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9)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49화(49/109)
식탁 외교 (1)
이리나는 루시스를 품에 안고서 씻겨 주었다.
“자, 이제 물을 뿌릴게요. 너무 차가우면 말씀하세요.”
“응.”
이리나는 바가지에 담아 온 물을 조심스럽게 루시스의 이마에 부었다.
루시스는 이리나의 품에 안겨 고개를 팔 바깥으로 젖히고 있었기에 이마에 부어진 물은 그대로 머리로 흐르며 비누 거품과 먼지를 씻어 내렸다.
그 와중에 이리나가 입고 있는 옷이 흠뻑 젖었지만 이리나는 개의치 않고 정성껏 루시스를 씻길 뿐이었다.
“히유유…….”
머리를 모두 감긴 뒤에는 얼굴을 뽀득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꾸욱 눌러 씻겨 주는 손길에 루시스는 저도 모르게 포근한 숨을 내쉬었다.
정성을 들여 루시스의 전신을 씻긴 뒤 이리나는 물기까지 수건으로 직접 닦아 줬다.
한껏 나른해져 있다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루시스는 제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 주는 이리나에게 물었다.
“왜 안 씨서?”
“다른 이의 집에서 몸을 씻는 건 예절에 어긋난답니다.”
이리나 본인이 그런 상황을 선호하지 않기도 했지만, 기사이기 이전에 후작가의 영애로서 지켜야 하는 선이 있었다.
과년한 처녀가 다른 가문의 저택에서 몸을 씻는다? 이상한 소문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옷 다 젖었자나.”
“위대하신 분의 시중을 드느라 젖었으니 이 옷도 영광일 겁니다.”
“흥…….”
루시스의 눈이 가늘어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을 향한 찬양이 퍽 마음에 든다는 얼굴이었다.
이리나는 순식간에 사회생활을 하는 초년 종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하하…….”
이리나는 루시스의 옷을 입히고 자신도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도 동행한 광휘 기사단의 단장, 케인이 이슈타르 저택에 일러 새 옷을 가져온 것이다.
“으흥흥~.”
씻고 나오자 기분이 좋아 보이는 루시스였다. 이리나는 그런 루시스를 품에 안고 루시스의 방을 찾았다.
루시스의 취향에 맞춰 온갖 인형들과 보석, 장신구로 가득한 휘황찬란한 방이었다.
이리나는 루시스를 자그마한 화장대에 앉혔다.
“……?”
내가 왜 여길 앉느냐는 듯 무해한 얼굴로 갸웃해 보이는 루시스.
그런 루시스에게 미소를 지은 이리나는 등 뒤의 시녀들에게 말했다.
“루시스 님을 단장시켜 주세요.”
“?!”
통렬한 배신감에 루시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 * *
나는 서재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 마우솔레움의 광룡, 이번엔 아카데미다.
– 마우솔레움 백작, ‘신은 섬길 가치가 없다’ 발언에 파문 확산.
– ‘신들은 마우솔레움을 두려워했다.’ 광기의 끝은 어디인가.
며칠 전 아카데미 특별 강연 다음 날의 기사로, 알프레드를 시켜 스크랩해 둔 것들이었다.
“흠……. 제목 잘 뽑았네.”
신문사들은 내게 후원을 받는 만큼 마음에 쏙 드는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이대로라면 평민들의 사이에도 마우솔레움 가문에 대한 공포가 점점 더 짙어지리라.
참고로 후원자의 이름은 마우솔레움 가문이 아닌 ‘광휘 교단’으로 하고 있었기에 루시스에 대한 내용은 전부 호의적인 것들뿐이었다.
특별 강연의 여파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나는 책상의 한쪽에 쌓여 있는 편지들을 확인했다.
아카데미의 마법학과 학생들이 보낸 편지들이었다. 하루 만에 일곱 명의 학생들이 입사 지원서를 보낸 것이다.
‘빨리 행동하는 이들이 더 큰 열매를 먹는 법이지.’
그 결단력과 행동력을 칭찬하는 의미에서 오늘 도착한 편지들은 마르코가 아닌 내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아직 이력서 문화가 정착은커녕 시작도 안 한 세계답게 자기소개부터 성적 및 전공 소개까지가 전부 한 장의 긴 편지에 들어 있었다.
심지어 몇 장의 편지는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다. 그 풋풋함과 귀여움에 쿡쿡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루 만에 일곱 명이 지원을 했으면 앞으로도 더욱 늘어나겠지.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서 A급들은 내가 쓰고 그 아래는 방계들의 사업체에 파견 보내는 식으로 하는 건 어떨까.’
편지를 한 장 한 장 확인하던 내 손이 마지막 편지에서 멈칫했다.
아니, 이걸 편지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내 이름이 고풍스럽게 적혀 있는 것만 아니었다면 편지를 담은 트레이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소포’였으니까.
“…….”
나는 불안한 마음과 함께 소포를 뜯어봤다.
데구루루-.
무언가가 굴러 나왔다. 영상석이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소포를 마저 뜯어봤다. 그 정체는 커다란 초상화였다.
맑은 눈을 한 하프엘프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초상화였다.
“…….”
나는 초상화 속 그녀의 맑은 눈을 피하며 소포 속에 그림을 다시 집어넣었다.
아마도 자기소개가 녹화되어 있을 영상석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하루 만에 여섯 명이나 지원하다니. 시작이 좋네!’
나는 다시금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 * *
과외가 진행되는 루시스의 놀이방.
그 중심의 널찍한 다과상에는 시녀들이 준비해 둔 차와 과자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광경을 어찌 아느냐면, 루시스가 단장을 하는 사이 집무실을 찾아온 이리나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탓이었다.
“오늘부터 시모어 백작도 과외에 의무 참여입니다.”
이리나는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엄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째서?”
“저와 시모어 백작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생각을 맞추지 않으면 루시스 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와 선생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아이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따로 시간을 내어 생각을 맞추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니까요.”
그러니 과외 자리에서 곧바로 서로에게 피드백을 하자, 그런 의미인 것 같았다.
‘뭐, 루시스를 위해서라면야.’
업무도 급한 것들은 끝내 놨으니 잠시라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나는 둘의 과외에 참석하기로 했다.
잠시 후, 잔뜩 심통 난 얼굴의 루시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흥……!”
양 볼이 터질 듯 부풀어 있는 루시스. 심지어 이리나는 본 척도 않고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양팔을 번쩍 들기에 품에 안아 주자 내 가슴에 고개를 폭 박았다. 보고 싶지도 않은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큽……. 크흐흐흐…….”
온몸으로 ‘나 삐졌어’라고 외치는 상태의 루시스.
나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 음…….”
이리나가 입을 연 순간.
팍!
치마 아래에서 튀어나온 꼬리가 테이블을 사납게 내리쳤다.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하라는 듯이.
‘제대로 삐졌네.’
루시스가 이리도 격렬하게 누군가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처음 봤다.
아마 그만큼 이리나를 가슴 깊이 아끼고 따랐다는 뜻이리라.
이 정도로 화낼 줄은 몰랐는지 안절부절못하는 이리나.
내게 눈빛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나는 눈썹만 으쓱이고 말았다.
‘네가 선택한 분노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내 눈빛을 읽었는지 결연한 빛을 띠는 이리나.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우리 아가씨가 왜 이리 화가 많이 나셨을까~.”
“나쁜 과외 선생 때문이지, 뭐~.”
양손에 인형을 하나씩 들고 독백 인형극을 시작한 것이다.
기사 중의 기사인 그녀의 이미지로 보건대 어릴 적에도 혼자서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독백 인형극.
“정말 나쁜 선생이라니까!”
“그래도 선생도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던데?”
꿋꿋이 연기를 이어 나가는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져 있었다.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져 슬며시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저 애매한 가성을 들을 때마다 내 안의 자존감마저 팍팍 깎여 나가는 기분.
‘왜 하필 오늘 나를 불러 가지고…….’
두 사람 몫의 수치심을 짊어지고도 꿋꿋이 인형극을 해 가는 이리나는 참선생이었다.
“…….”
그 정성에 감복한 것일까. 루시스의 고개가 슬며시 돌아갔다.
빵빵한 볼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루시스의 시선을 눈치챈 이리나의 인형극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선생이 사죄의 표시로 다음 과외 때는 이슈타르 가문 특제 쿠키를 가져다준다는데~.”
“와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맛난 쿠키잖아!”
나는 눈을 감았다.
한 기사의 마지막 순정을 지켜 주기 위해.
* * *
이리나가 루시스의 용서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도 5분이나 독백극을 더 이어 나간 뒤였다.
“흥…….”
이 정도로 용서해 주는 것에 감읍하라는 듯 눈을 흘기는 루시스.
“휴우…….”
기사도도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불태웠던 이리나는 하얗게 변해 한동안 차만 홀짝였다.
“…….”
나는 이리나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존재하지 않는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기력 회복에 전념했던 이리나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오늘 과외를 시작해 볼까요?”
기다렸다는 듯 루시스는 백룡 인형을 꺼내 테이블에 앉혔다.
자신의 선물을 아끼는 모습에 이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섭섭함에 토라지긴 했어도 이리나를 몹시 좋아하는 루시스였다.
“옛날 옛날 드워프 왕국에는 한 광부가 살았답니다…….”
이리나의 과외는 인형극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광부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가족의 사랑도 보석이 나오는 광산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이죠.”
이리나는 인형극에 맞는 인형들을 가지고 와 간단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시스 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하시겠어요?”
“둘 다 구할 거야.”
“그게 힘들다면요?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요?”
“으으음…….”
루시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줘서 생각의 깊이를 만들어 주면서도 어떤 정답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광산 얼마나 커?”
“……예?”
“무슨 보석 나와?”
“어……. 음…….”
물론 루시스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기에 당황하는 경우도 잦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 가지 옛날이야기를 들려준 뒤, 이리나는 조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루시스 님. 혹시 제가 조금 전에 왜 시녀들에게 단장을 맡겼는지 아시겠어요?”
“몰라.”
다행히 루시스는 다시 화가 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리나는 그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루시스 님이 인간계에서 살아가시려면 최소한의 규율은 지키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규율?”
“인간들 간의 약속과 같은 거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거나 손님이 오기 전에는 단장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에요.”
“내가 그걸 왜 지켜?”
“루시스 님은 위대하신 분이니까요. 다른 인간들이 본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셔야죠.”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신이 귀족인 것에 대해서도 늘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리나였다.
루시스는 그것이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저는 그게 남들보다 높게 태어난 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인간들은 안 그러잖아.”
“……예?”
“서로 괴롭히고 못살게 굴잖아.”
“…….”
왜 인간들도 못 하는 역할을 내가 해야 하느냐, 루시스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이리나는 곧바로 반론을 펼치기보다는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루시스를 어린아이로만 대했다면 다시 논리를 정립할 시간에 자신의 가치 판단을 강요하거나 원하는 답을 하도록 아이를 구슬렸을 것이다.
언제나 루시스를 제대로 된 인격체로 대해 주는 이리나의 모습이 나는 무척이나 기꺼웠다.
“루시스 님의 말씀대로 남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인간들도 많아요. 하지만 그럴수록 모범을 보이는 이들이 빛을 내는 거랍니다.”
“나는 안 빛나.”
“무슨 말씀이세요. 루시스 님은 언제나 빛나시는걸요. 아기 광휘룡님이시잖아요.”
이리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루시스의 말에 그 얼굴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저주받은 핏줄이래.”
“…….”
“태어난 게 죄래.”
꽈드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눈을 내려보니 내 손이 의자의 팔걸이를 부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