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2)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32화(32/109)
계약 (1)
나는 한숨을 쉬며 사제의 뒤를 따라 걸었다.
프롬은 약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모를 걸음으로 기어코 강설대까지 올라서서는 양팔을 쫙 펼치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허무룡의 후손이여! 모든 계약의 주관자이자 모든 언약의 참관자인 이 내게 바라는 게 있다고?”
“예.”
“대역죄인 중의 죄인인 너희 마우솔레움 일가가 감히 교회에서 섬기는 가장 위대한 신 중 하나인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고?!”
“……예.”
“수십만을 학살한 광룡, 마우솔레움의 말단 후손 중의 후손이! 열두 신 중에서 가장 영민하고 위대한 이 프롬에게 손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예.”
참고로 이 부분은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칭호를 읊어 주는 부분이었다.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칭호가 길어지는 게 백미인 연출인데……. 마우솔레움 일가 입장에서는 그저 짜증 날 뿐이었다.
“크하하하! 좋아, 말해 보거라! 무엇을 원하느냐?”
“두 달 전 있었던 영묘에서의 계약. 그 내용을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말을 마치며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얻어 내면서도 대가를 가능한 적게 바치는 방향으로…….
“좋다!”
“……예?”
“보여 주도록 하지!”
그러고 곧바로 손을 저으려는 프롬에게 나는 다급히 물었다.
“잠시만요.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
나를 보는 프롬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거의 귓불까지 입꼬리가 찢어지는, 아주 불길한 미소였다.
“필요 없다.”
“…….”
“이번 한 번은 내가 자비를 베풀어 공짜로 보여 주도록 하지.”
나도 모르게 눈썹이 구겨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세계의 신이 대가 없이 이적을 일으킨다고?
자기 사제들도 조금만 불경하다 싶으면 칼같이 신성력을 자르는 것들이?
‘불길해. 대체, 무슨 계약이었길래……?’
하지만 내가 무언가 다른 말을 꺼내기도 전에 프롬이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서 있던 ‘배경’이 바뀌었다.
마우솔레움 영묘였다.
* * *
이 세계의 신들은 여러 가지 이적을 일으킬 수 있다.
그중에서도 프롬이 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적 중 하나는 어디선가 계약이나 언약이 언급될 때 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자신이 참관한 계약을 영상석의 녹화본처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언약이나 계약을 나누는 ‘회상 신’을 자유자재로 보여 줄 수 있다.
촤르르륵-.
프롬이 허공에 손을 젓자 마치 배경 레이어를 바꿔 낀 것처럼 순식간에 나와 프롬이 서 있던 장소가 바뀌었다.
어둡고 먼지 낀 실내.
이끼 낀 석재 기둥과 커다란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천장.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곳이지만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컨셉 아트를 본 적 있으니까.
‘마우솔레움의 영묘.’
그때, 누군가 내 몸을 불쑥 뚫고 나오며 외쳤다.
– 마우솔레움! 계약을 요구한다!
그것은 나였다. 아니, 시모어였다.
시모어는 핏발 선 눈으로 영묘 내를 훑었다.
상의 단추도 하나 풀려 있고 머리도 정돈이 다 안 된 것이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빙의하기 직전, 갑작스런 선대 백작의 사망 후 암흑가와 방계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던 때.’
하지만 정돈되지 않고 신경질적인 인상으로도 타고난 잘생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 매일같이 거울 속에서 보는 내 얼굴보다 저 사나운 얼굴이 내가 원래 디자인했던 시모어에 훨씬 가까웠다. 아니, 그 자체였다.
– 영묘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너도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일 터! 저주받을 네놈의 후손으로서 당당히 계약을 요구하는 바이다!
오만의 극치나 다름없는 말.
한낱 인간이 드래곤에게 거래를 요구하며 사용하는 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주제 모를 대사들.
하지만 그게 시모어였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신하고 증오하는 남자.
힘과 시간만 허락했다면 주인공을 죽이고 이 세계 전체를 불태웠을 남자.
광룡 마우솔레움의 재림. 그것이 될 수 있었던 남자.
그게 바로 시모어였다.
후우웅-.
영묘 안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갔다. 마력의 움직임에 따른 결과였지만 그것은 마치 누군가 입을 열기 전의 호흡과 닮아 있었다.
– 후손이여.
마치 거대한 동굴이 입을 연 것과 같은 굵고 낮은 목소리.
마우솔레움이었다.
– 이름이 무엇이냐.
– 시모어.
–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시모어?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과거의 망령과의 대화.
하지만 시모어는 조금도 겁을 먹지도 위축되지도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에 담았다.
– 힘.
아무런 미사여구조차 없는 단순한 문장.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입에 담았던 욕망이었다.
– 좋다.
구구구구-.
마우솔레움의 허락과 함께 영묘에 가라앉아 있던 오랜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벽에서, 천장에서 검은 안개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액체와도 같이 점성이 있는 안개는 기둥을 타고 내려와 바닥을 가득 메우더니 이윽고 시모어의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꿀럭, 꿀럭-.
비위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고개를 돌렸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시모어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꿀이라도 된다는 양 오히려 그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 후우…….
마지막 한 방울의 안개까지 집어삼킨 시모어는 자신의 손을 보며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 손아귀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였다.
– 크크크……. 크하하하하!
선천적으로 마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시모어는 마침내 마력을 손에 넣었다.
시모어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허공을 향해 외쳤다.
– 마우솔레움! 이 힘의 대가는 무엇이냐?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태도.
반면 마우솔레움은 오랜 시간을 침묵했다.
스르륵-.
바닥에서 또 한 번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검은 안개가 걷힌 자리에는 한 아이가 요람에 담겨 있었다.
시모어는 요람에 다가가 아이의 옷에서 목 부분을 잡고 거칠게 들어 올렸다.
나는 그 아이를 알아봤다. 루시스였다.
시모어는 손목을 돌리며 잠든 루시스의 앞뒤를 확인하고는 물었다.
– 이 아이는 무엇이냐? 빼돌린 백룡의 후손? 숨겨진 네놈의 여식? 네가 이 아이에게 주지 못한 행복한 삶이라도 대신 주길 바라는 것이냐?
– 아니다.
이번 침묵은 조금 전의 것보다 길었다.
마침내 마우솔레움이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어째서 프롬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 그 아이를 죽여라.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 그것이 거래의 대가다.
프롬의 회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 * *
프롬은 손을 다시 한번 내저어 이적을 거둬들였다.
이끼 낀 마우솔레움의 영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리는 따가운 노을빛이 감도는 교회로 돌아왔다.
“…….”
나는 고개를 들어 프롬을 바라봤다.
프롬의 입꼬리는 귓불에 닿을 정도로 찢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재밌다, 이건가.’
이 세계의 신들은 다들 머리가 돌아 있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야 하는 데다가 무적에 가까운 힘까지 있으니 공감 능력이 희박해졌다.
어지간한 일로는 감정도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에 그들은 오직 뒤틀린 유열과 쾌락만을 쫓아다닌다.
‘이 계약이 대가조차 바라지 않을 정도로 재밌다고……?’
죄 없는 어린아이의 죽음이 걸린 일이.
자신에겐 그저 한낱 유희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가.
‘쓰레기 새X가.’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지금의 내 분노가 눈앞의 또라이를 향한 것인지, 영묘의 개자식을 향한 것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요 며칠 보아하니 그 헤츨링을 몹시 아끼는 척 연기하더군?”
프롬은 뜬금없는 소리를 하더니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저건 또 무슨 소름 끼치는 행위인가 했더니 놈은 꺽꺽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주 좋아. 남들에게 착한 이로 보이기 위한 그 위선!”
“…….”
“대체 그런 이상적인 아버지 역할은 어디서 보고 배운 거야? 네 아버지부터가 쓰레기인데!”
나는 프롬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영혼이 바뀌었음을 모르는 상황에서 저 계약과 지금의 내 모습을 이어서 본다면 충분히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 생각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원작의 시모어는 정말로 루시스를 아끼는 척 모두를 속였으니까.
“허무룡이 언제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허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죽이려고 그렇게 질질 끄는 거야?”
“…….”
“앗, 아니야! 말하지 마! 그걸 기다리면서 두근거리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니까!”
“……재미.”
“그래, 재미! 마침내 저 아이가 너에게 살해당할 때, 저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배신감을 느낄지! 아아, 너무나도 즐겁고 너무나도 기대돼!”
프롬의 눈은 거의 뒤집힌 초승달에 가까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눈이, 거기에 담긴 희열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그래, 마음껏 기대해라.”
나는 놈을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놈의 역겨운 미소를, 내 머릿속에 새겼다.
언젠가 저 얼굴이 참담히 일그러지는 꼴을 보리라. 배신감에 뒤틀리는 것을 보리라.
“나도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그날, 나 역시 네놈의 얼굴을 보며 즐거워해 주마.
* * *
나는 교회를 빠져나왔다.
“아하하하! 또 보자고, 시모어! 네가 준비한 만찬,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프롬의 광소는 교회의 문이 닫히고서도 내 귀를 계속해서 맴돌았다.
나는 천천히 교회의 계단을 내려왔다. 그 길이 무척이나 멀었다.
“……님. 괜찮으십……?”
“……백작님. 편찮으신……?”
기사들이 내게 뭐라 말을 했지만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웅웅거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지끈거리는 두통과 내 숨소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내려와 마침내 마차 앞에 섰다.
마차의 문고리에 손을 대려는 순간…….
콰직!
마차가 말 그대로 으깨졌다.
거인이 짓밟은 것처럼 산산이.
마차의 잔해 근처에서 일렁이는 검은 마나는, 나의 것이었다.
“히익!”
“눈 마주치지 마!”
나를 마뜩잖은 시선으로 보고 있던 교인들도 재빨리 눈을 피했다.
“…….”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언성을 줄이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쉬고 호위기사에게 명령했다.
“……다른 마차를 끌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새로운 마차가 도착할 때까지,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부수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마차를 타고서 타운하우스로 향하면서도 나는 오직 루시스만을 생각했다.
순수하고 해맑은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잠시라도 멈추면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았다.
“배, 백작님. 도착했습…….”
겁에 질린 얼굴로 말하는 마부에게 아무런 답도 않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본관을 향했다.
“안녕하…… 히익?!”
“가주님 아니십……. 헉!”
내게 인사를 건네려다가 식은땀과 함께 발을 되돌리는 이들을 지나, 나는 저택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덜커덩!
홀의 계단 근처에 서 있던 시녀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루시스의 담당 시녀들이었다.
나는 루시스가 어디 있나 물으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
루시스는 시녀들의 근처에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색칠 놀이를 하고 있었다.
“배, 백작님 오셨습니까. 그,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식당으로 모시려고 했는데 백작님을 기다리시겠다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시녀는 얼굴까지 창백해지며 연신 허리를 숙였지만 나는 그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성큼성큼 다가가자 루시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익……!”
내 얼굴을 본 시녀들은 공포에 질려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루시스는 언제나의 평온한 무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와써?”
“루시스.”
아무래도 여기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나는 가만히 루시스를 내려다봤다.
나도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왜 이곳에 서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루시스가 나를 향해 양팔을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굽혀 루시스를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이제 익숙하게 내 품에 자리를 잡는 루시스는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자그마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하아…….”
잠시 루시스를 안고 있자 나를 잠식하고 있던 불쾌함과 분노, 두통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루시스의 황금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간신히 가라앉혔던 수많은 감정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마우솔레움을 향한 배신감.
시모어를 향한 분노.
프롬을 향한 혐오.
으득.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쓰레기들. 짐승만도 못한 것들.
이 자그마한 아이의 생명을 자신들 멋대로 놀잇감처럼 베팅한다니.
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루시스의 이러한 운명에 가담해 놓고서, 아니, 주도해 놓고서 이제 와서 착한 인간인 양 위선을 떠는 나 자신이…….
쪽.
볼에 한순간 새가 앉았다 간 것 같은 보드라움이 휙 지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시스는 언제나처럼 반쯤 초탈한 미소와 함께 작게 속삭였다.
“갠차나.”
“…….”
그 미소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