으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나는 그 감각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장례식 만찬에서의 폭주 사건 이후, 나는 마법을 쓰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두 가지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 루시스가 곁에 있으면 내 안의 시모어를 억누를 수 있다.’
루시스와 함께 마법 수련을 할 때면 아무리 마력을 끌어올려도 시모어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마우솔레움과의 계약 때문인지 몰라도 놈에게는 루시스가 백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방법은 나 스스로가 시모어가 되는 것.’
마력을 끌어올렸을 때의 이 감각과 감정을 거부하거나 밀어 내지 않는 것이다.
산길을 걷다가 몸에 거미줄이 묻을 때 그것을 떼어 내고 걷어 내다 보면 거미줄이 둥글게 뭉쳐져서 어떤 형태를 띠게 된다.
내 안의 시모어 역시 마찬가지다. 밀어내고 거부할수록 그것은 더욱 또렷한 형태를 띠며 내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
이건 마법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모어 마우솔레움 가문의 마력에 깃든 힘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모어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파앗-!
나디브가 계단의 난간을 밟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나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나디브의 손에서 무언가 쏘아졌다.
쐐애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단검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팍!
중력 마법에 궤도가 꺾인 단검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혔다.
내 반대편에 착지한 나디브는 재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뭐야. 마법을 쓸 수 있었어? 아니면 신종 아티팩트인가?”
나디브가 품에 손을 넣었다가 빼자 손가락 사이로 세 개씩의 단검이 들려 나왔다.
“몇 개까지 막을 수 있는지 한번 볼까?”
나디브의 팔뚝을 타고 마력 회로가 점멸했다.
나는 그 마력 회로를 빠르게 읽어 냈다.
‘1서클, 유도. 1서클, 염동.’
단검을 던져 목표를 맞히는 것에 특화된 회로들이었다.
쐐애액-!
단검은 조금 전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다 한들 중력의 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중력 마법에 싣는 마력을 더하자, 단검들은 다시 한번 바닥에 내리꽂혔다.
“쓰읍, 거슬리네.”
원거리전은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나디브는 내게 빠르게 다가오며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풀어냈다.
그것이 채찍임을 인지한 순간, 나디브는 빠르게 그것을 휘둘렀다.
쫘아악-!
나디브의 채찍이 내 몸을 후려쳤다.
정확히는 내 몸 위에 생겨난 실드를 후려쳤다.
“실드 아티팩트? 하여간에 귀족 놈들 돈지랄은.”
실드 아티팩트.
치안이 불안정한 그레니엄에서 가장 비싸고 또한 가장 잘 팔리는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마우솔레움 공방의 효자 상품이지.’
배터리가 허락하는 한 데미지가 들어올 때마다 자동으로 실드를 생성해 주는 물건이었다.
쫘아악-!
다시 한번 채찍이 공기를 찢으며 실드의 표면을 갉아 먹었다.
나디브의 팔뚝에서는 또 다른 마력 회로가 점멸하고 있었다.
‘2서클, 신체 강화.’
내가 나디브를 향해 한쪽 손을 뻗자 나디브는 천장을 향해 풀쩍 뛰어 거꾸로 매달리더니 나를 조롱했다.
“조금 전의 마법은 어디 간 거냐? 이 채찍은 조종할 수 없는 모양이지?”
그러면서 다시 한번 단검을 날렸다.
나는 그 단검들을 모조리 중력 마법으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흐응?”
나디브는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그대로 내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그게 독이 든 유리병임을 눈치챈 나는 황급히 몇 걸음을 옮겨 유리병을 머리에 맞는 불상사를 피했다.
“아하!”
나디브의 입꼬리가 치솟아 올랐다.
마치 내 약점을 찾아내기라도 했다는 듯이.
“돈만 많고 싸움 경험 없는 귀족 나리들은 이래서 상대하기가 쉽다니까? 대놓고 자신의 한계를 빤히 알려 주잖아!”
나디브는 천장을 박차고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팔의 마력 회로가 다시 한번 점멸했다.
‘3서클. 에어 소드.’
나디브의 팔 앞으로 무형의 검이 형성되며 내 실드를 내리쳤다.
“너, 금속밖에 조종할 수 없는 거로군?! 아하하하!”
나는 실드를 내려치는 나디브의 전신을 훑어봤다.
유도, 염동, 근력 강화, 에어 소드.
그 외의 마력 회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실드 배터리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끝났군.”
“그래, 끝났지! 잘 알고 있……!”
나는 중력 마법을 끌어올려 나디브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아?”
전혀 예상치 못한 타입의,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의 공격.
나디브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날아가 버렸다.
“금속만 조종할 수 있다고?”
나는 떨어지는 나디브의 당혹과 절망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믿도록 유도한 거다, 멍청한 놈.”
유도와 동시에 나디브가 가진 마력 회로의 파악도 끝냈다.
나디브가 가진 마력 회로는 모두 신체 강화 혹은 무기술과 관련된 것들.
공중에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살아날 수단은 없었다.
아래쪽으로 멀어지는 나디브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옷매무새를 바로했다.
실드 아티팩트의 배터리 잔량을 체크하면서 싸웠기에 내 몸에는 잔상처 하나 없었다.
“이겼군.”
놀랍도록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