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8)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48화(48/109)
기둥 (3)
황궁으로 돌아가는 마차.
황자는 멍한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시종은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황자를 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문득, 황자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작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잠시 벌레를 바라보던 황자는 보석이라도 쥐듯 소중히 손을 쥐었다.
“루시스 양의 선물…….”
황자의 볼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창밖으로 지는 석양만큼 얼굴을 붉게 물들이던 황자가 말했다.
“휴인. 이것을 호박에 넣고 굳혀 주시게.”
그러고는 내밀었던 손을 되돌리며 혼자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아니지. 살려서 오래오래 간직해야지……. 딱정벌레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는 책자를 모두 구해 오게.”
“알겠습니다.”
황자는 다시 창밖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또 함께 놀고 싶구나…….”
오늘의 놀이는 황자에게 있어 신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귀한 몸인 황자가 언제 제 몸에 흙을 묻혀 봤겠는가.
‘루시스 양은 드래곤이라 자연을 좋아하는 거로구나. 그렇다면 내 궁의 정원을 새로 지어야겠어. 아예 밀림의 형태로……!’
황자는 폭주하기 시작한 생각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휴인, 내 궁전의 정원은 내가 마음대로 선물해도 되는 것이지?”
“그럴 리가요. 절대로 안 됩니다, 황자 전하.”
휴인은 엄한 시종이었다.
* * *
황자의 방문으로 인한 혼란이 정리된 늦은 밤.
집사장 알프레드는 시아와 시몬의 부름으로 본관의 다락방을 올랐다.
알프레드는 잠시 추억에 젖어 다락방을 둘러봤다.
시아와 시몬이 어릴 적부터 둘만의 아지트로 사용하던, 두 사람의 가족애가 흠뻑 배어 있는 곳이었다.
“알프레드. 우선 앉아 줬으면 해.”
하지만 분위기가 몹시도 심상치 않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두 사람의 기운을 살피며 알프레드는 자리에 앉자 시아가 입을 열었다.
“요새 큰오빠가 뭔가 숨기고 있지 않아?”
“…….”
알프레드는 침묵했다.
그가 가문의 집사장이고 모든 직계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그의 주인은 가주 한 명뿐이었다. 섣불리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시아도 알고 있기에 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예. 들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나랑 시몬 오빠가 저번에 식탁에서 했던 말 때문에 그렇게 과민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아.”
시몬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매가 아카데미에서 푸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시모어의 표정은 몹시 좋지 않았다.
“알프레드. 형님이 마력 회로를 새기고 있다는 사실,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시모어의 명령으로 연고를 가져오거나 피 묻은 수건을 처리한 적 있는 알프레드였다.
“형님은 죽어도 자기 몸에 마력 회로를 그릴 사람이 아니야.”
그것은 귀족의 자존심을 넘어선 귀족의 기본 소양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몬과 같이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 별로 없는 이조차 몸에 회로를 새기는 것을 꺼릴 정도로 말이다.
“어째서 회로를 새기냐 물어도 얼버무릴 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아.”
남매는 불안했다.
부모님에 이어 장남까지 잃어버리게 될까 봐.
“무언가를 급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자기가……. 사라져도 우리가 안전하도록 말이야.”
알프레드, 시몬이 불렀다.
“형님은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시몬은 알프레드의 눈을 바라보며 불었다. 아니, 부탁했다.
“알려줘. 형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야. 믿기에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그래서 알고 싶은 거야.”
“…….”
침묵을 지키던 알프레드는 품에 손을 집어넣어 텅 빈 주사기 하나를 조심스레 꺼냈다.
시모어가 강연을 하던 때에 화장실로 돌아가 챙겨 둔 주사기였다.
“이건?”
“엘릭서라고 합니다. 혹은 ‘쉬운 길의 물약’이라고도 부르죠.”
“쉬운 길?”
“사용 시 간단하게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쉬운 길에 대가가 없을 리 없다.
간단한 방법에 리스크가 없는 것은 성실함에 대한 모욕이었다.
“수명이 크게 단축됩니다. 정확히는 심장에 어마어마한 무리가 가죠.”
“……!”
“선대 백작님도 젊을 적 승계 싸움을 위해 무리하게 이 물약을 사용하셨었습니다. 승계 싸움이 마무리될 즈음부터는 언제 심장이 멈춰도 이상하지 않으신 상태였죠.”
선대 백작은 세간의 소문과는 다르게 엘릭서에 의해 건강과 수명이 갉아먹혀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알프레드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수명이 얼마나 줄어드는 거지?”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엘릭서를 주사하셨나?”
“제가 알기로는 다섯 번입니다.”
“형님의 수중에 엘릭서가 더 있나?”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시몬이 진지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이 시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려야 해. 오빠한테……. 오빠한테 가서 이제 쓰지 말라고…….”
“그런다고 들을 형님이 아닌 거 알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시아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외침에도 시몬은 대답 없이 입술을 뜯었다.
시모어가 자신의 수명까지 깎으며 저러는 이유가 뭘까.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의무감?
‘아니야.’
시몬은 시모어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형님이 정말로 바뀌었구나 실감했던 말을.
– 시몬. 네가 연구하고 싶은 마력 회로는 뭐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시모어는 그렇게 말했다.
시모어는 루시스와 동생들을 위해서, 자신이 아끼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괜찮으니 멈춰라’라고 말한다고 해서 멈출까?
그럴 리 없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더 위험한 짓을 하겠지.
‘그러니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해.’
형님의 보호와 헌신이 없어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 걸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야 했다.
“우리가 성장을 해야 해. 우리가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해내야 해. 그때가 되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형님 스스로 안심하고서 멈출 거야.”
“성장? 어느 세월에! 나는 아직 아카데미를 졸업도 못 했는데!”
“괜찮아. 아버지는 엘릭서를 다섯 번 맞으셨다 했잖아. 형님은 아직은 괜찮아. 그러니…….”
시몬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여동생의 어깨를 쥐었다.
“조금만 여유 있게 나아가자. 충분히 성장해서, 이 가문을 이루는 기둥은 형님뿐이 아님을 보여 주는 거야.”
“하지만……!”
“걱정 마. 네가 성장할 동안은 내가 형님을 옆에서 보좌할게. 무리하지 않도록 그 짐을 나누면서.”
시아는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려는 말을 참았다.
무슨 말을 한다 한들 그저 떼쓰는 꼴밖에 되지 않음을 스스로도 깨달은 탓이다.
그런 시아를 보며, 시몬은 가슴이 불타는 것처럼 쓰라려 왔다.
‘간신히 원하던 가족을 손에 넣은 시아인데. 이제야 우리를 돌아봐 주는 형님인데.’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만일 형님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시몬과 시아는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시몬은 무슨 일이든 할 생각이었다.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능력으로 형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순간, 시몬의 머릿속을 회로 하나가 스쳤다.
완성 직전에 시모어의 명에 의해 폐기되었던 회로가.
선대 백작, 아버지의 최후의 광기가 스며들어 있는 저주받은 회로가.
“그래. 무슨 일이든…….”
간신히 이룩된 가족을 잃을 수는 없다.
간신히 되찾은 형님을, 시아의 행복을 놓칠 수는 없다.
시몬의 황금빛 눈동자가 탁한 빛으로 일렁거렸다.
* * *
오늘은 이리나의 과외가 있는 날이었다.
“꺄아아악!”
“아기니이이임!”
“못 살아, 정말!”
그리고 루시스는 귀신같이 또 어디서 흙먼지를 잔뜩 묻히고 왔다.
“흐흥.”
나는 잠시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저번에 그 꼴을 당하고도 또 새벽부터 루시스를 단장시킨 시녀들의 끈기를 칭찬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용케도 시녀들의 감시망을 뚫고 정원에서 구르고 온 루시스의 기민함을 칭찬해야 할지 잠시 헷갈려서였다.
“두고 봐요! 다음 과외 때도 또 아침부터 단장시켜 드릴 거니까!”
“이대로 지지 않는다구요!”
“흥.”
그래도 확실한 건 사이가 좋아 보인단 것이었다.
그 훈훈한 모습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 보나 문득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시아는 아카데미에 등교했고, 헬라도 나갔는데.’
나 대신 대외 활동에 출석하는 헬라는 새벽부터 사냥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루시스가 포식하겠군.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저택에 루시스를 씻길 만한 인물이 없었다.
방계들에게 맡기자니 나는 아직 그자들을 100%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씻길 수도 없는 노릇. 곤란해하던 차에 이리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백작. 또 뵙는군요.”
“아, 이슈타르 경. 오늘도 고마워. 그런데…….”
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루시스를 보자 이리나의 시선도 그 뒤를 따랐다.
“……아.”
이리나는 루시스의 상태를 확인하고 짧은 탄식음을 냈다. 루시스는 당당히 서서 그 시선을 받아 냈다.
마치 제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 나쁜 건 시녀들이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이리나에게 루시스를 씻길 사람이 저택에 없으니 미안하지만 과외는 다음으로 미룰 수 있겠느냐 물었다.
“사죄의 의미로 럭스의 정장을 몇 벌…….”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씻겨 드리도록 하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조금 놀랐다.
“아니. 하지만 이슈타르 경에게 목욕 시중을 들라고 하기는…….”
“드래곤 님의 목욕 시중이라면 영광이지요.”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정말로 괜찮겠어?”
“그럼요. 이 기회에 루시스 님에게 혼자 씻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선생의 역할이겠죠.”
아직 그러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 아닌가 생각하는 내게 이리나가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게다가 곤경에 처한 레이디들을 외면하는 것도 기사의 도리가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이리나는 시녀들에게 살포시 미소 지어 줬다.
이리나의 말대로, 과외를 앞두고 루시스가 더러워졌다는 사실은 시녀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내가 딱히 그런 것에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평범한 주종 관계라면 혼이 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아앗……!”
“이슈타르 경……!”
그러니 시녀들이 서로 달라붙으며 입술을 꼭 깨물 정도로 감동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이리나의 별명 중 하나가 ‘왕자님’이었지.’
저 무자각 플러팅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여성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정 탓이었다.
“오……!”
루시스도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이리나와 함께 물에 들어갈 생각에 벌써 신이 난 모양이었다.
왠지 앞으로의 모든 과외에서 루시스가 일부러 몸을 더럽힐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