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6화(6/109)
장례식 (1)
“넥타이……? 그게 무엇입니까?”
재단사의 반응에 덩달아 의아해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계에 넥타이가 없나? 그럴 리가. 내가 시모어를 디자인할 때도 넥타이를 그렸었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건 1년 뒤 시점의 컨셉 아트였다. 현재 시점에는 아직 넥타이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설마 이 묘하게 구식인 패션들도 전부…….’
나는 재단사가 구시대의 옷들만 보여 주는 게 수도에서 거리가 제법 있는 영지라 유행에 많이 뒤처져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서 이제까지 봐 왔던 옷들은 로코코 시대풍의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각 없이 둥근 어깨에 장식이 과하게 달린 재킷, 거기에 거의 무릎까지 오는 하얀 양말을 신은 패션 말이다.
‘당장이라도 하얀 가발을 뒤집어써야 할 것만 같은 패션.’
그나마 패션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리차드 마우솔레움만이 군용 정복과 승마복의 중간 즈음에 있는 나폴레옹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로코코풍 패션이 대세 유행이고 나폴레옹풍 패션이 최신 유행인 시대인 건가.’
나는 잠시 턱을 쓸다가 뭔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우솔레움 일가는 시모어를 포함한 대부분이 현대식 슈트를 입고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마우솔레움 일가밖에 디자인하지 않았다.
‘넥타이를 포함한 이 세계의 현대식 슈트는 시모어가 최초로 고안했다는 설정인지도.’
심미안에 나르시시스트 특성을 가진 시모어이니 자신에게 딱 맞는 패션 트렌드를 개척해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지구에서 유행하는 수많은 패션 아이템들 중에서도 돈 많고 할 일 없는 심심한 중근세 귀족들이 만들어 낸 것이 많으니 말이다.
납득을 마친 나는 옷장에서 자투리 옷감을 집어 모델의 목에 두르고 매듭을 지었다.
“넥타이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크라바트보다 훨씬 가느다랗고 세련된 느낌의…….”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니 재단사가 커다래진 눈동자로 넥타이를 보고 있어서였다.
“이건……!”
재단사는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성큼 다가왔다.
과도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던 이전과는 달리 눈이 돌아간 모습에 내가 한 발짝 옆으로 비켜 줬을 정도였다.
넥타이를 맨 모델이 다 당황할 정도로 정신없이 넥타이를 바라보고 쥐어 보고 풀어 보고 다시 매 보던 재단사는 뭔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정말로 간단하고 얄팍해 보이지만 그 안에 세련됨과 절제미, 거기에 우아함까지 곁들여진 삼위일체의 장식……!”
“뭐?”
“이것에 어울리는 옷은……? 아아, 떠오르는 게 너무나도 많아!”
황홀한 얼굴로 넥타이를 쓰다듬던 재단사는 홱, 나를 돌아봤다.
귀기 어린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한 발짝을 더 물러났다.
재단사는 그것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멀었는지 미친 듯이 말을 쏟아 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백작님! 지금 당장은 크라바트에 비해 우아함이 떨어진다고 사람들에게 외면받겠지만 3년, 아니, 1년 내로 모두가 이 장식을 목에 걸고 다닐 겁니다. 아예 패션의 장르가 바뀔 거예요, 이것에 어울리는 패션으로!”
“어……. 그래?”
넥타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런데 이 정도로 대단했나?
나는 환쟁이지 의류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패션에 대한 지식도 자료 조사의 일환으로 조금 공부했을 뿐인지라 안드레이에게 공감하기에는 패션 감성이 부족했다.
“이건, 어디에서 보신 장식입니까?”
“뭐……. 그냥 어쩌다 보니 떠올랐어.”
“역시 백작님이십니다! 천재십니다!”
그래도 정신이 완전히 나간 건 아닌지 아부는 멈추지 않…….
“예로부터 폭군들은 예술에 일가견이 있었죠!”
“……뭐, 인마?”
“악명을 떨쳤던 폭군도 예술가의 꿈이 좌절되고서 타락한 것이라 하니까요!”
지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것 같다. 히틀러가 젊었을 적에는 예술대학에 입학하려 했다던가…….
아니 그보다, 나 방금 되게 실례되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
“이것만 있다면 제가 제국 수도로 진출하는 것도 꿈만은 아닌……! 백작님!”
재단사가 갑작스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쿵, 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났는지 당황보다 걱정이 먼저 올라올 정도였다.
“저, 안드레는 재능 있는 사람입니다! 가진 거라고는 팔다리밖에 없던 시절부터 스승님의 도제로 들어 15년 만에 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눈앞의 남자, 안드레가 유명한 재단사라는 건 알고 있다.
마우솔레움 백작령 영지에서 최고인 재단사만이 이 영주성에 발을 들일 수 있으니까.
“3년 전에 제 이름을 걸고 차린 가게는 백작령에서 제일 잘나가는 양복점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남성복에 한해서는 감히 제도 최고라 자부합니다! 그러니……!”
안드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눈에서는 열정이 용암처럼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 기술을 저에게 투자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다시 말해 넥타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자신에게 모두 전수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흠…….”
나는 가만히 서서 턱을 쓸었다.
‘마음에 드는 제안이야.’
이 세계의 복식은 현대 지구에서 살던 내 눈에는 영 성에 차지 못했다.
넥타이는 물론이고 셔츠조차 원시 고대 셔츠인 ‘슈미즈’밖에 없는 세계였으니까.
내가 평범하게 이 세계에 빙의했다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시모어 마우솔레움이 된 이상, 내가 그렸던 옷들은 전부 직접 입어 보고 싶었다.
지금의 옷은 시모어의 외모를 받쳐 주지 못하니까. 루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넥타이뿐 아니라 현대 지구의 패션을 전부 전수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하지만 그걸로 남의 배를 불려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안드레의 앞에 무릎을 접고 쪼그려 앉았다. 눈을 마주치고서 물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네 이름을 딴 가게가 아니라 내 가문의 이름을 딴 가게가 될 거야.”
“상관없습니다! 따르겠습니다!”
그 망설임 없는 결단에 나는 조금 감탄했다.
예술가들에게 자기 이름을 딴 가게, 스튜디오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는 나였으니까.
‘그 욕망을 이겨 낼 정도로 넥타이가 탐난다는 건가.’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안드레가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내치려고 했다.
백작령에서야 안드레가 제일 잘나가는 재단사지만 제국 수도에만 가도 저 정도 실력이야 수두룩했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실력보다는 복종이었다.
“좋아. 가게는 정리해 두도록 해. 보름 뒤, 수도에 올라갈 때 함께 올라가야 할 테니까.”
“예, 백작님!”
안드레는 몇 번이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 * *
다음 날.
나는 서재로 시아를 불렀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조심스레 서재로 들어온 시아는 조금 쭈뼛거리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오빠. 왜 불렀어?”
그림을 감상하던 나는 눈을 돌려 시아를 봤다. 반대로 시아는 내게서 눈을 돌려 내가 조금 전까지 보던 그림을 봤다.
책상 옆에 세워져 있는 이젤이었다.
“……?”
이젤에는 아침 목욕 시간에 거울을 보다 자극받아서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의자에 앉아 검은 머리칼과 금빛 눈동자를 오만하고도 찬연하게 빛내고 있는 남자의 그림이었다.
작품명, 자화상.
무엇을 숨기랴. 모델은 잘생긴 나 자신이었다.
“……뭐야, 이게?”
“예술 작품이란다, 동생아.”
“예술 작품……?”
황당해하는 시아의 목소리에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심미안을 좀 더 기르는 게 좋겠구나, 동생아. 귀족에게 예술을 알아보는 눈은 필수란다.”
“아니, 이거 누가 봐도 오빠 얼굴이잖아?”
“그러니까 예술 작품이지. 너는 그 얼굴로 태어났음에 감사해야 해.”
그리고 그 얼굴을 디자인한 내게는 큰절을 올려야 마땅했다.
“…….”
미친 사람 보듯 나를 보던 시아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긴장하고 온 내가 바보 같아…….”
그 반대편에서 재단사에게서 구매한 보석을 양손에 한가득 들고 놀던 루시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녕.”
“응, 루시스도 안녕.”
시아는 루시스에게 반말을 하기로 정한 모양이었다.
잠시 루시스를 보며 몽글몽글 미소 짓던 시아가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오빠. 왜 부른 거야?”
“부탁이 있어서 불렀어. 앞으로 네가 루시스를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루시스를?”
루시스는 헤츨링인지라 혈족을 제외한 인간들의 손길은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귀족 생활이라는 것이 도와주는 이의 손이 없으면 목욕부터 환복까지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돕기에는 아무래도 성별이라는 장벽이 있었고 말이다.
“아침, 저녁에 씻겨 주는 것과 옷을 갈아입혀 주는 거 말이야.”
내 말에 시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시녀도 아니고 왜?”
시아가 기분 나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백작가면 대귀족이다. 그것도 마우솔레움 가문이면 어지간한 후작도 아래에 둘 수 있었다.
공주의 시녀를 하라 그래도 망설일 와중에 같은 백작가의, 그것도 제 조카의 시녀 역할을 하라 그러면 불쾌해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내게는 시아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피가 안 섞인 시종들은 루시스가 거부하고 피가 섞인 방계들은 내가 믿을 수가 없으니까.
“루시스가 제 몸을 허락하는 이들 중에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내 말에 어째선지 시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를 믿는다고?”
“……? 물론이지. 너는 내 친동생이니까.”
대답하면서도 스스로가 바보 같아지는 질답이었다. 동생을 믿는 것에 이유가 필요한가?
그러자 문득,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시모어의 캐릭터 특성이 떠올랐다.
‘……시모어 같은 사람이 가족이면 나 같아도 못 믿을지도.’
나는 잡생각을 털어 버리고 아직도 반쯤 멍하니 있는 시아에게 말했다.
“걱정 마. 대가는 섭섭지 않게 챙겨 줄 테니.”
그 말에 시아도 정신을 차렸는지 괜히 툴툴거렸다.
“뭐, 용돈이라도 더 주려고?”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원하는 사업체를 줄게.”
그 말에 시아의 몸이 딱 굳었다.
이 세계의 귀족들은 모두 사업체를 굴리고 있었다.
특히나 천 년간 제국의 뒤에서 암약해 온 마우솔레움 백작가는 수많은 사업체들을 굴리고 있었다.
‘귀족의 권위가 역사나 전통보다는 돈에서 나오는 세계니까.’
그것을 직계와 방계들이 적당히 나눠서 운영을 하고 있으니, 내 침실에 모여서 목소리 높이던 집안 어른들이 모두 다 한 사업체의 사장님들이라는 의미였다.
아직 미성년자인 시아의 경우에는 성인이 됨과 동시에 가주에게서 사업체를 받아 그것을 운영하게 된다.
‘시몬은 전대 가주인 선대 백작에게서 받았고 시아는 내게서 받게 되겠지.’
그런 배경 때문일까.
직계 혈족용 사업체와 방계 혈족용 사업체가 나뉘어 있듯이 직계 안에서도 가주와 가주가 아닌 이들이 맡을 수 있는 사업체는 나뉘어 있었다.
“……원하는 걸 준다고?”
“원하는 사업체를. 무엇이든지.”
그러니 내 조건은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나는 금방 백작위에서 물러날 테니까.’
내가 물러나면 다음 백작은 시몬과 시아 둘 중 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그때 가서 물려줄 사업체, 이 기회에 적당한 거래로 내어 주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이미지가 좋아질 테니 은퇴하고 영지에서 용돈을 좀 많이 받아 쓰더라도 눈감아 주겠지.’
시아는 내 예상대로 기쁜 마음으로 내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한 가지 내 예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아의 눈동자에 욕망보다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눈동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