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7화(7/109)
장례식 (2)
제국에는 기이한 형태의 영지가 하나 있다.
북부의 설산에서부터 서부의 평야, 남부의 바다까지 모든 곳에 한 발씩을 걸치고 있는 뱀처럼 기다란 영지가.
이런 형태의 영지는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허리가 끊길 수밖에 없다.
전쟁의 생명줄인 보급선이 잘리는 것이다.
수성에 극도로 불리하기에 모두가 피하는 형태의 영지.
그런 형태의 영지를 굳이 가지고 있는 것은 거대한 자신감의 상징이기도 했다.
누구도 자신들을 감히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감 말이다.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지만 그 영지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모두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제국에 다섯뿐인,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가문이었으니까.
마우솔레움 백작령.
그 거대한 영지의 주인들이 기거하는 영주성에서는 지금,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 이슈타르 영애. 그대도 오셨군요.”
“도노반 자작. 오랜만에 뵙습니다.”
악명도 영향력도 드높은 마우솔레움 가문답게 수많은 귀빈들이 자리에 참석했다.
제국의 수도에서 이곳까지 직접 내려온 이들이었다.
“이슈타르 후작 각하께서는 오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공사가 다망하신지라 부족하나마 제가 가문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이슈타르 후작 영애도 있었다.
이제 막 장례식장에 도착한 그녀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슈타르 영애. 저번에 제 동생의 티 파티를 거절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일로 동생이 많이 상심했었습니다.”
“아하하. 이슈타르 영애는 그런 사교 모임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영애. 얼마 전에 새로운 경지에 들어가셨다 들었습니다.”
“역시 이슈타르 영애십니다. 이러다 제국이 최연소 소드마스터를 얻는 거 아닌가 싶군요.”
이슈타르 후작 영애, 이리나 이슈타르는 쏟아지는 말들에 목소리 대신 눈웃음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답하기에는 귀찮고 번거롭지만 기사도를 지켜야 하는 입장상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예의상 지어 준 눈웃음이었다.
“아…….”
그것만으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의 눈이 일순간 멍해졌다.
이리나 이슈타르에게 주변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후작가라는 배경과 미혼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가 가진 미모의 탓이 컸다.
제국에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는 둘 중 하나다. 엘프 혼혈이거나, 드래곤의 피가 섞여 있거나.
이슈타르 후작가는 후자로, 신으로 승천했다는 광휘룡(光輝龍) 이슈타르의 핏줄이 흐르는 가문이었다.
“이슈타르 영애는 정말 언제봐도 눈부신 분입니다.”
그녀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빛이 나듯 새하얀 백발과 신비로운 보랏빛 눈은 그의 말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름다움 이상의 어떤 신성함마저 흐르는 기분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이리나는 그저 작게 답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외모에 대한 평가는 일평생을 들어 온 인사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영애. 얼마 뒤에 사냥 대회를 열 생각인데 참여하시겠습니까?”
영식 하나가 머뭇거리다 말을 꺼내왔다.
아무래도 기사인 이리나이다 보니 사냥에 흥미가 있을까 싶어 제안하는 모양이었다.
“아…….”
이리나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로서 피를 보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무고한 짐승을 단순한 재미를 위해 사냥하는 것은 그녀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그녀를 구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부단장. 뭐 하고 있나?”
“아, 단장님.”
그녀가 속해 있는 광휘 기사단의 단장, 케인이었다.
케인은 이리나를 둘러싼 남자들을 슥 훑어보고는 이리나에게 고갯짓했다.
“곧 식이 시작된다. 가서 자리에 앉도록 하지.”
“예. 단장님.”
이리나는 망설임 없이 케인을 따라 자리를 떴다.
자리에 남겨진 영식들은 안타까운 탄성을 내다가 하나둘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식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님.”
이리나의 말에도 케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장례식은 마우솔레움 영주성의 후원, 가문 묘지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선대 백작의 관을 중심으로 의자들이 마련되어 있는 간소한 형태로, 식이 끝나면 곧바로 관을 들어 가문 묘지에 안치시킬 예정이었다.
이리나와 케인이 자리에 앉고 10분 정도 지나자 누군가 관 옆의 단상에 올라 식을 진행했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마우솔레움 가문을 모시는 집사장 알프레드라고 합니다. 마우솔레움 가문은 아시다시피…….”
늙은 집사는 가문의 간략한 역사와 사망한 선대 백작의 업적을 노련하게 읊었다.
케인이 문득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제가 아닌 집사가 장례식을 진행하는 건 처음 보는군.”
“마우솔레움 가문은 교회를 믿지 않으니까요.”
이리나의 말에 케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 선대 백작의 마지막 업적을 읊은 집사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음 식순으로 귀빈 여러분의 헌사를 듣기 전에, 혈족분들이 먼저 자리에 착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영주성 방향에서 일련의 인물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피부의 사람들이었다.
마치 찬란한 햇빛 아래를 흡혈귀가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모습. 마우솔레움 일족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시모어에게 몰렸다.
젊은 나이에 차기 백작위에 앉게 될 행운의 사내를 말이다.
“……어라?”
“호오…….”
개중 몇몇, 패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먼저 감탄사를 내며 눈을 좁혔다.
시모어의 남다른 옷차림 탓이었다.
시모어는 한 벌의 검은 슈트를 입고 있었다.
넓은 어깨가 부각되어 보이는 재킷의 어깨선과 군살 없는 허리가 강조되는 베스트의 허리 라인.
검은색 머리카락과의 대비감을 주는 듯한 하얀 색의 셔츠.
무엇보다 크라바트 대신 목에 걸려 있는 가느다란 넥타이가 시선을 모았다.
시모어의 눈동자 색과 같은 황금색 고정핀이 달려 있는 넥타이였다.
“저게 뭐죠?”
“처음 보는 목장식이로군요.”
패션에 나름 일가견이 있다 자부하던 이들일수록 시모어의 옷차림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장식이라고는 목장식의 핀, 단추, 커프스가 전부인데도 저리 고아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니.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우솔레움 백작령에서는 저런 패션이 유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도로 돌아가기 전에 백작령의 양복점을 들러야겠군요.”
“저도 함께 가도록 하지요.”
어느새 자리를 잊고 패션 삼매경에 빠져 있는 이들.
패션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크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시모어의 옷차림보다는 그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존재에 놀라고 있었다.
“저 아이는 누구죠?”
“이번 대의 마우솔레움은 삼 남매 아니었습니까? 혹시, 시모어 영식의 아이인 걸까요?”
하지만 수군거리던 목소리는 시모어의 품에 고개를 폭 박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우유와도 같이 새하얀 머리카락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통통한 볼에는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고 짤막한 손가락은 시모어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거기에 제 아빠와 같은 옷을 그대로 축소시켜 입힌 패션까지.
“귀여워라…….”
“정말 사랑스럽네요…….”
순식간에 이곳이 장례식임을 잊어버릴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붕 떠 버린 장례식장에서 오직 이리나만이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
이리나의 눈은 루시스에게 붙박여 떨어질 줄을 몰랐다.
* * *
장례식이 끝나자 수많은 이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시모어. 나를 기억하는가? 선대 백작을 만나러 한번 저택에 간 적이 있었는데.”
“영식. 아니, 이제 백작이라 불러야 하나요? 저는 인근의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볼테어 남작이라고 합니다.”
차기 백작이 될 나와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들이었다.
“한데 이 아이는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이가 몹시도 귀엽습니다. 하하하. 아버지를 닮은 거겠죠?”
루시스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직접적으로 물어보거나 은근히 떠보는 이들도 많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군요.”
“아, 이런. 저희가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나는 루시스가 또 시끄럽다며 드래곤 피어를 터뜨리기 전에 적당히 사람들을 물렸다.
사실, 내가 손님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루시스가 내 딸이냐고?’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품에 안겨 있는 루시스를 바라봤다.
“하~암.”
루시스는 작은 입을 양껏 벌려 하품했다.
나는 루시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 주고 품에 꼭 안아 줬다.
그때였다.
“마우솔레움 백작.”
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적당히 돌려보낼 생각으로 고개를 돌리자 백발의 자안이 내 눈을 어지럽혔다.
이리나 이슈타르였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드래곤의 피가 섞인 이들이 다 그렇지만, 정말로 놀라운 미모였다.
“……백작?”
내가 반응이 없자 이리나가 재차 나를 불렀다.
돌려보낼 타이밍을 놓쳤음을 깨달은 나는 헛기침을 했다.
“아, 미안. 정확히는 아직 백작위를 받지는 못했는지라.”
“그런 것치고는 벌써부터 하대를 하시는군요.”
원래 둘이 존댓말 하던 사이였나? 1년 뒤의 상황밖에 모르는 내 계산 미스였다.
“뭐, 내가 백작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니.”
나는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악연인 인물이니까.
‘마우솔레움 가문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가문. 그중에서도 시모어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
이리나 이슈타르.
주인공 플레이어에게 사망하는 역할의 시모어와 달리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이면서 시모어의 사후에는 동료로도 영입 가능한 인물이었다.
시모어를 토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주인공만큼이나 주의해야 하는 인물 중 하나.’
동시에 제국의 귀족으로 살아가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우솔레움 가문과 이슈타르 가문은 여러 가지 악연으로 얽혀 있었으니까.
“…….”
이리나는 말없이 루시스를 바라봤다. 루시스도 이리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마주 봤다.
이리나는 루시스의 정체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드래곤의 혈통, 혹은 뛰어난 감각 때문이리라.
“……당신.”
이리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서는 숨길 생각도 없는 짙은 의심과 혐오가 묻어났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두 가문의 관계와 역사를 생각하면 저런 눈빛을 보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만…….’
미인에게 저런 눈빛을 받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래?”
“…….”
내 반응에 이리나는 조금 눈동자를 크게 떴다. 기대하던 반응이 아닌 모양이었다.
‘시모어와 이리나는 견원지간이야.’
원작의 흐름대로였다면 아마 이 자리에서 시모어도 이리나에게 으르렁거렸을 것이다.
이리나는 잠시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작게 젓고 본론을 꺼냈다.
“이 아이. 어디서 데리고 온 겁니까?”
“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당신의 아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글쎄. 다들 어쩜 그리 부녀가 닮았냐고 난리던데.”
내가 오리발을 내밀자 이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더 하기에는 자리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리나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고개가 홱, 하고 뒤로 젖혀졌다.
“으햑?”
누군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탓이었다.
이리나는 저도 모르게 흉한 소리를 내뱉은 입을 가리고 붉어진 얼굴로 나를 홱 돌아봤다. 경악과 황당함으로 물든 눈빛이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내리자, 루시스가 이리나의 머리카락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루시스는 제 손에 쥐어진 하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 황금색 눈동자에 이리나가 가득 담겼다.
“……마?”
루시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리나는 못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 있는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엄마……?’
그 말에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마우솔레움의 황금 눈동자.
이슈타르의 하얀 머리카락.
천 년 전이 활동 무대였던 두 드래곤과 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아이.
‘설마.’
하지만 나는 가슴속에 떠오른 가설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광휘룡 이슈타르는 허무룡 마우솔레움을 죽인 공적으로 승천해 신이 된 용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