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5)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75화(75/109)
침 바르기 (3)
“두 분, 사이가 좋아 보이시는군요.”
그게 의외라는 듯 마탑주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앙숙 가문이 아니셨나요?”
“뭐, 그렇습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린의 반응은 딱히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지난 럭스의 패션쇼 때도 나와 이리나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많은 귀족들이 경악했었으니까.
사람들은 아직도 마우솔레움과 이슈타르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줄 안다.
‘틀린 말은 아닌가.’
불과 반년 전 내가 빙의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모어와 이리나는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던 사이였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그다지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루시스라는 공통적 관심사에 묶여 있을 뿐이었으니까.
“왜 제가 아닌 거죠?!”
마탑주가 갑작스레 급발진을 하며 내게 외쳤다.
“루시스 님의 과외 선생님 말입니다! 어느 모로 봐도 제가 제격이지 않습니까! 마법사인데!”
이리나가 루시스의 개인 선생이라는 사실은 딱히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이슈타르 가문에서는 혹시 모를 염문을 경계하고 있는 듯했고, 나 역시 구태여 그것을 소문낼 필요성은 못 느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마탑주라고 해야 할까. 쿠린은 당연하다는 듯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비밀 아닌 비밀은 알면서 당연한 건 모르는 쿠린에게 나는 타이르듯 물었다.
“마법사인 마탑주에게 루시스가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아.”
물론 루시스도 모든 종류의 마법에 통달한 건 아니다.
마법 코딩만 해도 루시스는 전혀 모르는 분야니까.
하지만 그건 ‘드래곤 입장에서는 굳이 알 필요 없는 학문’이었다.
쿠린은 이해는 했지만 여전히 납득은 못 하겠다는 듯 툴툴거렸다.
“그렇다면 이슈타르 경께는 루시스 님이 뭘 가르치는 겁니까? 검술?”
“아뇨. 인성과 생활관에 대해 가르칩니다. 말하자면 윤리 선생님 정도 되겠군요.”
그러자 내 인성이 모자라서 선생으로 안 쓴 것이냐는 듯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는 쿠린.
굳이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겠느냐는 듯, 나 역시 지지 않고 마주 봤다.
쿠린은 조금 상처받은 듯한 얼굴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하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꾸며 묻는다.
“제 초상화는 잘 간직하고 계신가요?”
“……예. 아주 잘 간직하고 있지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쿠린의 초상화.
그 저주받은 초상화는 자꾸만 금고 밖으로 기어 나오길래 마력이 깃든 쇠사슬로 지하 창고에 묶어 뒀다.
그 이야기에 이리나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두 분, 결혼하시는 겁니까?”
초상화가 왔다 갔다 한다는 건 보통 결혼 준비의 첫 단계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초상화를 보내지 않았으니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상상도 못 했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가 환하게 웃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잘 어울리시는군요!”
“…….”
그 반응에 쿠린은 조금 벙찐 얼굴이 되었다.
뭔지는 몰라도 자신이 바라던 것과는 다른 반응인 모양이었다.
* * *
황실에 초대받은 루시스는 극빈 대접을 받았다.
우선, 황실의 인장이 박힌 도금 마차가 루시스와 시아를 데리러 마우솔레움 타운하우스에 도착했다.
“흐흥.”
황실의 인장이 박힌 덕에 앞을 가로막는 존재는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이면 사람, 마차면 마차, 심지어 황실의 경계를 서는 황실 근위 기사단도 마차를 멈춰 세우지 않았다.
“흐흥!”
황제의 알현실 밖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궁중백은 루시스와 시아를 그 대기열의 가장 앞에 세웠다.
“흐흐흥!”
“죄송합니다, 코필드 경. 황제 폐하께서 저희를 초청하신지라.”
“폐하의 초청이라면 응당 앞에 서야지. 괜찮네, 마우솔레움 영애.”
시아가 다른 귀족들에게 사죄의 마음을 표하는 사이 루시스는 그 귀족들에게 제 콧대의 각도를 한껏 뽐냈다.
“흥! 흐흥!”
마치 이게 너와 나의 수준 차이라는 듯이.
그 모습에 코필드 경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정말 듣던 대로 귀엽고 사랑스러우신 분이군요.”
코필드 경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며 물었다.
“고귀하신 영애. 저에게 손등에 입을 맞출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오?”
루시스는 조금 놀란 눈을 하더니 킥킥킥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코필드 경은 조심스레 루시스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수염이 손을 간지럽히자 루시스는 목을 움츠리며 작게 웃었다.
“영광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응.”
루시스가 기분 좋게 또 한 번 콧대를 드높이는 사이 루시스와 시아의 입장 허락이 떨어졌다.
다만 두 사람은 알현실이 아니라 알현실에 딸린 작은 다과실로 안내되었다.
시아는 그것이 드래곤을 차마 황좌에 앉아서 반길 수 없기에 취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드래곤은 최소한으로 봐도 황제와 동등한 존재. 알현실은 황제가 아랫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이지 동등한 존재를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다.
“흐흥, 흐흥~.”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루시스를 품에 안고 다과실에 발을 들이자 황제와 황후, 황자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꿀꺽.”
시아는 떨리는 팔로 루시스를 옆에 내려 두고 셋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제국을 비추는 태양과 그 일가를 뵙습니다.”
“그래. 나도 반가우니 일어나게.”
‘친구 같은 황제’라는 별명답게 그랜달 2세는 시아의 인사를 오래 받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루시스는 이미 제 것으로 보이는 의자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루시스.”
“응. 너도.”
“…….”
루시스의 친구 같은 취급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지 미소가 비틀어지는 그랜달 2세.
“루시스 양……! 오랜만입니다!”
“응. 너도.”
루시스의 친구 같은 취급이 무엇보다 기쁜지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지는 에라드.
“…….”
그 모습을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바라보는 황후였다.
황제는 주도권을 잡아야겠다 생각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우리의 초대에 응해 주어 고맙네. 저번에 황자가 신세를 졌다 들었기에 이번에는 황가에서 그대를 한번 대접하고 싶었다네. 이건 사소하지만 환영 선물이라네.”
그렇게 말하며 황제는 자그마한 보석 상자를 건넸다.
“오.”
루시스는 눈을 반짝이며 양손을 쭉 내밀었다.
‘주세요’ 하는 그 포즈에 황제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역시 드래곤이라 한들 욕망에 솔직한 아이일 뿐이었다.
“앞으로 황자를 찾아 이곳에 올 때마다 이런 보석 상자를 하나씩 주겠네. 그러니 부디 좋은 친구가…….”
“오?”
황제에게 받은 보석 상자를 입을 헤벌리고 구경하던 루시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래. 올 때마다 하나씩 주겠네. 그러니…….”
그때, 루시스는 보석 상자를 닫더니 갑작스레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다과실의 입구를 향해 도도도 달려갔다.
“……?”
모두가 그 돌발 행동에 의아해하는 사이, 루시스는 다과실의 문지방을 넘었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런 알 수 없는 행동을 다섯 번 정도 한 뒤 루시스는 다시 다과상으로 돌아와 의자를 기어올랐다.
그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양손을 내미는 것이다.
“줘.”
“……?”
“상자 여섯 개 더 줘.”
그제야 황제는 루시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다.
“아니, 황자를 찾아올 때마다 주겠다는 건 황궁에 대한 이야기지…….”
“황제가 거짓말?”
“…….”
“줘.”
황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헤츨링, 알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
자신의 말을 다 이해했으면서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방패 삼아 아무것도 이해 못 한 척 땡깡을 부리고 있다.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던 이유는 황제 역시 저런 식으로 귀족들을 자주 골탕 먹였던 탓이었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되레 눈치 없는 척을 한다더니…….’
굉장히 아니꼬웠다.
죽을 만큼 아니꼬웠지만 황제는 져 줄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되어서 어린아이와 언쟁을 벌일 수는 없었고, 인간이 되어서 드래곤과 언쟁을 벌일 수는 없었으니까.
‘진정 소악마가 따로 없군.’
만에 하나 에라드가 이 아이와 결혼하기라도 한다면 분명 제국의 보물고를 제 지갑처럼 여길 존재였다.
‘아니지. 드래곤의 습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보물들을 제 것으로 여겨 한 푼도 못 쓰게 해서 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문제들을 고려한다 해도 얻게 될 이점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제국의 가장 큰 창이자 방패가 되어 줄 터이니…….’
황제는 시모어 백작과 루시스가 레스터 호수에서 벌였다는 일전에 대해 전해 들었다.
한낱 인간에게는 신의 강신체를 대적할 만한 힘이 있을 리 없다 생각했기에 황제는 눈앞의 존재가 그 싸움의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황제는 한숨을 쉬며 궁중백을 불러 선물 상자 여섯 개를 더 가져오라 명했다.
“저희 집 아이 때문에 죄송합니다.”
황제는 시아의 그 사과를 연고 삼아 가슴에 바를 수밖에 없었다.
* * *
황제는 다시 집무를 위해 알현실로 돌아갔고 황후는 시아와 함께 다과실에 남아 수다를 떨기로 했다.
시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황후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 자리가 훗날 내 힘이 되고 가문의 힘이 될 거야.’
모이나는 황제의 친구이고 이리나는 황후의 친구라 모녀가 자주 황실에 드나든다는 건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현 이슈타르 가문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라는 사실 역시 말이다.
시모어가 시아에게 어떤 역할을 바라고 황궁에 보낸 것인지는 몰라도, 시아로서는 그런 역할이 몹시도 탐났다.
‘나도 오빠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해.’
호수에서의 일전을 통해 시아는 자신의 무력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직 어린 데다가 아카데미도 졸업하지 못했음은 그녀의 상처 입은 자존심에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여기서 반드시 황후 마마의 눈에 든다!’
황후는 그저 시간 때우기용 심심풀이로 시아를 상대하는 것일 터였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에게 큰 기대가 없다는 의미였다. 하기야 아직 성인식도 못 치른 어린 영애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시아는 저도 모르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마. 시모어 오빠는 신 앞에서도 우리를 지키기 위해 입을 놀렸어.’
그에 비하면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건 기껏해야 같은 인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아였다.
게다가 시아에게는 이런 자리에서 잘 먹히는 확실한 무기가 하나 있었다.
“황후 마마.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선물이요? 어머나, 영애 같은 어린 학생에게는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어린 학생이지만 마우솔레움 가문의 일원이지요. 부디 제 정성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 한번 보도록 할까요?”
시아가 열린 문 바깥으로 시녀를 부르자 시아의 시녀가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 안에는 여성용의 짧은 넥타이가 들어 있었다.
“럭스에서 이번에 선보이는 여름용 넥타이입니다.”
그 선물에 황후의 입가가 곡선을 그렸다. 시아는 그 미소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나 소문대로 황후도 럭스의 큰 팬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마탑주가 개최하는 파티에 참석하지 못해 섭섭했는데 영애가 이리 챙겨 주시는군요.”
“마음에 드신다면 네 가지 색상의 넥타이를 전부 진상하겠다는 가주의 전언도 있었습니다.”
“오호호. 감사히 받겠다고 전해 주세요.”
황후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넥타이를 자신의 시녀를 통해 궁 안으로 들였다.
선물을 통해 부드럽게 물꼬가 트인 대화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드라이어를 처음 사용해 본 게 영애였다고요?”
“정확히는 루시스였습니다. 저는 두 번째였죠.”
“저도 정말 잘 쓰고 있답니다. 이 긴 머리를 말리는 데는 아시다시피 너무 오랜 시간이 들잖아요.”
“제 말이요.”
다행히 시아는 황후가 관심 있을 만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마우솔레움 백작이 다음에 만들 아티팩트는 무엇인가요?”
“아……. 글쎄요. 그건 대외비인지라…….”
“걱정 마세요. 저는 황제 폐하가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는 아주 신의 깊은 여자니까요.”
약간의 밀당은 대화를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드는 필수 요소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가주가 다음번에 만들 예정인 아티팩트는 게임기라고 합니다.”
“게임기……? 보드게임 같은 건가요?”
“가주 말로는 5초 만에 룰을 숙지할 수 있고 남녀노소 모두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거라더군요.”
“그것참 기대되네요.”
시아는 미소 지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걸 넘어 다음번에 있을 황실 티파티에 초대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궁정백이 보고를 올리기 전까지는.
“헤츨링이 에라드 황자님을 납치했습니다!”
시아는 마시던 차를 뿜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