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2)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82화(82/109)
변화 (2)
“시몬. 설마 고문 회로를 완성한 거야?”
시몬은 아무 대답 없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문 회로? 그게 뭐야?”
옆에서 헬라가 물었다.
“선대 백작의……. 유작이라고 해야 할 물건.”
“이름부터 그런 낌새가 팍팍 나더라니. 그래서 그걸 시몬이 우리 가주님 몰래 만들었다고?”
헬라는 흥미롭다는 듯 의자를 끌어와 앉더니 나와 시몬을 번갈아 바라봤다.
뭐가 되었든 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라는 눈빛. 자신은 잘 모르는 형제간의 갈등이 퍽 재밌다는 눈치였다.
“내가 좀 경솔했네. 형님이 이렇게 눈치가 빠른 사람인 줄은 몰랐어.”
시몬은 웃으며 팔뚝의 옷을 걷었다.
그곳에는 엑스자 모양의 마력 회로가 새겨져 있었다. 조선 시대의 오랜 고문법 중 하나, 주리 틀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마력 회로였다.
“맞아. 이게 고문 회로야.”
나는 무척이나 놀랐지만, 그에 앞서 물어봐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사용한 적은?”
“있어. 효과가 좋던데.”
“누구한테 사용했어?”
“광대의 부하 하나랑……. 나 자신.”
“앞으로 판매할 계획은?”
“글쎄. 형님이 원한다면?”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 안 내는 거야?”
“화?”
“형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잖아.”
분명 몇 달 전에 고문 회로를 만들지 말라 말하기는 했었다.
‘주인공과 혹시 모를 악연이 생기는 걸 피하고자 함이었지.’
하지만 이미 교회와 교전까지 벌인 상황에서 고문 회로가 더해진다고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마력 회로 주조소의 사장을 맡고 있는 시몬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게 나았다.
“…….”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니 몹시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내가 자신을 혼내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은 시몬의 표정이었다.
“시몬. 미안하지만, 나는 네 어리광을 받아 줄 생각은 없어.”
“……어리광이라니?”
“스스로도 잘못된 길을 간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혼나 그로써 죄가 사해지는 기분을 받고 싶어 하는 게 어리광이 아니면 뭐겠어?”
“…….”
시몬의 표정이 구겨졌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 말들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네가 시아라면 혼냈을 거야. 시아는 아직 학생이니까. 루시스라면 어리광을 받아 줬을 거야. 루시스는 아직 뭘 모르니까.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거야?”
“비슷한 말이지. 너도 어엿한 한 사업체의 사장이니까.”
“…….”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시몬. 하지만 나는 시몬의 이해를 굳이 도울 생각이 없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해?”
하지만 헬라는 그런 미적지근한 결말은 원치 않는 모양이었다.
“네 형님 말은, 너는 이미 나나 시모어와 같은 위치라는 거야. 뭐라고 해, 가문의 어른? 실세? 하여간에 동등한 위치로 보고 있다는 거지.”
나를 바라보는 시몬의 눈동자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무슨 똥 싸 놓은 거 걸린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해할 필요도, 나는 나쁜 아이라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는 거야. 마우솔레움 가문의 일원으로 손에 피 한번 안 묻히는 인간은 없으니까.”
내 말뜻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까지 얹어서 전달한 헬라는 나를 보며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좀 좋아?”
“헬라. 세간에서는 그런 걸 교양이 없다고 표현한다는 걸 꼭 알아 뒀으면 좋겠어.”
“헤헹. 그런 거 신경 쓸 사람이었으면 눈깔에 마력 회로도 안 그렸지. 어라, 그러고 보니 우리는 셋 다 마력 회로를 새긴 교양 없는 귀족들인 건가?”
헬라에게 질린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젓고 시몬에게 마저 말했다.
“너는 내 명령을 듣는 사람이 아니야. 물론 나는 가주지만 그 이전에 너의 형제야.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 거다.”
“……형님.”
“혹시라도 네가 무언가를 잘못하면 우리는 너와 함께 그 결과를 직면할 거지 너를 혼내거나 탓하지 않을 거야. 우린 가족이고 동등한 관계니까.”
나는 조금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시몬의 처진 입꼬리를 엄지로 쭉 밀어 올렸다.
기껏 잘생긴 얼굴로 디자인해 줬더니 우울한 표정이 얼굴을 다 깎아 먹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마. 너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 네 잘못은 잘못이 아니야. 우린 그런 가문의 그런 위치에 앉아 있으니까.”
시몬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 형님.”
“그래. 기왕 새긴 거 고문 회로는 잘 활용해 보고.”
“응. ……고마워.”
“내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데 내가 더 고맙지.”
시몬의 어깨를 두드린 나는 발을 돌렸다. 루시스에게 찾아갈 예정이었다.
“루시스가 부러워지는 건 처음이네.”
뒤에서 헬라의 씁쓸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우리 노친네도 저렇게 말해 줬으면 내가 평생 효도했을 텐데.”
이미 일어나 버린,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향한 한탄이었다.
* * *
어느새 깨끗이 씻은 루시스는 광휘궁의 이사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여기가 내 방.”
루시스는 자신의 침실로 다락방으로 쓰이던 꼭대기 방을 골랐다.
시녀와 시종들이 안 된다며 한목소리로 막았지만 루시스의 고집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확실히 좋은 방이네.”
방 안을 잠시 둘러보니 왜 루시스가 이곳을 침실로 삼았는지 알 수 있었다.
둥근 창밖으로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자연을 좋아하는 루시스에게는 저 창밖 풍경이 어느 방보다도 마음에 들었으리라.
“응…….”
루시스는 조금 전 내가 왔을 때부터 품에 안겨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품에 얼굴을 비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역시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시내에 나갈까?”
“응?”
“연극 보고 치킨이나 먹고 오자.”
“오. 좋아.”
놀러 가자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루시스였다.
이번 외출에는 루시스의 놀이 친구인 마렉, 마리도 동행했다.
“영광입니다, 백작님! 루시스 님!”
“치킨 먹는 거예요? 와아! 감사합니다!”
“흐흥.”
제 놀이 친구들이 마차에 함께 오르자 조금 의젓한 척 콧소리를 낮게 까는 루시스.
하지만 내 품에 안겨서 그래 봐야 아무 의미 없었다.
연극 시간이 맞지 않아서 우리는 우선 ‘검은 밤’에 방문해 치킨을 먹었다.
“와아아……!”
치킨을 처음 먹는 마렉과 마리는 물론 몇 번이나 먹어 본 루시스도 정신없이 버킷을 해치웠다.
한참 맛있게 치킨을 먹던 마리는 갑자기 제 앞의 치킨 조각을 보며 끙끙대더니 내게 조심스런 눈길로 물었다.
“이거, 남겨서 집에 가져가도 돼요……?”
“상관은 없는데 그러면 맛이 없어질 텐데. 왜 그러니? 배불러?”
“아뇨. 그…….”
제 손가락을 콕콕 마주치더니 죄송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마리였다.
“저희 오빠한테도 가져다주고 싶어서여…….”
마리는 마르코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었다.
항상 저와 마렉을 위해 고생하는 큰오빠에게 뭐라고 챙겨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순수한 마음이 귀여워서 나는 작게 웃었다.
“아하하. 괜찮아. 너희 오빠는 치킨 100마리를 사 먹어도 돈이 남을 정도로 월급을 많이 받으니까.”
“정말여……?”
“그래. 오히려 너희가 치킨을 남겨 가면 자기 생각에 너희가 배불리 못 먹었다며 미안해할 거야. 그러니 너희부터 실컷 먹어.”
마리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다시금 전투적으로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틈틈이 루시스의 입가를 닦아 주며 치킨 한 버킷을 추가로 주문했다.
“냠냠!”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이 좋아진 건지 루시스는 환하게 웃으며 포크를 놀렸다.
“가주님.”
그때, 검은 밤의 지배인인 방계 가문원이 내게 몰래 다가와 쪽지 하나를 건넸다.
– 잠시 단둘이 만났으면 해요.
– 이리나 이슈타르.
이리나의 밀회 쪽지였다.
* * *
연극이 시작되고 루시스가 귀신같이 잠든 틈을 타서 나는 박스석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혹시라도 교회의 인원이 접근할 경우 칼을 빼 들어도 좋다.”
“예. 가주님!”
나는 박스석의 입구를 지키는 호위 기사들에게 단단히 명령을 내린 후 이리나의 쪽지에 적혀 있던 장소를 찾았다.
루시스와도 방문한 적 있는, 이리나의 단골 카페였다.
“오셨군요.”
이리나는 2층의 VIP 전용 룸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 건 단단히 걸린 커튼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어디 아픈 건가?”
자리에 앉으며 묻자 고개를 젓는 이리나였다.
이리나는 둘이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까지 가만히 테이블을 내려다보다가 음료수에는 손도 대지 않고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리나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해 본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결혼 대상으로서의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언제나 단정한 평소와는 달리 옷도 머리 상태도 깔끔하지 못한 것을 보면 무언가에 의해 심마라도 온 모양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생각한다만.”
“그 때문에 루시스 님의 선생 역할을 제의하셨댔죠.”
“그래. 나는 루시스가 경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니까.”
“그 선택에 다른 정치적인 이유는 전혀 없으셨나요?”
정치적인 이유.
아무래도 모이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서 온 모양이었다.
‘모이나……. 이리나의 가장 큰 반동 인물.’
원작에서 이리나와 가장 크게 대립하고 숙적으로 나오는 것은 단연코 시모어다.
하지만 이리나의 성장을 억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반동 인물은 모이나였다.
‘이리나의 적이 아니기에 더욱 무서운 반동 인물이지.’
이리나는 아직 젊다. 그것도 전대미문의 천재 후작이라는 걸출한 사람을 부모로 두고 있다.
그런 부모의 몇 마디 대화에 가치관이 흔들리고 심마에 드는 것은 충분히 당연한 일이었다.
‘시모어의 가장 큰 공포도 제 부모와 관련된 거였으니.’
나는 흔들리는 이리나의 눈동자를 보며 한 단어 한 단어 힘을 주어 답했다.
“전혀 없었어.”
“…….”
“그레니엄에 이슈타르 경만큼 루시스의 선생으로 초빙하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어. 단지 그 이유뿐이야.”
이리나는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가, 주문되어 나온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변하신 겁니까? 기억하시겠지만, 백작은……. 저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잖습니까.”
원작에서 시모어와 이리나의 사이는 최악이었다. 그 이전에 마우솔레움 가문과 이슈타르 가문의 관계부터가 파국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사교계에서도 어지간해서는 한자리에 부르지 않았고 우연히 한 파티에서 만나기라도 한다면 어느 한 측이 분노로 얼굴을 붉힌 채 파티장을 떠날 때까지 서로에게 모욕을 쏟아 내는 그런 관계였다.
“아버지가 죽고 루시스가 생기니 생각이 많이 바뀌더군. 루시스에게 더 나은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고.”
바깥 세계의 빙의자임을 밝힐 수 없는 나로서는 그게 최선의 대답이었다.
“혹, 아직 이슈타르 가문에 적의를 가지고 계십니까.”
“이제는 아니야. 루시스의 핏줄 절반이 흐르는 가문인데 내가 어찌 증오하겠어.”
“하지만……. 당신의 후손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죠.”
나는 이리나가 모이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은 건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이리나가 만들어 가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이나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모이나는 제 할아버지인 선선대 백작이 마우솔레움 가문에게 살해당했다 믿고 있었다.
“내 후손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 증오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열쇠가 루시스라고 생각해.”
“루시스 님이요?”
“혼혈인 루시스는 흑룡과 백룡의 사랑의 결실이잖아. 루시스를 상징 삼으면 우리 두 가문도 화합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앞으로 만 년을 살아갈 루시스가 이 평화의 수호자가 되어 줄 테니까.”
이리나는 차가운 음료 잔을 양손으로 꼭 쥐며 물었다.
“백작은 저희 가문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으신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내가 이슈타르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아진다면 루시스가 싫어할걸? 루시스도 그대를 몹시 흠모하고 있거든.”
“……그건 몹시 기쁜 이야기네요.”
루시스에 대해 생각하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이리나는 이내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슈타르 타운하우스에 오지 마십시오.”
그건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