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8)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88화(88/109)
이슈타르 타운하우스 (4)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천장에 실내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나는 루시스를 안고 재빨리 창가로 몸을 날렸다.
떨어지는 파편을 마법으로 막아 내며 로카리움에게 외쳤다.
“잠시 시간을 벌어 줘!”
[성체 백룡 셋을 상대로 시간을 벌라니……. 뭐, 좋아. 설마 죽이지야 않겠지.]나는 루시스를 안고서 그대로 본관 건물 밖으로 몸을 날렸다.
“흑룡……?!”
“놈이 달아납니다!”
“붙잡아!”
[어디들 가시나? 인간은 놔두고 드래곤끼리 놉시다!]콰아앙-!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의 충돌을 외면하고서 나는 본관 앞의 정원을 달렸다.
“저기 있다!”
“시모어를 막아!”
본관에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던 기사들이 나를 포위하려는 듯 커다란 포위진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목표는 도주가 아니었다.
“여기다.”
나는 정원의 한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광휘룡의 은총’의 기운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나는 마력을 한껏 끌어올린 뒤, 그 마력을 그대로 지면에 짓눌렀다.
쩌저적-!
거대한 중력으로 정원 바닥에 깔려 있던 돌 발판들이 금이 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루. 힘을 보태 줘.”
“여기 부숴?”
“응. 같이 부수자.”
루시스가 손을 젓자 내 마력과는 비견조차 안 되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함께 바닥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콰르르-.
바닥은 그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루시스를 안고서 지하로 뛰어내렸다.
[기사들은 제가 막을게요!]루시스의 주머니 속에 숨어 있던 운디네가 튀어나오며 정원의 분수대에서 물을 끌어와 우리가 낸 구멍에 방어막을 씌웠다.
나는 빠르게 지하 공간을 훑었다.
‘이슈타르의 가보실.’
이곳은 원래라면 본관의 지하실을 통해 들어와야 하는 이슈타르 가문의 보물 창고였다.
대부분의 가보들은 무너져 내린 흙과 돌더미에 파묻혀 버렸지만 그런 혼란은 저와는 상관없다는 듯 고고히 유리관에 들어 있는 물건 하나가 있었다.
– 두근, 두근.
적출되고 조각난 지 천 년이나 지나 주먹 반 개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있는 그것은 새카만 색의 드래곤 하트였다.
“오……?”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마력이 익숙했던 걸까.
루시스는 그것을 알아봤다.
허무룡 마우솔레움의 드래곤 하트였다.
* * *
‘광휘룡의 은총’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우솔레움의 드래곤 하트 조각이었다.
가보실에는 가주만이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을 무기로 오랫동안 지켜져 온 거짓말이었다.
‘성물이 마력을 뿜어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사제와 마법사들도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공명정대한 이슈타르 가문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겠는가.
구더기처럼 숙적이었던 존재의 시체를 파먹으며 제 가문의 빛을 이어 가고 있으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
루시스는 멍하니 드래곤 하트를 바라봤다.
나는 유리관을 열어 까맣게 말라붙은 드래곤 하트를 꺼냈다.
볼품없을 정도로 비틀어져 있었지만 느껴지는 마력만은 장엄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루.”
나는 그것을 루시스에게 건넸다.
“…….”
루시스는 말없이 심장을 받아 들었다.
루시스로서는 처음으로 마주한 제 아버지의 유해였다.
“우…….”
루시스의 입에서 무언가 감정을 참아 내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말없이 루시스의 머리를 쓸어 줬다. 나를 올려다보는 루시스의 커다란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꼬옥, 루시스는 마우솔레움의 드래곤 하트를 품에 끌어안았다.
마치 아버지의 온기를 느껴 보려는 듯한 행동에 내 가슴이 다 아파 왔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루시스의 아빠가 되어 주고 싶어도, 진짜 아빠의 그림자는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훌쩍.”
루시스는 눈물을 삼키며 내게 다시 드래곤 하트를 내밀었다.
“고마워, 루.”
나는 그것을 받아 들며 루시스의 눈물에 대고 맹세했다.
“네 아버지의 힘을 결코 허튼 곳에 쓰지 않을게.”
“……응.”
떨어지는 루시스의 눈물에 입을 맞춘 뒤, 나는 내 셔츠의 왼쪽 자락을 잡아 뜯었다.
쫘악-!
단추가 뜯어져 나가며 축성 회로가 새겨져 있는 가슴이 드러났다.
이 순간을 위해 새겨 온 축성 회로였다.
‘새겨진 회로의 개수는 60개.’
십자가 모양의 축성 회로는 가슴은 물론 쇄골과 어깨에까지 퍼져 심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새겨져 있었다.
“후…….”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루시스와 눈을 마주친 뒤 곧바로 드래곤 하트를 내 심장에 박아 넣었다.
치이익-.
드래곤 하트는 감히 인간이 드래곤의 힘을 탐내냐는 듯, 검은 안개를 뿜어내며 반발했다.
내 가슴은 인두로 지지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흉물스럽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윽……!”
나는 고통에 물러서지 않고 더욱 강하게 심장을 밀어 넣었다.
서서히, 영혼과 마력이 도려내어진 내 심장이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축성 회로들이 마치 망자의 손아귀처럼 뻗어 나와 드래곤 하트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피라냐가 가득한 연못에 떨어진 사람처럼, 드래곤 하트는 게걸스레 먹어 치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 * *
이리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콰르르르-.
20년간 살아왔던 이슈타르 가문의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동화책에서나 보던 거대한 흑룡에 의해서 말이다.
“데메테르! 저도 본체로 돌아가겠습니다!”
“안 돼! 낮이면 모를까, 지금 우리들의 본체는 너무 눈에 띈다!”
“인간 형태로 저놈을 어떻게 상대해요?!”
“건물에 숨어서 마법으로 요격해! 인간들을 방패로 쓰고!”
아니, 건물을 부수고 있는 건 선조들인 백룡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피해! 타운하우스 바깥으로 대피해라!”
이리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제 몸을 지킬 힘이 없는 하인과 시종들을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기사들은 케인과 모이나의 지시에 따라 검은 드래곤을 포위하거나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인간의 공격은 드래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콰아앙-!
또 한 번의 거대한 마법이 본관 건물을 뒤흔들었다.
그 충격에 이리나는 잠시 허공을 날았다가 바닥을 굴렀다.
“커흑……!”
등을 덮친 충격을 다스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이리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잔뜩 먼지가 끼고 이리저리 짓밟혀 솜이 터져 나온 무언가.
이리나가 선물했던, 루시스가 품에 꼭 끌어안고서 방문했던 백룡 인형이었다.
“…….”
이리나는 고통도 잊고 떨리는 손으로 그 인형을 집어 들었다.
기사의 군홧발에 짓밟혀 눈알 역할을 하던 단추 하나가 떨어져 애꾸눈이 된 인형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리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저 평화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루시스는 그저 원하는 꿈을 꾸고 싶었을 뿐인데.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꾸욱-.
이리나는 인형의 얼굴을 문질렀다.
하지만 한번 박힌 흙먼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인형은 영영 하얀색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리나!”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모이나였다.
“어서 나를 따라오거라!”
갑작스런 명령에도 이리나는 반사적으로 그 뒤를 따랐다.
루시스의 인형을 허리춤에 끼워 넣으며 이리나는 물었다.
“어디를 가는 겁니까?”
“지하실로 간다. 시모어가 우리의 가보실에 침입했어!”
“가보실에요……? 이 상황에 말입니까? 무엇 때문에요?”
“드래곤 하트 때문이겠지!”
“……예?”
“마우솔레움의 드래곤 하트가 놈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돼!”
상상도 못 한 단어에 이리나는 걸음을 떼는 것조차 잊었다.
모이나는 잠시 앞서가다가 뒤처진 딸을 보고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어서 오래도!”
“……마우솔레움의 드래곤 하트가 저희 가보실에 왜 있습니까?”
“왜 있긴, 타운하우스 전체를 뒤덮는 방호 마법과 차단 마법을 드래곤 하트가 아니면 뭘로 유지한단 말이냐!”
“그건……. 광휘룡님의 은총이었던 게…….”
“광휘룡님이 죽인 적의 유해를 챙긴 것이니 그분의 은총이지!”
“…….”
“이해가 안 되니? 그놈의 상징성 때문에 더러운 일에는 손조차 못 대는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 이 큰 타운하우스를 유지하겠니! 늦든 빠르든 가주가 될 너도 다뤄야 하는 물건이다. 그러니 어서 오거라!”
이리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마우솔레움의 드래곤 하트? 허무룡의 유해를 이슈타르 가문의 보고실에 넣어 뒀었다고?
‘더러운 피라며, 어둠의 마력이라며 지탄하던 그 힘의 결정체를? 심지어 그 드래곤을 선조라고 모시고 있는 가문에 돌려주지도 않고……?’
이리나는 손을 들어 머리를 짚었다.
갑작스런 혼란과 혼돈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를 가야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이럴 때는 뭘 우선해야 하지?’
가문의 이익? 어머니에 대한 의무? 약자들을 위한 기사도?
이런 상황은 훈련에서 배우지 않았다. 그저 명령만을 따르라 배웠건만 지금은 허리춤의 인형이 너무 무거워 발을 옮길 수조차 없었다.
그 무게감에 자꾸만 머릿속에 루시스가 떠올랐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누구보다 빛나던 아기 광휘룡의 모습이.
– 난 커서 광휘룡이 될 거야.
눈을 반짝이며 제 꿈을 말하던 아이의 모습이.
– 원하는 꿈을 꾸는 건 아이의 특권이야. 아이들은 어른들의 다툼과는 상관없이 커야 하잖아.
루시스의 꿈에 대해 듣고도 서운해하기는커녕 누구보다 응원해 주던 시모어의 모습이.
–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뀌는 게 아이들의 꿈이란다. 그 말에 큰 의미는 두지 말렴.
루시스의 꿈을 단순히 어린아이의 변덕 즈음으로 치부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고, 실망의 빛이 역력히 드러났던 시무룩한 얼굴로 소중히 들고 다니던 인형을 버리던 모습까지도.
욱신.
심장이 아파 왔다.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이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그 순간 이리나의 머릿속을 스친 건 다름 아닌 시모어의 목소리였다.
– 위선의 백룡궁에 사는 눈먼 공주님 아니신가.
다정한 지금과 달리 혐오감만이 가득 배어 있던 시절의 목소리였다.
“아아아…….”
이리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시모어가 왜 자신을 그렇게 불렀는지. 왜 자신을 그다지도 싫어했는지.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리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어머니. 저, 심장이 너무 아픕니다.”
이리나는 가슴을 움켜쥐며 모이나를 불렀다.
“어머니는 아프지 않으십니까?”
“이리나, 제발.”
“저 가여운 아이를 함정에 빠뜨리셨으면서도 전혀 가책이 안 느껴지십니까?”
“양심선언은 다음에 들어 줄 테니 지금은 제발 오기나 하거라. 네가 이럴수록 시모어는 드래곤 하트에 더 가까워지고 있단 말이다!”
“지금 대답해 주십시오!”
이리나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모이나는 이리나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귀족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인 행동이란다. 그런 것 하나하나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는 큰일을 할 수가 없어.”
“…….”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구나.”
모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 이상은 참아 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래, 너는 어릴 적부터 언제나 유약하고 한심한 아이였지. 네가 기사도에 관심을 가질 때 말리지 않은 것도 이런 면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모이나는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 경멸에 가까운 빛을 띠고서 말했다.
“내가 너를 필요로 하는 몇 안 되는 순간에까지 너는 끝끝내 쓸모가 없구나.”
어째서일까.
이리나는 모이나의 모욕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 나는 루시스가 경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해.
자신의 장점을 봐 주고,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준 사람의 목소리가.
그 곁에서 언제나 자신을 따르고 좋아해 주던 순수한 아이의 웃음소리까지도.
“어머니.”
이리나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차분해져 있었다.
해야 할 일을 찾은 기사는 어느새 심신을 가라앉혀 침착함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전 저 위의 백룡들이 부끄럽습니다.”
이리나의 손이 기사단의 망토를 고정하는 브로치로 향했다.
“빛이 나는 척, 하얀 척하는 이 가문이 부끄럽습니다.”
언제나 자랑이던 하얀 비늘의 문장. 이리나는 그것을 제 손으로 뜯어냈다.
“그 무엇보다, 당신이 제 어머니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이리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검 끝이 자신을 향하자 모이나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이리나 이슈타르!”
“그 이름으로 저를 부르지 마십시오.”
허리춤의 지저분한 인형이 그녀의 이어질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리나는 모든 번뇌를 이겨 낸 듯 산뜻해진 얼굴로 말했다.
“제 자랑스런 이름 석 자의 뒤에 더 이상 그런 위선자의 이름을 짊어지지는 않겠습니다.”
가슴은 여전히 아파 왔다.
이리나는 그 고통을 신념이라 부르기로 했다.