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7)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47화(47/109)
기둥 (2)
놀아 봐라.
나를 즐겁게 해 봐라.
그리 말씀하신 루시스는 자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할 생각 없다는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
“…….”
인간 셋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 봤다.
아니, 황자만 아이들을 봤고 마렉과 마리는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테이블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에라드는 살면서 이렇게 가까이서 평민을 본 적이 없었다.
계승식과 같은 행사를 할 때 마차 창문 너머로, 몇 겹의 호위기사들 너머로 스치듯 본 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신기했다.
‘평민들도 아이들은 나와 다를 게 없구나.’
마렉과 마리는 귀족가에 루시스의 배동으로 있는 아이들이기에 실제 평민들보다는 영양 상태도 의복 상태도 좋다는 걸 모르는 황자였다.
반면 마렉과 마리는 그냥 죽을 것 같았다.
‘황자님……. 황제님의 아드님……. 제국의 다음 태양……!’
‘오빠! 나 무서워!’
루시스와의 첫 만남은 차라리 괜찮았다.
드래곤이라는 신화적 존재의 등장에 귀족가의 아기님이라는 계급은 오히려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교육을 받기 전이라 계급 사회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다는 점도 컸다.
하지만 황자는 아니었다.
귀족들 앞에서 패션쇼를 한 것만으로 긴장감에 하루를 앓아누웠던 마렉과 마리에게 이 자리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아, 이런. 내가 실수를 하고 있었군.”
침묵뿐인 몇 분이 지나고서야 에라드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이름이 어찌 되는가?”
황제의 질문에 두 아이들은 히끅 딸꾹질을 하며 답했다.
“마, 마렉입니다!”
“마리예요…….”
“이 저택의 사용인인가?”
“아뇨. 저, 저희는 루시스 님의 놀이 친구입니다.”
“아하, 배동이었군.”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황자는 뒤늦게 자신이 딱히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본 적이 별로 없음을 깨달았다.
빛나는 황실의 아들이다. 심지어 부모님도 먼저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이다.
황자는 태어난 이후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붙여 본 것이 루시스가 처음이었다.
“그……. 음…….”
열심히 머리를 굴린 황자는 자신의 취미로 화제를 돌렸다.
“자네들은 최근에 어떤 서적을 읽었는가?”
“저는……. 아니, 소인은……. 파랑새라는 책을 읽었사옵니다.”
“처음 듣는 책이로군. 저자가 누구지?”
“에릭 동화사라고 하옵니다.”
“응?”
“예?”
“아니. 출판사 말고 저자…….”
“……그 둘이 다른 것이옵니까?”
“…….”
“…….”
계급의 벽이 이다지도 높단 말인가, 어린 황자는 제국의 현 상황을 개탄하며 아무 말 없이 차를 들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루시스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킥킥킥.”
그 웃음소리에 샐쭉해진 시선 셋이 루시스에게 모였다.
“아기님……. 너무해요.”
“그대에게 이런 짓궂은 면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황자는 ‘그런 새로운 면을 보아서 더 좋아졌지만’ 하는 뒷말은 삼켰다.
루시스는 킥킥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자.”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휙 나갔다.
마렉과 마리는 언제나 있는 일이라는 듯 재빨리 그 뒤에 붙었다.
황자도 조금 늦게 루시스를 뒤쫓았다. 그 얼굴에는 붉은 홍조가 떠 있었다.
‘황자인 나에게 의견조차 묻지 않는다니……. 이런 취급은 처음이야……!’
정원으로 나온 루시스는 평소 마렉과 마리와 노는 방식으로 놀았다.
흙장난을 치고 수풀에서 벌레를 잡고 연못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시녀들이 뒷목 잡을 때까지 옷을 더럽히며 놀았다는 소리다.
두 평민 아이들은 황자님이 이런 놀이를 해도 되나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즐겁게 놀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황자는 재밌게 놀 생각이 없었다.
최신 보드게임부터 마도공학 오락기까지 섭렵한 황자였으니 이런 흙장난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저 루시스 양의 주도니 따라가 줘야지, 정도만 생각했다.
“이, 이게 뭡니까?”
“먹는 거야.”
“아니에요! 메뚜기라구요!”
“이건 또 뭡니까?”
“먹는 거.”
“정원사 아저씨가 공들여 키우는 잉어잖아요!”
하지만 아니었다.
황자가 큰 충격을 받을 정도로 ‘흙장난’은 신세계였다.
황자는 사람도 꽃에서 꿀을 빨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고, 맨발로 밟는 잔디의 감촉이 생각보다 차갑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언제나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으며 정원을 눈으로만 봐 왔던 황자였다.
정원이 관상용 액자에 담긴 정물이 아니라 손과 발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간에 루시스가 있었다.
“……루시스 양.”
찬란한 태양을 받아 백금처럼 빛나는 백발.
무엇을 보던 언제나 반짝이는 황금빛 눈동자.
흙먼지로 더러워졌지만, 그렇기에 완성된 드레스.
황자는 마렉을 따라 나뭇잎으로 피리를 만들다 멍하니 루시스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
어릴 적의 감정일 뿐이라고, 나이를 먹을수록 연심이 옅어질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이 감정이 옅어질 수 있을까.’
루시스 양이 저렇게 빛나는데.
언제나 변함없이 저곳에 서 있을 텐데.
어찌 내 마음이 변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러하다면, 정말로 이 마음이 옅어진다면.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리된다면.
‘죽음과 망각만을 가져다주는 시간은 이 세계의 가장 큰 저주이리라.’
황자는 풀피리를 입에 물었다.
입 안에 풋내가 가득했다. 하지만 피리 소리만큼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 * *
나는 언덕의 가제보에서 루시스가 노는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즐겁고 해맑게 놀고 있는 모습은 현실이 아니라 천국의 일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킥킥킥.”
“아하하하!”
특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본관이며 저택들을 청소하고 잡일을 하고 있던 사용인들도 창밖으로 틈틈이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다 됐다.”
나는 스케치를 끝낸 그림을 들어 실제 풍경과 비교해 봤다. 조금만 과장하자면 색만 없다 뿐이지 거의 사진처럼 똑같았다.
시모어의 심미안 특성이 내게 영향을 준 것인지 이 몸에 빙의한 이후로는 그림 실력도 크게 늘었다.
완성된 스케치를 내 스케치 앨범에 집어넣으려던 나는 문득, 그림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
“…….”
정원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두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황실의 호위기사들이 보였다.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타운하우스의 경계를 지키는 흑룡 기사단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병력 배치였지만 아이들을 새장에 가둬 둔 것으로도 보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는 아이들이니까.’
제국의 미래, 마우솔레움의 미래, 인류의 미래.
그중 무엇보다도 눈부실, 저 아이들의 미래.
‘나는 루시스를 충분히 지킬 수 있나?’
가문을 장악해 권력을 챙겼고, 럭스를 통해 재력을 쌓았다.
헬라를 내 휘하에 두면서 흑룡 기사단이라는 막강한 집단도 내 아래에 뒀다.
일신의 무력은 지금도 성장 중이고 축성 회로와 마수 신체 이식 기술이 있다면 더욱 강해질 터였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키는 것에 있어 ‘충분하다’는 말은 존재할 수 없었다.
오늘 낮에만 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지 않았는가.
‘그런 일을 막으려면 대외적으로 ‘보이는 힘’을 길러야 해.’
사제들은 물론 성자조차 내 가문을, 루시스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면 마우솔레움 가문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마우솔레움 가문은 더욱 두려운 존재로 군림해야 해. 과거의 악명과 오명을 되찾아서라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말장난 같아 보이겠지만 나름 진리를 꿰뚫고 있는 말이었다.
건달들이 허세를 부리는 이유이며, 게임 회사에서 보스 연출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해는 동경으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라던가.’
반대로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은 공포였다.
공포에서 기인한 몰이해야말로 마우솔레움 가문을 더욱 강하게 만들 원동력이었다.
‘교회와 적대하면서도 가세가 전혀 기울지 않는 가문. 가주가 암흑가의 기둥으로 군림하는 가문.’
그것도 일곱 기둥 중 하나가 아닌, 다른 기둥들을 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유일무이한 기둥이 된다면 사람들은 더욱 공포에 떨 것이다.
‘광대.’
놈은 마약을 거래한다.
암흑가의 세력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백해무익한 집단이다.
거기에 무엇보다, 나를 향해 칼을 들이댔다.
‘놈을 죽인다.’
곡예사를 상대할 때와는 달랐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내 명령에 의해 죽어 사라질 이의 숫자 단위가 달랐다.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
“…….”
나는 잠시 내가 그린 스케치를 바라봤다.
누구보다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루시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광대의 조직, 서커스단은 그레니엄에서 지워질 것이다.
* * *
시간이 흘러 황자가 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이고 바지 밑단은 물에 젖은 황자는 몹시 아쉽다는 듯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었다.
“잘 가.”
그에 비해 담백하기 그지없는 루시스의 인사.
황자는 어딘가 섭섭한 눈으로 루시스를 보더니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박수를 쳤다.
“휴인! 내 선물을 가져오게!”
선물.
그 소리에 인사를 마치고 발길을 돌리려던 루시스의 몸이 멈췄다.
황자의 시종이 마차에서 꺼내 온 것은 큼지막한 보석함이었다.
황자는 직접 들기조차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보석함을 루시스에게 내밀었다.
“루시스 양! 선물입니다!”
“오.”
보석의 냄새라도 맡았는지 루시스는 냉큼 황자의 앞으로 달려와 보석함을 열었다.
샤랄랄라- 하는 효과음과 함께 보석함 가득 들어 있는 보석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손가락 두세 마디만 한 큼지막한 보석들이 수십 개는 들어 있었다.
“오오오……!”
루시스의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토파즈와 자수정을 들어서 햇빛에 비쳐 보이는 루시스의 입가가 점점 동그래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황자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 되는 선물을 받았으면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
나는 루시스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루시스. 고맙다고 해야지.”
“응?”
“선물에 대한 답례 말이야.”
“담녜…….”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던 루시스는 보석을 내려 두고 제 손목에 묶어 둔 작은 주머니를 뒤졌다.
잠시 후 주머니를 빠져나온 손에는 커다란 딱정벌레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그게 거기서 왜 나와?’
자신의 옷과 소지품을 정리할 시녀들을 골리기 위한 준비라는 생각을 차마 떨칠 수가 없었다.
루시스는 잠시 아깝다는 듯 딱정벌레를 보더니 보석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딱정벌레를 그대로 황자에게 내밀었다.
“담녜.”
“…….”
황자는 아무 말 없이 딱정벌레를 바라봤다.
딸깍딸깍.
딱정벌레가 황자를 향해 위협적으로 주둥이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