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3)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33화(33/109)
계약 (2)
괜찮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루시스는 입을 다물었다.
뭐가 괜찮다는 걸까.
이 아이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어디까지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혹시, 아이의 칭얼거림처럼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내가 과대 해석하고 있는 걸까.
‘그래. 분명 그런 거겠지.’
나는 작게 웃었다.
헛웃음과도 같은 웃음이었지만 내 기분을 한결 낫게 만들긴 충분했다.
“그보다, 루시스. 방금 나한테 뽀뽀한 거야?”
우리는 아직 뽀뽀를 트지 않았었다.
루시스는 대답 대신 눈을 반달로 만들었다.
“이 녀석이?”
나는 보복의 의미로 루시스의 볼에 입술을 맞췄다.
내 기습 뽀뽀에 루시스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몇 번이나 루시스의 솜사탕 같은 볼에 뽀뽀 폭격을 가한 뒤, 나는 루시스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정수리에도 입을 맞췄다.
‘나는 너를 반드시 지킬 거야.’
세상 모두가 너의 죽음을 바라더라도 나는 반드시 너를 살릴 것이다.
너에게 행복한 삶을 줄 것이다.
너의 아버지든, 신이든, 그 누구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말이다.
루시스도 품속에서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그 자그마한 온기를 오랫동안 품었다.
* * *
알프레드는 넋을 놓고 촬영기로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색칠 놀이를 하는 루시스를 촬영하기 위해서 꺼낸 촬영기였다.
시모어를 기다리며 홀에서 색칠 놀이하는 효녀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남겨서 시모어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덜커덩!
그러던 중 문이 열리고 시모어가 실내로 들어왔다.
알프레드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첫 번째는 로브를 두르기라도 한 것처럼 전신에서 흐르는 시커먼 안개 때문이었다.
시모어가 마우솔레움의 영묘에서 어떠한 계약을 맺은 이후부터 품게 된 저 안개는 시모어의 감정이 흐트러졌을 때 보이는 것임을, 그리고 무척이나 위험한 것임을 알프레드는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시모어의 눈빛이 너무나도 사나워서였다.
그건 살기에 가까웠다.
알프레드는 이제껏 20년이 넘게 시모어를 보면서 단 한 번도 그가 저렇게나 감정 조절에 실패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와써?”
하지만 루시스는 그런 시모어의 모습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평상시처럼 굴었다. 오히려 안아 달라며 애교 아닌 애교까지 부렸다.
그리고 시모어가 루시스를 품에 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은 안개가…….’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옅어지더니 사라졌다. 아침 햇살을 만난 밤의 어둠처럼 말이다.
그 때문일까, 루시스의 하얀 머리칼에서 빛이 뿜어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모어가 감정을 가라앉히며 루시스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는 순간에는, 알프레드는 미약한 전율마저 느꼈다.
마치 종교화를 보는 것 같은 신성함을 느낀 탓이었다.
‘저것이 부성애인가.’
신이 인간에게도 품었기를, 인간들이 바라는 그 감정.
역시 사랑은 본능의 영역인 모양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시모어가 루시스를 저리도 아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알프레드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촬영기로 영상석에 녹화했다. 훗날 그것이 어떤 전설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 채.
* * *
‘계약은 절대적이야.’
나는 욕실에 앉아 머리칼에서 물기를 뚝뚝 흘리며 생각했다.
욕실의 귀가 먹먹해지는 감각은 무언가를 조용히 생각하기에 좋았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전신 거울의 위에 수건을 덮어 놓았다는 것뿐.
오늘만은 이 잘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계약의 신이 관여한 계약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프롬은 제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 반드시 그 계약의 이행을 보기 위해 달려들 터였다.
‘보통 이런 경우, 내 수명이 다하기까지가 계약의 시간 한도겠지.’
그 안에 루시스를…….
뿌득, 나는 이를 갈았다.
계약의 내용조차 머리에 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시모어가 루시스의 ……살해 계약을 받아들인 것은 어떻게든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시모어는 원래 그런 놈이니까. 친동생도 제 손으로 해치는 놈이니까.
‘하지만, 마우솔레움은 왜 자신의 딸을 죽이라고 한 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가능한 식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도저히 그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가 봉인한 아이잖아. 처음부터 해칠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봉인한 거지?’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이미 수십만의 인간을 몰살시킨 대량 학살마가?
문득 꿈에서 봤던 남자가 떠올랐다.
바다에 떠오른 별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사내.
그 남자가 마우솔레움이었을까?
‘뭘 잘했다고 지 딸의 살해를 청탁해 놓고 질질 짰던 거야?’
나는 양손을 꽉 쥐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오를 것만 같았다.
“후우…….”
내 입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원작에서 루시스는 시모어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그 사망 시점은 계약으로부터 1년 후, 시모어가 자신에게 드래곤 하트를 이식하는 방법을 알아낸 뒤였다.
‘언제 죽이라는 말이 없었으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가 그 죽음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을 때 실행한 건가.’
시모어 입장에서야 횡재나 다름없었으리라.
마우솔레움과의 계약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고, 그보다 큰 힘을 줄 수 있는 헤츨링까지 손에 쥐었으니.
하지만 이제 그 계약을 지켜야 하는 것은 나였다.
‘신이 관여한 계약을 깨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어.’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그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그 누구를 죽여야 하든 간에, 루시스가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유는 루시스의 운명을 반복시키기 위함이 아니야.’
잘생긴 얼굴, 완벽한 몸매, 남부러울 것 없는 부와 권력.
그것의 대가가 내 허리춤도 못 오는 순수한 아이의 목숨이라면 나는 언제라도 내가 쥔 것을 놔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니, 그건 각오가 아니다.
차라리 양심이었다.
꽈악-.
양손으로 쥔 주먹에 다시 한번 힘이 들어갔다.
* * *
안드레의 양복점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아직 오픈도 안 했는데 이 정도 인파라니.’
혹시라도 먼저 옷을 살 수 있을까 싶어 귀족들이 보낸 시종들 탓이었다.
시종들은 내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주저하더니 양옆으로 갈라졌다.
모시는 귀족을 위해 말을 붙여 볼까 하다가 내 악명에 질려 포기한 것이다.
귀찮은 건 질색이었기에 잘됐다 싶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양복점에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안드레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준비는 잘돼 가?”
“물론입니다! 계획대로 다음 주면 론칭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내를 둘러봤다.
양복점의 1층에는 거대한 런웨이가 지어져 있었다.
나는 이곳을 단순한 양복점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명품 브랜드화를 위해 주기적으로 신상 옷들을 소개할 패션쇼가 여기서 열릴 예정이었다.
‘런웨이는 파티 음식을 올려놓는 테이블 용도로도 쓸 수 있지.’
브랜드화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우리의 옷을 자주 입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 주기적으로 고위 귀족들과 부유층 위주의 파티를 열 생각이었다.
“재단사들 모집은 잘 되고 있고?”
“물론입니다! 백작님이 선보이실 새로운 패션의 여명기를 함께 하고 싶다고 매일같이 새로운 재단사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무척이나 흥분해 있었다.
그만큼 내 패션을 좋아한다는 의미였기에 나도 흐뭇해졌다.
“아, 백작님. 양복점의 명칭은 무엇으로 하실 겁니까?”
안드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들어 런웨이를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비단이 깔리고 웅장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번쩍이고 있는 런웨이를.
‘이름이라.’
원래는 정해 둔 이름이 있었다.
마우솔레움 가문의 패션 브랜드이니, 그 이름에서 따와 ‘마우’ 아니면 ‘솔’이라 이름 지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그 광룡의 이름으로 내 첫 사업체를 명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각해 둔 이름이 적힌 종이를 안드레에게 내밀었다.
안드레는 그것을 공손히 받아 소리 내어 읽었다.
“‘럭스’……입니까.”
어감이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안드레가 물었다.
“혹시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작게 웃었다.
* * *
“드래곤은 언제나 인간을 놀잇감 취급해 왔습니다! 천 년 전에는 ‘유희’라 불리며 인간의 삶을 가지고 노는 문화가 있었을 정도라구요!”
황후는 목소리 높여 성토했다.
“게다가 먹지도 쓰지도 않을 황금을 빼앗아 레어에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마음에 드는 인간은 납치해다가 가디언으로 삼아 늙어 죽을 때까지 제 낮잠을 지키는 파수병으로 썼다고 해요!”
황후는 도저히 진정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지러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마우솔레움 가문의 드래곤? 브레스 한 번으로 수십만의 인간을 학살했다는 그 허무룡의 후손이요?”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황후.
“그런 존재와 친분을 갖는 건 교회를 배신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예요! 훗날 교회와 협력하고 다투기도 해야 하는 지고의 자리에 앉으실 분이 가까이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존재입니다!”
열변을 토해 낸 황후는 고개를 돌려 티테이블에 앉은 소년과 눈을 마주치고 물었다.
“아시겠습니까, 황자?”
일곱 살의 황자, 에라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어마마마.”
“그래요. 말귀를 알아들으시니 다행이군요.”
아들의 순종적인 태도에 황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지난 며칠간 계속된 ‘드래곤 실태 알리기 수업’이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황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황자의 맞은편에 앉아 찻잔으로 목을 축였다.
“한데 어마마마. 허락받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황자?”
황후의 목소리는 뭐든 들어주겠다는 듯 부드러워져 있었다.
황자는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후에 마우솔레움 가문의 패션 사업체 론칭을 기념한 패션쇼라는 행사를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어마마마도 아바마마도 그 행사에 참여하신다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가문의 드래곤이 마음에 안 드는 것과 별개로, 황후는 그 가문이 새로 선보이는 패션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사교계에서 황후로서의 위엄과 품격을 보이려면 우선 패션에서 앞서야 함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소자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황자가요?”
황후는 고개를 기울였다.
미래에도 가치 있을 패션을 알아보고 미리 공부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벌써부터 대귀족인 마우솔레움 가문과 친분을 쌓으려는 걸까?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곳에는 황자의 또래 아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지루할…….”
또래 아이.
황후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황자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볼이 발그레 물들어 있었다.
“……황자.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하지만 에라드의 귓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제 손을 잡아 이끌던 자그마한 손.
바람에 흩날리며 제 볼을 두드리던 새하얀 머리칼.
통통하면서도 혈색이 돌던 분홍빛 볼과 자신을 향해 반짝이던 햇살 같은 눈동자.
자그마한 천사의 모습을 떠올리자 황자의 볼이 다시 한번 붉어졌다.
“듣고 계십니까? 드래곤과 엮이는 건 인생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무조건 망한단 말입니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은 피어나는 어느 일곱 살의 봄날.
소년은 첫사랑을 앓았다.
* * *
그날 오후.
마우솔레움의 패션 브랜드 ‘럭스’가 론칭했다.
훗날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입을 모아 ‘모던 패션의 여명이 열렸다’고 일컫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