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5)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25화(25/109)
계승식 (2)
그랜달 2세.
그의 캐릭터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친구 같은 황제’였다.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굴며 짓궂은 장난도 치는 가벼운 남자.
가끔씩 평민들과 시내 여관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귀족과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하는, 유쾌하다면 유쾌한 인간.
‘그 성격 자체가 결국 자신감의 발로지.’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친한 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친구들과 마시는 술자리에 누군가 끼어들거나, 언제부터 나를 그리 잘 알았다고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방해를 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그 ‘누군가’가 황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구라면 친구인 거고, 베프라면 베프인 거다.
‘결국 자기 멋대로 구는 인간이라는 거지.’
조금 전만 봐도 그렇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들에게 ‘차기 백작’ 운운하며 ‘축하’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하지만 이 남자가 웃으면 그건 웃긴 일이다. 웃긴 일이어야 한다. 그는 황제니까.
‘그렇기에 친구 같은 황제.’
깨끗한 전염병, 독실한 고블린, 풍성한 대머리, 친구 같은 황제.
이 세계 귀족들이 줄곧 사용하는 모순 표현 중 하나였다.
‘애초에 이 남자의 디자인 모티브가 젊은 척, 친한 척하면서 다가오는 늙은 김 부장이었으니.’
황제는 결국 나와 같은 마차에 동승했다.
나는 그 맞은편에 루시스를 품에 안고 앉았고, 황제의 옆자리에는 황제와 동행한 이슈타르 후작이 앉아 있었다.
“…….”
모이라 이슈타르.
이리나의 모친 되는 현 후작은 사양 없이 루시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나를 통해서 루시스의 존재와 현 상황에 대해서는 들었겠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음…….”
황제 역시 침음성을 흘리며 루시스를 바라봤다.
마우솔레움 조약으로 드래곤들은 인세에 관여하지 않는다.
황제로서도 드래곤과 만나 본 적은 없을 터였다.
“흥.”
루시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두 권력자의 시선에도 주눅 하나 들지 않고 당당히 콧대를 세웠다.
내가 너희보다 대단한 존재임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는 듯이.
“이봐, 후작. 이런 경우에는 내가 존대를 해야 하는가?”
황제가 이슈타르 후작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모이라 이슈타르는 대답을 고르는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같은 보라색이면서도 제 딸과 달리 보석처럼 반짝인다는 느낌보다는 인간성이 결여된 느낌이 강한 여성이었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분은 각자의 영역에서 정점의 존재들이시니 동등한 존재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가?”
그 대답에 황제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흥.”
루시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음……. 드래곤이여. 만나서 반갑구나.”
“…….”
“……혹시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냐?”
“…….”
“크, 크흠.”
친구 같은 황제는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최초의 존재에 당황했다.
“드래곤님.”
반면 이슈타르 후작은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모이라 이슈타르, 백룡의 피를 이어받은 가문의 가주를 맡고 있습니다.”
백룡의 피. 그 말에 루시스가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
모이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영광스럽게도 저희 일족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 들었사온데, 혹시 어떤 백룡을 모친 혹은 부친으로 두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척이나 공손한 질문.
이에 루시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답했다.
“몰라.”
“모르시는군요.”
모이라는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음에도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 모이라와 루시스를 황제는 흥미로운 얼굴로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황제가 이 아침부터 백작가를 찾은 이유는 후작의 입김일 수도 있겠구나.’
계승식은 온종일에 걸쳐 진행된다.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황제가 나를 독대할 순간은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오히려 계승식이야말로 황제의 권위를 보이기 좋은 행사이니 그것이 끝난 뒤에 독대하는 것이 더 기선 제압에는 효과가 좋을지도 몰랐다.
‘루시스에게 모이라 자신의 가문, 이슈타르의 핏줄도 섞여 있음을 황제에게 알리기 위함인가.’
계승식에서 루시스를 처음 본 황제가 혹시라도 다른 귀족들 앞에서 허튼 말을 할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일 터다.
‘마우솔레움의 드래곤’이라든가, ‘마우솔레움이 드래곤의 축복을 받았다’든가 하는 식의 말들 말이다.
‘언제든 루시스가 백룡 가문인 이슈타르 가문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황제에게, 나아가 귀족들에게 심으려는 건지도.’
나도 모르게 미약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얼굴을 본 황제도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정치인가…….’
그저 몇 마디 말로 서로의 속을 파악하고 그것을 조용히 갈무리해 이해하는 것.
구태여 입 밖으로 내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뜻이 통했나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품위 있고 어찌 보면 답답하다. 그렇기에 머리가 비상한 이들만이 정치판에 남아 있는 것이리라.
‘뭐, 나는 이런 세계에 살 생각이 아니니 다행이네.’
나는 금방 은퇴할 거다.
이런 머리 쓰는 일과는 거리가 먼 암흑가 정리나 주인공 육성과 같은 일에만 힘쓰다가 말이다.
정치판은 우직한 구석이 있는 시몬보다는 영특한 시아가 잘 어울릴 테니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바로 사교계에 데뷔부터 시키면 될 터였다.
“그……. 흠, 흠.”
한데 황제는 이 머리 아픈 대화를 더 이끌어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곤란함에 잠시 속으로 탄식을 삼키는데, 루시스가 황제의 말을 잘랐다.
“졸려.”
“……응? 뭐라 했는가, 어린 드래곤이여?”
“잘 거야.”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내 품에 쏙 안기고는 내 옆구리와 팔 사이에 고개를 폭 박았다.
햇빛을 차단하고 지금부터 아침잠을 잘 거라는 그 흉포한 선언에 황제는 입을 그대로 떡 벌렸다.
“이게……. 무슨…….”
이때다 싶어 나는 황제를 향해 입가에 손가락을 세웠다.
“쉬잇.”
“…….”
황제는 내 불경함에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결국 침음성을 흘리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계승식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마차에서는 한마디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루시스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 *
계승식 장소인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었다.
제국 황실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해 임시 시설임에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단상 위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단상의 아래에는 그런 귀족들을 구경하기 위한 평민들이 몰려 있었다.
단상 주변에는 불시의 사태를 대비해 황궁 기사단이 도열해 있었고, 마탑의 마법사들과 대공방의 엔지니어들도 각기 방호 마법과 아티팩트를 상시 전개 중이었다.
귀족들은 계승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마우솔레움 백작가에 어린아이가 한 명 있다더군요.”
“그보다 마우솔레움 가문에서 어마어마한 패션 돌풍을 일으켰다던데.”
“저는 마우솔레움 회로 주조소에서 이번에 공격 회로가 아닌 다른 회로를 공개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주가 죽으면 한동안 잠잠해지기 마련인데 마우솔레움 가문은 거꾸로군요. 이보다 더 놀랄 소식은 없겠죠?”
이리나는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이야기들에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가장 큰 건 오늘 밝혀질 텐데.’
이리나는 레티샤에서 시모어에게 루시스의 정체를 오늘 공공연히 밝힐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언질 받았다.
잠시 후 계승식이 시작되면 이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이슈타르 경, 괜찮으신가요?”
그런 이리나에게 황후가 물었다.
이리나는 황후의 곁에 앉아 말동무를 하는 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황후마마.”
잠시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 하는 이리나를 보며 황후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경은 언제나 바른 자세를 중시하는군요.”
“바른 자세에 바른 정신이 깃드는 법이니까요.”
“후후후……. 경은 제가 살면서 본 기사들 중 가장 바른 분일 거예요.”
황후는 2년 전의 토너먼트 대회에서 이리나를 처음 본 이후 가끔씩 그녀를 궁으로 초청해 말동무 삼고는 했다.
갑작스런 말동무 지명에 이리나는 당황했었다. 황후라는 직위의 여인이 불편하기도 했었다.
하나 기사도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초대에 응하다 보니 어느샌가 둘은 친구라 부를 만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경께서는 오늘 백작위에 오르는 마우솔레움가의 후계와는 악연이 깊다고 하더군요.”
“아…….”
이리나는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흐렸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은 이라도 뒷이야기는 하지 않는 이리나의 강직한 성격을 황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잖아요. 오늘 같은 날은.”
“음…….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이리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습니다.”
“어째서요?”
“최근 들어 정말 많이 변했거든요.”
“마우솔레움의 후계가요?”
“예. 물론 저도 최근에는 두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흠…….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말씀이군요.”
이리나는 대답 대신 미소 지었다.
황후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앙숙 가문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혹시 자신이 삿된 편견을 가질까 직접 판단하게끔 말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황후는 모르지 않았다.
그런 사려 깊음까지가 황후가 이리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였다.
“정말이지, 제가 아들을 10년만 일찍 낳았어도 경을 아내로 삼게 했을 거예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만큼 경의 부군 될 사람은 제가 엄히 고를 거니 각오하세요.”
“황후마마께서 골라 주신 남자라면 저도 믿고 의지할 수 있겠군요.”
둘 사이에 또 한 번의 훈훈한 웃음소리가 퍼질 무렵, 사람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향했다.
“아, 도착했나 봅니다.”
황후와 이리나 역시 단상의 아래쪽으로 눈을 돌렸다.
계승식의 주인공들이 막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 * *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 눈부신 미모.
마우솔레움 가문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외형이었다.
그것에 오늘, 한 줄의 문장이 추가되었다.
“저게……. 뭐야?”
“차림이 너무 빈약한데?”
마우솔레움 일가는 모두 같은 복식을 갖추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검은 재킷과 검은 바지.
가주 대리인 시모어만이 재킷 대신 입은 검은 베스트 위로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회색 코트를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저거…….”
“음…….”
“어허…….”
보석이 반짝이고 레이스가 치렁치렁한 패션에 익숙하던 귀족들은 처음에는 마우솔레움 일가의 복식이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보석 장식도, 레이스나 프릴도, 심지어 황금 단추조차 없었으니까.
그들이 갖춘 장식이라고는 황금색 넥타이핀과 소매 커프스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의 복식을 한번 눈에 담고 자신들의 옷을 보자,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장식이 좀 과하지 않나?’
패션의 역체감이었다.
귀족들 중에는 저도 모르게 가슴팍의 브로치며 보석 장식을 손으로 쥐어뜯는 귀족들도 있었다.
저벅, 저벅.
무엇보다 저 거침없는 걸음걸이.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눈빛.
단출한 복식에도 빛을 잃지 않는 미모.
그것들이야말로 무엇보다 훌륭한 장식이었다.
“실로 우아한 짐승들을 보는 것 같구나.”
누군가의 평가에 모두가 납득했다.
다른 귀족들이 사자라면 마우솔레움 일족은 흑표범이었다.
풍성하고 화려한 갈기로 자신을 거세고 강렬하게 드러내는 사자가 아니라, 타고난 라인 몇 개로 나른하고 우아하게 존재감을 표출하는 흑표범 말이다.
그것은 교회의 경전에서 마우솔레움을 묘사하는 첫 번째 단어이기도 했다.
‘우아하고 오만한 짐승. 마우솔레움.’
모두의 머릿속에 이번 세대의 마우솔레움들이 강렬하게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우솔레움 일가의 선두에 있던 시모어가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가 멈추자 그 뒤를 따르던 모든 일족도 발을 멈췄다.
시모어의 조각 같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고, 양손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루시스.”
모두가 그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데엥-. 데엥-.
광장의 종탑이 정각을 알리며 종소리를 울렸다. 계승식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 종탑에서.
“아아…….”
“천사님……?”
순백의 날개를 펼친 천사가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