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8)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28화(28/109)
기사단장 (1)
파티가 끝난 늦은 밤.
잘 준비를 모두 마친 나는 오랜만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발칵-!
방문이 열리며 루시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아기님!”
그 뒤를 옷이 젖은 시녀들이 뒤따랐다. 루시스의 머리카락도 젖어 있는 걸 보니 목욕을 막 마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죄송합니다!”
루시스의 전담 시녀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아는?”
원래라면 루시스를 씻기고 머리를 말리는 건 시아의 역할이었다. 내 질문에 시녀 중 하나가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는 먼저 주무시고 계십니다.”
자고 있다고?
시아는 나와 한 약속을 어길 무책임한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뻗었구만.”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 그리고 계승식.
연이은 사건의 끝에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방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간 나 때문에, 아니 시모어 때문에 마음고생이 컸던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어른스럽게 군다 해도 시아는 아직 성인식도 못 치른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알겠어. 나가 봐.”
내 명령에 시녀들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문을 닫고 나갔다.
“응차.”
그사이 이불보를 잡고 침대 위로 기어 올라온 루시스는 그대로 내게 몸을 던졌다.
내 다리 위에 엎어져 뒹굴거리는 루시스에게서는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났다.
루시스는 내 한쪽 손을 낑낑거리며 들더니 자기 머리 위에 얹었다.
젖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니 그거로는 부족하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손질해 줄까?”
내가 묻자 루시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소망하는 반짝거리는 눈빛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며 장난을 쳤다.
“오늘은 일기 쓰려고 했는데…….”
그러자 루시스는 내 배에 얼굴을 묻고 도리도리질을 했다.
“일기는 다음에 써.”
루시스의 애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럴까?”
“응. 일기는 도망 안 가.”
자기는 도망갈 거라는 듯한 뉘앙스다.
어찌 보면 루시스는 내게 영광을 내려 주는 건지도 몰랐다. 본인을 손질시킬 영광 말이다.
세상 어느 인간이 드래곤을 손질해 줄 기회를 얻겠는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내가 항복 선언을 하며 일기장을 덮자 루시스가 양손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리며 만세 했다.
기쁨의 몸짓인데 얼굴은 언제나의 무표정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시녀들을 불러 드레스 룸의 전신 거울과 루시스 손질 세트를 가져오게 했다.
“자, 먼저 빗질부터 할까.”
“응.”
나는 우선 성긴 빗으로 루시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빗어 줬다. 물기는 중력 마법으로 모두 끌어내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성긴 빗으로 전체적으로 머리카락을 한번 훑은 뒤로는 조금 더 촘촘한 빗을 썼다.
내가 빗질을 하는 사이 루시스는 거울 너머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틈틈이 거울 속 루시스와 눈을 마주치며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 빗을 바꾸자 마우솔레움 영지의 장인에게 거액을 주고 장만한 참빗에까지 도달했다.
거의 머리카락 두세 가닥 단위로 가는 살이 박혀 있는 이 빗은 공예품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쭈욱-.
참빗이 루시스의 머리를 훑자 루시스의 머리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루시스는 그 힘에 버티고자 목에 힘을 줬다.
“응…….”
루시스는 참빗의 적당한 저항감이 기분 좋은지 콧노래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참빗질까지 끝내자 루시스의 머리는 비단같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성긴 빗을 꺼내 향유를 듬뿍 바르고 빗질했다.
“킁킁.”
자기가 좋아하는 향기인 걸 확인한 루시스는 내게 나른하게 몸을 기대며 폴리모프를 일부 해제했다.
뿅, 소리와 함께 언제 봐도 하얗고 아름다운 날개와 꼬리가 튀어나왔다.
“이제 꼬리를 손질할게.”
“응.”
어서 하라는 듯 짧고 통통한 꼬리가 나를 향해 살랑였다.
나는 손을 뻗어 루시스의 꼬리를 우선 한번 끝에서 끝까지 쓸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한 감촉의 꼬리는 쓰다듬는 것만으로 기분이 다 좋아졌다.
‘우선은 마사지부터.’
나는 꼬리를 부드럽게 쥐고서 중심에 느껴지는 뼈를 따라 엄지로 꾹꾹 눌러 줬다. 꼬리 끝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 근육도 풀어 줬다.
“으으응…….”
루시스는 아예 내 다리 위에 엎드려 내 손길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마사지를 끝낸 뒤에는 비늘의 보호와 항균을 위한 기름칠도 빼먹지 않았다.
“이제 날개 차례야.”
“응.”
루시스의 날개는 깃털이 달린 새의 날개보다는 피막으로 이루어진 박쥐의 날개에 가까운 형태였다.
하지만 꼬리와 마찬가지로 하얀색인 데다가 보드라운 솜털이 나 있기에 얼핏 봐서는 천사의 날개처럼도 보였다.
나는 루시스의 날갯죽지를 부드럽게 누르며 물었다.
“오늘, 즐거웠어?”
“응.”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정말 궁금한 것을 물었다.
“에라드가 마음에 들어?”
“에라드?”
“황자 말이야.”
“황? 자?”
에라드가 누군지, 뭐 하는 꼬맹이인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푸른 눈의 금발 꼬마 말이야.”
“오, 반짝반짝.”
황자에 대한 감상은 그거로 끝이라는 듯, 루시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어딜 인간 따위가.’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루시스의 날개 마사지에 박차를 가했다.
* * *
밤하늘에는 작은 샛별 하나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쏴아아-.
어둠에 휩싸인 바다는 하늘과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없었더라면 해변이 아니라 벼랑이라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쏴아아-. 철썩.
파도는 끊임없이 남자의 몸을 때리고 하얗게 부서졌다.
남자는 바위가 된 것처럼 묵묵히 서서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어두운 바다 위로 떠오른 단 하나의 별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모어?’
검은 머리카락을 알아본 나는 반사적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디자인한 시모어와는 몸의 선이 미세하게 달랐다.
‘리암 마우솔레움?’
선대 백작인가 싶었지만 그도 아니었다.
남자는 뒷모습만으로도 그리 늙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남자가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검은 머리칼과 황금색 눈동자.
이 세상 모든 고통과 고독을 빚어서 만든 것 같은 암울한 얼굴.
남자는 울고 있었다.
* * *
퍽!
갑작스레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떴다.
어두침침한 새벽빛에 둘러싸인 침실 천장이 보였다.
뭔가 싶어 얼굴 옆을 더듬어 보니 통통하고 보드라운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루시스의 발이었다.
“…….”
팍! 팍!
심지어 지금도 매섭게 발길질을 해 대고 있었다.
노린 건 아니겠지만, 그 궤도에는 정확히 내 얼굴이 있었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잠이 깬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내 머리맡에서 뒹굴던 루시스는 데구루루 굴러 내 베개에 얼굴을 폭 박았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루시스를 바로 눕혀 줬다.
“음냐…….”
루시스는 내 손을 꼭 끌어 쥐고는 도롱도롱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창밖을 보니 천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서 훈련 중인 기사단의 기합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어차피 곧 기상 시간인가.’
나는 다시 잠을 청하느니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며 천천히 머리를 깨우기로 했다.
“도로롱~.”
나는 루시스의 통통한 배를 토닥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제국 수도에서 가장 큰 이벤트인 계승식이 무사히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할 차례였다.
‘계약의 교회에서는 답신이 왔으니 시간에 맞춰서 가 보면 되고. 암흑가에도 경고를 넣었으니 한동안은 잠잠할 테고, 귀족들이야 어제 반응들을 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제국 평민들의 여론은 잠시 후 신문에 실릴 기사를 보고서 파악하면 충분할 터였다.
할 일들의 리스트를 살피다 보니 문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분명 게으른 건물주가 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누구보다 열심히 업무를 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지구에 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사람들의 감탄을 받는 것은, 내가 벌인 일들이 모두 내 수익이 되어 지갑에 다이렉트로 꽂히는 것은, 지구에서는 겪어 본 적 없는 짜릿한 감각이었으니까.
‘빠른 나이에 은퇴할 거라는 꿈에는 변함이 없지만.’
잠시 작게 웃으며 루시스의 머리를 쓰다듬은 나는 잡념을 지우고 다시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추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은 큰 사건들은 패션 사업체 재론칭과 시몬의 회로 주조소 발표회인가.’
그러니까, 사교계였다.
가주인 내가 저 두 가지 일에 도움이 되려면 사교계나 파티, 사냥 클럽, 도박장. 뭐가 되었든 대외 활동에 나가야 했다.
‘귀족들과 혓바닥 칼싸움 벌이는 건 자신이 없는데…….’
시아나 시몬에게 맡기기도 힘들었다.
그 둘도 이제 슬슬 자신들의 본업에 복귀해야 했으니까.
‘마르코는 평민이니 대외 활동에 대신 세우기 뭐하고.’
괜찮은 후보가 누가 있을까, 턱을 두드리며 고민하는 내 귓가에 기사단의 새벽 훈련 구령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흠…….”
마침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 * *
루시스와 함께 아침부터 속을 고기로 든든하게 채운 나는 옷을 차려입고 저택을 나섰다.
“어디 가?”
품에 안긴 루시스가 물었다.
“고모 보러.”
“시아?”
“아니. 예쁜 고모 말고 무서운 고모.”
“무선 고모……?”
마차조차 타지 않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타운하우스 내의 기사단동(洞)이었다.
– 하앗!
– 더 세게!
– 흐아앗!
기사단동은 네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부, 숙소, 훈련장, 그리고 창고였다.
그중에서도 훈련장의 앞마당에는 거대한 연병장이 지어져 있었다.
– 목소리가 그거밖에 안 나와?!
– 아닙니다!
– 나보다 목소리 작은 새X는 오늘 화장실 청소다!
– 알겠습니다!
훈련장과 연병장에는 타운하우스에 퍼지는 소음 공해와 마력 공해를 막기 위한 각종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연병장에서 퍼져 나오는 기합 소리와 마력의 파장은 먼 거리에서도 살벌하게 느껴졌다.
“오…….”
태어나서 이런 광경이 처음인 루시스는 눈을 반짝이며 연병장을 바라봤다.
나는 루시스를 안고서 연병장을 둘러싼 회랑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훈련의 열기와 마력의 파장이 고스란히 내 몸을 덮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은 한 여인의 외침이었다.
“제롬! 너 이 새X 칼 그딴 식으로 계속 휘두를 거야?”
“아닙니다!”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는 코브라도 네 검술보다는 현란하게 움직이겠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그딴 맥아리 없는 검술이 내 눈에 띄면 넌 종자로 강등인 줄 알아!”
“명심하겠습니다!”
훈련하고 있는 기사들 사이를 남들보다 머리 하나 큰 여인이 어깨에 대검을 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음?”
내 기척이라도 읽은 건지 고개를 홱 돌리는 여인의 양 눈에는 검은색 테두리가 두껍게 그려져 있었다.
동체시력을 높이기 위한 마력 회로의 일종이었는데, 검은 머리와 더불어 마치 스모키 화장을 한 것처럼 보였다.
여인은 내 방문이 의외라는 듯 입을 둥글게 말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헬라 마우솔레움.’
마우솔레움 가문의 양대 기사단 중 하나, 흑룡 기사단의 단장이자 제국 최고의 기사들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원탁의 기사단’에서 당당히 일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인.
“이야, 이게 누구야.”
동시에 내게는 사촌누이가 되는 사람이었다.
“제도에 소문 자자하신 패셔니스타 아니야?”
그중에서도, 내게 귀양당한 리차드 마우솔레움의 딸이었다.
‘어찌 보면 서로가 껄끄럽고 불편한 관계지.’
하지만 나는 헬라를 내칠 수 없었다.
원작 게임에서 끝까지 시모어의 곁을 지킨 충신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가진 스펙이 너무나도 탐이 나서였다.
‘기사로서의 능력도 출중해. 하지만 그보다…….’
그녀의 육체가 가진 스펙이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보라. 저 퇴폐미가 물씬 풍기는 반영구적 스모키 화장을.
보라. 대충 하나로 묶은 말총머리 아래에서 폭발할 것만 같은 저 야성미를.
보라. 어지간한 사내보다도 큰 키와 가죽 갑옷의 소매가 터져 나갈 것만 같은 억센 근육을.
저 위로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베스트가 내려앉는다고 생각해 보라.
‘재킷은 안 돼. 헬라는 무조건 셔츠에 베스트, 가죽 장갑이다.’
거기에 베스트 주머니에 회중시계 줄이 늘어져 있다면?
나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헬라 마우솔레움을 디자인한 전생의 내 손을 향한 감탄이었다.
‘헬라는 슈트를 입기 위해 태어난 여자야.’
저 몸에 슈트를 입지 않는 건 범세계적 패션 낭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